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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강에 이르는 비결 (사 2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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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에 이르는 비결 (사 26:1-7)

수천 년 동안 적대관계 속에 살아오면서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을 치르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두 민족이 있습니다. 바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입니다. 이 두민족의 전쟁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벌써 오래된 이야기입니다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었던[야세르 아라파트]와 이스라엘의 수상이었던[에흐드 바라크]가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캠프데이비드 미국 대통령 별장에서[클린턴]대통령의 중재로 평화 회담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적대관계 속에 있던 두 민족의 대표가 만난다는 자체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졌고 그 중요성만큼이나 무려 15일 동안 긴 회담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결국 아무런 결실도 없이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 중에 재밌는 것이 이 두 사람이 악수하며 헤어질 때 무엇이라고 했는지 아십니까?“샬롬!”하고 인사를 했답니다. 

공교롭게도 두 민족이 인사하는 말이 같습니다. 항상“평안!”하면서 인사를 하는데 전쟁 중에 평화를 만들어보자고 만난 회담에서 서로 양보도 없이 결렬된 상황에서“샬롬!”하고 헤어지는 그 모습이 뭔가 어색하지 않습니까? 웃지 못 할 이야기입니다.

진정한 샬롬은 무엇이며 진실한 평화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사실이지 우리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마음의 평안은 무너뜨리지 말고 살아야지 해도 살아가다보면 마음의 평안이 무너질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아마도 걱정일 것입니다. 마음에 걱정이 있으면 도무지 평안을 유지하기가 힘듭니다. 지난 주간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중, 고등부 수련회가 가평에서 있었습니다. 

여러분 다 아시다시피 전국이 물난리가 나고 특히 가평지역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비가 내린 곳입니다. 700mm에 육박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월요일에 출발을 시켜 놓고 화요일 아침에 갔다가 오후에 내려오는데 그때부터 비가 쏟아 붓기 시작하더라고요. 설마 오다가 말겠지 했는데 오후 내내, 그리고 밤새도록 비가 그치지를 않는 것입니다. 

뉴스에는 벌써 산사태가 나고, 가평지역에 실종자가 나오고....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수시로 전화를 걸어서 상황을 확인하고도 맘이 놓이지를 않습니다. 새벽에 교회에 나와서 기도를 하건마는 마음에 평안을 유지하기가 참으로 힘이 들더라고요. 아침 일찍 중고등부 부장집사님께 전화를 해서 상황을 묻고는 좀 일찍 서둘러서 철수하도록 권유하고 기다렸습니다. 

여전히 비는 멈추지 않고 그 기다림이 얼마나 길던지 모르겠습니다. 오후 6시나 되어서 전원이 무사히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아이들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즐거운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상황이 종료되고 나니까 그제야 정신이 들면서‘아! 목사인 내가 믿음이 부족한 건가! 괜한 걱정을 한 건가!’하고 나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인간의 평안 상태를 무너뜨리는 또 하나는 욕망입니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넉넉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살아가는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 가지려고 하고, 더 누리려고 합니다. 언제나 부족한 것처럼 느끼면서 채우기에  급급한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여러분,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것조차도 다 쓰지도 못하고 다 누리지도 못하고 죽는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러므로 결국 세상은 가진 사람이 더 가지려고 하고, 필요도 없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의 그 욕망 때문에 모두가 고생을 하고 평안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평안과 평강, 그리고 평화를 열망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평안이 없는 것은 정작 그 평강을 누리는 비결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평강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3절을 보면 평강에 이르는 결정적인 비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여기에 주목할 말씀은“평강하고 평강하도록”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완전한 평강을 의미합니다. 완전한 샬롬으로 인도하신다는 말입니다. 이 샬롬은 정신적이요, 문화적이요, 정치적이요, 경제적이요, 신앙적이고 종교적인 것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통합적으로 완전한 평화인 샬롬은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바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욕심으로 얻을 수 있는 차원도 아니요, 자기최면으로 만들어내는 차원의 것도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완전한 평강은 인간의 노력으로, 인간의 수고로, 인간의 욕망으로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에게 은혜로 주실 때 이것이 가능한 평강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자에게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하십니까? 먼저는 문을 여는 사람에게 입니다. 2절의“너희는 문을 열라.”는 상징적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개방하라는 말입니다. 마음을 개방하고, 의식을 개방하고, 종교적인 마음을 개방하라 이겁니다. 

어느 민족이건, 어느 나라건 폐쇄적인 나라는 다 망했습니다. 대표적으로 공산주의 국가가 폐쇄적입니다. 세상의 공산주의 국가는 다 망했고, 북한만 남아 있습니다. 아마 북한도 개방하지 않으면 곧 망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개방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자,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가졌던 종래의 생각, 이데올로기, 지금까지 가졌던 철학, 고집, 자기 우월감을 다 버리고 무조건 항복하는 마음이어야 됩니다. 자기과시, 자기소유, 자기보호, 자기철학, 그리고 자기성취, 다 버려야 되는데 이걸 못해서 그렇습니다. 

더 나아가 사람이 마음을 열지 않으면 서서히 죽어갑니다. 살 수 있는 길이 마음을 여는 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었다는 것은 사실은 가장 먼저 마음을 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하실 때“회개하라!”는 말이“마음의 문을 열어라!”는 그 말씀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 가졌던 생각을 다 버리고 새로운 하나님의 진리 앞에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라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마음을 여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이미 열어진 문조차도 닫으려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 수 있어야 됩니다. 이 마음의 문은 사람에게 여는 문이 아닙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됩니다. 누가 열라고 해서 열고 누가 닫으라고 해서 닫을 수 있는 차원의 문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열 수 있는 문이 있단 말입니다. 그걸 구별하지 못해서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다 열었다가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고 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본문2절을 계속해서 보면“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문을 열고나면 반드시 들어오는 것이 있습니다. 열린 문에는 아무것이나 들어오는 법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든지 원하지 않는 것이든지 들어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름입니다. 이 여름에 문을 열어두면 가장 먼저 들어오는 불청객이 있습니다. 

그렇죠. 모기입니다. 원하지 않습니다. 초청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얼른 들어와 자리를 잡는 얌체입니다. 자, 문을 열었을 때 나에게 유익한 것이 들어와야 합니다. 나를 망가트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세워주는 그 무엇이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의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는 그 상징하는 바가 자못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열어 놓은 빈 마음에 허탄한 것이 아닌 신앙적인 것으로 채우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적인 요소로 들어오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평안할 수 있고 평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이런 생각을 해 봅시다. 만약에 우리가 마음을 열고 회개만하고 말았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마 그냥 착하게 사는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을 여는 회개를 하고 열린 마음에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했지 않습니까? 예수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영접하는 것입니다. 

요1:12절에“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그랬습니다. 우리가 마음만 열고 만 것이 아니라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평강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결정적인 방법은 심지가 견고한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3절을 다시 한 번 더 봅니다.“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심지가 무엇입니까? 마음에 품은 뜻입니다. 한번 믿기로 다짐하고 결심한 그 마음의 뜻이 변함없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고 이 교회를 위해서 뼈를 묻는 각오를 하고 나섰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를 위하여 정직한 십일조와, 땀 흘리는 수고와 희생과 봉사를 아끼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심지가 견고해야지 쉽게 뽑히거나 쉽게 타고 허물어져 버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란 그 무엇에도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지식에 흔들려서도 안 되고, 정치에 흔들려서도 안 되며, 욕망에 흔들려서도 안 되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에 절대적인 지식이란 없고, 완전한 정치란 그 어디에도 없을 뿐 아니라 가장 불완전한 것이 우리의 욕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란 그런 하등한 것들에 흔들려서 평강이 무너지는 허무한 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참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고, 우리 교인들도 늘 보면서 삽니다만 어떤 사람을 보면 항상‘저 사람은 필시 무슨 사연이 있다. 집안에 무슨 일이나, 부부간에 부슨 일이나, 혹은 신앙의 무슨 문제가 반드시 있다.’싶은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굴에 나타납니다. 표정을 보면 늘 어느 구석엔가 그늘이 있습니다. 숨기지 못하는 깨어진 평강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돌아서서 참 마음이 아픕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르다.”
십자가 지시기 바로 전날 밤에 그 마음에 있었던 평안을 그 제자들에게“이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하시면서 주신 말씀입니다. 어지럽고 혼란한 세상이지만 부디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 모두에게, 여러분 가정에, 여러분 인생에 항상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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