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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는 길 (롬 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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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길 (롬 10:1-13)

옛날에 국어 교과서에 있던 시이다. <프로스트- 두 갈래 길>. 그 시의 끝부분이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 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모든 것이 달라지는 일들이 있다. 
오늘 말씀에도 두 갈래 길을 말하고 있다. 죽는 길과 사는 길을 말씀한다. 

1. 율법의 길- 죽는 길. 

9장에 이어 10장에서도 사도바울이 간절한 자기소원을 말한다. 1절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포기할 수 없는 소원이다. 아니 포기가 안 되는 소원이다.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소원이 있는가? 그 소원이 무엇인가? 
우리도 가족의 구원을 위해, 민족의 구원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소원을 품어 보자. 
간절하게 소원을 품자. 소원이 간절하면 기도하게 된다. 포기할 수 없는 기도를 하게 된다. 

왜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가? 형제들이 죽는 길로 가고 있는 걸 보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에서 역주행 하듯이 죽는 길로 열심히 가고 있다. 
2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유대인의 신앙의 장점과 단점을 지적하고 있다. 장점은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는 일을 열심히 한다.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 어느 바리새인의 기도이다. 
눅18:12 “나는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또 소유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그들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다. 수많은 율법조항을 다 지키기 위해 열심을 내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바리새인이었던 사도 바울의 고백이다. 빌3:6절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문제가 있다. 올바른 지식이 없는 열심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이 없다. 
하나님의 뜻대로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자기 뜻대로 열심히 하는 것이다. 
자녀에게 공부 열심히 해라 했더니, 게임을 열심히 한다. 그리고 나서 말한다. ‘나 열심히 했다.’ 말한다면 그게 열심히 한 건가? 그런 열심이 바로 올바른 지식 없는 열심이다. 

올바른 지식 없는 신앙의 열심은 위험하다. 광신자가 되기 쉽다. 이단에 빠지기 쉽다. 
신천지집단이 한국교회에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근래 신천지 명단을 받았다. 살펴보니 정왕동에도 60명 쯤 된다. 전국적으로 53000명이 넘는다. 이단 신앙에 빠진 사람들이 열심을 내면 가족도 거부한다. 심지어 부모를 고소하기도 한다. 가족관계를 끊어버리기도 한다. 직장생활도 그만둔다. 학교도 그만둔다. 광적인 사람이 되어버린다. 

또 문제가 있다. 3절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 의를 내세운다. 자기 의를 내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교만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교만에 빠지면 아무리 권고해도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유대인만 그럴까? 우리도 그렇게 하기 쉽다. 오랜 봉사자, 오랜 직분자, 성경공부 좀 한 성도...자기 의를 주장하기 쉽다. 내 생각만 옳다는 것이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조심해야 한다.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의는 어떤 의인가? 
율법의 의다.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것이다. 5절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러나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5:21-22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게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5:27-28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우리가 마음으로 하루에 몇 번쯤 죄를 지을까? 5번이면 양호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판결로는 하루에 전과 5범이다. 1년이면 전과 1800범. 30년 살았으면 전과 54000범. 50년을 살았으면 전과 9만 범이다. 이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바울 사도 말씀처럼 죄인 중의 괴수이다.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 

수영해서 한강을 건너라 하면 보통은 못한다. 물에 빠져 죽는다. 수영을 오래 한 사람 중에는 건널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부산에서 제주도까지 수영으로 바다를 건너라하면 다 바다에 빠져 죽을 것이다. 박태환 선수쯤은 혹시 가능할지 모른다. 

부산에서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까지 수영으로 건너가라 하면 한 사람도 살 사람이 없다.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신앙은 죽는 길로 가는 것이다. 

그러면 율법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죄를 깨닫고 은혜를 사모하게 하시려고 주신 것이다. 


2. 사는 길- 믿음의 길 

6절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율법의 의가 아니라 새로운 의이다. 
4절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시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무슨 말씀일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다. 죄의 값을 다 지불하셨다. 죄의 형벌을 다 받으셨다. 예수님은 율법이 예표하는 것을 다 성취하셨다. 더 이상 제물이나 제사가 필요하지 않다. 

새로운 의는 어떤 의인가? 율법의 의가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다. 믿음의 의는 하나님의 의이다. 

롬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의이다. 
하나님의 의는 어떤 사람에게 주시는가? 

롬3:22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가 노력해서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6-7절에. 그리스도를 모셔오려고 우리가 하늘에 올라갈 필요가 없다. 예수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로 내려 오셨다. 그리스도를 모셔오려고 우리가 죽은 자들에게 갈 필요가 없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우리 가운데로 올라 오셨다. 
무슨 소리인가? 내가 노력해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노력해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니다. 내가 노력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 것이다. 

8절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복음은 우리가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지 않다. 가까운 곳에 있다. 복음을 들으면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도와주신다. 깨닫게 도와주신다. 마음으로 믿어지게 도와주신다. 마음으로 믿어지면 믿음을 입으로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전적으로 은혜이다. 

9-10절 말씀을 보면 마음으로 믿는 것과 입으로 고백하는 것을 다시 강조한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마음으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 
또한 예수님을 주로 영접함으로 구원을 받는다. 주로 영접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주에게 모든 권위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의 통제 아래 나를 내려놓는다. 
사장님의 권위보다 주님의 권위가 더 높다. 부장님의 권위보다 주님의 권위가 더 높다. 
그래서 나는 어디서든지 주님께 순종한다. 주님을 섬긴다. 주로 영접하는 것은 이런 뜻이다. 

진심으로 마음으로 주님을 믿으면 믿는 것을 입으로 말하게 된다. 진심으로 마음으로 믿으면 입으로 고백을 하게 된다. 고백이 없는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결혼 한 걸 숨기는 사람은 수상한 사람이다. 결혼하셨어요? 그걸 꼭 말할 필요가 있나요? 말이 되나? 이분이 남편이신가요? 저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면 말이 되나? 
옆에서 듣고 있는 배우자의 마음이 어떨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마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사람은 영원토록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왜? 하나님이 영원토록 내 아들이라 내 딸이라 자랑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누구라도 차별하지 않으신다. 사람은 차별한다. 학력으로 차별하고, 외모로 차별하고, 지위로 차별하고... 그래도 너무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은 차별 없는 사랑, 차별 없는 은혜, 차별 없는 복을 주신다. 
주님은 믿는 모든 사람을 부요하게 하신다. 요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사람은 부요한 삶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 

13절 “누구든지 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믿고 고백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사는 길로 가는 사람이다. 영원히 사는 길로 가는 사람이다. 


맺는 말 

설계 사무소를 운영하는 어떤 성도의 간증을 들었다. 수십억 규모의 설계에 입찰을 하였는데, 제시한 설계비를 깍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조건으로 설계와 감리를 맡게 되었단다. 왜 사업주 회장님이 자기에게 이렇게 공사를 맡게 해 주었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장님을 만나 일의 진행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제가 특별히 한 것이 있다면 주일에 교회 가는 것과 월요일 저녁 시간은 제자훈련을 받기 때문에 스케쥴을 잡을 수 없다는 것, 사업을 진행할 때 정직한 일처리를 약속한 것 뿐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성도이다. 
주님께서 사는 길로 인도해 주심을 체험하는 성도이다. 

예수님은 두 갈래 길을 말씀하신다. 마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여러분은 두 갈래 길 중에서 어떤 길을 선택하셨는가? 믿음으로 사는 길을 선택하셨는가? 
여러분은 두 갈래 길 중에서 어떤 길로 가고 있는가? 믿음으로 사는 길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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