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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승리하는 믿음 (눅 18: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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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믿음 (눅 18:35-43)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존재가 사람이라고 합니다. 다양한 생김새와 다양한 성격만큼 속내가 복잡한 동물이 인간입니다. 이렇듯 수십 년을 같이해도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을 만큼 복잡한 구조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니 이 세상사가 왜 복잡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쌍둥이를 보면 정말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똑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무리 쌍둥이라도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고 합니다. 본인 가족들, 특별히 부모들은 가기막히게 가려내는 것이 그 때문입니다. 

생각하는 것, 살아가는 모습, 추구하는 가치관이 이렇게 천차만별일 수가 없습니다. 같은 일을 놓고도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 모인 곳에는 언제나 시끄럽습니다. 전부가 자기 생각대로 하자고 떠듭니다. 그야말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모릅니다. 산으로 가자는 사람, 바다로 가자는 사람, 한식당으로 가자는 사람, 중식당으로 가자는 사람, 버스를 타자고 하는 사람, 열차를 타자는 사람....나들이 한번 하는 데에도 이렇게 복잡한 것이 인간들입니다. 

먹는 것이 중요한데 밥 한 끼 먹기 위해서 식당을 찾아갈 때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친절한 집 위주로 선택을 합니다. 언젠가 한번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는 기억이 있는 집은 절대로 두 번은 찾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음식이 맛있는 집 위주로 선택을 합니다. 허물어져 가는 움막일지라도 그 맛에 매료되면 또 다시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은 이것저것 따지지 않습니다. 음식이면 뭐든지 오케이입니다. 쓰면 쓴 대로 달면 단대로 먹는 사람입니다.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뭐든지 먹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참 편합니다. 어디에 가든지 적응하고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먹는 게 목적이 아니라 사는 것 자체가 목적인 사람입니다. 

이렇게 먹는 것 하나에서부터 생각하는 것, 성격 하나하나가 복잡한 동물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복잡하다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먼저 단점은 무엇입니까? 복잡한 것은 고장이 나면 고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복잡한 기계가 한번 고장이 나면 고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복잡할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구조가 간단한 것은 그만큼 수리도 간단하지만 복잡한 기계일수록 고치기가 까다롭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보니까 고장이 나면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생각이 고장 나서 한번 비틀어지기 시작하면 고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성격이 원만하지 못해서 한번 토라지면 고치는데 애를 먹습니다. 이게 복잡한 인간구조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장점도 있습니다. 복잡하고 정교한 부속품이 많이 든 기계일수록 비싸고 중요한 것이듯이 또 한편으로는 복잡한 만큼 귀한 존재가 사람이기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위대한 작품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아십니까? 보통 사람이 하루에 평균적으로 발산하는 열이 2,500칼로리라고 합니다. 이 정도의 열이면 하루에 25잔의 커피를 끓일 수 있는 열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만약에 이 열을 우리가 다 흡수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의 몸에는 전자동 냉방조절 장치를 만들어 주어서 이 열을 다 흡수하지 않도록 적절히 조절할 수 있도록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뇌가 신체의 각 부분과 연결되어 있는 자율 신경계를 가진 온도 조절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 몸의 어느 한 부분이 너무 덥거나 너무 차가우면 이 신호가 대뇌에 보내져서 혈액 순환계를 통해서 열의 발산 량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킵니다. 그래도 더 식혀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는 몸에서 땀이 나도록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대기업들이 가전제품을 만들면서 인공지능이라는 말로 광고를 하면서 마치 인간이 가진 지능적인 기능으로 완벽한 기계를 만든 것처럼 광고를 합니다만 아무리 장치가 잘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몸이 지닌 것과 같은 기능을 해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몸에 있는 전기장치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랍습니다. 우리 사람의 뇌에는 약 천만 개의 신경세포가 있는데 이 신경세포는 0.07볼트의 전기를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은 약 30만 개의 회로로 대뇌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꽂혀 있는 꽃을 볼 때에 수천 개의 개별로 된 회로가 작동을 해서 우리의 대뇌에서 꽃송이들의 크기, 모양 그리고 색깔 같은 것을 구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가장 인기 있고 비싼 카메라의 종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DSLR카메라(digital single-lens reflex camera)입니다. 풍경이면 풍경, 인물이면 인물, 접사면 접사, 원하는 것을 완벽하게 찍기 위해서 그때마다 다양한 렌즈를 교환해서 사용하는 최고급 카메라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완벽한 렌즈를 가지고 좋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하더라도 사람의 눈만큼 정확하게 색감을 조절하고 개체를 분별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눈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좋다고 하는 카메라 보다 훨씬 훌륭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안구 하나에는 약 일억만 개의 신경세포가 들어 있다고 합니다. 이 모든 세포가 아주 완벽하게 조절되어 있기 때문에 먼 거리, 가까운 거리를 자동 조절해서 보고, 밝을 때와 어두운 때를 자동 조절하고, 모든 색상을 완벽 식별합니다. 

기계를 아무리 복잡하게 만든다 해도 인간만큼 정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만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고장이 나거나 병이 생기면 세상 살아가기가 여간 불편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인간은 영적인 동물이라고 하는데 영적인 동물이란 생각 할 줄 알고, 그 생각을 준 영원한 존재가 누구인가를 인식 할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완벽한 작품의 주인이 누군지를 안다는 것이죠. 그리고 주인을 안다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주관하는 분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고장 난 나를 고칠 수 있는 주인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한 사람을 만납니다. 성경은 그를“거지맹인 바디매오”라고 소개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거지인데다 맹인이라는 장애까지 가졌습니다. 그에게서 무엇을 찾을 수도 없고, 무엇을 기대할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하지만 그는 오늘 우리에게 승리하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의 대단한 믿음을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소문만 듣고도 그 능력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그 동안 예수님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오늘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자 자기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나갔습니다. 

여기 이 겉옷이란 바디매오에게 지금까지 너무나 중요한 재산이었습니다. 밤낮의 기온차가 심한 이스라엘에서는 낮에는 외투로 사용하지만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지기 때문에 이불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맹인이요 더군다나 거지인 바디매오에겐 더 없이 중요한 것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그런데 이 겉옷을 벗어 던졌다는 것은 그에게 확신에 찬 믿음이 있었음을 설명해 줍니다. 이제 그렇게 소원하던 예수님을 만났으니 눈을 뜨게 될 것이고 눈만 뜨면 냄새나는 거지 유니폼인 겉옷은 필요 없다는 확신에 찬 바디매오의 믿음이 바로 승리하는 믿음입니다. 

오늘 바디매오는“맹인”이라는 신체적 장애를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즉, 볼 수 없다는 것 이외의 자기가 가진 가능성을 다 동원하여 예수님을 향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있는 것은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없는 것만 달라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더 문제는 가진 것까지도 그 능력을 부인한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 안 된다고 포기하는 이것이 잘못된 우리의 믿음입니다. 사실 우리는 없는 것도 많지만 가진 것이 더 많습니다. 할 수 없는 것도 많지만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눈은 없지만 귀와 입과 손과 발이 있다는 것을 기회로 삼습니다. 그래서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 앞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소리를 질렀습니다.“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그는 없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을 극대화하려고 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우리의 있는 것을 극대화 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39절에 보면“앞서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그랬습니다. 이 말씀으로 미루어보아 예수님께 나아가려고 하는 바디매오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디매오의 입장에서 보면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굉장한 압박감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불편한 몸이 정신적인 위축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그 다음 말씀을 보세요.“그가 더욱 소리 질러”그랬습니다. 주눅 들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어쩌면 자신이 가진 목적을 놓치지 않으려는 스스로의 다짐이 들어 있는 의도적인 외침인지 모릅니다. 그 어떤 것도 예수님이라고 하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달려가는 바디매오의 열심 있는 믿음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려고 하면 꼭 훼방꾼이 있습니다. 수요일 저녁, 일손을 멈추고 교회에 나오려고 하면“그렇게까지 나가야 예수 믿는 거냐”는 소리를 듣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이상하게 믿는다고 합니다. 헌금을 해도 핍박이 있습니다. 돈도 없는 것이 건방지다느니 어떻다느니 하며 말도 많습니다. 그래서 헌금하고 낙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예수님 앞에 제대로 나갈 때에는 핍박과 방해가 늘 있습니다. 

맹인이 눈뜨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협조는 못할망정 꾸짖고 방해하는 사람이 뭡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이 더욱 큰 믿음을 가지는 것을 보면 얼마나 기쁩니까? 그런데 꼭 방해해야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이 가진 것을 돌아보시고 그것으로 충분히 주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라면 감사하며 주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공은 때릴수록 더 높이 튀어 오르면 법입니다. 내 신앙생활에 방해가 있거든 더 힘을 내십시오. 그래야 목적이 분명하여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지켜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바디매오처럼 승리하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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