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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루살렘을 향해 열린 창문 (단 6:10-15) -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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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을 향해 열린 창문 (단 6:10-15)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타국에서 총리의 자리에 까지 오른 탁월한 지혜와 지도력을 가진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애굽에서 총리의 자리에 오른 요셉이었으며 또 다른 한 사람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역사적으로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포로로 붙들려 간 소년 가운데 하나였지만 어떤 바벨론 사람들도 따를 수 없는 탁월함이 있었고 그의 탁월함은 바벨론이 멸망하고 그 후에 메대, 바사 즉 페르시아가 패권을 잡게 되었을 때에도 계속하여 총리의 자리에서 온 세계를 움직이는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은 어떻게 멸망당한 나라의 포로 된 신분에서 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의 삶의 습관 가운데 찾아 볼 수 있는데 다니엘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항상 창문을 열고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붙들려 고난 속에서도 기도하였으며 총리가 되어서 큰 권세가 주어졌을 때에도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하며 창문을 열고 매일 세 번씩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비결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니엘과 같이 하나님을 향해 창문을 여는데 있습니다. 
이 창문은 어떤 창문입니까? 바로 기도의 창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창문은 활짝 열어 놓고 있으면서 정작 기도의 창문을 열어 놓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니엘과 같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 때 하나님께서는 험한 세상에서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시며 우리를 모든 위협 가운데서 지켜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인 창문을 여는 시간입니다. 
특히나 새벽기도는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하루의 첫 창문을 여는 시간이기에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수많은 창문들이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 창문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이 아니라 세상의 창문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창문을 열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지만 이 세상의 열린 창문으로 얼마나 많은 온갖 죄악이 들어오고 유혹이 들어오며, 시험이 들어오고 범죄가 들어오는지 모릅니다.

분명한 사실은 위의 창을 여는 사람,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을 여는 사람, 기도의 창문을 여는 사람에게는 절대 그러한 세상의 것이 들어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활짝 열었지만 반댇로 세상의 문은 꼭 닫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을 보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죄악의 창문, 유혹의 창문을 그냥 열어 놓습니다. 술 취함과 음란과 방탕의 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요즘은 좋은 곳이 얼마나 많습니까? 
곳곳에 우리를 유혹하는 창문들이 사방에 열려 있습니다. 
보기에는 좋게 보일지 몰라도 그 창문을 열면 열수록 오히려 인생은 더욱 고단하고 피곤할 뿐입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한순간에 우리의 영혼을 사냥해가는 악한 문들이 곳곳에 열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죄악의 문은 닫고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활짝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다니엘도 총리의 자리에 올랐으니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찾아오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며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세상의 부귀 영광 향락 기쁨의 창문이 많이 열려 있지만 그런 문을 닫고, 다니엘은 기도의 문을,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리할 때에 다니엘은 승리할 수 있었으며 그의 축복은 이어져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창문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바로 컴퓨터 ‘윈도우’ 입니다. 윈도우는 컴퓨터를 가동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로 실제로 창에 나타나는 아이콘을 실행하면 프로그램이 실행됩니다.
그런데 이 윈도우가 좋은 점도 있지만 한편으론 소중한 시간들을 컴퓨터 앞에서 너무나 많이 허비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윈도우를 통해 나오려고 할 때에 유혹이 생겨 이쪽으로 갔다 저쪽으로 또 가고 계속 창문을 열고 닫게 하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컴퓨터 앞에 계십니까?
기도의 창문을 우리가 컴퓨터의 창을 여는 시간의 십분의 일이라도 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요즘 젊은이들 가운데 게임에 빠지면 하루 종일도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피곤해서 하루의 일상이 깨어지고 또 피곤하다고 엉뚱한 곳에 가서 죄를 짓고 시험에 듭니다.

우리가 세상의 창을 여는 것에 십분의 일이라도 기도의 창문을 열어 보시기 바랍니다.
새 힘이 주어집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집니다. 이전에는 너무나 큰 문제로 여겨지던 것들도 이제는 대수롭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한 일간지에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정신병적인 증세가 있는 사람이 170만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정신병이 어디서 오는가 하면 대부분 우울증에서 온다고 합니다. 
그만큼 과거보다 풍요로움을 누리면서도 현대인들은 답답해합니다. 
어디 있어도 답답합니다. 출세하나 성공하나 실패하나 어느 자리에서든 답답해합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답답해합니다. 

여성분들에게 가장 어려운 시기가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할 때입니다.

그래도 결혼하기 전에는 세상에서 인정받고 능력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몸은 망가지고 하루종일 아이와 씨름하며 보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내 신세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라며 자녀를 낳고 답답해합니다.

여러분 자녀를 낳고 기르는 일이 얼마나 복된 일이고 귀한 일입니까? 그런데 위의 창문을 열지 않으면 그저 모든 것이 허무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다른 장소 다른 일을 하면 보람이 있을까요? 결국은 같습니다.

요즘 주부들은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모이면 한잔하고 어디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고 그러면서 탈선하고 넘어집니다. 

주부에게 가정이 있는 것이 답답한 것입니까?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이 정말 별 볼일 없는 것일까요?
‘내 신세가 왜 이렇게 되었나’ 정말 그런 것입니까? 
사실 그 자리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당연하고 가장 귀한 일인데 거기서 허무함을 느낍니다.

여러분 가족을 위한 작은 일 하나하나에 내가 가족을 위해서 한다는 기쁨이 없으면 허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위에 창문을 열지 않으면 허무함과 좌절과 낙심 뿐입니다. 
창문을 열고 기도하는 여성들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창을 열면 하나님이 우리의 도움이 되십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바벨론의 기득권을 가진 자들의 어마어마한 음모 속에서도 다니엘은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기도하는 사람을 지켜주십니다. 
그곳이 사자 굴이라 하더라도 그곳에서도 지켜주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서도 우리가 창을 열고 기도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것은 세상의 창문을 열어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늘을 향해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의 창문을 열어보십시오.  

우리가 피곤하고 힘들어도 매일 같이 새벽기도를 왜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향해 창문 열려고 나오는 것입니다. 
창을 열고 하는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들으십니다. 

시6:9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다’ 고 하였으며 대하6:21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신다’ 고 했으며 벧전3: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신다’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저와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가 믿고 창을 열고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일방통행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기도는 양방통행입니다.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고 도와주십니다.
세상은 자기 혼자 힘쓰는데 오는 것이 없습니다. 일방통행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언제나 기도한 것만큼 은혜를 주십니다. 지켜주십니다. 

원하기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와 같이 하나님을 향해 창문을 활짝 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마치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좋아하십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자녀가 부모님을 가까이하고 대화하려고 하고 도와달라고 하는 것을 좋아 하십니다.

“어떻게 할까요?” 라고 물어보는 것이 사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이것을 기뻐하십니다. 

어떤 효자로 소문한 교수의 집에 사람들이 방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간 교수의 행동을 보고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집에 들어온 아들의 발을 노모가 씻겨주는 것이었습니다.

방에 들어가니까 노모가 먹을 것을 갖다 주며 수발을 들어주고 교수는 마치 어린아이 처럼 노모에게 투정을 부립니다.
사람들을 그 모습을 보고 모두 기겁을 하며 저런 불효막심한 사람이 어디 있냐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여러분 과연 그럴까요? 이 노모의 기쁨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사람들은 대개 부모님에게 아무일도 시키지 않는 것을 잘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머니! 이런 것 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방 안에 계세요, 어머니 참견하지 마세요, 말씀하지 마세요” 사실 이러한 일이 불효하는 것입니다.
“어머니! 어떻게 할까요? 물 좀 주세요, 도와주세요” 
이것이 사실은 진정한 효도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러한 분이십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일하시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하나님을 향해 창을 열어야 합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면 열리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할렐루야!

부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문을 열어 놓고 늘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선 창문을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창문을 열 때에 다니엘 같이 사자굴 속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세상 가운데서도 우리를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게 보호하여 주실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연다는 것은 그 마음이 항상 하나님을 향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남성들도 창을 열고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특히 새벽에 나와 하루의 첫 시간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남성들에게 주신 결단력과 용기가 살아납니다.

오늘날 많은 남성들이 용기를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건강하고 공부를 많이 하고 지식이 많아도 용기가 없습니다. 어디에서도 어깨를 펴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살아갑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창문을 열어 두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두려움이 떠나갑니다.
두려움이 떠나갈 때에 생기는 것이 바로 꿈이며 비전입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는 믿음이 생깁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창문을 열 때에 죄의 문이 닫혀지게 됩니다.
우리 주변만 보더라도 남성들을 유혹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께로 창문을 열지 않으면 자꾸만 두렵고 좌절하고 그러다보면 술을 더욱 가까이 하고 음행을 가까이하고 결국 건강한 삶이 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창을 열고 기도하고 나면 그런 유혹의 문이 닫힙니다. 
마귀가 틈을 타지 못합니다. 길이 열립니다. 잘 됩니다. 그러니 더욱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루에 세 번까지는 열지 못하더라도 아침에 한 번이라도 열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여성분들도 창을 열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어머니는 어머니로서의 위치를 잘 지키게 됩니다.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며 남편을 진심으로 섬기며 사랑하는 아내가 되게 합니다.

비록 육신이 피곤하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새 힘을 주십니다.
그리할 때에 우리 안에 속사람은 살아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내가 가장 피곤하고 가장 힘든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을 이기고 창문을 열고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능력이 주어지고 힘이 주어지고 어머니로서, 아내로서의 마음이 주어집니다. 
이런 좋은 마음들은 기도를 통해서 살아나고 주어집니다. 
그러니 가정의 화목을 위한다면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축복의 길이며 행복의 길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사실 우리 인간의 문제는 모두가 영적인 것과 결부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더라도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나뉘게 되는 것을 세상의 눈으로 보면 단순히 반역과 정세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성경은 그 원인을 솔로몬의 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다시말해 영적인 이유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의 문제도 영적인 문제입니다. 우리의 일터와 이 나라의 문제도 모두가 사실은 다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하나님을 향해 창문을 열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도와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다니엘을 보시면 한 나라에서 총리가 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또 다시 다른 나라의 총리가 되는 것은 얼마나 더 어려운 일입니까?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러한 역사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능하십니다.

우리가 전 세계 어떤 나라에 있더라도 비록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향해 창을 열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들으시고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십니다.
 

이희돈 박사의 간증을 보면 이분은 세계무역센터 수석 부총재로 있으면서 각 나라의 국가 지도자들과 외교관들과 기업가들을 만나는 것이 일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바쁜 일상이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루에 두 시간씩은 꼭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쁘고 중요하다고 해도 자신의 기도시간은 반드시 챙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을 많이 만나러 다닌다고 무조건 내 길이 열립니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해 창을 열어 둔 사람은 바쁘지 않아도 오히려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며 하는 일마다 축복해 주시고 모든 위험에서 지켜 주십니다. 

이분의 이야기가 워싱턴에서 뉴욕까지 출퇴근을 하는데 그 날은 뉴욕에 와서 설사가 시작되어 공항에서 내려서 바로 가야 되는데, 하는 수 없이 설사 때문에 견딜 수 없어서 화장실에서 30분을 지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 전 세계 금융계 지도자들이 자신을 만나기 위해 쌍둥이 무역센터에서 다 모이기로 하였는데 시간이 지체되어 회의를 다음으로 취소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갈 수 없으니 자신의 보좌관 세 명을 너무 늦으니까 각각 다른 곳으로 보내고 한 비서는 자신을 기다리게 했는데 바로 그 때에 테러가 발생한 것입니다.

30분이 늦어서 이 사람들을 다른 곳에 보냈을 때에 무역 센터가 붕괴되고 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분의 말씀이 그래서 예수를 믿고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만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가족과 주변에 있는 사람도 함께 살리게 된다는 간증이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을 향해 창을 열고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도 가족들도 주변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기도하지 아니하면 자기만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도 함께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여러분 기도하면 죽음의 문턱에서도 하나님께서 살려주십니다. 
창을 열고 기도하면 오늘만 좋은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좋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나라가 바뀌고 왕이 바뀌어도 존귀한 자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이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늘 기도하였듯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창문을 활짝 열고 하나님으로부터 힘과 능력을 얻어 세상을 힘있게 승리하며 놀라운 축복과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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