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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이 흔들리는 이유 (창 1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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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흔들리는 이유 (창 12:1-20)

  
지난 7월 5일 강변역 근처 39층 건물인 테크노마트에 갑작스런 흔들림 현상으로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18층 이상 고층부에서 약 10분 동안 상하로 심한 진동이 감지됐습니다. 이 일로 건물에 있던 사람들이 급히 대피했고, 안전진단을 위해 3일간 강제 퇴거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대체로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세 가지 중 하나로 꼽고 있습니다. 지반침하, 구조파손, 그리고 공진현상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전진단 결과 정확한 원인이 아직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일단 강제퇴거를 끝내고 사용을 허가했습니다.

당시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그리고 원인규명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불안할까요?

우리 인생길에도 때로는 생각지 못하던 ‘흔들림’ 현상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건강에 이상 현상이 생겨서 인생 자체가 심하게 흔들립니다. 가정 안에 뜻하지 않던 심각한 갈등이 생겨서 인생 자체가 심하게 흔들립니다. 졸지에 사업에 문제가 생겨서 인생 자체가 심하게 흔들립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누구나 심한 불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인생의 흔들림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런 인생의 흔들림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나타날 때, 그 양상이 저마다 다릅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믿음 때문에 인생의 흔들림이 약화되거나 소멸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이런 인생의 흔들림 때문에 믿음 자체도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뜻하지 않던 인생의 ‘흔들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인생의 흔들림 때문에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그의 믿음이 심하게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창 12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전혀 다른 두 아브라함을 만날 수 있습니다. 1-9절에 나타난 아브라함과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아브라함입니다. 

우선 1-9절에 나타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75세가 되던 해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이민을 명하십니다. 왜 이민을 가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구체적인 내용도 없이, 밑도 끝도 없이 이민을 가라는 것입니다. 다만 아브라함이 큰 민족을 이루겠고, 또 그 이름이 창대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믿고 이민 길에 나섭니다. 75년 동안 나름대로 기반을 닦고 살아온 정든 고향 땅을 버리고, 그 나이에 이민을 간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더욱 아무런 보장도 없이 또 목적도 없이 지역도 모른 채, 이민을 떠난다는 일은 무모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그 명령에 순종해서 이민 길을 떠났습니다. 믿음의 조산 아브라함 다운 모습입니다.

다음으로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아브라함입니다. 가나안 땅에 이민 온 아브라함은 기근이 들었다고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약속의 땅 가나안을 등지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없이 그저 살아보겠다고 약속의 땅을 도망치듯 떠났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바로의 눈에 나지 않으려고 잔꾀를 부립니다. 자기 하나 살겠다고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고 아내를 바로에게 빼앗기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정말 실망스러운 모습입니다. 그 대단한 믿음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애굽으로 내려가는 동안 그의 행보에는 어디에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애굽에서 아내를 빼앗기는 동안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심하게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인생이 흔들릴 때 그의 믿음마저 심하게 흔들리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아브라함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아니 이미 너무도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 이야기를 통해서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인생의 흔들림이 일어날 때 믿음마저도 흔들리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오히려 인생이 흔들릴 때 믿음으로 흔들림을 막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믿음은 왜 흔들릴까요? 본문의 아브라함의 경우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잘못된 기대 때문입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여기서 그 땅은 어디입니까? 바로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정착하게 된 땅입니다. 정든 고향 땅을 버리고 큰 기대를 안고 찾아온 땅입니다. 그런데 그 땅에서 아브라함이 처음 겪게 된 일이 바로 기근입니다.

이 기근으로 아브라함의 인생은 심하게 흔들리게 됩니다. 고향을 버리고 떠나 와서 정착한 땅에서 기근을 맞으니 살아갈 일이 막막합니다. 이민 온 처지여서 아는 사람도 없어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습니다. 낯선 객지여서 어떻게 살 길을 찾을 수도 없어 보입니다. 자칫 온 식구가 굶어 죽을 판입니다. 무척이나 불안합니다. 인생 자체가 흔들립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으로 올 때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창 12:2를 보면, “네게 복을 주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가면 아브라함이 과거에 누리지 못했던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붙잡고 가나안 땅에 왔습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어떤 복을 주실까?” 큰 기대감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복은 커녕 화가 임한 것입니다. 기근 때문에 자기와 모든 가족들이 굶어죽게 생긴 것입니다. 기대가 졸지에 실망으로  변해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동안 가나안으로 올 수 있도록 자기를 지탱해 준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아브라함의 기대는 그저 아브라함의 기대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기대한 것을 약속하신 일이 없으십니다. “복을 주실 것이라” 약속하셨을 뿐입니다. 이 복에 대해 아브라함이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서 그런 기대를 가지게 된 것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은 단순히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동역자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나아가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 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던 기대는 잘못된 기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잘못된 기대를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기대를 부축이는 메시지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 믿으면 병이 낫는다.’, ‘교회 다니면 부자 된다.’, ‘예수 믿으면 자식이 잘된다.’ 등등. 이런 기대를 가지고 신앙생활하게 되면, 인생이 흔들릴 때 믿음도 심하게 흔들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믿으면 누구나 항상 세상적인 물질적인 현세적인 복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고난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십자가를 지고 눈물의 골짜기를 지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못된 기대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잘못된 기대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2. 인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을 등지고 애굽으로 내려가게 된 직접적인 원인에 대한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가나안 땅에 일어난 기근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기근이 일어났을까요? 왜 아브라함이 기근으로 고생할 때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으셨을까요?

이 기근은 하나님의 시험의 성격이 짙습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간 점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책망도 하지 않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는데 아브라함이 이것을 뿌리치고 애굽으로 내려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책망하시고 가로 막으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기근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보시려고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기근이 와도 가나안 땅에서 버텼어야 했습니다. 견디기 힘들어도 참고 견뎠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기근 때문에 죽게 내버려두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아브라함은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가나안 땅을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는 길고도 험한 믿음의 연단의 길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결국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이번 유치 성공은 한 마디로 2전 3기의 인내와 끈기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대변인인 나승연씨가 PT(프리젠테이션)에서 한 말이 인상적입니다. “10년 전만해도 한국에서 동계올림픽개최는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과거의 유치실패 이후 저희 스스로도 그렇게 믿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저는 좌절을 할 때마다 다시 털고 일어서서 여러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시행착오를 통해서 다시 시도했습니다.

도전에 성공하기위해서 저희는 두 가지 중요한 말에 집중했습니다. ‘끈기 그리고 인내’입니다. 끈기와 인내는 스포츠서도 중요하지만 한국문화에 깊숙히 자리 잡고 있기도 합니다. 60여년에 있어서 이 두 단어는 한국과 한국국민들에게 밝은 미래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제공해주었습니다.

이 말이 지구촌 사람들에게도 깊은 공감을 일으켰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현지시각) 3번의 도전 끝에 성공한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 비결을 인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참을성과 인내가 승리했다"고 평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비결은 두 단어로 집약될 수 있습니다. 바로 끈기와 인내(patience and perseverance)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필요합니다. 인생의 흔들림이 일어날 때 포기하거나 물러서면 안 됩니다. 끈기 있게 버텨야 합니다. 그리고 참고 또 참으며 견뎌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을 살다보면 다 내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그냥 끝내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포기하면 안 됩니다. 물러서면 안 됩니다. 아직 하나님의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끈기 있게 버티십시오. 조금 더 이를 악물고 참아보십시오.

3.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니...” 아브라함이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갈 때 한 가지 두려움이 밀려들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생각에 사라가 너무 미인인 것이 염려가 됐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애굽 사람들이 미인을 바로에게 바치고 큰 상을 받고자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들이 사라를 볼 때 바로에게 바치고 상을 받을 생각을 할 것 같은 걱정이 생겼습니다. 더더욱 사라를 빼앗기 위해 자기를 죽일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으로 할 수 없는 치졸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라를 자기의 여동생이라 속이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인 사라에게 이렇게 하도록 협조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보실 때 어떠셨겠습니까? 아내 사라는 또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어쨌든 믿음이 심하게 흔들리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전에 라즈니쉬의 책을 읽다가 본 이야기입니다. 옛날 어느 나라의 왕이 내부가 수천, 수만 개의 거울로 만들어진 궁전을 짓도록 명령했고, 신하들은 여러 달에 걸쳐서 마침내 그러한 궁전을 만들었습니다. 수천, 수만 개의 거울로 장식된 궁전은 내일 아침 왕이 첫 발을 들여놓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궁전이 오픈되기 하루 전날 밤에 우연히 떠돌이 개 한 마리가 뒷문을 통해 텅 빈 궁전 안으로 들어왔다. 궁전 안으로 들어온 개는 깜짝 놀랐습니다. 수천, 수만 마리의 개들이 흠칫 놀라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닙니까! 개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짖기 시작했습니다. 수천, 수만 마리의 개들 역시 짖기 시작했습니다. 개는 가장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으르렁대며 위협했고, 수천, 수만 마리의 개들 역시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으르렁대며 위협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궁전 문이 열렸을 때 사람들은 떠돌이 개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 개는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죽어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두려움은 마치 거울 속에 비친 허상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허상을 예측하고 앞 당겨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많은 것들은 이렇게 허상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울 속의 허상에 시선을 빼앗기게 되면 우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우리 안의 믿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밀려오는 두려움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한 어린 꼬마가 아빠와 함께 동물원에 갔습니다. 호랑이 굴 앞에 갔습니다.  호랑이가 자유롭게 뛰어놀며 포효를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 꼬마를 노려보면서 으르렁거렸습니다. 이 꼬마는 무서워서 아빠를 부르며 울었습니다. 아빠가 달려갔습니다. 꼬마가 아빠에게 울며 말했습니다. “아빠! 무서워 호랑이가 당장이라도 나를 물면 어떻게!” 아빠가 대답했습니다. “호랑이만 보지 말고 여기 이 철망도 봐 호랑이는 이 철망 때문에 너를 물 수 없어”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의 대상만 봅니다. 하나님께서 쳐 놓으신 철망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을 그냥 그 일로 망하게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그 일 때문에 죽게 내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두려움을 떨쳐버리십시오.

우리가 사는 인생 길에는 흘들림이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해 일부러 만드시는 흔들림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흔들림 때문에 믿음 자체도 흔들립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생의 흔들림을 이겨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때로는 잘못된 기대가 인생의 흔들림 순간에 우리 믿음을 흔듭니다. 그래서 잘못된 기대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때로는 참지 못하고 견디지 못해서 인생의 흔들림 순간에 믿음도 흔들립니다. 그래서 끈기와 인내로 잘 참고 견뎌야 합니다. 때로는 두려움 때문에 인생의 흔들림 순간에 믿음도 흔들립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오히려 인생이 흔들릴 때 믿음이 우리 인생을 붙잡아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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