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우리가 기다리는 하나님의 날 (벧후 3:8-14)

첨부 1


우리가 기다리는 하나님의 날 (벧후 3:8-14) 
 
 
하나님의 시간대와 우리의 시간대는 다릅니다. 8절에 보니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천년의 시간이 주님에게는 하루처럼 빠르기도 하고, 우리에게는 하루의 시간이 주님에게는 천년처럼 길기도 한 것입니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다 아시죠? 토끼는 거북이에게 경주에서 져서 화가 잔뜩 난체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토끼에게 달팽이가 나말했습니다. “너 거북이에게 졌다며, 나는 네가 빠른 줄 알았는데 별거 아니네” 그러잖아도 화가 난 토끼는 자신을 무시하는 달팽이의 말에 감정이 폭발해서 발로 달팽이를 차버렸습니다. 달팽이는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까지 날아가버렸습니다. 그리고 토끼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약 1년이 지난 후 누군가가 토끼의 집 문을 두드립니다. 토끼가 문을 열어보니 자신이 1년 전에 발로 찬 달팽이가 서있습니다. 달팽이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토끼를 째려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니가 날 쳤냐?”
   
하나님의 시간대와 우리의 시간대는 분명 다릅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약속이 더딘 것처럼 느끼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에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날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10절에서는 그 날을 ‘주의 날’이라고 말합니다. 12절에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날을 ‘하나님의 날’ 이라고 말합니다.
신앙생활은 ‘주의 날’ 즉 ‘하나님의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모든 것을 그날에 걸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하나님의 날은 어떤 날이고, 하나님의 날을 기다리는 우리는 어떻게 그 날을 기다려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하나님의 날 
   
1) 재림의 날이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십니다. 구름타고 오십니다. 우리는 그 날을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 자대배치를 받은 이등병이 가족이나 애인의 면회를 기다릴 때 얼마나 간절히 기다리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것보다 더욱 간절히 주님의 재림을 사모해야 합니다.
   
살전 4:16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주님이 재림하실 때 호령이 있습니다. ‘호령’이라는 말은 ‘부르시는 소리’입니다. 누구를 부르시는 소리일까요? 저와 여러분을, 믿는 우리들을 부르시는 소리입니다. “경훈아~”하고 부르실 것입니다. 그리고 천사장의 소리가 들립니다. 아마 “보라! 신랑이로다”라는 소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온천지가 떠나갈듯 한 나팔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공중으로 이끌림을 받을 것입니다(살전 4:17). 이것을 휴거라고 말합니다. 이 때 우리를 공중으로 모으는 일을 천사들이 합니다(마 24:15). 주님의 재림의 순간은 신랑과 신부가 만나는 시간입니다. 주님은 신랑이시고, 믿는 우리들은 신부입니다.
   
우리가 휴거 되어서 공중에서 얼마나 오래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 때 지상에서 주님의 재림을 원치 않는 세력들이 군대를 모아 재림하시는 주님을 막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킵니다. 이 전쟁이 아마겟돈 전쟁입니다.
   
공중에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공중에서 주를 보게 될 것이고 그 이후로 영원토록 주와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살전 4:17입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는 몇 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육체적인 재림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몸 그대로 재림하십니다. 예수님은 가신 그대로 오십니다. 가실 때 부활체를 입고 가셨으니 오실 때도 부활체로 오실 것입니다.
   
둘째는, 가시적인 재림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눈이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계 1:7).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셋째는, 갑작스런 재림입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시기에 예수님은 갑자기 재림하십니다. 그래서 도적 같이 오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생각지 못한 때에 갑자기 오는 것입니다.
   
넷째는, 영광스러운 재림입니다. 마 25:31입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주님은 영광으로 오셔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십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만나면 서로 ‘마라나타’라고 인사했습니다. ‘마라나타’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뜻입니다. 로마의 핍박을 견디고 믿음을 지키게 했던 신앙의 비밀이 ‘마라나타’신앙이었습니다. 우리가 주일 낮 예배 시간에 마지막 부르는 찬양이 ‘마라나타’입니다.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며 주님이 속히 오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부르는 찬양입니다. 제가 그 찬양을 예배 마지막 곡으로 선택한 이유는 여러분의 신앙이 ‘마라나타 신앙’, ‘재림 신앙’으로 무장되기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2)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날이다. 
   
두 번째 우리가 기다리는 하나님의 날은 천년 왕국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들은 들림을 받아서 공중에서 주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이 지상세계에 내려오게 됩니다. 이 때 주님은 백마를 타고 오십니다.
   
주님은 하늘 군대와 함께 올 것인데 공중에 들림 받은 우리 역시 하늘 군대에 속해서 이 땅에 내려옵니다. 주님을 따르는 하늘 군대도 흰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지상에 내려옵니다. 그리고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합니다. 이 전쟁이 아마겟돈 전쟁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에서 하늘 군대가 승리합니다.
   
아마겟돈 전쟁 이후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사로 잡혀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집니다. 또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용 즉 마귀, 사탄을 잡아 결박합니다. 마귀는 잡혀서 무저갱에 들어가게 되고 천년동안 그 곳에 갇혀서 나오지 못합니다.
   
슥 14장에 보면, 재림하신 주님이 예루살렘 감람산으로 가십니다. 주님이 감람산에 서시니 감람산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서 남과 북으로 쪼개집니다. 그리고 감람산에서 생수가 나와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릅니다.
마귀가 결박되고 천년 동안이나 마귀가 세상을 미혹하지 못하니 세상에는 평화가 찾아옵니다.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미혹에 넘어가서 잃어버렸던 에덴동산이 회복되게 합니다.
   
짐승의 666표를 받지 않고 믿음을 지킨 우리들은 천년 왕국 기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때는 온 세계의 수도가 예루살렘이 될 것이고 율법이 시온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와서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세상에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에는 무기를 녹여서 농기구를 만들 것이고,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먹고, 어린이가 사자들과 뛰놀고, 독사 굴에 손을 넣고 장난치는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천년 왕국 기간 동안에는 사단을 결박하여 무저갱에 가두었으므로, 재난사고, 흉년, 질병, 전쟁이 없는 지장낙원이 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이 날을 기다리며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3)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날이다. 
   
천년이 차게 되면 마귀가 잠간 놓임을 받습니다. 이 때 마귀가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불택자들은 마귀의 유혹을 받아서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바다 모래처럼 많은 사람들이 미혹을 받아서 마귀를 따르게 됩니다. 그들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포위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그들을 태워버립니다. 이 전쟁을 곡과 마곡의 전쟁이라고 합니다.
   
곡과 마곡의 전쟁이 끝난 후에 그 유명한 백보좌 심판이 벌어집니다. 이 심판을 백보좌 심판이라고 하는 이유는 심판자께서 크고 흰 보좌에 앉으셔서 죽은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백보좌 심판을 통과하기를 바랍니다. 백보좌 심판을 통과하는 비결은 생명책에 이름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구원 받은 사람들은 백보좌 심판을 이기고 새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심판을 통과하지 못한 자들은 영원한 유황 불못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영원토록 쉼 없이 괴로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지금 있는 하늘과 땅은 마치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듯이 불타게 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새예루살렘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올 것입니다. 우리는 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눈물도 사망도 저주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생명수 강이 흐르고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주를 섬기며 주의 얼굴을 보고 세세토록 왕 노릇하며 살 것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하나님의 날은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날입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날을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날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날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날입니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날을 어떻게 기다려야 할까요? 
 
1) 주님의 약속 위에 서라. 
   
주님이 오시기 전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됩니다. 적그리스도는 온 세상을 미혹하려고 들 것입니다. 666짐승의 표를 온 세상 사람들에게 받게 하려고 할 것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으면 그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고 영원한 불못에 들어갑니다.
요즘 666 짐승의 표를 ‘베리칩’으로 보는 견해가 강합니다. 미국에서는 2014년부터 모든 국민이 베리칩을 받아야 한다는 법이 통과 되었습니다. 지금은 경제적인 면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 베리칩을 받게 하겠지만 결국은 그것이 모든 사람들을 통제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을 떠나게 만드는 악한 자들의 도구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짐승의 표가 베리칩이 되었든 다른 방법이 되었든 중요한 것은 우리는 짐승의 표를 받으면 안 되고 마귀의 미혹을 이겨야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미혹에 넘어가고 배교하는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살전 2:3).
   
사람들이 넘어지는 이유는 말씀이 없어서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 열심으로 합니다. 바울은 롬 10:2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열심에 관해서 말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말씀 없는 열심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대학 교수로 있을 때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더군요. 시험을 내보면 기가 막힌 학생들이 있답니다. 어떤 학생은 교수님이 낸 문제는 지우고, 자기가 스스로 문제를 내서 해답을 달았답니다. 그 학생은 정답을 달았습니다. 그런데 성적은 안 나갑니다. 마찬가지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예수를 잘 믿었다, 잘 섬겼다 해도 그것은 내 기준이라면 내 삶에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들이 내 생각이 아닌 말씀 위에 서서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4절을 보면 주의 재림에 관한 약속을 믿지 못해서 실족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말세에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지 않기 때문에 미혹을 받아서 타락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가 가까워질수록 우리들은 더욱 말씀을 가까이 하고 재림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2) 기도에 깨어 있으라. 
   
10절에 보니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사람들이 예기치 못할 때 오신다는 말입니다. 도적이 도적질하러 온다고 통보하고 오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까? 도적은 집안사람들이 방심하는 틈을 타서 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려면 영적으로 깨어있는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종말에 대한 가르침의 핵심은 “깨어 있으라.”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종말에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신 후에 결론적으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25장에서는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비유를 하신 후에 결론적으로 “그런즉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깨어있는 신앙생활은 기도하는 신앙을 말합니다. 마 26:41에 보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신앙은 잠든 신앙입니다. 기도하는 신앙이 깨어있는 신앙입니다.
기도생활은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생활에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는데도 크게 도움이 됩니다.
   
경북 지사를 지내신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이분이 도지사 시절에 강원도에서 산불이 일어나서 강릉에서부터 불이 번져서 경상북도 울진 경계에까지 오게 되었답니다. 일주일 동안 불이 계속 붙었습니다. 나라에서는 많은 회의를 했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장비와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그러나 그 불은 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번져갔습니다. 드디어 그 불길이 경상북도로 넘어왔습니다. 불도 넘어가면 그 지역에 있는 기관장이 인계를 해야 한답니다. 

장로님도 강원도에서 내려온 그 불을 인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로님은 내일 아침부터 책임지고 그 불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밤새워 하나님께 기도를 했답니다. “하나님 불 좀 꺼주세요. 도와주셔서 불을 잡게 해주세요. 불이 울진 원자력 발전소에 붙으면 이 나라를 난리가 납니다. 도와주세요” 장로님이 다음 날 새벽에도 간절히 기도하고 다섯 시에 창문을 여니까 밖이 조용하더랍니다. 그렇게도 강하게 불던 바람이, 끊임없이 불던 바닷바람이 조용하더랍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항상 이렇게 바람이 없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아니요. 항상 바람이 부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바람이 안 부네요”라고 하더랍니다. 늘 불던 강한 바닷바람이 그날만 잠잠한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그렇게 하셨겠습니까? 장로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의 응답인줄 믿습니다. 바람이 그치니 일주일 동안 꺾일 것 같지 않았던 불이 아침 열 시 반이 되니 다 꺼졌답니다.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도는 시시한 일이 아닙니다. 기도는 재림을 준비하는 우리들의 생명줄과 같은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 생명줄을 던져주면 그 사람은 죽기 살기로 그 줄에 매달려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죽기 살기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도하면 말세에 일어나는 온갖 미혹을 이기게 되고, 또 생활 속에서 주님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3)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 깨어있는 영성으로 마귀를 대적하기 위함이고, 둘째는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 모든 것이 다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를 따라합시다. “모든 일이 드러난다”
10절에 보니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일이 드러난다는 이 말씀은 어떤 이들에게는 한없는 위로를 주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한없는 두려움을 줍니다.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는 말씀에 위로받을 사람은 누굴까요? 사람이 알아주든 말든 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보고 충성, 헌신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들이 드러날 때 아마 “모르시는 줄 알았는데 이것도 아셨네요!”라고 탄성을 지르면서 손뼉을 치며 기뻐할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이 저를 안아 주시면서 “목회하느라고 수고했다. 고생했다”라고 하셨는데 제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이 나를 알아주시니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힘이 나는지요.
   
“모든 일이 드러나리라”는 말씀에 두려워 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어둠의 일을 했던 사람일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아무도 모르는 줄 알고 여태까지 살아왔는데 모든 것이 드러난다면 얼마나 놀랍고,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우리가 완벽하게 숨겨도 주님이 드러내시면 다 드러납니다. 오래 전 제주도로 발령받은 경찰서장이 가족을 서울에 두고 혼자 생활했습니다. 외롭게 지내다 보니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바람이 난 것입니다. 남편의 이상한 행동을 눈치 챈 아내가 닦달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어느 날 밤에 잠자는 아내의 귀에다 못을 박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고혈압으로 사망한 것처럼 사망진단서를 떼어 장례를 지냈습니다. 감쪽같이 속인 줄 알았지요. 그런데 사정에 의하여 몇 년 후 아내의 무덤을 이장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오빠가 두개골을 수습하다보니까 머리에 큰 못이 박힌 것을 발견했습니다. 결국 살인죄가 발각되어 사형을 당하고 말았답니다.
   
히 11:24,25에 보면 모세가 주 앞에 쓰임 받기 전에 먼저 버렸던 것이 있습니다. 먼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버렸습니다. 권력과 명예를 버린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을 버렸습니다. 육체적인 쾌락을 버린 것입니다. 세 번째는 애굽의 모든 보화 즉 재물을 버린 것입니다.
   
히 11:26에 보면 모세가 그렇게 좋은 것들을 버린 이유가 나옵니다.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다시 말하면 모세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 설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수고한 것들이 다 드러날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의 수고에 상 주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은 점차 더 악해져 갑니다. 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범죄들이 지금은 쉽게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전에는 불신자도 부끄러워하던 악하고 음란한 일들을 기독교인들마저도 아무런 부담 없이 행하는 시대입니다.
말세에는 악한 자들은 계속 악을 행하고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믿음의 편에 있어야지 악한 자들 편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계 22:11을 보면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이 악하고 음란하다고 우리도 악하고 음란한 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세상풍조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세상풍조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장마철에 홍수가 나면 생명이 없는 물체는 물결 따라 떠내려가지만, 생명이 있는 물고기는 물결에 저항하면서 물결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말세가 될 수록 세속주의와 죄악의 물결이 범람하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쾌락과 음란을 따라 살지 말고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의 날이 앞당겨지도록 노력하라. 
   
본문 12절에 보면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간절히 사모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날이 좀 더 빨리 올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의 날 즉 재림과, 천년왕국과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도록 노력하는 것일까요? 세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하나님의 날을 앞당기려면 전도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빨리 오셨으면 좋겠는데 주님은 너무나 더디 오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이 더디 오시는 이유는 무엇일가요? 9절에 보면 답이 나옵니다. 주님은 택하신 자들이 다 회개하고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더디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주님이 빨리 오실 수 있도록 전도자로 살아야 합니다.
   
롬 11:25,26을 보면 이방인의 충만한 자의 수가 차면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되고 온 이스라엘이 돌아오면 그 때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입니다. 믿는 자의 수가 차야 주님이 오십니다. 그러므로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전도자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전도자의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전도는 능력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씨를 뿌릴 뿐이고 역사는 주님이 하십니다.
약 50여 년 전에 미국 텍사스에서 석유사업으로 큰 부자가 된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들의 이름은 죤 뉴우턴, 루이 웨더포드, 사무엘 프레스톤입니다. 석유산업 호황으로 억만장자가 된 이들은 전세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놀러갔습니다. 그들은 엠배서더 호텔 69층 전체를 예약하고, 첫날 뉴욕 관광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술을 먹고 취한 채로 호텔에 돌아와 보니 일이 생겼습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것입니다. 

프론트 직원은 하룻밤만 2층에서 지내달라고 사정합니다. 그러나 이 세 친구는 술기운에 객기가 생겨 69층까지 걸어 올라가기로 결정합니다. 등산하는 기분으로 걸어올라 가는데, 처음 몇 층은 괜찮았으나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마지막 몇 층은 거의 기어 올라가면서 2시간 반 만에 69층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올라와 보니까 프론트에서 방 열쇠를 받지 않은 것입니다. 다시 1층까지 걸어서 내려갈 것을 생각하니 그만 정신이 아찔해지고 고민이 됩니다. 마침 그때 청소하는 흑인 아주머니가 손에 마스터키를 들고, 활짝 웃으면서 객실 문을 열어주며 농담 비슷하게 말합니다. 

“이곳까지 올라오느라고 많이 고생하셨지만 방 열쇠가 없으면 방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만약 이 마스터키가 없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마스터키는 예수님이지요.” 방문이 열리고 세 친구는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누웠습니다. 그런데 존 뉴우턴라는 부자의 머릿속에 ‘예수 그리스도는 마스터키입니다.’라는 흑인 아주머니의 농담이 떠나질 않으면서 어린 시절의 교회생활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존 뉴우턴은 두 친구에게 “예수님은 정말 우리의 마스터키이다”는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두 친구도 그 고백에 동의하고 그날 밤 그들은 눈물로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그 밤에 예수님이 찾아오심으로 그날 이후로 그들은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게 됩니다. 텍사스 제일가는 부자들이 자신의 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평생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기도의 후원자, 재정적 후원자가 됩니다.
청소부 흑인 아주머니의 가벼운 전도가 그 세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만 아니라 빌리 그래함의 사역에 영향을 미쳤고, 수많은 사람들을 살렸던 것입니다.
전도는 우리가 하지만 열매는 주님이 맺게 하십니다. 우리가 가볍게 전도를 해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날을 앞당기려면 믿는 우리가 전도자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② 하나님의 날을 앞당기려면 세계선교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언제 재림하실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 되고난 이후입니다. 마 24:14을 보면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처럼 작은 교회를 세계선교에 헌신하게 하시는 것은 재림의 시기를 앞당기시기 위함입니다.
   
어떤 비행기가 엔진고장으로 추락하고 있었습니다. 비행기 안에 탄 사람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질려서 어쩔 줄 몰라 합니다. 한 사람이 태연스럽게 앉아있는 것을 본 옆 사람이 그 사람의 표정을 살핍니다. “당신 뭐하는 사람이요?”, “나는 목사입니다.”, “그럼 잘 됐습니다. 지금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는데 당신이 믿는 하나님께 빨리 기도해서 추락을 모면해 달라고 부탁을 드려보시지요.” 애타게 부탁했습니다. 목사님이 이 사람을 가만히 보더니 “저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비행기가 떨어지고 안 떨어지고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천국 기획국이나 비서실 소관인데 저는 영업파트에 있기 때문에 도무지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저는 실적만 잘 올리면 됩니다. 당신 예수 믿습니까?”라고 질문하더라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유머 속에 뼈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믿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되는 사람인지 분명히 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타고 있는 비행기가 추락하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교회는 중보기도와 세계선교 그리고 이스라엘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우리 모두가 헌신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날이 앞당겨질 것입니다. 
 
③ 하나님의 날을 앞당기려면 이스라엘 선교를 해야 합니다.
롬 11:25,26을 보면 만물이 주에게로 돌아가기 전에 이방인의 수가 차고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금세기 들어서 이스라엘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주님의 날이 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믿는 유대인의 수가 2만 명에 불과하지만 롬 11:26 말씀대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 그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역사의 종착점에서 이스라엘 구원이라는 마침표를 통해서 세계의 역사를 정리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교회가 이스라엘 선교에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표가 진행되는데 있어서 우리들이 중요한 사명을 맡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내년에 하게 될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중보기도 사역이 기대가 됩니다. 흥분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격이 되고 또 감사합니다.
사명의 길은 힘들어도 가야 합니다. 사명의 길을 가면 행복합니다. 인생의 의미는 사명에서 찾는 것입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목숨을 걸만한 사명을 발견하고 하루를 살아도 사명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주님 다시 오십니다. 마라나타!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