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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강을 찾아 (빌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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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을 찾아  (빌 4:1-9)


한 연구기관에서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알아보기 위해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설문조사의 내용 가운데“지금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문항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항목을 들면서 해당하는 것에 체크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돈이나 명예나 권세와 같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사랑, 기쁨, 평화와 같은 정신적인 것에 더 많이 체크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왜 돈을 필요로 할까요? 왜 여러 가지를 갖기 원활까요? 그것은 그 자체보다 그것을 통해 주어지는 마음의 만족과 평화 그리고 기쁨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새집을 사고, 꾸미며, 새로운 가구를 구입할까요? 마음의 기쁨과 평안을 얻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을 통해 얻는 기쁨과 만족과 평안이 진정한 평안이며, 영원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가 순간적입니다. 한 동안은 그것으로 인해 기쁘고 즐겁고 평안할 것입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러한 것이 없을 때나 있을 때나 별다른 느낌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있습니다. 

하루를 행복하게 지내려거든 이발을 하라.
일주일을 행복하게 지내려거든 침대를 바꾸어보라.
한달을 행복하게 지내려거든 자가용을 새로 사서 타고 다녀라.
일년을 행복하게 지내려거든 결혼을 하라.
평생을 행복하게 지내려거든 하나님을 섬기며 진실하게 살아가라.

사람은 누구나 다 기쁨과 만족한 삶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것을 찾아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막을 여행하다가 목마른 사람의 눈에 착시현상으로 나타나는 신기루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기쁨과 평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 해답이 본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본문은 바울 사도가 로마 감옥에 있으면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펀지 내용입니다. 그 편지 마지막 부분이 본문입니다.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평강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4절에“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기쁨이 무엇입니까? 평강에서 나타냐는 열매가 아닙니까? 7절에도“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하셨습니다. 또 9절에도“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합께 계시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가리켜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평강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 이사야서 45:7에“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모든 일을 행하는 자나라”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평강을 어떻게 하면 받아 누릴 수 있겠습니까? 

一. 참된 평강은 주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가운데“주안에서”라는 말이 네 번이나(1절,2절,4절,7 절)반복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주안에서의 삶을 강조하고 있을까요? 하나님님이 주시는 평강을 소유하려면 주안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안에서란, 그리스도를 영접한 삶 즉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가르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그 어디에도 참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한복음 14:27)하셨습니다. 

프랑스 파리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어느 날 영국에서 온 심한 우울증 환자가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처방을 내려 보았지만 이 사람은 이미 그런 방법을 다 써본 사람이었습니다. 친구를 사귀라고 했지만 그는 이미 친구가 너무 많을 정도였습니다. 여행을 좀 해보라니까 그는 세계에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여행을 많이 한 사람이었습니다. 결혼을 하라고 하니까 그는 이미 여러 번 결혼을 한 경험이 있었고, 결혼도 그에게 진청한 기쁨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일 저일 권해 보다가 안 되니까 이 의사가 골똘히 생각한 끝에 무릎을 치면서 무슨 기발한 아이디어라도 생각난 듯이 “당신이 아까 런던에서 왔다고 했지요? 그럼 찰스 메튜스(Charles Matthews)라는 희극 배우를 잘 알겠군요?” “예, 잘 압니다.” “그럼 이제부터 그 사람의 쇼에 부지런히 가셔서 좀 실컷 웃으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우울증에 큰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이 하는 말이 “그 사람의 쇼에 제가 한 번도 빠져본 일이 없습니다. 제가 바로 그 사람이거든요”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더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하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기뻐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그 마음속에는 남모르는 번민이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그 어디에도 그 무엇에도 진정한 평강이 없습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파스칼은 그의 참회록에서 고백하기를“하나님이여! 내가 주님을 찾기까지는 내 마음에 진정한 평안이 없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의 진정한 평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왕의 권세와 남다른 지혜를 소유했던 솔로몬은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서 참된 만족과 평강을 찾아 헤맨 적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솔로몬은 말하기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곳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도서 1:2,12:13) 고 했습니다. 참된 평강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깨달음입니다.

二. 참된 평강을 누리려면 넒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 5절에“너희 광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주안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도 평강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마음을 넓히지 않기 때문 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 그릇의 분량만큼 하나님의 평강이 담겨지게 됩니다. 

마음 그릇이 좁으면 작게 담길 것이고, 넓으면 많이 담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기 위해 평강을 담는 그릇인 우리의 마음을 넓혀야 하겠습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마음을 넓혀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린도후서 6:13)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을 담는 그릇이 넓지 못하므로 고귀한 평강을 잃어버려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본문을 기록할 당시 빌립보교회에도 좁은 마음의 그릇의 소유자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본문 2~3절 말씀에“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그레맨와 그 위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무슨 의미의 말씀입니까? 그 당시 빌립보 교회에 유오디아와 순두게 라는 여성도 사이에 불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요즘 말로 하면 여전도회 회장 정도 되는 교회 평신도 지도자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인 바울 사도와 고난을 함께 했고, 바울의 복음 증거에 함께 힘을 쓰던 부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을 같이하지 못하고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로 인해 자기 자신들의 마음은 말할 것도 없고 온 교회의 평안을 깨뜨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두 사람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하면서 관용 즉 마음을 넓히라고 권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나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로마서 12:17~21에 말씀하시기를“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하셨습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의 마음으로는 원수까지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원수는 밉습니다. 보기도 싫습니다. 그가 망하길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17~21)하셨습니다. 

이 아름다운 마음은 타락한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마음을 주실 때만 가능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실 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 끊임없이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영이신 성령님이 주시는 넓은 마음을 소유할 때 우리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三.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6절~7절에“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주안에서 살아간다 할지라도 우리들에게 염려와 근심을 가져다주는 일들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사업으로 인해 생기는 근심과 걱정, 자녀로 인해 생기는 근심 걱정, 노후문제로 일어나는 근심과 걱정 등, 근심 걱정은 언제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근심 걱정이 없는 곳은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주검들뿐입니다. 

걱정 근심이 있다는 그 자체는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그것 까닭에 낙심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의 자세는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근심과 걱정을 해결하는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립보서 4:6) 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염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자이시며, 그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께 기도할 때 나타나는 결과는 무엇입니까?“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4:7)하신 것입니다.

고오돈 이란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의 위대한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기도에 대하여 말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바로 시간을 내어 기도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들은 시간이 없다. 
다른 어떤 일에서 시간을 떼어 내야만 한다.
다른 어떤 일도 중요하다. 
대단히 중요하고 긴급하다.
그러나 그도 만큼 중요하고 긴급하지는 않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한복음 14:13~14) 하셨습니다. 

기도를 전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전기가 지극히 가까운 곳에 있지만 스위치를 누르지 않으면 어둠은 물러가지 않고 불빛은 밝혀지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도 이와 같이 항상 우리의 생활을 감싸고 있습니다. 만일 어두운 방에 앉아서 스위치를 누를 생각을 하지 않고 어둡다고 불평하며, 나에게만 왜 이렇게 어두움이 있는가 하면서 실의에 빠져 남을 원망하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전기는 아주 가까운 곳까지 와 있습니다. 스위치만 누르면 빛이 방안 가득히 비치도록 구조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두움을 운명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전기가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있듯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능력도 내 생활 속에 영향력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기도” 라고 하는 스위치를 눌러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문을 열게 합니다. 기도만이 하나님의 능력을 내 생활 속에 이끌어 오게 됩니다. 기도만이 우리 삶의 허다한 문제를 하나님께 넘겨드릴 수 있는 방법입니다. 어두움을 몰아내기 위해서 전기의 스위치를 누르듯, 우리 생활 속에 광명이 있도록 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四. 평강을 누리려면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본문 9절에“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예수님을 믿으며, 다른 사람들과 문제없이 지내며, 기도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실천이 없으면 참된 평강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과 삶을 배우고 본받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 초기에 한 선비 집안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기독교로 개종하체 된 일화가 있습니다. 우연치 않게 어느 날 선비가 어떤 교회 장로님 댁을 방문했다가 기이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장로님 댁에 새 며느리가 들어왔는데, 그 며느리의 작은 실수가 사건의 발단이었습니다. 며느리가 밥상을 들고 시아버지가 계신 안방으로 들어가던 참이었습니다. 새로 시집와서 모든 것이 서툴던 차에 며느리는 그만 높은 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때 밥상 엎어지는 소리를 듣고 부엌에서 시어머니가 가장 먼저 달려 나왔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손을 붙잡더니“아가야, 어디 다친 데는 없니? 내가 돕지 못해서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시아버지도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아가야 놀랐겠구나. 내가 돕지 못해 생긴 일이다. 너무 괘념치 말아라.”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건너 방에서 글을 읽던 꼬마 신랑까지 문을 박차고 나오면서 말하기를“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제가 도왔어야 하는데, 모든 것이 저의 불찰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선비는 이러한 장면을 목격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아, 이 댁이 왜 그렇게 화목한가 하였더니 바로 여기에 그 비결 이 있었구나.”선비의 집은 늘 평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집안에 조그만 일만 생겨도 온 식구가 서로 영감 탓이오, 마누라 탓이오, 하면서 다투었습니다. 무슨 일이 잘못되면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원망하고,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탓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집안에는 불화가 끊이지 않았는데 그 모든 원인은 서로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데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는 장로님 댁의 화목의 비결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그럴려면 예수를 믿어야 했습니다. 장로님 댁의 화목의 비결은 스스로에게서 책임을 찾는데 있었고, 그 원천은 예수를 믿는 신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길로 선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고, 그의 온 집안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삶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8절에“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라는 것입니다.“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립보서 4:9)하셨습니다. 

시편 119:165에“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평안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소원하는 평강에 대하여 하나님은 그 비결을 말씀하셨습니다. 

평강은 주안에서만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평강은 넓은 마음 그릇에 담겨진다고 하셨습니다.
평강은 기도하는 사람이 얻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평강은 순종하므로 주님을 닮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받아 누리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시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강 같은 평강이 우리에게 넘쳐나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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