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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화의 왕이 오신다! (슥 9: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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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왕이 오신다! (슥 9:9-12)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전쟁이란 고통스럽고 또 불행한 경험입니다. 우리도 겪어보지 않았습니까? 6.25 전쟁이라고 하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특히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전쟁의 패배는 심히 견디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특별한 민족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세상 모든 민족이 자신들을 통해서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굳게 믿고 있었던 것과는 상관없이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주변 강대국들은 그들에게 쓰라린 패배의 상처만 안겨 주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승리보다는 패배를 맛보는 일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에 그들은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이 겪는 모든 어려움이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웃 나라들, 특히 악의 화신과도 같은 강대국들의 승리와 성공에 대해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에 의하여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 중의 일부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고향에 돌아온 그들은 먼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성전 재건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주위에 방해하는 무리들도 많았습니다. 자연히 성전 재건은 지연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전 재건보다 더 급한 일이 있다고 그들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가정을 돌보는 일도 중요했습니다. 사업을 일으키는 일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때에 선지자 스가랴가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스가랴 1장 3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성전 재건이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때문에 다른 일들은 모두 다 성전 재건 다음으로 미루어 놓아야 했습니다. 성전 재건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회복했다는 사실을 보여 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업이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을 재건했다는 것은 그들이 더 이상 주변 강대국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굳게 믿고 의지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나타내 보여 주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선지자 스가랴가 외쳤습니다. 스가랴 9장 9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의 말을 통해서 그 당시 백성들의 형편과 처지가 별로 기뻐할 것도 없었고 또 별로 즐겁게 찬양할 것도 없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외쳤습니다. 그가 어째서 그런 요구를 했습니까?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백성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실의에 빠져 있는 바로 그들을 위해서 그들의 왕이 오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들을 위해서 그들의 왕이 임하시기 때문에 선지자는 그들에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역사의 무대에는 많은 왕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선한 왕도 있고 악한 왕도 있습니다. 나라를 잘 다스려서 백성들이 편하게 살게 한 왕도 있습니다. 유난히 싸움을 잘 해서 국토를 넓힌 왕도 있습니다. 학문을 발달시킨 왕도 있고 건축이나 예술을 좋아해서 훌륭한 문화 유산을 많이 남긴 왕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스가랴가 이제 오신다고 한 왕은 세상의 왕들과는 다른 분이십니다. 그분은 지치고 힘든 자기 백성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픔과 슬픔 중에 있는 자기 백성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절망하고 있는 자기 백성들에게 희망을 선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임하시는 왕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문제점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양극화 문제인 것 같습니다. 부익부 빈익빈, 부자는 점점 더 많이 갖게 되고 가난한 자는 점점 더 가난하게 되는 이 문제의 원인도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정직한 사람들이 오히려 피해를 보고 있지 않습니까? 아마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그들에게 가장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공의였을 것입니다. 바로 그 공의를 실현하려고 그들의 왕이 임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울러 그들에게 임하시는 왕은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이번 집중 호우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당했습니다. 특히 산사태 현장에서는 빤히 보고 있으면서도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 구조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구원은 머리나 가슴으로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자기 목숨을 희생할 필요가 있는 것이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과연 그분은 친히 십자가 죽음이라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우리를 구원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들에게 임하시는 왕은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나귀 새끼를 타실 정도로 겸손하셨습니다. 일찍이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분의 겸손을 아주 잘 표현하지 않았습니까? 빌립보서 2장 6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과연 그분은 겸손을 몸소 실천하여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분이 힘이 없어서 자기를 낮추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임하시는 왕은 놀라운 힘과 능력을 소유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스가랴 9장 10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북의 핵무기가 문제가 아닙니다. 중국이 항공모함을 건조한다고 해도 문제가 아닙니다. 친히 모든 무기를 폐기하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모든 전쟁 무기를 없애고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가리켜서 평화의 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선지자 스가랴는 그들에게 임하시는 그들의 왕이 베푸시는 구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스가랴 9장 11절, 12절 말씀입니다.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게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 그 때까지도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자격이나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 때문에 그들도 또한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희망을 잃지 않고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구원을 받되 마침내 더 큰 은혜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갑절이나 갚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누구에게 말씀하셨습니까? 비록 갇혀 있지만 소망을 품은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의 은혜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오직 요구되는 것은 굳센 믿음이라는 사실을 오늘 우리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평화의 왕이 오십니다. 그 옛날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그 평화의 왕이 오셨고 이제 곧 다시 오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주님의 통치 방식은 세상의 다른 통치자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 주님은 공의로우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에게는 단비와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주님은 군림하고 지배하는 통치자가 아니라 겸손하게 사랑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오직 그 주님만이 전쟁과 죽음의 소식이 그치지 않는 이 땅에 참 평화를 이루실 수 있습니다. 그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주님의 약속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비록 이 세상은 어둡고 캄캄하지만 평화의 왕으로 오신 주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의 멍에를 메고 배움으로 말미암아 그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와 안식을 지금 여기서부터 마음껏 받아 누리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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