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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왕중왕의 복음(5) : 놀라운 권위 (막 1: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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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중왕의 복음(5) : 놀라운 권위 (막 1:21-28)

예수님은 사탄의 왕국에서 하나님의 왕국으로 사람들을 건져내시는 “사람들의 어부”이십니다. 우리도 철저하게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사람들의 어부”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사탄의 왕국에서 하나님의 왕국으로 건져내실 권위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진정 왕중왕의 정당한 권한이나 힘이 있습니까?

본문 22절과 27절에 ‘권위’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권위’는 헬라어로 ‘엑수시아’(authority)라고 합니다. ‘엑수시아’는 성경에서 ① 행동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 ② 힘(power), ③ 직책상 행사하는 권력의 의미로 쓰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사탄의 왕국에서 하나님의 왕국으로 건져내시는 권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느 정도의 권위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활동본부는 가버나움이었습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북쪽 연안에 있는 큰 도시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가장 긴 곳을 기준으로 길이가 약 20킬로미터, 가장 넓은 곳을 기준으로 너비가 약 10킬로미터가 되는 큰 호수입니다. 가버나움은 국경 도시로 로마 세관도 있고, 로마 군대도 주둔해 있었습니다. 가버나움은 행정, 무역, 상업, 군사,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가버나움에는 회당도 있었습니다.

회당은 신구약 중간 시대에 예배와 설교와 교육과 회집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어떤 마을이나 도시든 유대인 남성 10명이 있으면 회당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당시 갈릴리에는 240개의 도시와 마을이 있었습니다. 가버나움은 큰 도시라 여러 개의 회당이 있었습니다.

토요일 안식일에 나팔 소리와 함께 유대인들이 회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있으면, 회당장이 그를 설교자로 세웁니다. 예수님은 이런 기회를 활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을까요? 2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와, 대단하네!” 예수님은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권위가 있었습니다. ‘놀라다’(에크플레소)라는 단어는 정신이 멍해질 정도로 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깜짝 놀랐을까요?

예수님의 가르침이 서기관들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서기관은 율법을 포함하여 구약 성경을 필사하고 암송하고 가르치는 법률 전문가 겸 말씀 전문가, 요즘 같으면 추앙받는 법조인 겸 신학자였습니다. 서기관은 유명한 랍비를 인용하면서 가르쳤습니다. “랍비 힐렐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랍비 솨마이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은 이렇게 다른 사람의 권위를 인용해서 가르쳤지만, 예수님은 “나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는 식으로 자신의 권위로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들은 대리적 권위로 교육했으나, 예수님은 고유한 권위로 교육하셨습니다. 서기관들은 상대적 권위로 가르쳤으나, 예수님은 절대적 권위로 가르치셨습니다. 서기관들은 ‘진리에 대해서’ 교육했으나, 예수님은 진리 자체로서(요 14:6)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원초적 권위가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표정에서 원초적 권위가 보였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에서 원초가 권위가 느껴졌습니다. 예수님의 삶에서 원초적 권위가 배어나왔습니다. 백성들이 그래서 깜짝 놀란 것입니다(마 7:P28, 29).

백성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놀란 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뒷받침하는 예수님의 능력에 더 놀랐습니다. 2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예수님께서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시니, 그 귀신이 반항 한 번 못하고 바로 그 사람에게서 나왔습니다. 백성들은 귀신들도 순종하는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에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인간계만이 아니라 영계까지 통제하시는 우주적 권위(cosmic authority)가 있었습니다. 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에게 반역한 천사들이 ‘악한 영들’ 즉 악령들이 되었는데, ‘더러운 귀신’이란 바로 ‘악령’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귀신 들린’ 사람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귀신이 들렸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우선 귀신이 사람들을 파괴하는 7단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① 퇴보(Regression): 성경도 보기 싫고 기도도 하기 싫어서 뒤로 물러가게 하는 단계
② 억제(Repression): 스스로 감정을 억제해 기쁨도 활기도 없게 하는 단계
③ 억압(Suppression): 귀신의 힘으로 정보 감정 욕망을 억압하는 단계
④ 우울(Depression): 침울, 집중력 저하, 불면, 좌절, 절망에 빠뜨리는 단계
⑤ 압박(Oppression): “넌 끝장이야! 죽어라! 죽여라!”고 몰아붙이는 단계
⑥ 집착(Obsession): 괴상한 사상이나 감정에 충동적으로 집착하게 하는 단계
⑦ 소유(Possession): 아예 소유해서 전적으로 통제하는 단계

악령은 처음에는 유혹하고(①) 다음에는 괴롭히다가(②~⑥) 마침내 완전히 소유하고 통제(⑦)합니다. 본문에 ‘귀신이 들렸다’는 말은 위의 제7단계입니다. 귀신이 그를 완전히 소유해서 통제함으로 인생을 파괴해 버리는 최악의 단계입니다.

제7단계까지 떨어진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 왜 소리를 질렀을까요? 예수님이 가르치신 진리에 놀랐기 때문입니다.

악령은 거짓으로 사람들을 파괴합니다. 악령들의 두목 사탄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요 8:44). 
예수님의 진리가 사탄의 거짓의 요새를 격파합니다. 예수님의 진리(truth)가 거짓의 진지를 부수어 버립니다. 악령은 그래서 깜짝 놀란 것입니다.

악령이 예수님을 보고 왜 놀랐을까요? 예수님이 악령들을 멸하시는 심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악령이 24절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귀신 들린 사람은 모든 악령들을 대표해서 ‘우리’라고 했습니다. 악령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은 멸하러, 즉 심판하러 오신 줄(마 25:41)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창 3:15; 롬 16:20; 골 2:15; 히 2:14; 벧후 2:4; 유 6).

예수님은 지금은 악령들을 부분적으로 심판하시지만, 마지막에는 전체적으로 심판하십니다. 예수님은 마귀와 악령들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와 모든 불신자들은 불과 유황 못인 지옥에 던지셔서 거기서 영원토록 밤낮 고문을 당하게 하십니다(계 20:10). 악령들은 이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고 깜짝 놀란 것입니다.

악령이 예수님을 보고 왜 놀랐을까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거룩한 자”는 하나님이십니다(사 40:25; 욥 6:10; 시 71:22; 78:41). “하나님의 거룩한 자”도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이사야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를 보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고 놀라 탄식했거든(사 6:5), 하물며 거짓말로 사람들을 파괴하는 악령들이야 말해야 무엇 하겠습니까.

악령이 예수님을 보고 왜 놀랐을까요? 예수님의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25절에서 예수님은 악령을 이렇게 꾸짖으셨습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예수님은 악령을 대변인이나 홍보대사로 삼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홍보대사로 삼으시면, 사람들이 “야, 예수는 귀신의 왕이구나!”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악령에게 “잠잠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악령에게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셨을 때 악령이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면서 나갔습니다. 악령은 예수님의 명령의 능력에 찍 소리도 못하고 바로 100% 복종했습니다. 예수님이 질책하시자 악령은 화들짝 놀라서 바로 도망했습니다.

악령은 예수님의 진리에 놀랐습니다. 심판자 예수님에게 놀랐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게 놀랐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에 놀랐습니다. 왜 악령이 이렇게 놀랐을까요?

악령이 예수님에게 화들짝 놀란 것은 예수님을 체험적으로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악령은 예전에는 천사로 천국에서 살아보았기 때문에 천국도 압니다. 지옥에서도 살아보았기 때문에 지옥도 압니다. 하나님과 같이 있어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도 너무 잘 압니다. 악령은 천국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예수님이 얼마나 대단하신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예수님의 권위 앞에 졸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체험적으로 잘 몰라서 예수님의 권위 앞에 별로 놀라지 않습니다. 당시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도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의 일가친척들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잘 몰라 예수님이 미친 줄 알았습니다(막 3:21). 제자들도 초기에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악령들은 “하나님이 한 분이신 줄... 믿고” 떱니다(약 2:19). 악령들은 사람들에 비해서 예수님을 너무도 잘 알아서 예수님 앞에서 놀라 졸도한 것입니다.

이제 다시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은 정말 사탄의 왕국을 쳐부수시고 하나님의 왕국으로 구원해 내실 권위가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도 놀라고 악령들도 놀랄만한 권위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악령의 속박에서 사람들을 풀어 자유와 안식과 행복을 주실 수 있는 절대 권위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합니까? 

국민일보 2011년 8월 1일자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란인 무바자프씨는 5년 전 무슬림에서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따뜻하게 대해 줘서 교회에 다니면서도 무엇이 진리인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그는 어느 날 밤에 꿈을 꿨습니다. 그는 순간 평생 처음 가위눌려 팔과 다리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무바자프씨는 가위눌렸을 때 이슬람 성직자들의 이름을 아는 대로 다 불렀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슬람 최고 선지자에게도 도와달라고 외쳤습니다. “알라의 선지자 무하마드여! 도와주소서. 들리시나요. 나를 풀어주세요.”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무바자프씨는 이제 더 부를 이름이 없어서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바로 그 순간 놀라운 일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손을 탁 잡아 일으켜 주셨습니다. 그는 잠에서 깨어나서 거울을 봤습니다. 입에 거품이 묻어 있고, 입술은 앞니에 물렸는지 뜯겨서 피가 나고 있었습니다.

무바자프씨는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것을 너무도 분명하게 체험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의 가족들이 그를 죽이려고 해도 그는 지금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무바자프씨는 예수님의 놀라운 권위를 실제로 체험하고 예수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주적 권위를 가지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갈릴리 전역에 금방 퍼졌습니다(28절). 사람들과 악령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놀라기는 했지만,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권위에 놀라기만 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지 않으면 현세에서는 고민하고 내세에서는 지옥의 고문을 당합니다. 우리는 놀라운 절대 권위자 예수님을 영접하고 계속 믿어야 합니다.

우리만 예수님을 믿을 뿐 아니라, 악령의 통치를 받는 불신 가족 친척 친구 이웃에게 예수님을 믿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불신 가족 친척 친구 이웃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기만 하면, 예수님은 악령의 속박에서 풀어 그들에게 곧바로 자유와 안식을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믿게 할 뿐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늘 예수님과 동행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악령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뿐 아니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령을 물리칠 수 있는 권위를 얻습니다(막 9:29). 우리가 예수님의 권위로 악령을 물리칠 수 있는 권위, 즉 예수님에게서 나온 파생적 권위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악령은 방울뱀이 다람쥐를 유혹해서 잡아먹듯 우리를 유혹합니다. 방울뱀이 높은 나무 위에 있는 다람쥐를 따라 올라가서 잡아먹지 못하지만, 다람쥐를 잡아먹는 기막힌 방법이 있습니다. 방울뱀이 꼬리를 흔들면 짤랑짤랑짤랑 소리가 납니다. 다람쥐가 “이게 무슨 소리야?”하고 구경하는 동안, 방울뱀이 다람쥐와 눈을 맞춥니다. 다람쥐가 방울뱀과 일단 눈을 맞추고 나면, 눈을 떼지 못합니다. 방울뱀이 계속 다람쥐 눈을 바라보고 꼬리를 흔들기 때문입니다. 다람쥐는 그걸 구경하다가 그만 균형을 잃고 톡 떨어집니다. 방울뱀은 입을 악 벌리고 있다가 톡 떨어지는 다람쥐를 탁 잡아 먹어버립니다. 악령도 이와 같이 우리와 눈을 맞춰 유혹해서 우리의 영혼을 멸망시킵니다.

악령이 처음에는 유혹하고 다음에는 괴롭힙니다. 악령이 괴롭힐 때 명령도 내립니다. “죽여라 죽여!” “죽어라 죽어!” 히틀러에게 왜 유대인 600만 명이나 죽였느냐고 묻자, 히틀러는 누군가 자꾸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히틀러에게 “죽여라 죽여!”라고 한 것이 악령입니다. 우리는 악령이 유혹하고 명령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단호하게 대적하고 악령을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는 악령이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고 기도도 하기 싫어하게 하는 퇴보의 단계에서부터 악령을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는 퇴보의 단계에서만이 아니라, 억제의 단계, 억압의 단계, 우울의 단계, 압박의 단계, 집착의 단계의 단계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령을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제7단계인 악령에게 전적으로 소유되고 통제되는 단계까지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악령이 억제, 억압, 우울, 압박, 집착 등으로 우리 신자들을 괴롭힐(demon affliction) 수는 있지만, 우리를 완전히 소유해서 통제하지는(demon possession) 못합니다. 우리 신자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귀신 들리지 않습니다.

‘내가 어떻게 귀신을 쫓아내?’ 이런 생각이 드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왕자, 하나님의 공주입니다(요 1:12).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 5:1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셨고(마 10:1), 70문도에게도 주셨고(눅 10:18-19), 모든 신자들에게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6:17).

우리는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매 순간 예수님을 의지하면서(엡 6:10), 악령을 한 번만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나갈 때까지 계속 쫓아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여러 성도들과 함께 예수님의 보혈 찬송을 부르면서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해서 악령을 쫓아내고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엡 6:10-20). 우리 주변에 예수님의 우주적 절대 권위로 악령으로부터 자유를 누리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왕국에서 하나님의 왕국으로 우리를 건져내시는 놀라운 권위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자유와 안식과 환희의 복음을 체험합니다. 우주적 권위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자유가 있습니다. 절대 권위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안식이 있습니다. 인간계와 영계의 권위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환희가 있습니다. 이것이 왕중왕의 복음입니다. 놀라운 권위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와 안식과 환희의 복음을 친히 체험하시고, 다른 사람들도 복음을 누리게 하시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 바랍니다.(권성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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