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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사 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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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사 6:1-13)

하나님이 일하시는 수단과 방법이 우리가 일하는 수단과 방법에 깊이 들어오게 될 때, 그 현상을 일컫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을 우리는 ‘거룩’이라고 말합니다. 이사야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특징적 이름은 바로 “거룩하신 분”입니다. 

거룩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제시해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벧전 2:9)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이 머릿속으로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마음속과 자신들의 삶 속에 깊이 있게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룩이라는 말과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해 너무나 많이 들어서 거룩한 것을 보면서도 알지 못하고 있고, 거룩한 것을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는 영적인 무감각에 빠져 살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거룩은 삶으로 표현되는 그 무엇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사야가 하나님으로부터 선지자로서 부르심을 받는 거룩한 장면입니다. 
우리는 과연,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서 어떤 은혜들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본문 이사야 6장 1-13절을 자세히 읽어 봅시다.

첫째로, 거룩한 마음이 우리를 거룩한 삶의 자리로 이끌어 줍니다.(1~4절) 

몇몇 크리스찬들이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 중의 한 가지가 바로, 거룩한 장소에 대한 오해입니다. 이것을 좀 더 쉽게 애기한다면 거룩한 장소 즉, 하나님이 계신 곳인 성전 오늘날의 교회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의미합니다.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간단하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나를 내세우는 곳이 아닙니다. 내가 인정받고 힘을 얻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배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찬양으로 경배하고 기도하며 그분의 말씀을 듣고 세상으로 나아가 우리 삶을 거룩한 삶으로 살기 위해 거룩한 결단을 하게 되는 곳입니다.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골로새서1:25)

다시 말하면, 교회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거룩한 장소이지 나의 뜻과 마음을 충족시키는 곳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만약에,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를 만들어 놓지 않고 나와 세상적인 온갖 잡념들만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 거룩한 마음을 온전히 품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에도 거룩한 성전에서 거룩한 마음을 품지 못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웃시야 왕입니다. 웃시야 왕은 어떤 왕이었나요? 

웃시야는 52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통치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좋은 왕이었습니다.블레셋을 진압했고, 강력한 방어 체계를 세우고 잘 무장된 훌륭한 군대를 갖추었으며, 경제적으로 나라를 발전시켰고, 자신의 인도자였던 스가랴로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의 이름이 멀리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 짐이었더라”(역대하 26장 15절)

하지만 인간의 한계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모두다 칭찬과 실력을 인정해주고 자신을 높여주면 자연스럽게 마음 속에 일어나는 감정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교만입니다.

우리는 힘든 상황을 잘 헤쳐 나가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하는 순간 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사야를 선지자로 세우는 순간에 성경은 왜? 웃시야왕이 죽던 해라는 것을 언급할까요?(1절)

같은 장소, 하지만 다른 만남이 그곳 성전에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웃시야 왕은 화려한 삶!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전쟁의 위기 속에서 삶을 위협받는 삶! 사람들로부터 선지자로서 인정받지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이 두 사람은 성전에서 완전히 다른 만남을 갖게 됩니다.

성전에서 웃시야 왕은 성전을 더럽히고 그 성전에서 하나님께 드릴 제사를 제사장이 아닌 자신이 모든 것을 주관하겠다는 교만과 스스로를 높임이 그 성전에서 문둥병이라는 지독한 병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성전에서 자신을 낮추고 온전히 하나님께 어떻게 하면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지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이사야를 거룩한 만남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거룩한 만남을 성경은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2~4절)

● 여섯 날개를 가진 스랍들
●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 온 땅에 충만하도다. 


두 번째. 거룩한 삶의 시작은 죄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됩니다.(5~7절)

모세가 불꽃 떨기 나무아래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첫 번째 말씀이 무엇이었는가? 바로, 네 신을 벗어라 였다. 그 땅은 거룩한 곳이기 때문에, 세상의 흙과 세상의 걱정과 세상의 죄악들을 거룩한 만남이 있는 곳에서 가장 먼저, 벗어버리라는 것이다. 


셋째로, 거룩한 부름에 이사야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8절)

하나님께서는 모세나 여호수아처럼 직접적으로 너를 택하였다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탄해 하십니다.  나를 믿는 거룩한 자들이라고 말하는 자는 많지만, 내가 믿을 만한 거룩한 자, 거룩한 일꾼은 안 보인다고 말하십니다.  그 순간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함 받은 이사야가 즉각적으로 대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거룩한 부름에 이사야는 즉각, 순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미 자신의 죄는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기에 부족한 종이지만 거룩한 사역에 자신이 쓰임받고 싶다.  라고 순종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믿어서가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한탄이 이사야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지극히 작은 자신이지만, 허물 많은 자신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드리고 싶다는 거룩한 마음이 이사야의 입술과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2:21)

하나님의 사역은 내가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하는 거룩한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거룩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넷째로, 거룩한 사역의 결과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평가받을 수 없다.(9-11절)

다섯째, 모든 것을 황폐하게 만드신다던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13절)

이사야에게 예언된 선지자로서의 사명의 결과는 황폐함뿐입니다. 아무리, 명 설교를 한다 해도 사람들은 듣지도, 보지도 못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옮기시어 그 땅을 완전히 황폐하게 만드신다고 하셨습니다. 

거룩이라는 말이 다시 등장하기는 하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기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맞이하는 거룩하고 웅대한 모습도 아니라 거룩한 그루터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럴듯해 보이지도 않고 그 외양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그루터기가 구원이 자라나오게 되는 거룩한 씨앗인 것입니다.  조금 더 뒤로 가면 이사야서에 이 그루터기가 다시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좀 더 많은 설명이 나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이사야 11:1-2)

이 말씀까지 듣고 나면,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게 됩니다.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한 주님을 즐겁게 그리고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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