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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마 14: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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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마 14:13-21)


여러분은 교회 안에서 다른 교인들이 여러분을 어떤 호칭으로 부르는 것이 좋습니까? 장로, 권사, 집사, 전도사, 찬양대원, 주일학교 교사 등 여러 가지 호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게 있어서 가장 익숙한 호칭은 누가 뭐래도 목사일 것입니다. 처음에는 많이 어색하고 또 쑥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많이 익숙해져서 목사라고 부르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합니다. 그런데 저나 여러분에게 그런 호칭보다 더 잘 어울리는 호칭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자, 예수님의 제자라는 호칭입니다. 제자라는 호칭에는 남녀노소의 차별이 있을 수 없어서 좋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자라는 호칭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 좋습니다. 스승이면 약간 우쭐댈 수도 있겠지만 제자는 어디까지나 배우는 사람 아닙니까? 배우는 사람이 결코 교만해서는 아니 됩니다. 끝까지 겸손해야 마땅하기 때문에 저는 제자라는 호칭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제자라는 호칭으로 불리어지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자라고 하면 특별히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생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제자란 목사나 선교사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인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이 빈 들에서 많은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느새 날이 저물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주님에게 나아와 말했습니다.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마 14:15) 그들은 주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능력으로 많은 병자를 고치시는 주님과 함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배가 고팠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어도 배가 고플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어도 얼마든지 고난이 닥칠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능력이 많으신 주님에게서 먹을 것을 공급받지 못하면 배가 고플 수밖에 없습니다. 육의 양식을 얻지 못하면 허기져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영의 양식을 얻지 못하면 영적으로 빈사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에게서 양식을 공급받지 못하면 제자인 우리가 먼저 배가 고플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제자인 우리가 양식을 공급하지 못하면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영혼들도 굶주릴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것만으로 배가 부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곁에 있기만 해도 사람들이 만족할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받은 바 은혜를 나누고 베풀지 않을 것 같으면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마 14:16) 누구에게 말씀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제자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제자인 저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주님은 제자인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사람들 가운데 혹시 먹을 것이 부족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이 육의 양식이 되었든지 아니면 영의 양식이 되었든지... 그리고 우리의 삶의 현장에 먹을 것이 없어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바로 그들을 맡기셨습니다. 왜 맡기셨습니까?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들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해 주라고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결코 그들을 그냥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그들의 상태를 이미 알아보셨습니다. 봉독한 본문 말씀 14절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불쌍히 여기사” 주님의 마음이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기적은 바로 이렇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놀라운 기적은 언제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도 먼저 불쌍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습니까? 먼저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누군가의 아픈 상처를 고쳐 주고 싶습니까? 먼저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작은 불씨가 되어 타오르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내려놓을 때 비로소 그들도 굳게 닫혔던 마음을 열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테레사 수녀가 말했습니다. “오늘 서방의 가장 큰 병은 결핵이나 나병이 아니다. 나를 원하고 사랑하고 돌봐 주는 이가 없는 것, 그것이 가장 무서운 병이다. 몸의 병은 약으로 고칠 수 있지만 고독과 자포자기와 절망의 치유책은 오직 사랑뿐이다. 세상에는 빵 한 조각이 없어 죽어가는 이들도 많지만 작은 사랑이 없어서 죽어가는 이들은 더 많다. 서방의 빈곤은 다른 빈곤이다. 그것은 고독의 빈곤일 뿐 아니라 영성의 빈곤이다. 그들은 사랑에 굶주려 있듯 하나님께도 굶주려 있다.”

제자들이 말하려고 했던 것은 아마 이런 것이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배가 고픈 원인은 바로 그들 자신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십시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그러자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마 14:17) 여기서 제자들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놓쳤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놓쳤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대답을 들으시고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마 14:18) 비록 하찮은 것이지만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왜 능력의 주님을 생각하지 못했느냐는 꾸중이 담겨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결코 제자들의 것을 무시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부당한 것을 요구하시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사용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바로 이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고 그 주님의 능하신 손에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이 오늘 우리에게도 요구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주님이 어떻게 일하셨습니까?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 주님은 자신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셨습니다. 참 하나님이신 주님은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말은 주님은 참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많은 것에 제약을 받으실 수밖에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다고 해서 세계의 식량 문제가 순식간에 완전히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주님은 많은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주님은 결코 그 귀한 사역을 외면하시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 옛날 주님의 제자들은 빈 들에 서 있었습니다. 주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가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광야를 가리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제자로 삼으시려고 광야로 부르십니다. 우리는 광야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적으로 그 주님의 말씀에 의존하는 삶을 배우게 됩니다. 광야에서 주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이웃을 불쌍하게 생각하여라!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바로 그것을 그들에게 아낌없이 줘라!” 에이미 카마이클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 없이 줄 수는 있지만 주지 않고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시인이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그렇습니다! 사랑은 행동하는 것입니다. 믿음도 사랑처럼 행동을 요구합니다. 주위를 둘러보기 바랍니다. 굶주린 영혼들이 보이지 않습니까? 먼저 그들을 불쌍하게 여겨야 합니다. 주님의 심장을 가지고 그들에게 나아가 가지고 있는 것을 기꺼이 나눠 주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지고 있는 모든 것, 하나뿐인 목숨까지 아낌없이 바쳐서 지금 여기서부터 이웃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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