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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맏물(첫 열매)을 가져 왔나이다 (신 2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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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물(첫 열매)을 가져 왔나이다 (신 26:1-11)

1. 들어가는 말

다하라 요네꼬라고 하는 일본 여성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과잉보호 속에서 자라난 그녀는 고등학교 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혼자서 살아가는 것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 결과 두 다리와 왼팔이 잘리고, 오른팔만 남게 되었는데, 그것도 손가락 두 개는 잘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비참하고 절망적인 모습으로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 불편한 몸으로 죽음마저도 자기 스스로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극도의 절망감속에서 몸부림치는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신학생이 병원으로 병문안을 왔습니다. 그 청년은 여러 번에 걸쳐서 요네꼬를 위하여 기도하였고, 그녀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주님께서는 요네꼬의 그 만신창이가 된 몸 이상으로 망가진 그녀의 영혼을 만져주셨고, 그녀는 드디어 주님의 사랑과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청년은 요네꼬에게 청혼을 했고, 드디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그들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두 자녀와 함께 육신의 장애가 없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개척한 교회를 목회 하면서도 바쁜 틈을 내어 세계 곳곳으로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간증을 하며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요네꼬 사모가 책을 펴냈습니다. 그 책의 제목이 “산다는 것은 황홀하다”입니다. 두 다리가 없고, 한쪽 팔도 없고, 남은 한 손마저 손가락이 세 개밖에 없는 여인이,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녀는 오히려 장애인이 되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생활이, 사지가 멀쩡하면서도 주님의 은혜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얼마나 더 행복한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정말이지 그녀의 이러한 고백은 우리 멀쩡한 사람들을 얼마나 부끄럽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이 건강한 육신과 멀쩡한 사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때때로 감사할 줄도 모르고, 또 늘 주님의 보호하심과 은혜 가운데 살면서도 기뻐할 줄도 모르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할 진정한 감사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우리의 감사를 회복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2. 몸 말

1) 본문의 배경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애굽의 속박에서 해방된 이후에 모세가 약속의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교훈으로 설교한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모세의 제 2차 고별설교(4:44-26:19) 가운데서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제 장차 가나안 땅에서 수확을 거두게 될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핵심적인 내용은 첫 수확물(맏물)을 가져다가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리는 가운데,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물을 가지고 나아와 그 동안 과거에 힘들었던 순간마다 역사 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억하면서, 그 은혜를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의 고별설교를 하면서, 그 설교의 결론을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는 것으로 내리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은혜를 베푸심을 깨닫게 하며, 또한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살게 될 것을 저들로 하여금 확실히 믿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업으로 얻은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의 첫 소산물을 하나님께 바치며 감사하라는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가 오늘 의 약속의 가나안 땅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귀한 성전에 들어와 드려야 할 감사의 내용이 어떠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2) 어떻게 감사하나?

(1)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진정 감사하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시인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처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시편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우리가 감사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동안 나에게, 우리에게, 우리 가정에, 우리 일터에, 그리고 우리 교회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너희를 인도하시고 구원해 주신 은혜들을 생각하면서, 그 은혜를 잊지 말고, 첫 소산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감사를 드리라고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의 이 설교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 시간 똑같이 주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기억하는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모습입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의 입에서 계속적으로 고백되어야 할 가장 귀한 고백입니다. 정말로 생각해 보면, 만약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만약 하나님께서 지난 세월 동안의 고난과 시련 가운데서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시지 않으셨다면, 과연 우리는 이 시간 어디에 가 있을 것입니까?   

그래서 모세는 오늘 본문에서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지켜주신 하나님 은혜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기 시작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여기서 “유리(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간 사람”은 곧 야곱을 말합니다. 그리고 “유리(방랑)”이라는 단어는 “오베드”라는 말인데, 이는 “멸망당할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뜻입니다. 야곱은 자기를 죽이려 하는 형 에서를 피해서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도 외삼촌에게 속임을 당하고, 그 후에는 결국 애굽으로 내려가 살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야곱이 멸망의 위기에서 살길을 찾아 애굽까지 내려 갈 때에, 그 숫자는 약 70명(신 10:22, 창 46:27)이었는데, 그러나 나중에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의 숫자는 장정만 60만명(출 12:37)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실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바의 성취(창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그 은혜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본문 5절에서 모세는 “유리(방랑)하는”이라는 단어와 “크고 강하고 번성한”이라는 단어들을 극적으로 대조시키는 가운데, 위험한 시기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세는 6-8절에서 저들의 역경의 시기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저들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셨는가를 설교합니다. 그리고 저들이 당하던 그 역경을, 모세는 오늘 본문 7절에서 세 가지의 단어로 압축하여 설명을 합니다. 먼저는 고통(“오니”)이라는 단어입니다. 

이는 물질적인 가난으로부터 오는 정신적인 고통을 말합니다. 그 다음이 신고(“아말”)인데, 이는 육체적인 중노동으로 인한 고통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압제(“라하츠”)인데, 이는 권세를 가진 자들로부터 인권을 유린당하고 폭력을 당하는 억울함(사회적 고통)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단어는 지금도 온 인류가 겪고 있는 보편적인 고통(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고통)을 대변하는 단어들입니다. 

모세는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지내는 그 역경의 시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통을 보시고, 당신의 강한 손과 편 팔로 큰 이적과 기사를 일으켜 구출해 주셨다고 회상합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약속의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9절). 그러니 그 은혜를 절대로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하나님의 은혜는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의 삶 속에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이러한 도우심의 손길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화)

하나님의 은혜가 이렇게 우리가 알게 모르게 언제나 우리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이삭은 창 27:28절에 보면 그의 아들 야곱을 축복할 때에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같은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새벽에 나아가 새벽이슬을 맞아 보셨습니까? 이슬은 비가 오는 것처럼 우리를 한꺼번에 적시지 않지만, 결국 우리의 온 몸을 적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하늘의 이슬과 같아서 젖는 줄 모르나 우리의 온 몸을 적시는 그런 은혜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런 이슬 같은 은혜와 복이 지난 한 해 동안 우리와 함께 하셨기에 우리는 오늘 이 은혜의 자리에 나와 감사절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사는 은혜를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2)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림으로써 감사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여기서 “맏물”이라는 단어가 아주 중요합니다. 이 말은 2절에도 등장을 하는데, 거기에는 “모든 소산의 맏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맏물이라는 말, “레쉬트”라는 말은 “첫째” “시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첫 열매”를 가리킴과 동시에 “가장 좋은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드려야 할 감사의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림으로써 감사해야 할 것을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이 설교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요구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떤 한 전도사님의 이런 간증이 기억이 납니다. 그 전도사님은 특별히 찬양을 인도하는데 아주 많은 달란트를 받은 전도사님입니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찬양집회를 인도하고 있는데, 한번은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그 날도 그는 지방에 있는 한 청년연합회가 초청을 하여 “찬미 초청 찬양집회”를 뜨겁게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뜨거운 가슴으로 손뼉을 치면서 입술로는 열심히 찬양을 하고 있는데, 전도사님이 보니까 한 청년이 입으로는 열심히 찬양을 하는데, 손뼉은 치지 않고, 한 손으로 자기의 뺨을 계속해서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조용한 찬송을 부를 때는 눈을 지그시 감고 눈물을 흘리면서 찬송을 하다가도, 빠른 곡의 찬송을 부를 때에는 어김없이 자신의 뺨을 한 손으로 계속해서 치고 있었습니다. 

찬양을 인도하는 전도사님과 찬양팀은 그 청년의 모습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정신병자인가? 혹시 저러다가 갑자기 발작이라도 해서 찬양집회를 방해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하면서 무사히 그 찬양집회를 은혜 가운데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회가 끝난 후에 그 청년을 바라 본 찬양 팀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찬양 시간에 계속해서 자신의 뺨을 치던 그 청년은 한쪽 손을 못 쓰는 청년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다른 이들처럼 손뼉을 칠 수 없기에, 그의 성한 손 하나로 자신의 뺨을 치면서 주님을 찬양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이 전도사님은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면서 부끄러움과 수치가 폭풍처럼 휘몰아쳐 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제가 왜 이 청년의 이야기를 소개하는지 아십니까? 내가 감사해야 할 분이 누구인가를 아는 사람은, 내가 받은 바 그 은혜가 얼마나 귀하고 놀라운 것인가를 아는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주님께 아낌없이 드리게 됩니다. 이 청년은 비록 한 쪽 팔은 못쓰게 되었으나, 그러나 그는 그 나머지 한 쪽 팔을 가지고, 그의 뺨을 때리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감사의 최대의 표현이었기에, 그것이 그가 드릴 수 있는 최대의 찬양이었기에, 그것이 그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맏물이었기에, 그는 한 손으로 뺨을 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 찬송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드릴 수 있는 맏물,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지난 올해 반 년동안, 아니 지난 모든 세월 동안 베풀어주신 그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은 무엇입니까?    

모세는 “맏물”을 드림을 강조했습니다. 그것은 지난날의 환난에서 나를 건져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인도하여 주실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렇습니다. 만물을 드린다는 것은 가장 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통치권을 인정하는 겸손한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오늘 우리의 드릴 “맏물”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는 어떤 맏물을 드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오늘 주님께 드리고자 하는 것은 진정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과 감사를 담은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맏물입니까?

(3)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감사는 이웃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는 것

마지막으로 모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정한 감사는 이웃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이 말씀은 받은 바 복을, 모든 사람, 즉 이웃과 나눔으로 감사는 비로소 말로만의 감사가 아닌 진정한 감사가 될 수 있고, 바로 그 감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즉 이 말씀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진정한 사랑과 진실 된 감사의 표현은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맏물을 드림에 대한 또 하나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하나님께 맏물을 드리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귀한 것을 드리는 바로 그 마음으로, 이웃을 향해서 그 사랑을 구체적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는 11절 말씀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의 근본적인 뜻은 받은 바 은혜를 나누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받은 은혜와 복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 곧 하나님께 맏물을 드리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 감사하는 자의 자세라는 말입니다. 

모세는 오늘 본문 바로 다음에 십일조를 바칠 것을 명령하는데, 그 이유는 가난한 고아와 과부와 객 그리고 레위인과 나누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하지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 하였나이다”(신 26:12-13). 나누라는 것입니다. 이 나누라는 명령은 예수님께서도 명령하셨고, 또한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이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고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8)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

미국에서 있었던 한 작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소년이 거리에서 빵을 훔쳐 가지고 달아나다가 경찰에게 붙잡혔습니다. 소년은 곧 즉심에 넘겨졌습니다. 판사는 떨고 있는 소년을 내려다보면서 물었습니다. 

“왜 남의 빵을 훔쳤니?” 
“배가 고파서요”

“빵 하나 사먹을 돈이 없었니?”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엄마나 아빠한테 돈을 좀 달라고 할 수 있었을 텐데?”

“집에는 중풍으로 누워 있는 할머니랑 열 살짜리 동생 뿐이에요”

“엄마와 아빠는 안 계시니?”

“아빠는 도박을 하다가 구치소에 가신 지 오래되었고, 엄마는 아빠가 구치소에 간 후 집을 나가 버리고 말았어요”

소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한참동안 침묵으로 소년을 바라보던 판사는 “네가 한 짓은 5달러의 벌금형에 해당한다”고 말하면서 자기 지갑에서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꺼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5달러는 너처럼 가난하고 불쌍한 아이가 굶주림에 떨면서 거리를 헤매고 있는 동안, 나는 고급 식당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배를 채우고 있었던 데 대한 나의 벌금이다”

그리고 판사는 5달러짜리 지폐를 자신의 모자에 담으면서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말을 합니다. 

“자, 여러분들도 벌금을 내시고 싶으면 이 모자 속에 넣어 주십시오”

모자가 돌기 시작하자 한 사람도 그 모금 운동에 빠진 자가 없었습니다. 잠시 후 판사에게 돌아온 모자 속에는 지폐와 동전으로 가득 찼습니다. 판사는 그것을 소년에게 내밀었습니다.

“자, 받으렴. 이 돈은 모두 네 것이다. 이 가운데서 네가 훔쳤던 빵 값과 벌금으로 5달러만 내놓고 돌아가거라”

이 때 증언 석에 있던 빵집 주인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그 소년을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일부터 우리 집에 와서 나를 좀 도와줄 수 있겠니? 월급은 꼬박 꼬박 후하게 챙겨 주겠다. 물론 빵은 마음대로 먹어도 좋고”

함께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 그리고 사랑이 넘쳐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바로 그 자리에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 오늘 우리들도 우리의 삶에서 천국을 맛보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받은 바 그 은혜를 옆에 계신 형제, 자매들과, 그리고 우리의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 보십시오. 바로 거기에 우리 하나님의 크신 은혜는 더욱 크게 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서 비로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참된 감사를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맥추감사절에 특별히 우리는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십시다. 우리의 받은바 은혜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돌아보십시오. 오늘 우리 사회에는 그늘진 곳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자살로 그 생을 마감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도 매일같이 35명이 넘는 사람들이 삶이 너무 고달파서, 더 이상 살 소망이 없어서, 누구 하나 자기를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 목숨을 스스로 끊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누구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민생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정치권력에만 집착하고 있는 무능한 정치인들의 잘못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자신들의 가진 것과 기득권을 지키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소위 가진 자들의 잘못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그들의 잘못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은 바로 나 입니다. 바로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먼저 받은 우리가 그 사랑과 은혜를 우리들에게만 주어진 것으로 알고, 그저 우리끼리 감사하고 즐거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사랑과 은혜를 나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옆의 사람들에게 우리가 너무나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이 민족의 아픔과 고통에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의 주변에 누가 있습니까? 오늘 우리 주변에 누가 눈물짓고 있는지 보이십니까? 그들과 함께 사랑을 나누십시오.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 받으시는 감사입니다.      


3. 나가는 말

여기 진정한 감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시골에 있는 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한해 추수를 마치고 모든 교인들이 함께 감사예배를 드릴 때에, 바로 한 주일 전에 그 동네로 이사를 온 한 여 성도님이 많은 양의 맏물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그렇게 넉넉하게 보이지 않는 그분이 많은 맏물을 바친 데 대하여 목사님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성도님, 올해는 특별히 감사 할 일이 많으신 모양이군요?” 

그러자 그분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네, 목사님, 사실은 제게는 열 살 난 아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해 그 아이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 저는 이렇게 기도하였지요. ‘하나님, 이 아이가 살아날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 많은 감사의 예물을 드리겠다’고 말입니다.”

목사님은 그 소리를 듣고는 이렇게 웃으면서 재차 물어보았습니다. 

“아, 그러면 아드님이 이제 회복되었나 보군요?”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목사님의 생각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아닙니다. 그 아이는 일년 가량을 병과 싸우다가 결국 한 달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목사님은 깜짝 놀라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니, 그러면 하나님과의 약속이 무효가 되었을 텐데 어떻게?”

“아닙니다. 목사님, 저는 이제야말로 주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릴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 아이는 정말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한 살 되었을 때, 남편이 먼저 갔습니다. 그 때 저는 정말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를 그 절망 속에서 건져준 것이 바로 그 아이의 미소였습니다. 제가 외로움으로 눈물지을 때, 그 아이의 웃음소리는 저를 다정하게 위로해 주시는 주님의 음성이 되어 다가왔고, 제가 삶의 시련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워 할 때, 제 뺨을 만져주던 그 아이의 작은 손은 나를 붙들어 주시는 주님의 자비로운 손길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정말 제게 주어진 최대의 축복이요,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제 아들을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셨고, 지금은 그 품안에 안고 계십니다. 목사님, 저는 그 아이를 제게 선물로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때가 되어 그 아이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그 귀한 선물을 주셔서 저를 지금까지 위로해 주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귀한 맏물로 감사를 드려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서,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는 욥의 고백은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만의 고백이 아니요, 바로 우리의 고백도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녀는 진정한 감사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감사는 은혜를 은혜로 깨닫는데서 나옵니다. 내가 받은 모든 것이 다 선물이요,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임을 진정으로 깨닫는 자는 이 여인처럼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귀한 맏물로 주님께 드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받은 바 그 은혜를 잊지 맙시다. 올 해의 반년이 다가도록 우리에게 사랑하는 부모님들과 가족들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또한 담임목사님을 비롯하여 교회의 충성된 목회자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성도들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귀한 하나님의 성전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특별히 더욱 감사를 드립시다. 

감사하되 “맏물”을, 즉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으로 감사를 드리십시다. 가장 귀한 것으로 감사를 드리십시다. 오늘 우리의 드릴 “맏물”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오늘 주님께 드리고자 하는 것은 진정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감사와 사랑을 담은 우리의 가장 소중하고 귀한 맏물입니까? 여러분이 오늘 드리고자 하는 “맏물”은 무엇입니까?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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