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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황충, 불, 다림줄의 환상 (암 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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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충, 불, 다림줄의 환상 (암 7:1-9)


아모스서의 전화번호가 몇 번인지 아십니까? 9-8355번입니다. 9는 아홉 개의 장이라는 뜻이고 8355는 아모스서의 구조가 여덟 나라에 대한 심판과 아모스의 세 편의 설교 그리고 다섯 가지 환상과 다섯 가지 회복의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아모스 7장부터는 다섯 가지 환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섯 가지 환상 가운데 황충과 불과 다림줄 이렇게 세 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두 가지는 다음 주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세 가지 환상의 내용은 공통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셔야 되겠다는 내용입니다. 이 환상을 본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도고기도(intercession)를 합니다. 보통 중보기도라고 표현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도고기도는 죄인인 우리가 다른 죄인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중보기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는 오로지 한 분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기 때문에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입니다. 아모스는 도고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세 번의 심판 가운데 두 번은 면제해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세 가지 환상을 통해서 아모스가 증거하려는 것은 세 가지의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Ⅰ.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백성이라도 하나님께 신실치 못한 경우는 현세에서 심판을 내리신다

자기 백성이라도 신실치 못하면 현세에 사는 동안 심판을 내리십니다. 물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내세의 심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1)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3-34)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은 송사할 자도 없고 정죄할 자도 없으므로 내세의 심판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도들이 현세에서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다는 것입니까? 첫째, 그럴 수 없습니다. 둘째, 그러면 안 됩니다. 셋째, 그러면 혼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불충하고 신실치 못하면 이생에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그것을 하나님의 징계 혹은 권징이라고도 하는데 무슨 용어를 쓰든지 내용은 동일하게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신약시대에 나오는 하나님의 교회를 예표하는 것은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의 경험은 오늘날 신약시대의 교회에서도 동일하게 경험될 수 있습니다. 

아모스 2장 6절 이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신실치 못한 죄(unfaithfulness)의 목록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물질을 숭배하고 약자를 억압하며 성적으로 부패하였습니다. 또한 악인 것을 알면서도 행하는 뻔뻔스러움이 있었고 하나님께 감사치 않는 배은망덕의 죄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들을 핍박하는 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신실치 못했기 때문에 세 가지 환상을 통해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황충과 불과 다림줄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세 가지 환상은 모두 상징이고 앗수르가 3차에 걸쳐서 침공할 것을 의미하는데 아모스가 도고기도를 해서 두 번은 막아주시고 세 번째 허락하셨다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황충의 재앙은 이스라엘 역사를 볼 때 7년의 한 번씩 일어나는 재앙이기 때문에 굳이 상징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아모스가 받은 환상은 너무나 구체적이기 때문에 상징으로 볼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주께서 황충을 지으시매” (암 7:1) 

메뚜기 떼를 황충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왕이 풀을 벤 후’라는 말이 나옵니다. 왕이 직접 낫을 들고 풀을 벤다는 이야기냐? 그런 의미가 아니라 봄이 되면 풀을 2차에 걸쳐 벱니다. 1차는 왕의 감독 하에 풀을 베는데 이것은 왕실의 사람들과 왕궁의 짐승을 먹이기 위한 것입니다. 1차로 풀을 베고 나면 또 자라납니다. 그러면 2차로 베는데 이것은 백성과 백성의 짐승이 먹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이 풀을 벤 후’라는 것은 2차로 수확할 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2차로 수확할 때 하나님께서 황충의 떼를 보내셔서 백성이 먹을 풀을 다 먹어버리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백성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게 되고 그 결과 나라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께서 명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 (암 7:4) 이것을 어떤 사람은 전쟁이라고도 하지만 전쟁이 났는데 왜 바다가 마릅니까? 이것은 극심한 가뭄을 말하는 것입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비가 오지 않으니까 육지의 있는 물과 바다의 있는 물이 다 말라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이 맞는지는 모릅니다. 왜냐하면 아모스의 도고기도 때문에 이 심판은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이든 가뭄이든 결과는 동일합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믿는 자에게는 내세의 심판이 없을지라도 현세를 살아가는 동안 신실치 못하게 살아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 아주 잘못된 것임을 아모스 7장을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신실치 못한 경우 오래 참으십니다. 하지만 오래 참으시다가도 하나님의 진노가 쌓이고 쌓여서 한계에 도달하면 그때는 징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징벌이 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신실치 못한 죄는 빨리 회개해서 하나님의 징벌을 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Ⅱ. 하나님은 때론 성도의 도고기도(intercession)를 들으시고 심판을 거두기도 하신다

아모스 7장 2절과 5절은 아모스가 기도한 내용입니다. 아모스는 자기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진지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려고 하실 때 “내 그럴 줄 알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냥 두셨으면 저라도 혼내려고 했습니다.”라고 하며 속으로 고소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아모스는 심판의 환상을 보자마자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아모스의 기도를 보면 기도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약 5:16)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성도들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야 됩니다. 우리 성도들이 기도하면 역사하는 힘이 많아서 나라가 여러 가지 위험 속에서도 망하지 않고 발전해갈 줄로 믿습니다. 어떤 분은 기도해봤자 무슨 역사가 나타나느냐고 불신앙적인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습니다. 
 
그리고 아모스는 황충을 치워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황충이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청컨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암 7:2) 아모스는 첫째, 용서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황충이 몰려온 원인은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먼저 용서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둘째,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도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한마디로 눈을 뜬 것 아니겠습니까? 

기도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첫째,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시고 둘째,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기도하시면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이 강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로보암 2세 시대였기 때문에 군사력도 강하고 경제력도 강했습니다. 하지만 아모스 선지자가 보기에는 황충이 한 번만 밀려오면 다 굶어 죽을 미약한 백성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황충이 오면 감당할 수 없으니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아모스 7장 5절에서는 불심판이 급박하게 오는 것을 보고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을 향해서 “그치소서”라고 말합니다. “그치소서”를 영어로 하면 “Stop”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명령하는 것입니다. 성도니까 하나님께 명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아모스 선지자의 도고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는 두 번씩이나 뜻을 돌이켰다고 아모스 7장 3절과 6절에 동일하게 나와 있습니다. 
 
사도행전 27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죄수의 몸이 되어 지중해를 배타고 건너갑니다. 그런데 유라굴로 광풍을 만났습니다. 2주 동안 계속해서 광풍이 불었습니다. 햇빛도 안보이고 달도 안보이고 별도 안보이니까 배에 타고 있던 276명 모두가 소망을 잃었습니다. 

선원, 백부장, 십부장 모두 뱃멀미를 하고 괴로워하는데 딱 한 사람 사도 바울만이 배 밑으로 가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로마황제 가이사 앞에 서야 되는데 여기서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까 저를 살려주셔야 됩니다.” 이렇게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겠고 이 배에 탄 276명은 이 배를 벗어나지 않으면 머리카락 하나도 상하지 않고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이 말을 그대로 배에 탄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멸망해가는 배에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바울의 도고기도만이 소망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멸망하는데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아모스 선지자 한 사람이 도고기도하는 것 외에는 소망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심판을 멈추시는 것입니다. 


Ⅲ. 하나님은 다림줄(plumb line)을 가지고 당신의 백성의 내면을 측량하신다는 진리이다

아모스 7장 7-9절은 다림줄의 환상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다림줄을 가지고 담 곁에 서셨다고 나옵니다. 다림줄이 무엇입니까? 줄인데 끝부분에 추가 달려서 들고 있으면 중력의 법칙에 의해서 정확하게 수직선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 다림줄의 용도는 무엇이냐? 담을 쌓을 때 다림줄을 놓고 쌓으면 수직으로 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담을 쌓을 때 다림줄을 쓰지 않으시고 담 곁에 서서 쓰고 계실까요? 다림줄은 담 쌓을 때도 사용되지만 담의 안전진단을 할 때도 사용되는 것입니다. 기존의 담이 기울어서 무너지면 여러 가지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으므로 다림줄로 측량해서 너무 기울어져 있으면 고쳐서 바로 세우거나 헐어버리는 것입니다. 기울어진 담을 그대로 두었다 거기서 아이들이 놀다가 깔리기라도 하면 큰일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울어진 담은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베풀고 다시는 용서치 아니하리니” (암 7:8)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라는 말은 킹제임스 버전으로는 “in the midst of my people Israel”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라는 말은 위치적으로 가운데 계신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이스라엘 백성의 내면을 측량하신다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종교적인가를 측량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마음, 의지, 지성, 양심이 올바른가를 측량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양심이 실종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다림줄로 재보면 그 사람의 양심이 삐딱하다는 판정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헐어버려야겠다고 결정하시면 그 사람의 인생은 끝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담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손에 잡으신 다림줄은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을 가리킵니다. “나는 공평으로 줄을 삼고 의로 추를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사 28:17) 정의와 공의를 가지고 다림줄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의 심령이 삐뚤어져 있으면 하나님께서 다시는 용서치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킹제임스 버전으로는 “I will not again pass by them any more” 내가 그것을 봐주지 않겠다고 나와 있고 NIV 성경에는 “I will spare them no longer” 더 이상 그들을 아껴보지 아니하겠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담이 너무 기울어져 있으면 그냥 지나가지 않으시고 반드시 헐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헐어버리지 않으면 사고가 나기 때문입니다.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훼파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 (암 7:9) 이삭의 산당과 이스라엘의 성소는 우상숭배하는 곳입니다. 이삭은 웃는다는 뜻인데 산당에서 우상숭배를 하면서 웃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성소는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우상숭배를 하던 벧엘과 단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성소는 종교를 말하는 것이고 여로보암의 집은 정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와 정치가 하나님의 다림줄로 측량해볼 때 수리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도 하나님께 기울어진 담을 그대로 두시라고 도고기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신약의 교회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갈 6:16)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다림줄을 가지고 교회도 측량하시고 정부도 측량하십니다. 한국의 교회나 정부를 여론에 따라 측량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론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돈 받고 조작된 여론도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여론이나 문화적인 기준, 세상의 도덕에 따라 측량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측량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 대한민국 정부를 하나님께서 측량하신다고요? 기독교 국가를 측량하신다면 모를까 왜 대한민국 정부를 하나님께서 측량하십니까?”라고 질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시며 모든 나라의 정부를 다 측량하십니다. 

다니엘 5장을 보면 이방나라 바벨론의 왕 벨사살이 술 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술을 마시다가 선왕이었던 느부갓네살이 이스라엘을 파괴할 때 가지고 왔던 잔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썼던 잔인데 거기다 술을 부어서 먹고 싶어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잔에 술을 부어서 마셨는데 갑자기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글씨를 쓴 것입니다. “네가 사는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세어보니까 너는 오늘로 끝이구나. 내가 너를 재보았는데 왕이 되기에 자격 미달이구나. 너의 나라는 오늘로 망하고 둘로 갈라서 메대와 바사에게 주겠다.” 

바벨론은 그날로 망했습니다. 담이 너무 기울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대로 헐어버리신 것입니다.  
 
단체로써 교회와 국가 뿐만 아니라 우리 개인도 하나님께서 다림줄을 가지고 측량하십니다. 

조선일보 사설을 보니까 그리스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작년에 제가 그리스를 갔다 왔는데 온 동네 사람들이 데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노인들이 연금을 올려달라고 데모하고 젊은 사람들은 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돈을 벌어 놀러 갈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현재 총리의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그 아버지가 미국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배워온 것입니다.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는 분배를 잘해야 된다고 생각하여 복지정책을 대폭 확대한 것입니다. 연금도 올려주고 최저임금도 올려주고 등록금도 다 지원해주니까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고 인기가 높아져서 그 아들도 총리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닭을 다 잡아먹으면 누가 알을 낳습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단점이 있으므로 수정해서 발전과 분배가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하는데 발전은 하지 않고 분배만 하면 다음 세대는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다림줄로 볼 때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고 바르게 판단해야 합니다. 


결론

세 가지 환상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첫째, 우리 개인의 삶이나 교회나 국가가 하나님의 공법과 정의에 비추어 삐뚤어져 있다면 속히 바로 잡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파괴 판정이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삐뚤어진 것이 있거나 양심이 실종된지 오래된 분이 계시다면 다시 똑바로 세우시기 바랍니다. 

제가 담임목사가 된지 다음 달이면 10년째 되는데 처음 와서 잠을 못 자고 가장 걱정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본당 앞마당에 외한은행 옆에 있는 담이 기울어져 있는 것입니다. 밑에서 보면 겁이 나서 절대 그 밑으로는 안 갔습니다. 그래서 1년에 걸쳐 담을 안전진단 해보니까 담을 쌓을 때 기울게 쌓았기 때문에 넘어지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불안해서 지하실에 에이치빔을 대고 보강공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밑에 집 아저씨가 교회 정화조가 깨져서 썩은 냄새가 자기 집으로 들어온다고 매일 사무실에 와서 따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저씨와 부딪치지 않으려고 멀리 돌아오고 그랬었는데 정화조도 고치고 나니까 그때부터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삐뚤어진 것은 고쳐야 됩니다. 삐뚤어진 것을 고쳐야지 왜 그냥 놔둡니까? 그냥 놔두면 결국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평가하는 기준입니다. 다른 것은 기준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다림줄입니다. 
 
둘째, 우리 성도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를 핍박하고 미워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망하라고 해서는 안 되고 아모스 선지자처럼 도고기도에 헌신해야 되겠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친구와 이웃을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는 구체적으로 해야 됩니다. 구체적으로 이름을 말하면서 구원해달라고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도고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십니다. 죽이려다가도 살리시고 심판하려다가도 돌이키시는 것입니다. 
 
셋째,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 신실한 백성이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께 신실한 것이 우리와 우리 후손을 위해서 현세와 내세에 유익을 주는 유일한 길인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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