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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풍조를 거절함 (창 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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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풍조를 거절함 (창 6:5-8) 
 
 
바나연구소의 설립자인 조지 바나(George Barna)의 <솥 안의 개구리(The Frog In the Kettle)>라는 책에보면, 한 대학 실험실에서 개구리의 신경연구를 했던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개구리를 물이 펄펄 끓은 가마솥에 넣어보았더니 개구리는 즉각적인 반응으로 제빨리 솥에서 뛰어나와 도망을 쳤습니다. 그 다음에는 솥안의 물을 개구리의 몸의 실온과 같은 온도로 해서 개구리를 그 솥 안에 넣어보았더니 개구리는 헤엄을 치며 잘도 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험자는 다음 단계로 서서이 그 솥에 열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온도가 높아지는데도 개구리는 상황변화를 인식하지도 못하고 상황에 대응하지도 못하고 결국 뜨거운 물에 익어서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조지 바나는 실험실의 개구리의 모습이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서구 그리스도인의 상태'라고 비유했습니다. 현상유지와 안주와 평안함, 순간적인 쾌락으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죽어가고 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C. J. 마하니는 "오늘날 미국 복음주의가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세상의 박해가 아니라 세상의 유혹이다."(Today, the greatest challenge facing American evangelicals is not persecution from the world, but seduction by the world. C. J. Mahaney")라고 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공감이 가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요즈음 노아의 시대와 노아의 행적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1. 노아의 때, 노아가 살던 시대는 어떤 시대였습니까?  
  
본문 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에서 특별히 강조되어야 할 네개의 단어를 발견하게 됩니다. '가득함', '모든' '항상' '악할뿐'이란 단어들입니다. 이 네 단어들은 노아 시대에 땅위에 있는 인간들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단어들입니다. 

노아의 때는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였고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한 시대였습니다.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세상에 가득한 시대였습니다. 한마디로 막장시대였습니다. 막장은 인생 갈 때까지 간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노아의 시대는 갈 때까지 간 막장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노아 시대의 모든 사람들, 그속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6장 2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리란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 전혀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이들에게도 가득함, 모든, 항상, 악할뿐이란 말씀이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점점 뜨거워지는 죄악의 가마솥의 온도를 깨닫지도 못하고 현상유지와 안주와 평안함, 그리고 순간적인 쾌락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지만 정확히 상황인식을 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노아의 때는 세상의 잔치에 정신이 팔린 때입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은 육체적인 것에 집중하고 매달려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당시의 사람들에게서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육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살아있는 영으로 만드셨는데 사람이 육체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육체적 쾌락과 육체적 관심으로 육체적으로 도모하며 살아갑니다. 

창6:4에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라고 했는데 '네피림'이란 말은 '떨어지다'라는 뜻을 지닌 기본동사 '나팔'에서 나온 말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에서 떨어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육체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습니다.그러나 네피림은 육체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키가 크고 잘 생긴 사람이었습니다. 육체가 기준이 되었습니다. 육체의 매력이 우선순위가 되는 세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육체보다도 마음을 보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육체만 보고 결혼하면 안됩니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따라가면 안됩니다. 

노아의 때는 세상의 잔치와 즐거움에 정신이 팔려 하늘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때가 되었던 것입니다. 
마24:37-39절="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주님도 재론하여 언급해 주셨습니다. 

노아의 때는 하나님이 한탄하시고 근심하시고 후회하시는 때였습니다.
6절에 보면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한탄하시고 근심하시면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더디다고 없는 것이 아닙니다. 노아의 때에도 하나님이 한탄하시고 근심하셨지만 120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내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내의 시간을 죄지어도 괜찮더라고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고대 팔레스틴 랍비들의 성경주석서인 '유대인의 미드라쉬' 기록을 보면 노아 당시 사람들은 이런 불문율이 있었다고 합니다.

1. 진실은 말하지 말아라. 
2. 만일 종노릇하거든 주인의 물건은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훔쳐라. 
3. 될 수 있는 대로 방탕을 즐겨라. 인생의 낙이 그런 것이다. 
4. 주인을 미워할 기회가 생기면 지체하지 말고 즉시 미워하라. 
5. 서로 사랑하라. 죄를 짓기 위하여 동료끼리 뭉치라. 
그래서 누우면 음란하였고 앉으면 술을 마시고 서면 춤을 추는 온갖 범죄를 다하였습니다. 

지금 세상도 그렇습니다. 이보다 더한 타락의 불문율들이 얼마나 더 많은지 모릅니다. 

2.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노아의 때, 노아의 시대와 닮은 꼴인 시대입니다.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위기의 시대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노아 시대 비슷합니다. 악이 가득하고 세상의 사람들은 별의 별 악을 자행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의 곳곳을 들춰보면 악취가 나지 않는 곳이 없고 진실이 감추어진 추한 세상입니다. 노아의 시대 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낫지 않은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육체주의와 이기심이 만나면 최고의 악한 상태가 됩니다. 그런데 지금 이시대가 바로 그렇습니다. 최고의 육체주의와 최고의 이기심의 시대가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특징입니다. 

세상풍조와 육신의 욕구에 따라가면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죄악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과 육신의 속성입니다. 
그러나 세상과 육신을 따라가면 매우 편리합니다. 쉽습니다. 쾌락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살면 "하나님이 한탄하시고 근심하시는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의 풍조를 거절하고 육신의 욕구를 조절하여 다스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김제 어느 마늘밭에서 150에 가까운 돈이 발견된 사건이 얼마전에 있었습니다. 이 돈은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여 번 불법적인 돈이었습니다. 
인터넷도박, 게임은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지 못합니다. 작은 돈을 따는 즐거움에 빠져 큰 돈을 잃습니다. 
이런 불법 도박들은 처음에는 푼돈을 따게 만들어서는 판을 키우고 키워진 판돈을 집어삼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잃은 돈을 찾기 위해서 도박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불법도박은 처음부터 도박운영자의 손에서 놀아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돈을 딸 수가 없습니다.  

마약- 단 한번으로 중독에 빠지고 맙니다.
마약 성분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이면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술은 다 그렇습니다. 얼마나 중독성이 강한지 모릅니다. 중독되면 자신이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되고 맙니다.  

죄가 보편화 되면 사람들은 죄를 의식하지 못합니다. 갱글리뉴로파디(ganglineuropathy)라는 병이 있다고 합니다. 아파도 아픔을 모르는 병입니다. 
런던에 살고 있는 4살 된 아기가 넘어져서 팔이 부러졌는데도 웃고만 있습니다. 웃으면서 어머니에게 "엄마! 나 팔 부러졌어!"라고 말했습니다. 여섯살 되었을 때, 이 아이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절뚝거리며 걷고 있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병원에서는 넓적다리에 금이 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처럼 큰 부상을 당하고 여전히 소녀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 아이는 수술하여도 주사기로 찔러도 아픔을 모릅니다. 

이 소녀는 어느덧 열네살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놀다가 손목이 부러지거나 다리에 금이 갈만큼 부주의한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이따금씩 손등에 물집이 생기거나 화상 자국이 생길 때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런 상처를 볼 때 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녀는 고통에 완전히 무감각했던 것입니다. 내과 전문의들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소녀의 병을 고쳐 보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병은 오늘날 '겡글라뉴로파디'라고 부르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치명적인 무서운 병'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치명적이고 무서운 질병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에 대한 무감각증이라는 병입니다. 

3. 세상과 같지 않았던 노아입니다.
  
노아가 한마디로 의인으로 인정되고 하나님께 택함을 입었던 이유는 바로 노아는 세상 사람들의 길을 가지 않고 믿음의 길을 갔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결코 세상을 따라가면 안됩니다. 세상 따라가면 잘 될 것 같지만 절대 잘되지 않습니다. 노아는 위기를 만나고 어려움을 만났을 때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이 아닌 믿음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것 때문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의 완전한 자라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노아는 그 시대에 살면서도 그 시대의 조류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세상속에 살면서 세상풍조로부터 자신을 격리하여 자신을 지킨자였습니다. 

세상풍조에 휩쓸려 다니면서 어떻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그것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한 세상 살아가면서 세상사람들이 하고 사는 것을 거절하고 살아간다는 것, 세상사람들이 다 하는 것을 해보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어쩌면 나만 손해보는 것 같은 느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거절하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님과 동행하는 관계,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세상풍조에 휩쓸리지 말아야 합니다. 

염장을 질러도 거기에 말려 들지 않고 휩쓸리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그런 것으로부터 지키고 격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을 보셨다" 고 했고 "사람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악의 근원을 감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활 속에 흐르고 있는 죄악의 흐름을 감찰하시고, 그 흐름의 폭과 깊이를 감찰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악의 뿌리를 보셨고 감찰하셨습니다. 그래서 죄악된 세상은 물로 심판을 하셨으나 노아에게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셔서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냥 세상풍조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인생인지 아니면 그것을 거절하려고 몸부림치면서 사는지를 감찰하십니다. 그러므로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세상풍조를 거뜬하게 거절할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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