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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보시는 눈 (삼상 16: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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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보시는 눈 (삼상 16:6-13)

미국역사 전문가들과 캐나다의 세계적인 역사학 교수들 719명이 미국의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 보고서를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초대[조지 워싱턴]대통령으로부터[클린턴]까지 총 41명을 낱낱이 심층 분석 연구하고 랭킹을 매겨서<Rating the Presidents>라는 책으로 출판했습니다. 여기에는 지도력, 업적, 위기 관리능력, 정치력, 그리고 인사관리의 다섯 가지 영역에서 대통령들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성격과 도덕성도 연구했습니다. 

여기서 1위를 받은 대통령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의 기준에는 누구일 것 같습니까? 바로[아브라함 링컨]이었습니다. 꼴찌를 받은 사람이 29대 대통령인[워런 하딩]이라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섯 가지를 종합해서 받은 그 전체 순위와 그의 성품과 도덕성 순위가 일치하더라는 사실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대통령의 능력과 그 지도력과 그의 정직성은 별도가 아니라는 겁니다. 정직한 사람이 능력이 있었고, 도덕성이 있는 사람이 지도력도 함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의 지도능력과 그 정직성은 정비례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우리도 익히 들었다시피[아브라함 링컨]대통령 같은 분은 그의 사생활에서까지 그 정직함으로 유명하고 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 말씀을 드리면 그가 언젠가 서점으로부터 책을 빌려다가 보는데 물을 엎질러서 한 쪽에 물이 좀 젖었습니다. 

물론 말렸지요. 그런데 다음에 이 책을 돌려줄 때 가서 그 책을 펴주고“여기에 내가 물을 좀 흘려서 젖었었는데 지금은 말랐습니다만 제가 이렇게 실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스스로 치렀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 같으면‘안 찢어졌으면 됐지 뭐!’하고 말았을 법합니다만 그걸 고백해야만 하는 그의 정직한 마음, 이것이 그의 지도력과 지혜와 용기에 근본이 됐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후대에까지 그에 대한 평가를 아름답게 하는 근본입니다.

사람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해 주느냐”에 굉장히 민감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참 궁금합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인지, 그 사람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받아들이는지가 궁금합니다. 직접 물어 보기도 쑥스럽고 그래서 넌지시 그 사람의 의중을 떠보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예수님도 한번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을 지나시다가 제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더냐?”(마16:13)그랬더니 제자들이“뭐 더러는 세례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엘리야라고도 하고 예례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합디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참 궁금했던 질문을 이어서 하시지 않습니까?“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16:15)

세상 사람들이나 제자들의 눈 당신이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가 궁금하셨던 모양입니다. 도대체 어떤 관심을 기지고 있을까가 궁금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이 궁금증은 우리가 가지는 궁금증과는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기나, 평판에 대한 궁금증이라기보다는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셨던 것입니다. 하여간 예수님도 당신에 대한 평가를 물어보신 적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자, 때로는 우리도 궁금하지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평가에 따라서‘어떻게 내 삶을 변화시킬까!’까지를 생각하십니까?‘어떻게 해야 후한 평가를 받고 좋은 이미지로 남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게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바로“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시느냐!”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어떻게 평가 받고 있느냐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의 평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 평가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평가는 세상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겉모양을 보고 모든 것을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 즉 그 마음의 진실함을 보고 평가를 하십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신정정치 아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백성들이 다른 민족들처럼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세상의 왕이 다스리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원한 것입니다. 아마 왕이 눈에 보이니까 더 든든하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다스리는 세상일의 결과를 잘 아시기에 허락지 않으셨지만 그래도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달라고 졸라댑니다. 그러자 사무엘 선지자로 하여금 사울을 택하여 그 머리에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왕으로 세움 받은 사울 왕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왕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울 대신 새로운 왕을 세우도록 하시는데 본문은 바로 그 때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베들레헴 조그마한 마을에 사는 이새에게 보냅니다. 이새의 아들가운데 하나를 택하여 왕으로 세우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첫째 아들[엘리압]을 보았습니다. 척 보는데 굉장한 꽃미남입니다. 그래서 그가 바로 하나님이 택하신 자인 줄 생각하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아비나답], 셋째[삼마]...이렇게 7명의 아들이 모두 지나갔지만 하나같이 하나님께서는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이새에게 말합니다. “아들이 또 없느냐?”고 그러자 “막내가 있기는 한데 지금 들에서 양을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오기까지는 밥도 먹지 않겠다.”고 그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긴 하지만 아마 사무엘도 지쳤을법합니다. 그래서 고집을 부리듯이 막내를 데리고 오라고 강력히 의사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마침내 불려 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사무엘에게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다윗을 보고 계셨습니다. 사람이 보는 눈과 다르게 다윗을 주시하고 계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다른 아들들이 훌륭해 보였습니다. 심지어 사무엘 눈에도 잘 생겨 보였고, 훌륭하게 보였으니 오죽했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을 선택하시는 이 장면은 하나님은 사람이 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눈을 갖고 계심을 알게 하는 대목입니다. 

분명히 보이는 외모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큽니다. 외모에 대해서 지독한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이 외모를 가꾸면 한결 마음도 밝아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젊게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보톡스를 맞고, 성형수술을 하고 그럽니다만 젊게 보이기만 하면 정말 젊은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나이든 사람들이 한탄하는 가운데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뭡니까? “내가 열 살만 더 젊었어도...”라는 말입니다. 이 말속에는 자기 능력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는 심정이 담겨져 있는데 생각해 보십시다. 정말 젊다는 게 곧 유능한 것입니까? 젊으면 무엇이든지 다 잘하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요. 다만 기회마저도 없다는 것이 슬프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젊은데 능력도 있고, 외모도 훌륭하고, 내용도 갖추면 더 좋을 게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외모나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 들어있는 알맹이더라는 것입니다. 속에 담겨져 있는 인격이나 믿음, 그리고 속사람이 중요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외모로 풍기는 인상도 중요합니다. 남들에게 혐오스러운 얼굴보다는 이왕이면 잘 생기고, 예쁘면 좋겠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겨진 그 사람의 내용입니다. 

이민호, 송중기, 박유천, 유아인, 김재중, 김수현....이 사람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요즘 텔레비전에서 소위 뜨는 꽃미남들입니다. 청소년들은 물론이거니와 아주머니 팬들까지 이 꽃미남 아이돌에 열광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남자들 가운데도 꽃미남이 있었습니다. 누군지 아십니까? 힌트는 다윗의 아들입니다. 바로[압살롬]입니다. 

삼하14:25절에 보면“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그랬습니다. 

완벽한 조각미남 내지는 꽃미남이었던 압살롬입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이렇게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난 미남이었지만 그의 마음은 매우 악독했습니다. 틈만 나면 자기 아버지를 반역해서 죽이려고 하다가 제명대로 못살고 젊은 나이에 죽는 비참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외모는 출중했을지 몰라도 인격이나 성품이나 나아가 신앙은 더 더욱이 엉망이었습니다. 성품이 좋고 인격이 훌륭하다면 얼굴이 아름다운 것보다 더 좋은 것이며, 이보다 더 좋은 것 있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신령한 아름다움입니다. 

그 신령한 아름다움이 다윗에게 있었습니다. 그 아름다움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이었습니다. 그 부모도, 형제도 자신마저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막내아들, 결코 장군의 모습이 아닌 키가 작은 목동에 불과한 다윗이었지마는“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는 행 13:22의 기록처럼 그 중심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매사에 겸손하고 진실했습니다. 아버지의 양떼를 지킬 때에도 충성했고,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쫓아다니는 못된 아들에 대해서도 모든 게 자기 잘못이라고 돌렸고, 자신을 죽이려는 장인 사울 왕에게 얼마든지 복수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종을 절대로 내가 미워하지도 않겠고, 손을 대지도 않겠다는 그 중심이, 어떤 경우라도 신하로서의 본분을 다하겠다는 중심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웠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도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도 실수하고, 범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심이 바로 되었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시고, 세우시고, 복 주신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상에 보는 눈이 많습니다. 또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눈에 맞추려고 하고, 그 기준에 들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세상 살아가는 방식이라면 할 수 없이 우리는 맞추며 살아가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신분입니다.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중요한 신분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보시는 눈과 기준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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