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경계를 넘어 오사 세상과 구별해 주신 하나님 (출 19:7-25)

첨부 1


경계를 넘어 오사 세상과 구별해 주신 하나님 (출 19:7-25) 


1.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

교회 명패나 주보에 교단이나 교파를 명시하는 교회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즉 ‘대한예수교장로회 신광교회 괄호 고신’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이라는 것이죠. 그냥 ‘신광교회’라고만 표기하는 것이 大勢입니다. 그리고 교회 이름도 지역이나 동네 이름을 써서 ‘에베소 교회, 고린도 교회’라고 하는 것 역시 시대에 뒤떨어진 것입니다. ‘말씀 교회, 진리 교회, 양우리 교회 ….’ 그런가 하면 전통적인 ‘신광교회’라는 한자식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약간만 바꾸면 굉장히 세련되어 보이는데요. 그래서 그냥 ‘신광교회’라고 하지 않고, ‘새빛 신광교회’ 식으로 한자 이름을 한글로 풀어서 앞에 표기하는 것이 현대적입니다. 우리 시대의 분위기가 이런 식으로 흐르다보니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 각 교단의 고유의 교리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자신이 소속한 교단의 신학과 정체성과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아는 성도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것은 둘째 치고,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다른 종교와의 차이 혹은 그 구분마저 없어지죠. 정말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2년 반 동안의 마가복음 강해에 이어서, 교리 설교를 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교리 설교의 시작으로 십계명 강해를 하려고 합니다. 십계명이 성경에 기록된 교리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2. 애굽에서 나와 시내산 자락에 선 이스라엘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온 지 3개월 만에 아라비아 반도 남단에 있는 시내 광야에 도착했습니다. 시내 광야는 길이가 약 4km, 너비가 약 0.8km 정도 됩니다. 이 광야에 웅장한 바위산이 하나 솟아 있는데, 그 산이 바로 ‘시내산’이라고도 하고 ‘호렙산’이라고도 하는 산입니다. 

이 산은 모세가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난 곳이며,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도록 소명을 받은 산입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이 산은 ‘하나님의 산’으로 인식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시내 광야에 멈추어 숙영을 하게 된 모세는 하나님께로, 즉 시내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왜 모세는 무리들을 이끌고 시내산 자락에 도착하자마 정상으로 올라갔을까요? 출애굽기 18장 13절부터 27절에 보면, 모세에게 그 어떤 일보다 더 우선적이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굽의 영향력을 벗어나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는 곳이었기에, 자신이 하나님을 처음 만난 곳으로 올라가 자신의 소명을 되새기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임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할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은 2 가지였는데요. 첫째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어떻게 인도해 오셨느냐’는 것이고, 둘째는‘이제부터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인도해오셨습니까?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애굽 군인들을 홍해 바다에 水葬시키신 일 등,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마치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날개 위에 들어올려 목적지로 데리고 가듯이 그렇게 인도하시고 보호하셔서 이곳까지 오게 하셨습니다(4). 

그렇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사랑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사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먼저 ‘세계가 다 자신의 것’이라고 말씀합니다(5). 온 세계와 모든 민족은 모두 다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지금 하나님의 관심이 시내산 아래 있는 이스라엘에게만 향한 것이 아님을 말씀하시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세계와 열방을 모두 다 가슴에 품고 계셨고, 그들을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5,6).” 바로 여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신 이유가 나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세계 모든 민족 가운데서 특별한 하나님의 소유가 된 이유는 “제사장 나라”가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사장은 어떤 직분입니까? 마치 이스라엘 가운데서 레위지파가, 그리고 그 레위 지파 가운데서 아론의 후손들이 제사장이 되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세계 모든 민족 가운데서 제사장으로 選別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온 세상과 모든 민족의 제사장으로 세우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바라신 것이 무엇이냐는 말입니다. 그것은 온 世界와 萬民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요, 그들의 代表者로서 하나님 앞에 서는 것, 즉 仲保者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먼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 그것을 온 세상 만민들에게 전달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 만드는 일을 위하여 선별된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영광된 일입니까? 혹시 학교 시절에나 군이나 어디서든 동료들을 대신해서 壇上에 올라본 적이 있습니까? 조회 시간에 단상에 올라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賞狀과 副賞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고등학교 때 교련 열병식을 하면서 반 친구들을 대신하여 “교장 선생님께 대하여 받들어 총!”을 외칠 때의 기분을 아십니까? 이스라엘이 세계 모든 민족의 대표자요 중보자라는 것은 이런 기분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끔찍한 노예살이에서 벗어난 것으로 끝낼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과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는 신적인 특혜를 입은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것도 그 끝이 아니었습니다. 보다 나은 미래, 즉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향해 가는 것이 그들의 삶의 주된 과제인 사람들도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온 세상 모든 민족의 제사장으로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애굽에서 거리와 시간 상 제법 멀리 떨어진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만나시고,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와 만나시려는 가장 우선적인 이유였습니다.

3. 십계명을 주시기 위한 사전 작업

1) 하나님을 알게 하고 자신을 알게 하는 십계명

출애굽기 19장은 하나님께서 호렙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림하셔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 사건을 기록한 본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이 갖는 意義는 ‘이스라엘 백성이 비로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첫 출발하는 것’이라는 점,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언약식을 통하여 그들과 하나님의 관계를 영원히 보증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먼저 1절부터 15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려 하심에 따라 백성들 편에서 미리 준비해야할 것들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준비할 가장 우선적인 것은 “성결”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3일 동안’ 자신을 “성결”하게 할 것을 命받았습니다. 성결에 관한 규례는 출애굽기 이후 성경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들은 특별히 제사장을 위한 것이라든지 혹은 특정 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오늘 본문에 기록된 것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용된 성결 규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命해진 ‘성결’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10절, 14절에 기록된 대로 “옷을 빠는 것”이었습니다. 옷을 세탁하는 것은 외적으로 단정한 모습을 갖추라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만, 그것은 또한 내면적으로 깨끗하게 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즉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옷을 빠는 것은 심령의 준비, 내면의 준비도 함께 하라는 뜻이었지요.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된 두 번째 성결은 15절에 기록된 대로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쾌락이나 세상의 즐거움보다 하나님을 만나는 즐거움, 예배의 즐거움이 더 중요하고 우선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성도에게 준비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내면의 자세는 ‘하나님을 마음과 정성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것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드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도리어 해가 되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준비할 것이 이렇게 두 가지라면, 모세가 公的으로 준비할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12절 이하에 나오는 말씀대로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좀 더 구체적으로 하면, 시내산에 “경계”를 정한 후, ‘접근금지’를 백성들에게 알리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모세 너만 나오지 말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나오라”고 하셨으나, 백성들에게는 주의 사항을 하나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 경계를 넘어 산에 오르거나 지경을 범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12절,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 

이스라엘 장막과 하나님의 산 호렙을 구분하는 울타리를 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비록 이스라엘이 선택받은 백성이라 할지라도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차이, 간격, 구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간격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존재 자체의 차이요, 상태의 차이였습니다. 존재의 차이란 신과 인간의 차이,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차이를 말하며, 상태의 차이란 범죄하여 타락한 인생과 거룩한 하나님의 차이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를 어떻게 이것만으로 설명이 되겠습니까? 그 차이와 간격은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차이입니다. 

언젠가 어느 신문에 중국 북경의 “자금성의 방 갯수가 9,999 개인 이유”라는 제목으로 글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자금성은 1420년에 만들어져서 중국 봉건 사회가 멸망한 날까지 황제들이 머물렀던 황궁으로 그 방의 수가 9,999 개입니다. 만약 갓 태어난 아이가 하루에 한 방씩 잔다고 해도, 27년 3 개월이 걸릴 정도로 광대한 규모이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가로질러 걷는 데만도 두 시간 이상이 걸립니다. 이러한 자금성의 건축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 내려져 오고 있습니다. 

어떤 분이 어느 날 밤 꿈에 하늘의 도시를 다녀와서는 그와 똑같은 수도를 만들 것을 황제에게 진언했습니다. 황제는 그 조언에 따라 자금성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지어진 자금성에는 세 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금성 주변에는 나무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마치 우리나라 최전선 철책선 사방을 항상 벌목하고 잡초를 태우는 이유와도 같이 왕을 해칠 적들이 숨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자금성 주위에 높이 3m의 장벽을 둘러쌓고 그 장벽 밖으로 하천이 둘러 흐르게 한 것입니다. 難攻不落의 요새와 같이 적들이 쉽게 침범하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이지요. 

그리고 세 번째 특징은 자금성의 방을 1만개를 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중국에서 이 ‘萬’이라는 숫자는 ‘신’을 의미하기 때문에 아무리 황제가 높다 해도 신의 자리를 넘보지 못하도록 ‘萬’에서 하나를 뺀 9,999개의 방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황제가 그 넓은 중국 땅과 주변 지역을 다스리는 君主이고, 백성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자리에 있다고 해도, 그가 결코 신이 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자신 위에 신이 있음을 잊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경계를 두라 하신 이유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역에 분별없이 출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만약 그런 경우가 있다면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인 자신을 동일한 수준으로 여기는 妄靈된 짓이요, 용서 받을 수 없는 輕擧妄動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 죄는 “죽임을 당해 마땅한 죄”로 여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하나님의 거룩 안으로 들어와 스스로 소멸되지 않도록 경계를 정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至尊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일, 아니 감당하기는커녕 그것 때문에 소멸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기에 하나님은 경계를 정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결국 경계를 정하고 그것을 넘지 말라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을 보존하기 위해서 였던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차이와 구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 차이를 아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엄청난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가운데서 보호하셔서 시내산에 이르게 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그렇게 구원하시고 지금까지 인도 보호하신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 경계를 넘어서

이런 준비 과정을 거쳐서 16절부터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 가운데 강림하시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 중에서 가장 신비하고 두렵고 그러면서 위엄과 영광으로 충만한 사건이 있다면 바로 오늘 본문의 사건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고하신 후 3일째 되는 날, 정말 신비하고 엄숙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강림하셨습니다. 혹시 여러분, 마른 하늘에 번개가 치고 뇌성이 울리는 것을 보고 들은 적이 있습니까? 시내산 위에 번개가 번쩍이더니 천지를 진동할 듯한 천둥소리가 났습니다. 빽빽한 구름, 아주 짙은 구름이 산을 둘러 덮었고, 나팔 부는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강림하신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신호 싸인이었지요. 번쩍이는 번개와 하늘과 땅을 진동하는 천둥소리, 빽빽한 구름과 나팔소리, 불과 연기 등, 우리는 이 장면을 읽기만 하기에 별 감동이 없습니다만, 말씀 속으로 들어가 現場感 있게, 立體的으로 읽을 수만 있다면, 오늘 본문은 정말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을 맞기 위하여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왔습니다(17). 그리고 백성들은 산기슭에 섰습니다. 여전히 산 위는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짙은 구름이 덮혀있었고, 산은 마치 지진처럼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나팔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 강림하셨고, 그 가운데서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산 아래로 내려온 모세는 백성들에게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를 넘었다가는 죽을 것이다(21).’ 그리고 제사장들에게도 말했습니다. 22절, “여호와에게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에게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비록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성결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경계를 넘어서는 행위와 같다는 것, 따라서 바로 그 때문에 하나님은 성결하지 못한 제사장들을 멸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오늘 본문은 하나님은 인생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결론은 이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결론은 무엇일까요? “너희 스스로는 내게로 올 수 없다”, “그러나 그 대신 내가 너희에게로 가겠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결론입니다. 우리는 감히 하나님께 나아가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하나님의 강림하심을 바라볼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그 임하심은 인간의 언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없으며, 그 존재를 우리로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죄인이요, 여전히 죄 가운데 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편에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는 없으나, 하나님께서 그 경계를 넘어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기셔서 언약을 맺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결론이고, 따라서 십계명이 저와 여러분에게 은혜인 이유입니다. 

3) 십계명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십계명은 무엇입니까? 십계명은 최초의 ‘民族 獨立憲章’이며, ‘獨立主權을 가진 백성의 法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십계명은 애굽의 노예였던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 되었음을, 이 세상 그 어떤 민족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임을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對內外的으로 宣布하는 법적인 公表文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십계명은 노예가 아닌 自由民이, 애굽에 소속된 자가 아닌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자신이 누군지를 알고 그런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알도록 주신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십계명을 여러분을 구속하는 규례로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당신의 백성, 당신의 자녀라 말씀하시며, 자신의 진리를 따라 살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요청이자 사랑의 음성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이 십계명은 그 본론에 들어가기 전부터 여러분에게 감동적인 사랑의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4. 스스로 경계를 넘어 세상과 구별된 법을 주신 하나님

말씀을 맺겠습니다. 지금이 아무리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라 할지라도 도저히 극복될 수 없고 넘어설 수 없는 경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경계입니다. 사람은 절대로 그 경계를 넘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과 십계명이 주는 놀라운 메시지는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그 경계를 넘어 우리에게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경계를 넘어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먼저 손 내미시고, 세상에서 별로 잘 나지 못한 자들을 세상과 구별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지닌 사람으로 만드신다는 것이 오늘 본문이지요. 

결국 십계명은 그것을 받는 것 자체가 엄청난 복이고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에 주의하여 그 계명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것은 십계명이 자신에게 주어진 복이자 특권인 줄로 믿는 자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인도와 보호하심의 복을 받고 있는 참된 성도만이 십계명을 특권으로 알고 감사히 받아 지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을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하십시오. 그리하면 천대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