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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듭나지 아니하면 (요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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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나지 아니하면 (요 3:1-5)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는 영국의 신학자요 설교자였습니다. 평생 동안 3,000번 이상 ‘거듭나야 된다’는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하루는 어느 교인이 휫필드에게 정색을 하며 물었습니다. “목사님 정말 듣기가 거북스럽습니다. 설교할 말씀이 그렇게도 없습니까? 하도 많이 들어 신물이 날 지경입니다. 왜 거듭나야 한다는 설교를 그렇게 자주 하십니까?” 그러자 휫필드 목사는 심각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대답하였습니다. “당신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거듭난다는 말을 너무 많이 사용합니다. 정치가 거듭나고 역사가 거듭나고, 교회가 거듭나고, 교육계가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듭난다는 말은 고치고 개혁하고 개선하고 새로워지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거듭난다는 말은 개선하고, 새로워지는 정도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니고데모는 당시 부자였습니다. 학식이 많은 사람이요 산헤드린 공회 의원으로서 권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바리새인으로 종교적 열심도 있었지만 영혼은 비어 있었습니다. 심령은 메말랐으며 지쳐있었습니다. 진리를 어디에서 구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밤중에 예수를 찾아 왔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여기의‘거듭난다’는 말은 아노텐(anothen)입니다. ‘근본적으로,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왜 거듭나야 합니까? 예수님은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을 본문에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영어성경에는 ‘You must’ 라는 조동사가 쓰였습니다. ‘You must be born again’ 즉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당위성의 문제입니다. 거듭남은 선택(option)의 문제가 아닙니다.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꼭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외모가 아니라 생명의 차이가 있습니다. 육으로 난 사람은 육의 생명이 있다면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 나라에서 풍성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마음이 회복됩니다. 세상과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어리석어 보이지만 언제나 승리합니다. 이는 천지를 창조하신 능하신 하나님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질 수가 없고, 실패할 수 없고 패배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교회 안에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거듭나셨습니까?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야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거듭나지 아니하면, 
 
첫째로 어찌 볼 수 있으리요

화니 크로스비 (Fanny Crosby)는 태어난 지 6주 만에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어려서부터 주 안에서 자랐습니다. 예수 믿고 은혜를 경험하였기에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한 번도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소녀시절부터 구속의 은혜를 깨닫고 역경을 넘어섰습니다. 그녀는 은혜와 감사의 사실을 찬송시로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90세 나이로 일생을 마칠 때까지 600여편의 찬송시를 남겼습니다. 

그녀의 찬송시는 신령하고 감동적이어서 찬송을 듣는 사람들이 예수께 돌아오게 했습니다. 그녀가 작시한 찬송은 새 찬송가에도 22곡이나 들어 있습니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나의 생명되신 주’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입니다. 크로스비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이라’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감사를 드림으로 그 이름에 합당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눈이 열려집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보는 눈도 열립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구원과 뜻을 보게 됩니다. 관심이 하나님을 향한 방향으로 바뀝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거듭난 자의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거듭난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모든 것을 해석하며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부디 거듭나 하나님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어찌 변화될 수 있으리요

일본의 여류작가 미우라 아야코 (三浦綾子)가 경험한 감동스러운 사건입니다. 늘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는 독자가 있었는데 그 글이 너무 아름답고 은혜로워서 그를 한 번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강연을 하는 장소가 편지를 보낸 독자가 있는 곳과 가까웠기에 그 곳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곳은 나병환자들이 있는 병동이었습니다. 독자는 병세가 심하여 손가락이 다 썩어졌으며 눈까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저런 사람에게서 그토록 아름다운 글과 생각이 나올 수 있을까 의아해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나병환자 병동에 들어와 예수 믿고 은혜 받았다고 말합니다. 성경이 무척 읽고 싶었답니다. 그러한 마음을 아는 사람이 점자 성경을 구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손가락이 썩어 문드러져 점자를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혀끝으로 읽으면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는 성경을 혀로 더듬어가며 읽는 것을 배웠습니다. 성경을 읽는 동안 혀끝은 찢어져 피가 흘렀습니다. 성경에 특별한 구절에 빨간 연필로 줄을 긋듯이 피로 그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말씀으로 변화되어 거듭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거룩하게 사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거듭나면 삶의 변화가 따라옵니다. 순종하게 되고 그만큼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느니라.”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모여 기도하다가 오순절 날 약속하신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거듭났습니다. 사실 성령을 받기 전에도 그들은 크리스천이었습니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었을 뿐입니다. 무늬만 크리스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 거듭난 이후 저들의 삶은 befor와 after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삶의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자신에게서 하나님으로 중심이 변하였습니다. 온전히 주를 위한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거듭나면 자신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변화가 따라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두 개의 주머니를 주셨다고 합니다. 자신의 허물과 죄는 앞주머니에 남의 허물과 죄는 뒷주머니에 담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담의 앞 뒤 주머니가 바뀌어져 남의 잘못과 허물을 앞주머니에 차고 날마다 보게 되었고 자신의 허물과 죄는 뒷주머니에 감추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자신의 허물을 먼저 봅니다. 자신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얼마나 허술한 존재인지, 병들어 있는 자신을 먼저 보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남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며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어찌 섬길 수 있으리요

교황으로부터 성자 칭호를 받은 사람이 북아프리카에 살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한 수도사가 그를 만나보고 싶어 북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도착한 수도사는 성자가 살고 있는 곳을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성자를 만난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나이 많은 성자가 기도하는 중이나 금식 하는 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구두를 수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도사는 기이히 여기며 그 성자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성자가 된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 질문에 늙은 성자는 정색을 하며 대답했습니다. “사실은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내가 한 것이라곤 구두를 수선 한 것밖에 없지요. 

나는 사람들이 구두를 맡기면 예수님의 구두라고 생각하면서 마음과 정성을 다해 구두를 수선 합니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나를 성자라고 부르더군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누구입니까? 두 손을 펼치며 섬기는 사람입니다. 자기만 알고 자기만을 향하고 자기만을 섬기던 이기적 신앙에서 이웃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는 존재로 변합니다. 거듭나면 자신이 섬길 수 있는 형제가 보여집니다. 그를 긍휼히 여기며 바라보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주신 자유로 서로 섬기며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세계를 보고 거듭난 후 그동안 추구하던 일들이 얼마나 무모하고 하찮은 것인가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섬김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거듭난 바울은 철두철미하게 주를 섬기고 민족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일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비록 어려워도 다른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섬기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고통을 주신 것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통이야말로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요, 섬김의 훈련이 되기 때문입니다. 

노르웨이 (Norway)는 200년 전만해도 가장 가난하고, 자유가 없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문맹이었습니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고, 문맹이 없으며, 자유를 가장 많이 누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인구 비례 당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한 나라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변화는 농장에서 일하던 스무 살 청년 한스 넬슨 허그(Hans Nielson Hauge)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성경을 건네주면서 “이것은 삶의 모든 분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네”. 청년은 그것을 실천에 옮겼고 거듭난 후 삶은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17년 동안 옥고를 치루고 그로 인해 건강을 잃고 죽은 후에도 계속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에게 임한 거듭남이 개인을 넘어 한 나라를 변화시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허그 부흥(Hauge Revival)’ 이라고 합니다.

거듭나는 것은 생각만으로 안 됩니다. 결심으로도 안 됩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거듭남이 가능해집니다. 거듭난 증거가 나타납니다. 모쪼록 거듭남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보시기 바랍니다. 거듭남으로 예수를 닮고 예수를 위한 삶으로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거듭남으로 이웃과 형제를 섬기며 사랑하는 존재가 되시기 바랍니다. 부디 거듭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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