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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휴거 (살전 4:14 - 살전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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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휴거 (살전 4:14 - 살전 5:6)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소식입니다. 신약성경의 여러 서신서 중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전체의 주제로 삼은 것은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입니다. 우리는 이 두 책에서 종말 성도에게 주시는 주님의 귀한 교훈을 받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소박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은 지 오래지 않아서 그런지 그들은 순수하면서도 뜨거운 마음으로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겼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편지하면서, “여러분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첫사랑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소박한 신앙에서 나온 지나친 열심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진 것이 문제였습니다. 

살후 3: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재림을 대망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일상생활의 규모를 잃어버린 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재림에 대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리를 분명히 깨닫고 가르침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성도 여러분의 재림 신앙을 더욱 돈독히 다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

16절=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본문에 나타나 있는 예수님 재림의 모습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때는 엄청난 일이 동반됩니다. ‘호령’ 이 있고, ‘천사장의 소리’ 와 ‘하나님의 나팔소리’ 가 울려 퍼집니다. 나팔소리가 날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 이 무덤을 열고 다시 살아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여기 ‘호령(켈류스마티)’ 은 지휘관이 군인에게 내리는 명령인데 거부할 수 없는 귄위를 가집니다. ‘천사장의 소리’ 는 가브리엘이나 미가엘과 같은 천사장이 죽은 자들을 깨우는 음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나팔 소리’ 는 하나님이 직접 나팔을 분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하는 나팔’ 이란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팔을 분다’ 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산 아래로 모으고 하나님의 임재를 알릴 때(출 19:13,16,19), 새해가 시작 됨을 알릴 때(레 23:24), 타국에 흩어져 있던 백성들이 성산에 돌아옴을 알릴 때(사 27:13), 그리고 심판의 날이 임박했음을 알릴 때(욜 2:1) 나팔을 부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의 날에 하나님의 나팔이 울린다는 것은 새 세계가 도래하는 시점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 모으는 것을 나타냅니다(마 24:31).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도무지 믿기 어려운 말씀이고 인간의 이성이나 과학으로는 결코 풀 수 없는 영역의 사건들입니다. 성경은 이처럼 초자연적인 사건인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을 거침없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곳만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4장,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 21장에도 그리스도의 재림과 종말에 대한 상세한 말씀이 나옵니다. 위의 세 장을 가리켜 ‘소(小)계시록’ 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내용이 요한계시록을 압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 24:30에서 예수님은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본절(16절)과 잘 부합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요 진리입니다. 만일 주님의 재림이 거짓이라면 성경의 모든 것이 무너질 수밖에 없고 우리의 신앙도 헛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라나타! 주님은 반드시 속히 오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주님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난다’ 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 땅에서 일어날 현상 가운데 하나는 무덤들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엄청난 일입니다. 

여기에서 성경은 죽은 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로 한정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죽은 성도들만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한 축복에 참여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미 죽어 땅속에 묻힌 자들은 주의 재림의 날 그 영광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들의 생각과 달리,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자들보다 먼저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입니다. 거기에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예수님의 재림 때에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14절=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예수께서 육체적으로 죽지 않으셨다면 인간의 죄악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께서 육체적으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는 죄 있는 여느 인간과 조금도 다름 없는 존재로서 그의 죽음은 무가치한 것 밖에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메시야(=그리스도) 이심을 나타내셨고, 또한 그를 믿는 모든 자들로 부활의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14절은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 을 ‘데리고 오실 것’ 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 신앙 때문에 죽은 자들’ 을 하나님께서 하늘에서부터 ‘붙잡아 함께 인도하실 것’ 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16절에는 주님의 재림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난다’ 는 표현이 있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3:13에 보면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신다’ 고 했습니다. 따라서 본절(14절)은 예수 믿고 죽은 성도들의 영혼이 낙원에 올라가 있다가(눅 23:43) 예수님 재림 때에 그와 함께 영으로 내려온다는 표현이고, 16절은 죽은 후 영혼과 분리되어 땅 속에 묻혀 있던 성도들의 육체가 그 영혼을 만나 다시 살아난다는 표현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계시의 말씀을 받은(15절) 사도 바울은 주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에 대한 분명한 그림을 갖고 있었습니다. 

15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여기 ‘강림’ 이라는 말이 직접 나오는데, 이 단어(=파루시아)는 원래 황제가 지방의 도시를 방문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황제의 방문에는 그 도시민들의 환영 행사가 있었고, 황제가 내리는 상(賞)에 대한 시상식이 수반되었습니다. 따라서 황제의 ‘파루시아’ 는 그 도시에 큰 영광이요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개념이 신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개념으로 된 것입니다. 

그런데 15절과는 달리 16절의 ‘강림하시리니’ 로 번역된 단어(=카타베세타이)는 ‘위에서부터 아래 쪽으로 내려오다’ 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이 영(靈)으로만 오시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체로 내려오는 ‘하강의 모습’ 을 강조하는 표현이라 하겠습니다(행 1:11 참조). 이것은 예수님이 영적으로 재림할 것이라는 이단의 가르침이나, 초림 때 처럼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날 것이라는 이단 사설들이 옳지 않음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재림을 확신하십니까? 주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마지막 나팔에 무덤을 열고 다시 살아날 꿈을 갖고 계십니까? 


2. 성도의 휴거, 그 황홀한 광경

17절=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본절은 휴거(Rapture) 교리의 근거가 되는 구절입니다. 예수님 재림 때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이어서 살아 있던 성도들의 몸은 홀연히 다른 몸으로 변화하여 공중으로 끌려 올라갑니다. 

고전 15:51-52=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성도 여러분! 이것은 저와 여러분이 이제 곧 경험하게 될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 황홀한 광경이 바로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절에서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라고 한 것은 돌연히 잡아채는 것, 강탈해 가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하르파조)의 수동태입니다. 주님 재림 시에 살아남은 성도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님의 뜻에 의해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순간에 부활한 성도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휩쓸려 올라가거나 낚아채어져 올라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영접’ 이라는 말은 당시 황제가 행차할 때 성읍의 성주가 얼마간 나아가서 황제를 영접하여 성 안으로 인도해 들어오는 장면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 따라서 본절은 성도들이 구주 되시는 예수님을 영접하러 나간 뒤 다시금 돌아온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접의 최종 상태는 성도가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한편 휴거된 성도들이 재림 주 예수를 영접하는 장소는 ‘공중(아에라)’ 입니다. 이 말은 지구의 대기권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악한 영이 공중에 대한 권세를 잡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는 점입니다(엡 2:2). 

따라서 ‘공중에서 주를 영접할 것’ 이라는 말은 재림의 날 사탄은 완전히 패배할 것이며 주의 성도들은 사탄의 영역을 깨뜨릴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L. 모리스(Moriss)는 논평하기를, “주께서 자기 성도들을 마귀의 근거지에서 만나기로 하셨다는 것은 마귀의 세력을 완전히 정복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라고 했습니다. 

휴거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살아남은 사람들이 죽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강력한 힘에 의해 끌어올려지는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서로 연합하게 하기 위함이고, 또한 그들 자신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휴거 받은 성도들은 그들이 살아남은 자이든 죽은 자이든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것이며, 또한 무엇보다 그리스도와도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휴거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이 있기는 하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들림받는 궁극적인 목적이 단순한 황홀경이나 광희(狂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성도 서로 간의 연합과 예수님과의 연합을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빌 3:20, 21=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7절을 다시 봅시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이 말씀은 주님의 재림의 때에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한 뒤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이라는 가슴 벅찬 말씀입니다. 이는 이미 시작된 주님과의 관계가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성도에게 있어서 최대의 소망이자 최고의 축복인 것입니다. 

그때에는 더 이상의 고통도 더 이상의 슬픔도 없습니다. 오직 능력의 삶만이, 오직 기쁨의 삶만이 우리에게 예비되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그 순간을 소망하면서 현재의 고통과 고난을 이겨나가야 할 것입니다. 종국에 가서는 우리 모두 영원히 주님과 함께 할 것이므로 이 땅의 삶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라도 주님을 배반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하는 복된 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3.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

6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재림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 그리고 살아남은 성도들의 휴거에 관하여 생각해 왔습니다. 이어서 5장에서는 재림의 시기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빛의 자녀들인 성도들이 어떻게 재림을 기다려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재림의 시기를 두 가지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임한다’ 는 것이고(2절), 또 하나는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른다는 것입니다(3절). 두 가지 모두 갑자기 임한다는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만, 자세히 보면 다릅니다. 

첫째, 도둑은 방심하다가 도둑맞는 것이지, 준비하고 방비하면 도둑맞을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잉태한 여인에게 해산의 고통은 그렇지 않습니다. 도둑처럼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주님의 재림은 임신한 여인에게 때가 되어 찾아오는 해산의 고통과 더욱 닮았습니다. 

또한 도둑은 손해 일변도입니다. 도둑을 맞게 되면 물질을 잃게 되고 정신적인 타격을 받게 되고 심지어 살상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해산의 경우 얼마동안 고통을 받지만 그 고통을 능가하는 아름다운 선물을 빋게 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밤에 도둑같이 오는 것은 불신자가 예수님의 재림을 맞는 것을 가리킨다면, 임신한 여인이 아이를 낳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들이 준비를 잘 하면 도둑 걱정은 없다고 생각하다가 막상 주님 오실 때에 ‘산아 바위야 나를 가리라’ 고 부르짖게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영원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임신한 어머니가 아기를 위해 미리 준비하고 의사에게 태아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면서 대처해 나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은 종말 시대의 성도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반드시 다시 오신다고 믿고 재림을 준비하는 사람은 모두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재림을 믿지 않고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6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 ‘다른 이들’ 은 자신의 구원에 무관심하고 다가오는 심판의 날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영적으로 무감각한 상태에 있는 자들입니다. 밤의 아들들이 영적으로 무감각한 채로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낮의 아들들은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깨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다’ 는 말은 원문으로 볼 때 ‘술 취하지 않은 완전히 맑은 정신 상태’ 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신학자 헨드릭슨은 이 말을 ‘영적 도덕적 진실에 충만하여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너무 들떠 있지도 않고 완전히 무관심하지도 않은 채, 조용하고 꾸준히 그리고 정신을 바짝차리고 자기의 책임과 직무를 완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온 세상이 죄의 흑암으로 뒤덮일지라도 여러분은 영적으로 깨어 근신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이 땅을 향한 주님의 의도와 말씀에 민감하며, 동시에 지금 여러분이 하고 계시는 그 일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한 손에는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적절한 경각심을, 다른 한 손에는 주님의 재림에 대비한 적절한 근신을 들고 있기를 바랍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약속하신대로 반드시 속히 오십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마태복음 24장에 있는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가 자신의 직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 주님이 홀연히 강림하셔서 우리를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마 24:40-41=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종말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은 예수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어느 순간 주님이 오시든 부끄럽지 않게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는 것입니다. 

실로 그리스도의 재림은 우리에게 최고의 축복이요 최상의 상급입니다. 그날 우리 모두 홀연히 변화하여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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