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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 공동체의 성결을 지키라 (고전 5: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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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공동체의 성결을 지키라 (고전 5:9-13)

고린도전서 서론의 문제를 다룰 때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고린도 교회는 많은 문제에 복합적으로 휩싸여 있는 교회였습니다. 파당의 문제, 음행의 문제, 우상의 문제, 은사에 대한 문제, 부활을 부인하는 문제, 결혼에 대한 문제 등 많은 문제로 중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런 소식을 전해들은 바울이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쓴 편지가 바로 고린도전서입니다. 

그 중에서도 5장은 고린도 교회의 권징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말씀입니다. 즉, 음행한 자를 어떻게 치리할 것인지를 가르치고 있는 말씀입니다. 5:1-2절 말씀을 보면 고린도교회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이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쫒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 말씀을 보면 고린도 교회는 음행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버지의 아내 즉, 자신의 어머니인데 이 말은 친 어머니가 아닌 계모를 취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교회 안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한 개인이 이런 죄를 범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교회가 이런 사실을 알고도 무관심한 데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죄 때문에 교회가 통한이 여기며 죄를 범한 자를 출교하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고린도 교회의 잘못된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이처럼 악한 음행의 죄를 짓고도 왜 죄의식이 없는 것입니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잘못된 신학과 신앙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추구한 헬라철학은 철저한 이원론적인 사고를 가르칩니다. 소위 영지주의 사상으로 영과 육을 철저히 구분하여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잘못된 철학사상은 쾌락주의로 연결되며 도덕폐기론을 주장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영지주의 이원론적인 이 사상은 남자들의 성적방종을 정당화하는 보호막이 되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의 은사들을 받았기 때문에 이미 영적으로 구원받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구원에 동참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썩어질 육신의 일은 그들의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미 영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에 완전히 참여했으니까 썩어질 육신으로 무슨 짓을 해도 영적인 구원과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육신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따라서 육신의 일을 자제하며 절제하는 사람들을 믿음이 없고, 영적구원이 아직 모자란 상태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무시하며 조롱하였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사상은 오늘날 구원파라는 이단이 주장하고 있는 사상입니다. 절대로 현혹 받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사도 바울은 음행하는 자들과 악한 죄를 짓는 자들에 대해 엄하게 징계하라고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이 땅에는 완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그리고 완전한 성도도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불완전성이 죄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부모가 그 자녀들을 사랑으로 징계하듯이 교회도 그 죄를 짓는 자들을 징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9절에 보시면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도 바울이 이 전에 벌써 교회 안에서 이러한 악한 행위를 하는 자를 징계하고 절대로 사귀지도 말라고 권면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이 말을 오해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 내에서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자가 음행을 하면 그런 자들과 상대를 하지 말고 쫓아내라는 뜻으로 썼는데, 고린도교인들은 사도 바울이 마치 불신자들 중에서 음행한 자들 까지도 상대하지 말라는 것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10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 말은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악을 행하더라도 너희가 그들과의 관계는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불신자들 가운데 악한 자들은 당연히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상대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금욕주의적이고 수도원적 이상적인 세상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11절에서 다시 설명합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세상 사람들이 죄를 짓는 데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예수를 믿고 소위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러한 엄청난 악을 행하는 것은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12-13절 말씀을 보세요.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고 명령했습니다. 

불신자 판단과 심판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지만, 권징을 통하여 교회를 성별되이 지키는 것은 분명히 해당 교회와 교인의 책임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회를 완전히 정화시키는 것이 교회의 최대 과제가 아니라, 교회 자체를 먼저 영적으로 깨끗하게 유지함으로써 불신 사회의 죄인들을 그 안으로 불러와서 함께 죄사함의 은총을 누리게 하는 것이 교회의 기능이요, 사명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이 이렇게 악한 자를 사귀지도 말고 교회 안에서 출교하라고 강력하게 권면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여기서 단지 보이는 음행 문제만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본질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교회가 어떤 곳인가를 알기를 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과의 구별됨이 없이 교회가 죄를 용납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에서의 음행자를 처리하도록 권고하고 교회의 순결성을 회복하도록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이것과 관련하여 바울 사도는 그가 고린도교인들이 오해한 사실을 알고 그것을 바로 잡았습니다. 

8절 하반절에 보시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이 말은 얼마나 교회공동체가 순수한가? 얼마나 공동체가 진실한가? 즉,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졌는가에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거룩하고 죄가 없어야 됩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특성이요, 하나님 나라의 특성입니다. 레 19:2절에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가 세상과 똑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하나님의 거룩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인간의 친목 단체에 불과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음행한 자를 물리치지 않고 있다고 책망하는 것은 무조건 쫓아내야 하는데 쫓아내지 않았다고 책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교회가 죄와 죄가 아닌 것은 분명히 구분해서 가르쳐줘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무시한 것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가 죄에 대해서 책망이 없을 때 그 교회에 모이는 성도들은 죄에 대해서 담대함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죄는 누룩과 같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처럼 죄는 엄청난 전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가축의 전염병인 구제역과 조류독감의 무서움을 실감했습니다. 한 마리의 소나 돼지가 구제역에 걸리면 순식간에 온 지역의 가축이 다 전염됩니다. 그래서 발견즉시 그 가축을 살처분해서 땅에 묻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죄의 결과는 죽음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죄를 그대로 두면 순식간에 교회와 온 성도들이 죄로 영적인 죽음을 맞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거룩성을 무너뜨리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거룩한 교회를 유지할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교회는 정당한 권징을 사용해야 한다고 가르쳐 줍니다. 

오늘 본문 13절 마지막 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저는 과연 이 말씀을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교회들이 이 지구상에 몇 교회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을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실천한다는 것이 오늘날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가져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사람을 내어 쫓을 수 있는가? 즉 출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성경의 답변은 명백히 "그렇다"입니다. "사랑을 내세우는 교회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유지하고 교회를 수호하기 위해서 그럴 수 있다."고 답변합니다. 

하나님께서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지 말라고 한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 먹음으로 불순종의 죄를 짓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가차 없이 에덴동산에서 쫓아(추방)내셨습니다. 

우리 통합측 헌법 정치 제 3장 ‘교인의 의무’에 보면 ‘교인은 치리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헌법 제 3편 제 5조 ‘책벌의 종류와 내용’을 보면 ‘8가지 책벌이 있는데 마지막으로 가장 강력한 벌은 출교의 책벌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분명히 전제하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죄를 지었다고 해서 무조건 출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권면하고 회개의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한 자에 대해서는 교회가 용납하고 사랑으로 감싸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러한 자들은 반드시 권징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권징의 목적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5절 말씀에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음행한 자를 출교하라고 하면서 그 목적을 육신은 멸하고 영은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밝혔습니다. 이것은 그렇게 엄히 징계함으로써 그 본인이 회개하게 되기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될 경우에 그 회개를 통하여 그 범죄자의 '육의 것들이 죽게 되는' 새 삶이 시작될 것이며, 결국 예수님 재림의 날에 그의 영혼이 구원받는 자리에 갈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출교는 중징계이지만 결코 보복이나 혐오의 감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 영혼을 끝까지 아끼는 마음으로 시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권징의 목적은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고 있듯이 '범죄한 자를 벌주기 위함'이 절대로 아닙니다. 장로교 헌법의 '권징조례'에 보면 원래부터 그런 말은 '교회의 권징 목적'에 아예 들어가 있지도 않습니다. 권징의 목적은 징벌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죄지은 자를 회개시키고 회복시키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헌법 제 3편 권징 제 2조 ‘권징의 목적’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과 권위를 위하여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고, 교회의 신성과 질서를 유지하고, 범죄자의 회개를 촉구하여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게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권징이야말로 형제의 영혼을 진정 아끼고 사랑하는 심령의 소유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죄를 범한 교인을 어찌하든지 '바로잡아서 신령의 유익을 도모'하려는 것이야말로 죄를 범한 교인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보다 훨씬 더 그 형제를 아끼는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죄를 범한 교인을 권징을 통해서 지금 바로잡고 나중에 영혼구원 얻게 만드는 것이 지금 그냥 얼굴 세워 주고 덮어 주다가' 끝내 지옥에 떨어지게 만드는 것보다 백 배 더 덕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범죄한 형제를 오직 사랑이 담긴 권징으로 바로잡아 주어야만 그 교인의 신령의 유익을 도모하며 교회가 죄인을 변화시키고 죽을 자를 살려내는 덕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권징에 대해 부정적인 오해를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권징은 진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꼭 필요합니다. 

권징이란 것이 모든 교인에게 완벽한 성별생활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예수 믿고 나서도 여전히 누구나 다 크고 작은 자범죄들을 여전히 지으면서 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누구의 눈에도 '이것은 틀림없는 중죄'라고 판단되는 일이 교회 안에서 드러났을 때에는 마땅히 권징을 실시해야만 적어도 교회가 가르치는 '바른 길' 곧 '진리'가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지켜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음행은 죄'라는 것은 성경이 명백히 가르치는 진리 중의 하나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한 재판과 징벌이 시행되지 않으면 나라의 법이 유지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불신사회의 윤리기준에서 보아도 재고의 여지조차 없는 죄가 진리를 그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교회 안에서 간과되고 그냥 덮어진다면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교회는 성경의 진리로써 세상을 판단하는 위치를 지키기는커녕 세상 앞에서 비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생명과도 같고 최고의 자산에 해당되는 진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권징은 반드시 실시되어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현대 교회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징계가 약화되거나 없어지는 것입니다. 교회가 권징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교회의 징계가 정당하게만 시행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사용하셔서 잘못을 범한 성도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시고 또 그들을 돌이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수호하고 진리를 지키는데 무엇보다 필요한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권징은 교인 개개인과 교회 전체의 유익을 끼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거룩한 교회, 하나님의 진리를 수호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 모든 성도들이 바른 믿음의 생활, 성결한 삶을 통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불신자들에게 본이 되는 삶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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