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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인의 회복탄력성(2) : 긍정적인 마음 (삿 6: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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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회복 탄력성(2) : 긍정적인 마음 (삿 6:11-18)

잘 산다고 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요?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라고 합니다. 인구 10만 명당 31명으로 일본의 1.5배 그리스의 10배나 된다고 합니다. 통계청 2009년 자료에 따르면 한 해 1만5413명입니다. 하루 42명 꼴로 자살하는 것입니다. 매 49분마다 한 명이 자살을 합니다. 특히 10대 20대 자살률이 세계 최고로 10대 20대 젊은이의 사망원인 1위가 질병이나 사고가 아니라 자살이라고 합니다. 

서울 신대방동에서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사법고시 1차 시험을 통과했으나 2차 시험에 낙방한 뒤 시험에 합격할 자신이 없다고 아파트에 23세 살의 자매가 투신자살하였습니다. 최고의 대학을 들어갔다고 기뻐했는데 사법고시 2차에 불합격했다고 목숨을 버렸으니 얼마나 부모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이 없는 것입니다. 정신적 근력이 약한 것입니다. 

서울 여의도에서는 26살의 치과 수련의가 아내가 생수로 저녁을 지으려고 하자 '경제도 어려운데 수돗물로 밥을 지으라.'고 해 다투던 중 갑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고 뛰어내렸습니다. 

부산 우암동에서는 여고생이 "나는 뚱뚱하고 못생겼다. 이 세상에 내가 할 일이 없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하였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회복탄력성이 없는 것입니다. 역경과 어려움을 당할 때 고무공처럼 튀어 오르는 회복탄력성이 없어 문제를 만나면 유리공처럼 산산히 부서져 버리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공주처럼 왕자처럼 자라 조그마한 어려움도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닥치는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일어서는 정신적인 근력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잡초근성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기쁘고 좋은 일, 행복한 일도 많지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 많이 있습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떤 역경이 다가 와도 강한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튀어 올라야 합니다. 수많은 고난과 역정을 당한 바울은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고후4:8-9)”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잠24:16)”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일어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완수하고 하나님 백성으로 이 땅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 안에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 죽을 수 있으나 죽으면 우리는 천국에 갑니다. 

무엇이 두렵습니까? 살아 있는 동안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사사 시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미디안이라는 나라가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습니다. 칠년 동안 그들은 이스라엘을 착취하며 모든 곡식과 짐승을 빼앗아 갔습니다. 파종을 못하게 했습니다. 먹을 것과 소와 나귀를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궁핍이 심하였습니다. 

그런데 누구 하나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나서서 이들과 싸워 민족을 구원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 산의 동굴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심지어 오늘 성경에 나오는 기드온마저 자신의 생계를 위해 타작할 뿐이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기드온을 사용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려 하였습니다. 실패한 백성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그의 마음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꾸어 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마음은 회복 탄력성을 높여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가 위기를 당할 때 어떤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1. 자기 자신에 대하여 긍정적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회복탄력성이 약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나의 집안은? 나의 학벌은? 나의 능력은? 나의 외모는?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디 내 놓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열명의 정탐꾼처럼 메뚜기 컴풀렉스에 걸리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기드온을 보십시오. 15절 읽어 보세요.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냐고 반문합니다. 자신에게는 미디안을 이길 만한 아무런 도구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의 집은 므낫세 지파 중에서 극히 약하다는 것입니다. 가문이 보잘 것 없다는 것입니다. 명문 집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문이 나쁜다는 것입니다. 능력있는 집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아버지 집에서도 가장 작은 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다는 것입니까? 자기 민족을 압제하는 미디안, 부당하게 폭력을 가하는 미디안, 착취하는 원수 미디안으로부터 민족을 구원할 수 없겠다는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쯤 나왔어야 사람들이 지도자로써 권위를 인정해 줄 터인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외모나 지능, 재능이 역사의 한 중앙에 서서 이끌만한 지도자감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7년 동안 어려움을 당하는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기드온을 불러 “너는 가서 이 너희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라고 말하자 이런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까? 자기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과거는 사실보다 해석이 더 중요합니다. 과거는 항상 개인성, 영속성, 보편성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이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장기 기억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장기 기억에는 사실기억과 에피소드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기억은 지식과 같은 것입니다. 암기한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경험을 에피소드 기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에피소드 기억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대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다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집안 자신의 출신, 자신의 과거는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는 사실보다는 어떻게 해석하냐가 중요합니다. 현재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그것이 자기의 삶에 힘을 줄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의 삶에 거침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지금도 태어난 신분에 종속되어 사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씨 조선 때는 그랬습니다. 상놈으로 태어나면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거렁뱅이입니까?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반드시 농사만 짓고 살아야 합니까? 자신과는 상관없이 주어진 과거의 조건 때문에 항상 짓눌려 살아야 합니까? 

지금도 태어난 조건에 종속되어 사는 사람입니까? 주어진 외모, 주어진 재능 때문에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과거가 열등감의 씨앗이 되면 안 됩니다. 그것이 나의 자아관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꾸 사람들이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것은 자신과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의 평가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평가해주는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지극히 미미한 존재로 말하고 있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2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느니라"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큰 용사라는 것입니다. 네 집안이 좋지 않고, 네 능력이 별볼릴 없다하여도 하나님은 큰 용사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종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 인생의 미디안을 만나 무거운 짐으로 힘겨워하며 자신을 비관하는 성도님들이 계십니까? 경제적인 미디안을 만나 동굴로 숨어 들어갈 형편에 처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성도님들이 계십니까? 질병의 미디안을 만나 모든 것이 끝이 났다고 두려움의 포로가 된 성도님들이 계십니까? 실패의 미디안을 만나 절망하며 포기하고 있는 성도님이 계십니까?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가 000집사와 함께 계시느니라" 지금 무기력하게 쓰러질 때가 아닙니다. 아무리 힘겨운 미디안을 만났다하여도 좌절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성도는 존귀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구속받은 하나님의 아들, 딸입니다. 보배를 품은 질그릇입니다. 누가 천하다고 괄시하겠습니까? 누가 실패자라고 멸시합니까? 누가 무능력자라고 손가락질 합니까? 하나님이 큰 용사라고 말씀하시는데 왜 스스로 미약한 자라고 좌절합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들입니다. 누가 못생겼다고 비난하겠습니까? "나는 극히 작고 제일 약한 사람이 아니라 큰 용사라고"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핫라인을 설치해 주었습니다. 가장 독특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희귀한 것입니다. 유일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둘도 없는 희귀종입니다.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부분인 것보다 전체인 것이 가치가 있습니다. 얼마나 가치있는 자들입니까? 아무리 사람들 보기에 보잘 것 없는 것 같지만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가정에서 유일한 존재입니다.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 씨를 보십시오. 장애인으로 정상인도 어렵다는 <쇼팽의 즉흥 환상곡>을 열정적으로 연주합니다. 강연장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손을 번쩍 들어 주먹을 꽉 주라고 주문하면서 "You can do it" 선창하면서 따라하게 합니다. 

조그마한 왼쪽다리 하나뿐, 양팔이 없는 세계적인 가스펠 가수 레나 마리아를 보십시오. "난 팔과 손이 없어서 반지나 장갑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어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의 한 명인 오프라 윈프리를 보십시오. 미혼모였으며, 뚱뚱했고, 흑인이며, 성폭행 당했으며, 사생아며, 가난한 자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가로막았던 아픔들을 한마디 말을 반복하며 이겨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 

머리와 몸통 그리고 발가락이 두 개뿐 닉 부이치치를 보십시오. 그는 지금도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등 세계를 다니며 행복을 전하는 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저는 백 번이라도 다시 일어나려고 시도할 거예요” "아직도 기적을 믿어요. 하나님은 제게 위대한 사명을 주셨어요. 저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입니다."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자신이 스스로 가치 있다고 느끼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이 시간 말씀합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느니라" 우리 옆 사람을 보면서 말씀해 외쳐 보겠습니다.


2.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에 대하여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회복 탄력성이 약한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나는 실력이 없고, 나는 능력이 없고, 나는 용기가 없고, 나는 믿음도 없고, 나는 돈이 없고, 나는 하나님이 주신 일을 할 만한 아무런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항상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만 바라봅니다. 지금 존재하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만 보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쌍둥이 형제가 시험을 봤답니다. 문제는 5문항인데 형은 5개 중에 4개를 맞았고 동생은 5개중에 1 개를 맞았답니다. 형은 풀이 죽어서 엄마에게 말했답니다. "엄마, 나 4개밖에 못 맞았어." 그러자 옆에 있던 동생이 바로 대답했답니다. "엄마, 난 4개 빼고 다 맞았어요." 어떤 아이가 회복탄력성이 강하겠습니까? 어떤 아이가 성공적으로 인생을 살겠습니까?

인재를 잘 알아보기로 유명한 어느 은행장이 있었습니다. 그가 선택하여 중책을 맡기면 틀림없이 뛰어난 실적을 올렸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비법을 물었답니다. 고객과 상담을 하던 중 계약 내용에 대해 확인할 일이 생기면 창구 직원을 인터폰으로 부르곤 했답니다. 이 때 직원들의 대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답니다. 
"손님이 있어서 지금은 못들어가겠는데요." 
"손님이 계시니 이 일이 끝나면 곧 들어가겠습니다." 

비슷하지만 그는 그 직원이 부정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인지, 긍정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인지를 판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인재를 채용할 때면 긍정적인가를 첫째 조건으로 삼았고, 단 한 번도 자신의 선택이 틀린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긍정적인 태도가 할 수 있다는 의지와 마음가짐, 열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밑바탕입니다. 

기드온을 보십시오.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11절에 보십시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용기 있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추수할 때만 되면 쳐 들어와서 모든 곡물을 빼앗아 갑니다. 그러기에 기드온은 지금 그들 몰래 문을 닫아걸고 혼자서 밀을 타작합니다. 밀 타작은 넓은 장소에서 하는 것입니다. 포도주는 밀폐된 장소에서 하는 법입니다. 이 물질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기드온은 밀타작을 포도주를 짜는 장소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는 믿음이 대단히 좋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여러 번 반복해서 지적하고 있습니다.(17, 36, 39, 7:10) 여러 차례 하나님께 표징을 구합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사명감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니까 뭐라고 말합니까? 잔뜩 불만에 쌓여 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냐는 것입니다. 우리를 버렸다는 것입니다. 옛날 뜨겁게 신앙 생활할 때 그때 누렸던 이적과 기쁨은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제 마른 가슴만 남았고 고통만 쌓였으며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7년 동안 갖가지 수모와 역경만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기드온을 불렀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사명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기드온도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자신이 은혜를 얻은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있어서 우리를 부른 것 아닙니다. 순전히 하나님 은혜입니다. 힘없고 능력없고 부족한 우리를 불러 주신 것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기드온을 불러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까?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삿 6:14)“

기드온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이미 너에게 힘을 주었으니 그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합니다. 가진 것 없다고 불평하며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경제적인 능력이 없습니다. 어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풀어야 할 숙제 앞에서 지혜가 없습니다. 하나님 유혹 앞에서 그 유혹을 넘어설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 건강이 없어 두려움과 근심의 담을 넘을 수가 없습니다. 죽음의 공포를 넘을 수 없습니다. 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두렵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지혜가 없습니다. 고쳐야 할 습관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고치고 싶지만 고칠 만한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 저도 알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계속 넘어 집니다.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능력이 없습니다. " 

우리가 아무것도 없는 것같지만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은혜로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다 잃어 버린 것같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남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이 성도님들과 저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000집사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경제적이 압박에서 구원하라 내가 000집사를 보낸 것이 아니냐" "네 힘을 의지하여 열린 교회를 부흥시켜라 네가 열린 교회를 위해 김집사를 보낸 것이 아니냐? 네가 네 힘을 의지하여 기업을 일으키라 그 기업을 살리기 위해 내가 너를 그곳에 보낸 것이 아니냐? 네가 네 힘을 의자하여 가정을 살리라 그 가정을 살리기 위해 너를 그 사람 만나게 한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힘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우리를 보낸 것입니다. 문제는 사명감 문제입니다. 만군의 여호와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이 그 일을 맡겨 주었다는 사명감의 결여입니다. "하나님께서서 쓰러지는 가문 일으켜 세우라고 나를 보내셨다. 하나님이 교회를 성숙시켜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라고 열린 교회에 나를 보내셨다. 하나님께서 문을 닫을 것 같은 회사 일으켜 세워 인류 기업 만들라고 나를 보내셨다." 이런 사명감을 가지면 나에게 있는 것 하나님 사용하십시오 라는 자세로 문제를 접근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3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강림합니다. 성령 충만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주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힘으로 못하고 능으로 못하지만 여호와의 신의 능력으로는 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나의 작은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겁쟁이 였지만 성령이 충만하여 나팔을 불자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모여 그를 좇았습니다. 그는 성령의 능력으로 사명 붙들고 300명의 군사로 하여금 항아리와 횃불을 들고 나가 미디안 군사를 무너뜨려 버렸습니다. 횃불, 항아리 전쟁도구가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받고 사명을 가지고 그것이 사용되면 하나님이 쓰시기 때문에 거기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기대 이상의 효과들이 나타납니다. 양치는 모세의 지팡이지만 하나님이 쓰시니까 그 지팡이가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생수를 내게 됩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니까 단순히 맹수를 쫓는 다윗의 물매와 돌이 골리앗을 넘어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명가지고 쓰임받으니까 삼갈의 소 모는 막대기가 블레셋 사람 600명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지금 무엇이 있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누가 쓰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미모가 없고 능력이 없고 돈이 없다고 할지라도 있는 것 하나님이 쓰시면 거기에서 오병이어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혹시 아무것도 없다고 무기력하게 있지는 않습니까? 돈이 없다고 지혜가 없다고 사랑이 식었다고 은혜가 떨어졌다고 용서할 마음이 없다고 용기가 없다고 건강이 없다고 무기력하게 불평하며 포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주시는 이 말씀이 살아 운동력있는 말씀으로 심령에 떨어지시길 바랍니다. 

옆에 있는 성도님을 보고 다시 한 번 격려 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삿 6:14)"


3. 미래의 결과에 대하여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회복 탄력성이 약한 사람들은 미래의 결과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예측하고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대와 희망이 없습니다. 기드온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하니까 15절에서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겠습니까?”라고 합니다.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믿습니까? 안죽는다는 것입니다. 이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은혜로 부름을 받고 사명을 받았지만 기드온은 여전히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 하였습니다. 불안해 하였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를 보십시오. 2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미래의 결과에 대하여 두려움으로 움츠리고 있으신 성도님이 계십니까? 나이로 인하여 이제 다 끝났다고 두려워 하시는 성도님이 계십니까? 경제적 위기 앞에 두려워 하시는 성도님이 계십니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자녀와 가정 문제로 두려워 하시는 성도님들이 계십니까? 이 말씀 붙드시길 바랍니다. "000아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우리 옆에 계신 성도님에게 천사가 된 기분으로 조용하게 위로해 보시기 바랍니다. "집사님 안심하십시오.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죽지 않습니다." 16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을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하리라" "내가 반드시 000과 함께 하리니 네가 주신 사명을 너 죽기 전에 꼭 이루게 만들겠다"라는 음성입니다. 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결국 미디안과 싸우는 것은 누구의 싸움입니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싸우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00명대 135000(삿8:10)명입니다. 이것은 무모한 전쟁입니다. 개인의 역사나 나라의 역사나 결국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행로에 우리는 서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조건을 보며 미래를 두려워 하며 낙심하거나 절망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마지막 남은 힘으로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홀로 있는 고아가 아니라 하나님이 반드시 함께 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기까지는 우리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을 해야 합니다. 미래의 호수 앞에서 능력 없다고 건강 없다고 돈 없다고 지혜 없다고 두려워 하며 노젖기를 망설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그래 너 능력없고 실력 없는 것 내가 너보다 더 잘 알고 있어. 그러나 내가 너를 쓰는 것은 그렇게 때문에 쓰는 거야. 능력있는 내가 있지 않느냐? 능력있는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통하여 나의 일을 할 거야" 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을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하리라" 

기드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단번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고 나간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은 계속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받고 사명받고 성령의 능력의 받고 살지만 두려움이 계속 찾아 옵니다. 6: 27절 7:10을 보십시오. 

회복탄력성을 높이려면 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보다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고민거리나 어려운 일들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뇌가 자동적으로 반응하도록 해야 합니다. 연주자가 악기를 다루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젓가락질하는 것처럼, 자전거 타는 것 처럼, 수영하는 것처럼 자동적으로 되어지게 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하루 아침에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을 여러 가지로 나누지만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명시적 지식입니다. 배움을 통해 얻어지는 것입니다. 머리로 암기하는 것입니다. 암묵적 지식이 있습니다. 익힘을 통해 얻어지는 것입니다. 몸으로 반복적으로 익혀 습관화 시키는 것입니다. 몸에 배게 하고 뇌에 새기는 것입니다. 예체능이나 영어교육이 그런 것입니다. 적어도 3개월 정도는 훈련해야 몸에 익혀진다고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네 손에 붙였다고 거듭 확신을 시켜 주십니다.(7:9,14,15) 하나님이 하시면 어떤 경우일지라도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합니다. 기드온도 결국 깨닫게 됩니다. 미디안을 물리쳤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8:22)라고 말합니다. 

이 때 기드온 자신은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8:23)라고 대답을 합니다. 
우리는 과정을 보며 두려워하며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승리할 결과를 바라보고 일어서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일평생 육신의 질병으로 고생했습니다. 말을 잘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여 한 시대 하나님의 종으로 시대의 문화를 변화시켰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자기아내를 누이라고 두 번이나 속였습니다. 첩을 얻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고 함께 하셔 믿음의 명문가를 나들었습니다. 베드로는 무식하고 화를 잘 낸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그와 함께하여 건강한 예루살렘 교회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 시간 건강 때문에 가난 때문에 나이 때문에 주어진 조건 때문에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염려하며 좌절하신 성도님이 혹 있습니까? 오늘 이 말씀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붙드시기 바랍니다. 

23절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16절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을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하리라" 

우리 이 말씀 외워 이번 한 주간을 붙드는 말씀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자기 자신에 대하여 긍정적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에 대하여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미래의 결과에 대하여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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