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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꼴찌가 첫째가 되려면 (마 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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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가 첫째가 되려면 (마 20:1-16)
  
이스라엘땅은 과일이 자라기 적합한 기후조건을 갖춘 지역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서 나는 과일을 유럽에서는 제일로 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3대 나무를 들면 무화과, 감람나무 그리고 포도나무를 뽑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에서 포도나무는 흔합니다.  

그런데 과일은 얼마나 햇빛을 많이 받고 자랐느냐?하는 것에 의해 당도가 높고 낮음을 결정 짓습니다. 포도주도 어느 해에 담갔느냐?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일조량이 유난히 많았던 해의 포도로 담근 것이면 맛이 훨씬 좋아 값이 더 많이 나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포도원 주인은 포도를 딸 때가 되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햇빛을 더 많이 받도록 기다렸다가 따야 당도가 좋은데  당도를 높이기 위해 조금, 조금 더 기다리다가 우기가 되어 비바람이 몰아치면 농사가 다 망치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찍 포도를 따자니 당도가 낮고 좀 기다렸다가 따자니 비가 오면 다 망치겠고 적당한 타이밍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지금이다.'하고 결정하여 포도를 딸 때는 그야말로 온 일손을 다 끌어다가 포도를 따야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포도원 주인이 장터에 나가서 일꾼을 보고는  "너도 가서 일해라.  너도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이렇게 닥치는대로 데려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일손이 많이 필요하고 빠른 시간에 수확을 마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른 아침 즉 여섯시, 그리고 아홉시, 열두시, 오후 세시, 다섯시에도 데려왔습니다. 마지막 포도원에 들어간 사람은 1시간 밖에는 일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일거리를 놓치고 하루의 시간을 다 보냈는데, 한 나절을 다 보낸 이 사람들에게 주인은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그에 상당한 댓가를 주리라."  말합니다.   주인에게는 일손이 아주 부족합니다. 기회를 놓치면 일년 농사가 헛수고가 되어 버립니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주님께서 더 많은 이들에게 중요한 기회를 주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건강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이나 지식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지금 좋은 기회를 주고 싶어 하십니다.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그렇게 하루 종일 일한 다음 저녁이 왔습니다. 주인은 노동자들에게 품값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맨 나중에 온 사람부터 주었습니다.  맨 나중에 온 사람 1시간 밖에 일안했는데 한 데나리온을 주었어요.  아침부터 하루 종일 일한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저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었으니까, 우리에게는 다섯 데나리온을 주겠지. 적어도 세 데나리온은 줄거야.'  하고 기대했는데 그도 한 데나리온이에요.  여기서 원망을 하는 거요.  원망할만하잖아요?  "나는 하루 종일 일했는데 한 데나리온.  왜 저 사람들은 잠깐 밖에는 일하지 않았는데 왜 역시 한 데나리온 입니까?"  불공평하다고 원망을 합니다. 여러분, 그 원망과 불평이 부당합니까?  당연합니까? 
   
예수님이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주 중요한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써 나중되는 자가 많을 것이다."  입니다. 새번역을 보면 더 재미있게 표현했습니다. '이와 같이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첫째 인생입니까? 꼴찌인생입니까? 여러분 첫째 인생이 되고 싶습니까? 꼴찌 인생이 되고 십습니까?  여러분 모두 꼴찌인생으로 출발했어도 첫째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하시려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꼴찌 인생이 첫째 인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은혜를 깨달으면 꼴찌 인생도 첫째가 됩니다.  
  
이 말씀은 먼저 유대인들을 겨냥한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적자 후손들이고 특별히 선택을 받은 선민이라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이방인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외인들이요,  율법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는 야만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은 우습게 여기고 항상 자기들의 성경 지식과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회 있을 때마다 유대인들을 책망했습니다.  오히려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셔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믿음을 통한 구원을 강조했습니다.  '죄인도 회개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이방인들도 구원받아 풍성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니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은 한없이 미운 존재였습니다. 
   
본문에서 이른 아침에 일하러 온 사람들은 유대인을 암시합니다.  이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려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행실을 이방인들의 행실에 비추어 볼 때 너무 완벽에 가까웠습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율법을 배우며 살아 세상의 때도 묻지 않았고 그러니 당연히 특별대접을 받을 것이다.' 하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니  선택받은 은혜, 이제껏 하나님께 사랑받으며 산 은혜를 잊고 기쁨과 감사가 사라졌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은혜보다는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함을 못 느끼고 거부합니다.  윤리적으로,  성경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삶을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기를 잘합니다.  '우리는 일찌기 조상적부터 이제까지 율법을 잘 알고 지켰으며 안식일을 철저히 지켰다. 금식도 자주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는데 너희는 그게 뭐냐?  이제껏 하나님도 모르고 살지 않았느냐?  그런데 어떻게 천국 가겠느냐?'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들도 죄인입니다.  똑같이 하나님의 큰 은혜가 필요한 불쌍한 이들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반면에 많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이들은 이제까지 하나님을 모르고 방탕하게 산 것이 후회가 되고 부끄럽게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불러 주시고 일할 기회를 주시니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릅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을 위해서 살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제일 늦게 믿고 돌아온 이들을 첫째 자리에 올리십니다. 그리고 먼저 믿은 이들은 꼴찌로 만드십니다. 
   
오후 세 시, 다섯 시에 온 사람들은 그 만큼 일은 못했지만 한 데나리온을 받아 가야 굶고 있는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하나님도 오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로 구원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에 온 사람은 주인과 계약한대로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은혜로 받은 것이 아니고 수고한대로 품삯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품삯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가 남보다 더 고생하고 수고했으니 당연히 더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입니다.  결국 그런 생각때문에 나라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나라위해 희생하여 나라가 좋아졌으니 보람으로 만족하겠다.'  '주님과 교회를 위해 헌신하여 좋은 결과를 보게 되었으니 감사하다. 그 과정에서 기쁨이 넘쳤으니 나는 충분한 보상을 받은 것이다.' 하는 사람이 많이 나와야 나라가 건강해지고 교회가 은혜스러워집니다.  

토레이 박사가 호주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에 강단위에 쪽지가 올라왔습니다. "박사님, 저는 기도 제목이 하나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습니다.  저는 3대째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25년동안 주일학교 교사로 봉직했고 20년동안 교회 장로로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습니까?"
  
토레이 박사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공로를 내세워 기도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공로의식을 말살하기 전까지는 기도가 절대 응답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품삯을 구하지 말고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공로를 늘 바라보며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바라보며 항상 감격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꼴찌인생에서 벗어나 첫째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2.  비교하지 않으면 꼴찌 인생도 첫째가 됩니다. 
   
주인과 나와의 계약을 생각해보면 원망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애당초 약속이 한 데나리온이니까  그렇잖아요?  얼마나 고마워요?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으면 하루 공치고 놀아야 하잖아요. 놀지 않고 하루 일하고 품삯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나와 똑같이 대우받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  나는 저 사람보다 더 많이 일했는데 같은 대접을 받네 하고 비교하다 보니까 감사가 사라지고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모습을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에 대해서는 긍정적이고, 남에게 대해서는 부정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감은 있는데 남을 멸시하는 교만이 있습니다.  자신은 다 긍정적으로 보고 남은 항상 부정적으로 봐요.  이 때문에 불행합니다.  

둘째는 자신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사람이 있어요.  이 사람은 항상 남을 부러워하며 살아요.  남의 처지만 좋아보여요.  남의 떡만 커보여요.  남의 자식은 잘된 것 같고 내 자식은 잘못된 것 같아요.  심지어는 남편도 남의 남편이 훨씬 좋고 내 남편은 '어쩌다 저런 게 걸렸나?' 이렇게 생각한데요.  항상 불평이라는 거예요. 

그 다음에 세 번째는 자기에게 대해서도 부정적이고 남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에요.  이 사람이 염세주의자에요.  항상 이 사람은 불평과 원망이 가득합니다.  세상을 향해 아주  비관적입니다.  

그런가하면 자기에 대해서도 긍정적이고, 남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사람이 있어요.  나 자신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봐요.  그리고 남을 부러워 할 것도 없고 더불어 행복할줄 아는 사람이에요. 긍정적으로 보면 행복하고 비교하면 불행해집니다. 

오늘 본문에  주인은 말씀합니다.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무슨 말입니까?  "네가 받은 것이 은혜라고 왜 생각을 못하느냐?  네가 받은 한 데나리온을 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느냐?  내가 너를 부르지 않았다면 너는 오늘 하루 공쳤을 거 아니냐?  내가 너를 불렀기에 하루 일했고 또 품값도 받는 것 아니냐?  네 것.  그것이 많던 적던 내가 본래 너와 약속한 것 아니냐?  너와 나의 약속이 한 데나리온이다.  이것은 정당하다.  합당하다. 또 은혜다."  그 말입니다.  얼마나 중요한 얘깁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것을 인하여 감사하십니까?  난 하나님께 받은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생각하십니까?
  
미국 스텐포드대학교 필립 하츠 박사가 조사한 자료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지구상의 60억 인구를 똑 같은 비율로 100명으로 줄여서 한 마을에 모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100명중  20명만 자기 집에서 살았고 80명은 적정 수준이 못미치는 주거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100명중 70명은 문맹이었고 백 명중 50명은 영양부족을 겪고 있었습니다. 100명 가운데 한 명 만이 대학교육을 받았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지구촌에 살면서 내 집이 있고 먹을 게 있고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주 복이 많은 선택된 사람입니다.  게다가 전쟁의 위험, 감옥에서의 고독, 기아의 괴로움등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세계인구 상류층 500만명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체포, 고문, 죽음의 위협없이 매주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특별한 행운아입니다.  냉장고에 먹을 것이 있고 몸에 걸칠 옷이 있으며 잠잘 수 있는 집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 75%의 사람들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사는 셈입니다. 만약에 저축해 둔 약간의 돈이 있어서 아이가 아플 때 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고 친구에게 식사를 대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지구촌에서 상위 8%에 해당하는 부자에 속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최소한 그정도는 속하는 굉장한 부자들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말슴하십니다.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여러분 혹시 일찍 구원받은 것이 억울합니까?  남보다 더 많이 헌신하고 충성한 것이 억울합니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손해본 것 같습니까?  뒤 늦게 불려 온 내 가족이 나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목 마땅합니까?  혹시 공연히 나보다 다른 사람에게 주님이 더 많이 은혜 베푸시지 않나? 하는 생각때문에 은혜받고도 행복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까?  그런 마음을 품고 있으면 첫째 인생으로 시작하였어도 꼴찌 인생으로 끝나게 됩니다. 
  
우리는 오직 은혜로 삽니다.  잃어버린 기회도 꾸짖지 아니하시고 새로운 기회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이 얼마나 고마운 말씀입니까?  사실은 일을 했으니 돈을 주는 게 아니고요, 돈을 주기 위해서 일을 시킨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이 사람아 처자식이 있는데 놀고 있어서야 되겠나?  한 푼 벌어야 살게 되지 않겠는가?"  이 주인의 마음이 얼마나 귀합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시고 또 은혜를 베푸십니다.  새로운 은혜를 베푸십니다.  현재라고 하는 시점에서 기회는 공평합니다.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내가 사는 현재, 현재 이 현시점, 이 현실 이대로가 내게 주신 은혜요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소중히 여기세요.  이미 주신 모든 것이 내게 주신 최상의 은사임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 기회, 약속, 축복들을 깨닫고 불평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여 일하면 여러분은 꼴찌 인생으로 시작하였어도 첫째 인생으로 역전시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부터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일하며 주님 주신 한 데나리온을 기뻐하며 행복하게 사시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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