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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을 사모하기 (시 119:103~107, 눅 8: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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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사모하기 (시 119:103~107, 눅 8:11-15)  

성경학교가 시작되는 주간이다. 성경학교란 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학교이다. 방학을 이용해 시간을 집중적으로 모아 집중력을 가지고 말씀을 만나게 하는 시간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인생에게 어떤 것이기에 집중적으로 성경학교를 여는가?

1.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등과 빛이 되기 때문이다. (시119:105)

현대식으로 말하면 말씀은 인생길의 네비게이션이다. 시편 119편의 말씀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의 소중함을 잘 나타내는 노래이다. 

시편 119편은 말씀을 율법, 법, 증거, 도, 법도, 규례, 율례, 계명, 판단, 길 등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시119:105에서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하였다. 

등이란 전기가 없던 시대에 어둠을 밝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등이 있기에 캄캄한 밤중에도 넘어지지 않고 돌부리에 채이지 않고 다닐 수 있었다. 빛도 마찬가지다. 빛이 있기에 어두움을 몰아내고 안전한 마음과 따뜻한 삶을 살 수 있었다. 말씀이 인생길의 등이요 빛이라는 것은 말씀이 인생을 성공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넘어질 자리를 피하게 하는 것도 말씀이요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는 것도 말씀이란 뜻이다. 

그렇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 말씀대로 되어진 삶이다. 가라는대로 가고 멈추라는대로 멈추었더니 좋은 것을 보게 되는 삶이다. 술 먹고 싶을 때 말씀대로, 욕심내고 싶을 때도 말씀대로, 싸우고 싶을 때도 말씀대로 했더니 잘 되어지는 일이 주어졌다. 말씀은 등이 되고 빛이 되어 안전하게 인도하였다. 군 복무 중 술 파티가 벌어질 때 말씀대로 하였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 술 먹자는 육신의 생각을 꺾고 말씀대로 사이다를 먹었다. 총기 사고가 없고 폭력과 싸움이 없는 내무반이 되었다. 이처럼 말씀은 정말 안전한 네비게이션이다.

그러므로 여름성경학교는 정말 중요하다. 수영하고 율동하며 찬양하고 게임을 하지만 이것들은 말씀학교를 이끄는 방편일 뿐이다. 등과 빛이 되는 말씀을 배우는 성경학교에 투자하는 것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2. 하나님의 말씀은 내 인생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한다. (딤후3:16)

딤후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말씀은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한다. 그것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만들어준다. 딤전6:1~12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란 투기와 분쟁, 비방과 악한 생각을 피한다. 다툼과 해로운 욕심을 피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과 인내, 온유를 따르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기업에서, 회사에서, 교회에서 다 원하는 사람이다. 이 시대에 출현해야 할 새 인간상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지는 것은 도덕과 윤리의 가르침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도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은 말씀의 힘이다. 성령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을 빚어내는 것이다. 

존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는 백화점의 왕이다. 오늘날의 백화점에서 모든 것을 다 살 수 있는 편리성을 시작한 이가 존 워너메이커이다. 그는 사실 백화점과 교회 밖에 모른 사람이다. 그의 백화점 중의 하나는 높이가 76m, 넓이는 상암경기장의 3배 정도나 되는 규모의 백화점을 운영했다. 그의 직원은 13,000명이었다. 

그런 그는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로 일을 하였고 1858년에 교회를 개척하고 자신이 섬기는 교회가 세계 최대의 교회학교가 되게 하였다. 그는 60회 생일을 맞이했을 때 주일학교 학생 44명의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67년 동안 주일학교 사역을 했는데 베다니교회의 어린이 수는 10,000명이 넘었다. 그는 체신부 장관에 입각을 할 때도 조건을 내걸었다. “주일에 찾지 않을 것, 교회학교 교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할 것” 등 워너메이커는 돈의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믿음과 온유, 인내를 지닌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살다가 8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한 번은 기자가 워너메이커를 찾아와 당신의 성공적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투자는 언제였는지 물었다. 그때 그는 거침없이 내가 어린 시절에 모든 것을 투자하여 성경을 산 것이 최고의 투자였다고 하였다. 백화점의 왕, 교회학교의 왕,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은 말씀이 만들어 준 것이다.
  

3.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회복의 능력이다. (눅8:4~8)

마13:19~23, 눅8:4~8, 막4:13~20에 씨 뿌리는 밭의 비유가 나온다. 이 비유의 뜻을 물어보았을 때 막4:14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하여 씨가 말씀이라고 하였다. 

눅8:11에서도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씨”라고 한다면 씨를 들여다보자. 씨앗은 작다. 씨앗은 볼 것이 없다. 아무 것도 아닌 듯 하다. 

그러나 씨앗의 힘은 생명에 있다. 생명을 지닌 씨앗 속에는 씨의 형체가 될 나무와 숲의 DNA가 있다. 씨앗은 심겨지는 순간 대단한 형체를 이루고 모양을 만들어 낸다. 우리의 마음 밭에 씨가 심기어지기만 하면 시작은 미약하나 곧 확장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생명의 역사가 시작된다.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씨앗은 어린 시절부터 심겨져야 한다. 유년기, 소년기의 마음밭에 씨가 떨어지면 큰 신앙의 나무가 되어 하나님 나라에 쓰여지는 인물이 된다.

시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말씀의 씨가 심겨지면 삶의 쓴뿌리, 잡초뿌리가 거둬진다. 절망, 좌절, 희망의 포기, 우울증, 마귀가 기뻐하는 행동, 허무주의가 사라지고 소망과 믿음, 사랑이 넘치는 회복이 주어진다. 

히4:12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칼이라고 비유했다.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는 칼이라고 하였다. 칼로써 비유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고치고 새 사람으로 거룩하게 회복한다는 말씀이다. 결국 씨앗으로서의 말씀이든, 칼로서의 말씀이든 말씀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회복의 능력이라는 뜻이다. 다른 것으로 회복시킬 수 없다. 말씀이 회복의 능력이다. 모든 여건을 바꾸어놓는 능력이다. 

일산 금람교회의 주성민 목사는 죽으려 했다. 대입 시험에 10번이나 떨어지고 신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는 무능한 인생, 목회자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질병으로 인한 죽음 등 하도 답답해서 예언을 받아보니 하나님이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죽자’라고 마음을 먹고 순복음 금식기도원에 가서 아무도 모르는 기도굴에서 죽으려고 맘 먹고 갔다가 말씀이 들려졌다. 부흥 강사로 오신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데 “지옥 가면 안되요. 지옥이 있어요.”라는 그 말씀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그의 절망하는 것들을 도려냈다. 은혜가 임했다. 말씀이 생명의 씨가 되고 영혼의 양식이 되고 수술하는 칼이 되었다. 결국 그는 회복이 되었다. 다 포기하고 무너진 자리에서 그를 일으켜 세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역자로 다시 회복되었다. 죽지 않고 신학교에 붙었다. 그리고 그는 금란교회로 갔다. 자신을 써 달라고 도전장을 내어놓고 매어달리고 금란교회에서 사역을 배웠다. 그는 사모하는 마음으로 담임목사의 옷, 넥타이까지도 닮으려 하였다. 결국 그는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이 시대의 새로운 리더가 되었다.   

말씀이 힘이다. 회복을 가져오는 능력의 힘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시119:103에 “내 입에 꿀보다 더 단 말씀”이라 하였는데 그렇다면 이 복되고 복된 말씀을 어떻게 사모하는가?  

① 무시로 말씀을 가까이 한다. (시119:62)

시119:62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밤중에 일어나...” 말씀 때문에 밤중에 일어난다고 하였다. 다른 사람이 잠이 드는 시간에 말씀의 규례가 너무도 좋아서 일어난다. 시119:147에서도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라고 하였고 시119:148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라고 하였다. 시편 기자는 시간의 제약이 없다. 문득 문득 말씀 때문에 감사하며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의 인도를 바라고 있다.

② 종일 말씀을 소리내어 읽는다. (시119:97)

시119:97 “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말씀이 얼마나 좋은지 입술로 읊조리는 말씀은 귀에 들려진다. 한 번, 두 번 읊조리어 들려지는 말슴이 아니다. 온종일, 하루 종일 말씀이 소리내어 읽히고 그것이 내 귀에 들려진다. 말씀을 만나고 싶어서 읊조리는 이 사모함, 우리는 이 일을 되풀이 해야 한다. 

주자는 공자, 맹자가 내 가슴 속에 들어앉도록 경서를 수 백, 수 천번 읽어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반나절이라도 읊조려 보았는가? 한 원로목사님은 설교 시 “백경, 천도, 만창”이라고 하였다. 아! 가슴을 치는 메시지였다. 백경, 천경, 만경이 되도록 온종일 소리내어 읽어야 하리라.  

③ 말씀에 대한 갈망의 마음으로 산다. (시119:131)

시편 기자는 시119:131에서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라고 하였다. 마치 제비 새끼가 입을 벌리고 날라다주는 어미의 먹이감을 놓지 않으려 헐떡이듯, 말씀이 너무도 좋아서 말씀이 너무도 내 인생의 보약이 되어서 입을 열어두었다. 갈망의 마음이다. 진리의 말씀을 기다리고 은혜를 기다리고 말씀의 깨달음을 기다리는 헐떡임이다. 

우리는 주일날 말씀을 듣는 날에 갈망의 마음 때문에 달려와야 한다. 숨이 차도록 입을 열고 헐떡거리며 달려와야 한다. 사모하는 영혼에 채우실 말씀을 기대하며 예배에 와야 한다. 헐떡임이 사라졌다가도 말씀에 대한 생각 때문에 몸과 마음, 발이 교회로 달려와야 한다.   

④ 말씀 때문에 7번씩 찬양한다. (시119:164)

시119:164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말씀이 의로운 규례다. 말씀이 거룩하고 위대하고 너무도 멋이 있어서 찬양이 나온다. 시들지 않은 말씀이기에 7번식이라도 노래를 부른다. 그렇다. 내 삶의 순간을 돌아보면 말씀의 약속대로 성취되었다. 말씀은 의로운 규례다. 입을 다물게 해도 찬양이 나온다.   

이제 말씀을 사모하는 삶이 우리 부모의 생활이 되게 하자. 길가밭이 되지 말고 돌짝밭, 가시떨기밭이 되지 말고 좋은 옥토의 마음을 지닌 성도들이 되라. 여름성경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이 소중한 말씀을 듣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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