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영광의 면류관 (벧전 5:1-4)

첨부 1


영광의 면류관 (벧전 5:1-4)


소년은 세살 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너무 가난해 정규학교에 진학할 수도 없었습니다. 책을 읽고 글씨를 쓰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소년의 관심은 오로지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 것이었습니다. 열네 살 때는 양복점 점원으로 들어가 재봉기술을 익혔습니다. 열여덟 살 때는 구두수선공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이 소년의 이름은 앤드류 존슨. 알래스카를 소련으로부터 7백 20만 달러에 매입한 미국의 제 17대 대통령입니다. 

앤드류 존슨의 자기계발은 결혼한 후부터 시작됐습니다. 아내에게 글을 배워 매일 밤 책을 읽으며 교양을 쌓았습니다. 불혹의 나이가 됐을 때 그는 달변가요 명필가로 변해 있었습니다. 링컨이 암살당하자 대통령직을 승계해 위기를 극복하는 지도력을 발휘했습니다. 이제 아무도 앤드류 존슨을 무식한 대통령이라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많은 시간을 과거를 회상하면서 보냅니다. 그러나 성공하는 사람은 앞을 내다봅니다.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우선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십시오. 
“주님, 저에게 굳센 용기와 믿음을 주십시오. 오늘의 환경을 뛰어넘는 자신감을 주옵소서.” 이런 기도야말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우선의 일이 아니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인생을 끝내기 전에는 항상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수제자입니다. 그의 이름도 원래는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갈대라는 뜻의 시몬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요한이었고 갈릴리 바다의 어부로 한 평생을 지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동생 안드레의 소개로 처음 예수를 만나게 되고 그때 예수로부터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는 말씀을 듣게 되는데 게바는 반석이라는 뜻의 이스라엘 땅에서 쓰는 아람 말이라면 당시의 공용어인 헬라말로는 베드로가 됩니다. 

그 시몬이 본격적으로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어느 날 아침입니다. 흔히 갈릴리 바다에서는 어부들이 주로 밤을 이용해서 고기를 잡았습니다. 당연히 시몬도 자기의 동생과 더불어 밤새 그물을 던졌습니다. 물론 그 옆의 배에는 좋은 이웃인 야고보와 요한이 있었고요. 그런데 그날 밤에는 단 한 마리도 고기를 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동안의 오랜 경험을 통해 아주 숙련된 어부로 살아가는 이들로서는 정말 이상한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들의 경험으로 보아 그럴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잡혀야 옳습니다. 그런데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니 이처럼 이상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해가 막 떠오를 때 예수님과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갈릴리 바다 가까이에 이르렀습니다. 그 시간에는 벌써 야고보와 요한은 그물을 거둬 손질을 하고 있었고 자기도 막 배를 호숫가에 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배에 오르시더니 배를 좀 띄워라 하시고는 배에서 무리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베드로에게 하는 말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당연히 시몬이 대답합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렸더니 놀랍게도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당황하여 배에서 내리자마자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십시오” 무릎을 꿇고 고백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 말을 듣는 즉시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릅니다. 

그 이래 베드로는 열두 제자 중 수제자로서 3년 반 동안 주님의 뒤를 따랐고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고 다시금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실 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하였고 이때 예수님께서 그런 베드로를 칭찬하시면서 이를 네게 알게 하신 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라고 하시면서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다시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시몬이 베드로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주님에 대한 바른 신앙의 고백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주님에 대한 바른 신앙 고백 위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베드로조차도 흔들렸다는 것입니다. 그 역시도 주님의 수난 예고에도 불구하고 높은 자리를 욕심냈습니다. 죽을지언정 결코 주님을 떠나지도 부인하지도 않겠다고 다짐 다짐했던 저가 맹세하며 저주까지 하면서 예수를 부인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보잘 것 없는 제사장 집의 계집 종 앞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다음 다시금 자기를 찾아주시고 주님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확인하시면서 내 양을 치라고 하셨던 주님을 베드로는 기억합니다. 그랬기에 베드로는 더 이상 자기가 최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최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장로 중의 선임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예수의 동생이었던 야고보 장로에게 모든 감독의 자리를 내줍니다. 그만큼 베드로가 달라졌습니다. 겸손의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 그의 겸손이 지금 여기서도 함께 장로된 자라는 말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때 바울 사도는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나도 사도 중의 사도라고요. 여러 사도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최고의 사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결코 그렇게 말하지를 않습니다. 단지 함께 장로된 자라고 합니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라고 합니다. 비록 자기는 그 당시 실패했지만 그런 자기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던 주님 그 고난의 증인이 바로 자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 역시 그 그리스도의 고난의 동참한 자요 따라서 장차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라고 합니다. 처절한 실패자였던 베드로 그러나 그는 이제 당당하게 말하기를 장차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너희 강운데 장로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장로라고 하는 말은 오늘날의 직분으로서의 장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당시로서는 교회의 연장자라는 뜻과 더불어 교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라는 뜻입니다. 그 장로들에게 베드로가 권면하는 말이 바로 양 무리를 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양 무리를 치라는 말은 사실 베드로 자신이 예수님께로부터 들었던 말씀입니다. 예수를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로서는 자기가 예수를 부인했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예수가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고난을 말씀하셨어도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랬기에 다른 제자들과 함께 누가 크냐고 다투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도무지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자신에 대한 상실감과 죄책감이 함께 아우러져서 그냥 멍하게 시간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당연히 기쁘죠. 예수님께서 직접 찾아오셔서 다시 사신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너희에게 평안히 있으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리고 함께 식사를 하시기도 했지만 베드로로서는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당연히 예수님께서 베드로 자신에게 “야 너 왜 그랬니? 

그렇게 큰 소리 치더니만 참 잘하는 짓이다”라고 한 마디 하셨더라면 오히려 더 속이 시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자기의 잘못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없으십니다. 그래 너무 답답한 나무지 나는 고기나 잡을래 하고 나섰더니 다른 제자들도 덩달아 따라나서서 밤새 고기를 잡았던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날 역시 이상하게 한 마리도 잡지 못했고 그렇게 동이 틀 무렵에 누군가가 바닷가에 서서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묻기에 “없습니다” 했더니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 얼떨결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습니다. 

그때 요한이 “주님이시다” 하였고 그 말을 듣고는 베드로가 정신없이 바다로 뛰어들어 예수께로 헤엄쳐 나옵니다. 예수께서는 식탁을 다 준비해 놓으시고 먹을 것을 주어 먹게 하신 후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래 대답하기를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였더니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는 잠시 후 다시 물으십니다. 

또 두 번째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세 번째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어린 양을 치라고 하는 것은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그 주님이 마지막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을 향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베드로는 “아하 주님을 따르는 삶이 곧 어린 양을 치는 것이로구나. 그리고 어린양을 친다는 것은 곧 그들로 하여금 제자를 삼는 것으로구나” 하고 다시금 깨닫습니다. 

그랬던 그가 오순절 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담대하게 주님을 증거하게 되고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일어날 때 베드로는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서 애니아라는 중풍병자를 고치게 됩니다. 그래서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게 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룻다에 가까운 욥바에 다비다라고 하는 여제자가 있어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어느 날 병으로 그만 그녀가 죽습니다. 그때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를 청하니 베드로가 가서 보고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죽었던 다비다를 살리시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런 가운데 그가 욥바의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물 때 가이사랴의 백부장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의 청을 받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고넬료와 그 집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를 증거하게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베드로는 주를 따를 때 하나님의 어린 양을 치고 먹이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깊이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의 마음이 지금 다른 지도자들을 향해서 양 무리를 치라는 말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도자의 역할 교회를 앞장서서 이끄는 목양자의 자세가 어때야 하느냐 하면 어린 양을 먹이고 양을 치고 양을 먹이는 바로 그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곧 말씀을 잘 가르치고 잘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요 목자장되신 주님이 기뻐하시도록 목자로서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들 가운데는 이런 목양자의 위치에서 수고하는 분들이 여러분 계십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목양자의 자리에 있습니까? 물론 먼저는 목사와 전도사와 같은 교역자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목회자만이 여기서 말하는 장로가 아니라 생명들을 맡아 지도하는 모든 분들이 다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 당연히 모든 교회학교의 교사들이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 어린이 교회학교 학생 교회학교 청년 교회학교의 교사들이 다 목양자의 위치에서 성도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그런 사역들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다가 아닙니다. 구약의 구역장들 역시 구역식구들을 돌보도록 위임된 지도자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잘 돌보아야 될 책임이 주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쳐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앞서서 믿은 모든 성도들이 뒤늦게 주님 앞에 나온 성도들을 이렇게 돌볼 책임이 함께 주어져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주께서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단지 나 한 사람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이 아닌 새롭게 믿는 사람들을 좋은 그리스도의 군사로 세워나가기까지 이끌어주고 돌보아야 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사실을 언제든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회의 어른들 또 오래 믿은 앞선 믿음의 사람들이야말로 바로 이 장로의 위치에서 지도자의 위치에서 주님의 양 무리를 치는 일에 다 함께 동참해야 할 것이요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모든 능력과 은사로 충만한 분들 다 되시고 그로 말미암은 모든 복을 다 함께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그렇다면 양 무리를 어떻게 쳐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우리의 모든 직임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졌다는 것을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서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이 모두 세 번입니다. 먼저 처음 갈릴리 바다에서 부르실 때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너희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다시금 갈릴리 바다에서 비록 실패는 했지만 비록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지만 비록 예수를 버려두고 도망쳤지만 그렇지만 여전히 좀 죄송스러운 마음은 가득할 지언정 주님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도록 만들어주시고는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시면서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비록 그 길이 죽음의 길일지라도 이제는 조금도 버걱대지 말고 뒤뚱거리지 말고 주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일찍이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죽기까지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문득 그렇다면 요한은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주님께 물었더니 주님은 그는 상관하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다시 한 번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들은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음성을 따라 자원함으로 해야 합니다. 나는 하기 싫은데 억지로 주께서 하라고 하신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아니 됩니다. 

그래서 억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문든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마음이 듭니까?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되나 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문득 나만 홀로 버려진 것 같은 마음입니까? 도무지 헤어날 길이 없는 수렁처럼 느껴집니까? 기억하십시오.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주님께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음을 기억하십시오. 그 주님이 우리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주님이 우리의 목자장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어떤 이득을 바라고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로 하여금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먹고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시겠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오히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는 주님께서 채우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맡겨진 직임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도 달라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했습니다. 억지로 몰고 가려는 것이 아니라 앞장서서 본이 됨으로 말미암아 그를 보고 따라오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북풍과 태양이 지나가는 나그네의 옷을 벗기기 위한 내가를 통해 우리가 깨닫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이든지 억지로 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서 하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까지 말을 끌고 갈 수는 있을지언정 마시게는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목을 잡아 매달아놓고 물을 퍼붓겠습니까? 그건 죽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 걸음씩 한 걸음씩입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하나씩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씩 해나가는 것입니다. 

여기 특별히 양 무리라고 한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양 무리를 치는 목자처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자는 항상 양 무리의 앞에 서서 양 무리를 이끕니다. 양을 인도할 때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야 될 책임도, 해를 당하지 않도록 살피고 이끌어주며 지켜줄 책임도 목자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편안함을 느끼고 따라올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목자로서의 할 일이요 꼴을 먹고 잘 자라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목자의 일입니다. 그래서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에 이른 양 무리처럼 오늘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풍요를 누릴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인도하는 귀한 본보기로서의 지도자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을 타고 뚜벅뚜벅 길을 가던 신사가 땀을 흘리면서 재목을 운반하는 군인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상사 한 명이 편안히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신사는 그 상사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같이 일을 하지 않습니까?” “나는 졸병이 아니고 명령을 하는 상관입니다.” 상사는 주저 없이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신사는 말에서 내려 윗옷을 벗어 놓고 병사들 틈에 끼어 통나무를 운반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동안 작업을 하느라 많은 땀을 흘린 뒤 겨우 목재를 목적지까지 운반할 수 있었습니다. 신사는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말에 올라탄 뒤 상사에게 말했다. “앞으로 목재를 운반할 일이 있거든 총사령관을 부르게.” 그는 유유히 자리를 떠났습니다. 상사와 병사들은 그제야 그 신사가 조지 워싱턴 장군임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지도자를 원합니다. 지위가 높아도 몸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을 원합니다. 지도자의 자질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리더십을 원합니다. 크리스천의 리더십이 이런 것입니다. 바로 그 본을 예수님께서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는 사랑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당시로서는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던 어린아이와 여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주님의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그 누구도 주님의 사랑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거기에는 세리와 창기와 같은 사람들의 손가락질 정도를 넘어 완전히 개 취급을 당하던 자들에게까지도 그 사랑은 베풀어졌습니다. 그것은 수가 성의 동네 사람들의 낯을 피하여 낮에 물 길러 우물가에 나왔던 여인이나 수로보니게 여인 그리고 가버나움의 백부장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에게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며 제자를 삼으라고 하십니다. 물론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귀한 직임을 맡겨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그렇게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장로의 역할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자에게 주시는 상급이 또한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그러니까 우리의 수고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가 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까지입니다. 우리에게 직임을 맡겨주신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만 하실 때까지 우리는 우리들에게 맡겨진 이 직임에 결코 게으르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되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지켜보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단지 주님처럼 날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주어진 직임을 감당케 될 때에 주님은 우리의 수고에 따른 영광에 면류관을 우리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세상에서 받는 ㅅ강도 자랑스러운데 우리가 주님 앞에서 받게 될 상이 그것도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상으로 받게 될 때 그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결산할 때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다 받아쓰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