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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국에 이르는 그날까지 (딤후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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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이르는 그날까지 (딤후 4:1-8)

운동경기 중에 집중하거나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소리를 지르는 것을 ‘기합’ 이라고 합니다. 

역도 선수들이 순간의 힘을 발휘해 역기를 들어 올리기 위해 기합을 넣는가 하면 격투기와 같은 종목에서는 선수들이 기합을 넣으면서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합니다. 

그런가 하면 축구나 구기 종목 선수들도 경기를 하면서 서로 기합을 넣으면서 경기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운동경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합 소리가 선수의 경기력에 어떤 영향력을 줄 것 같습니까? 

흥미로운 것은 운동 선수들이 경기 중 기합을 넣는 것이 경기력을 향상시키는데 어떤 영향력이 있을까 하는 연구 결과가 있었는데 기합을 넣을 때와 기합을 넣지 않을 때의 경기력의 차이는 약10-15%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숫자적으로는 크지 않은 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결정적일 때에 이러한 차이는 경기의 승패를 가르기에 충분한 수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기합은 겉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선수 개개인의 내면에 있는 힘을 끌어 모을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을 격려하고 힘을 하나로 모아 최상의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합소리는 사실 운동선수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들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 것과 순간 순간 영적인 기합 소리를 내는 것과는 대단히 큰 차이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감사한 일이 있을 때 영적인 기합은 감사의 기쁨을 더 크게 만드는가 하면,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였을 때에 영적인 기합은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공급 받게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내는 기합소리는 “야!, 으샷! 파이팅!” 이런 소리들이지만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내는 영적인 기합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요? 

아마도 “아멘, 할렐루야, 주여, 믿습니다.” 등이 있지 않겠습니까? 

성경의 가장 마지막인 요한 계시록의 마지막 절은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으로 끝이 나고 있습니다.

성경의 마지막 단어가 ‘아멘’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그대로 이뤄지기를 소원하면서 고백하는 것이 바로 ‘아멘’ 입니다. 

‘아멘’ 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이들의 영적인 기합소리입니다.

원하기는 오늘 이시간 이곳에서도 “아멘”, 저기서도 “할렐루야” 이곳 저곳에서 “믿습니다” 라는 살아있는 기합소리에 모든 악한 것들과 어두움의 것들이 떠나가게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몇일전 동계 올림픽이 평창에서 개최가 결정됨으로 많은 국민들이 함께 기뻐하였는데 사실 올림픽 하면 동계 하계를 떠나 가장 대표적인 경기가 바로 마라톤입니다.

그런데 이 마라톤에서 ‘서브 쓰리’ 라는 용어가 있다고 합니다. 
마라톤의 42.195km의 정해진 구간을 3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이 가지고 있는 꿈이 바로 서브 쓰리라고 하는데 마라톤을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일차적인 목표는 42.195km를 완주하는 것이고 완주한 다음의 목표는 기록을 단축하는 것이고 그 다음의 목표가 입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도 마라톤에 비유한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마라톤 경주에 참여하지 않는 것처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천국을 향해 달려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국을 인정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고 즐겁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 가운데 일부의 사람들만이 천국을 믿고 천국을 향해 살아갑니다.
천국을 향하여 경주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바로 이곳에 계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들인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천국에 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이땅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천국을 향해 긴 마라톤 코스에 참여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을 향해 마라톤에 참여 했다고 해서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천국까지 완주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국을 향한 믿음의 경주에서 모든 사람들이 완주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중도에 탈락합니다. 
초반에 탈락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간 지점에 탈락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표 지점을 얼마 남겨 두지 않고 안타깝게 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천국 마라톤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도 일차적인 목표는 완주하는 것입니다. 
천국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에 이른 후에 다음 목표가 있다면 바로 상급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상급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고 말씀하신 것을 깨달았다면 그것을 지켜 행하고자 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바울은 고전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니라’ 고 말하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이 땅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야 말로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천국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땅의 것에 매이지 않았으며 이 땅의 것을 가지고 오히려 천국을 위해 살았던 것입니다. 

때로는 천국을 향해 달려갈 때 힘들고 어려운 일들과 생명을 위협 받는 일들도 있었지만 그 배후에는 어두움의 악한 사단의 세력들이 바울의 믿음의 경주를 끊임없이 방해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바울은 결코 이 경주를 포기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천국을 향해서 달려 갔던 것입니다.

각 지방마다 사람들의 특색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충청도 사람들은 느리다고 해서 우스개 이야기도 있지만 죽음에 관해서 만큼은 충청도 말이 제일 급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죽었습니다’ 라는 말을 경상도 말로 하면 대개 ‘돌아가셨다 아입니꺼’ 라고 말합니다. 전라도 말로 하면 ‘돌아 가버렸어라우’ 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충청도 말은 빠르고 간단합니다. ‘갔시유’ 가 전부입니다. 

여러분 바울은 지금 자신의 죽음의 날이 임박해 왔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갔시유’ 라는 간단한 표현처럼 바울은 6절에서 ‘벌써’ 라는 말로 자신의 죽음이 순식간에 다가 왔음을 말합니다. 

6절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바울이 예수님을 증거 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그곳에서 바울은 자신에게 죽음의 때가 다가옴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자인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서신을 보낸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바울에게서 전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인생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함을 찾아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죽음 앞에서도 당당합니다.   

7-8절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라고 말씀하며 오히려 남아 있는 사람들을 향해 천국의 소망의 선포합니다. 희망을 노래합니다. 

바울이 죽음 앞에서도 이처럼 당당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이유 입니다.

하나는 믿음의 경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라고 말하였듯이 천국을 향한 마라톤에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마라톤에서 완주를 하고도 힘이 남아 돌아 트랙을 계속 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경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바울은 천국을 향한 경주에 온 힘을 기울여 달려 왔기에, 후회 없는 삶을 살았기에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원하기는 저와 여러분 인생도 바울과 같이 우리에게 주어진 경주에서 최선을 다함으로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또 한 가지 바울은 천국의 경주 후에 상급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이에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운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라’ 고 말합니다.

바울은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천국에서의 상급을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죽음 앞에서 당황하거나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장차 자신에게 주어진 면류관을 바라보며 그 소망을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몇해전 베스트셀러였던 ‘마지막 강의’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췌장암으로 죽어가면서도 고별 강의를 한 카네기멜런대 교수인 ‘랜디 포시’ 의 이야기입니다. 

대학 관계자는 췌장암을 잘 극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랜디 포시 교수에게 ‘여정’이라는 특별 수업의 강의를 부탁했습니다. 포시 교수는 기꺼이 승낙하고 강의를 준비하는 중에 주치 의사로부터 췌장암 치료에 실패했다는 것과 자신이 얼마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었지만 그는 많은 고민을 하는 가운데 주어진 강의를 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아내는 강의를 준비하다 보면 더 건강이 악화되고 세 명의 아이들과 마지막으로 보낼 수 있는 시간도 갖지 못한다고 반대합니다. 

포시 교수는 아내에게 자신이 얼만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아이들과 놀아 주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는 것도 좋겠지만 자신이 죽은 후에 마지막까지 삶에 최선을 다한 아빠의 강의 동영상을 아이들이 본다면 어떤 추억보다도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로서의 영향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아내를 설득합니다. 

결국 포시 교수의 강의에 대한 열정에 아내가 동의를 하고 포시 교수는 췌장암으로 죽음을 선고 받기 이전의 자신의 삶과 죽음을 선고 받는 후의 삶의 내용을 영상으로 정리하며 강의를 준비합니다. 탈진이 될 정도의 상태에서도 약을 투여하며 강의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강의 날까지 유머을 잃지 않고 웃음을 만들며 자신의 삶을 중심으로 준비한 강의를 이어갔습니다. 

그의 강의는 강의실을 가득 메운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크나 큰 감동으로 전해졌으며 그의 마지막 강의를 찍은 영상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삶의 초점은 ‘죽음’ 이 아니라 ‘삶’ 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의해 만들어 집니다. 그리고 그 가치관 중에는 사람의 죽음과 함께 무의미해지는 가치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죽음 앞에서도 도리어 더 빛나는 가치관이 있습니다. 
바울과 랜디 포시 교수와 같은 사람들은 죽음 조차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은 마라톤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엇을 목표로 삼아 뛰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재물, 명예, 권력, 쾌락, 취미 등에 삶의 목표를 두고 인생의 마라톤을 뛰고 있지만 골인 지점에 도착했을 때 그것들은 모두 허무한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죽음 앞에 이르게 되어서야 재물도, 명예도, 권력도, 지식도, 즐기던 모든 것들이 헛된 것이라며 죽음 앞에서 절망하며 탄식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인생은 헛되고 헛되다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을 소망하며 천국을 향하여 경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천국을 향한 인생 마라톤의 마지막 부분인 죽음에 도달했을 때 천국의 영광을 바라보며 제자 디모데에게 ‘너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 고 하였습니다. 
이는 죽음 앞에서도 천국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믿음을 심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한 영혼, 한 영혼이 천국의 백성으로 세워지는 것을 통해 그의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 자신의 가슴을 뛰게 했던 복음의 말씀을 증거하며 살았고, 이제는 죽음의 문턱에서 디모데에게 전도자의 사명의 넘겨주며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을 증거하는 일에 힘쓰라’ 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가슴을 뛰게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디모데의 가슴을 뛰게 하였습니다. 

오늘 바울과 디모데의 가슴을 뛰게 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오늘 이곳에 계신 저와 여러분의 가슴도 뛰게 하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여러분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는 기쁜 소식, 복된 소식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죄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기 위함이며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왜 죽으셔야 했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는 방법으로 구약에서는 짐승의 피를 뿌려서 죄를 대속하는 방법을 알려 주셨는데 이것은 온전한 방법이 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없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단번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죽음의 형벌에서 벗어나서 새 생명을 얻은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죽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고 전해야 하는 복음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이 사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2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제 이 사실을 전하는 것입니다.  

3-4절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들을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전도가 잘 안 될 것이고 전도하기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절하고 헛된 망상이나 그릇된 욕심을 만족시켜 줄 그런 소리를 듣기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도인의 일을 해야하며 우리의 직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전1:21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도 전도를 미련한 방법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을 만나서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왜 우리가 그분을 믿어야만 구원을 얻게되나’ 이것을 일일이 우리가 전해야 하고 가르쳐서 구원을 얻도록 해야하는 것이 전도라는 것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것이 얼마나 미련한 방법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방법을 통해 구원받을 백성들을 부르시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도 전도가 어렵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마지막 때가 가까우면 사람들이 ‘귀를 가리운다’ 하였습니다. 

즉 귀를 가리운다는 것은 듣기 싫은 말은 거부하고 듣기 좋은 말만 들음으로 귀를 즐겁게 하고 감각적이고, 본능적이고, 쾌락적인, 일에 대해서는 열심은 있으나 구원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때도 그랬습니다. 심판의 때가 가까웠으나 사람들은 마음을 돌이키기보다는 오히려 먹고 마시는 일에 더 열심이 있었고 마음이 강팍함으로 노아를 통해 주셨던 구원의 소식을 거절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라는 것이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우리는 이 마지막 때에 주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선포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1-2절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령 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제 다가오는 화요일 저녁에는 새생명 전도축제가 있습니다.
주변 불신 가운데 계신분들을 초청할 수 있는 대단히 좋은 기회입니다. 
평소 전도하지 못했던 분들도 이 시간을 통해 꼭 주변 분들을 초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생명을 얻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맛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기쁨의 감격이 어떤것인지 맛볼 수 있으시기를 원합니다. 
분명 주님께서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라고 말씀 하셨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사람들은 자꾸만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깊이 사랑하고 계시듯이 이곳에 계신 여러분들도 주님을 사랑하시는 줄로 분명히 믿습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과 맺은 그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를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나누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들도 주님과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에 흠뻑 빠질 수 있도록 기회를 베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바로 이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원하기는 오늘 말씀처럼 복음으로 내 가슴이 뛰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바로 전해야 하는 사명의 자리로 여기시고 다시 한번 영적인 기합소리를 힘 있게 내고 세상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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