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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마 11: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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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마 11:16-19)

세대 론의 권위자인 미국 브라운대의 “데이비드 커처(David Kertzer)” 교수는 세대를 연령 효과(age effect)와 코호트 효과(cohort effect, 즉 사회, 역사, 경험 공유 효과)에 따라 정의하고 구분했습니다. 

이런 세대론은 1991년 미국의 더글러스 쿠플랜드(Coupland)가 “X세대(Generation X)”라는 소설을 발표하면서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품 주인공 3명(20대)은 출세, 가족, 돈 등에 관심 없이 시간제로 일하면서 핵폭탄에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종말론적 사고에 빠져 살아갑니다. 풍요로운 1960~70년대에 태어났으나 1980년대 불황으로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가득한 이들은 특히 자유분방합니다. 기성세대가 “이해할 수 없는 세대”라는 의미에서 “X세대”로 명명됐습니다. 한국에서 X세대는 주로 1990년대 반항과 개성이 넘치는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습니다.

각 세대들은 세대들의 유형이 있고, 특징이 있습니다. 같은 유형, 같은 특징을 가진 세대들이 단합되고 뭉치기 마련입니다. 그로 인하여 세대 간의 특징과 격차를 극복하고 좁히지 못하여 세대 간의 불화, 세대 간의 충돌이 일어나곤 합니다. 

남녀간의 세대차이가 있습니다. 남녀의 차이는 뇌의 구조나 신체적 차이, 호르몬의 차이, 또는 피양육방식의 차이로 이를 설명하는 생물학이나 심리학에서 비롯됩니다. 

예를 들어 “남자의 두뇌는 사냥에 적절하도록 사전에 터널시야로 회로 조정이 되어 있어 남자들은 쇼핑을 할 때도 목적지로 바로 직행하는 반면 집에 남아 둥지를 수호해야 했던 여자의 두뇌는 넓은 주변 시야를 감시하기에 적정하도록 되어 있어 쇼핑할 때도 목적지로 가는 중간 중간 여기저기 들러 점검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여기서 차이가 크다는 의미는 그 차이를 극복하기가 더 힘들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동성이든 이성이든 아무래도 또래끼리 어울릴 기회가 많고 또 어느 젊은 시기에는 남녀가 서로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노력을 보입니다. 

하지만 세대 차이에 이르러서는 사람마다 자신이 겪어온 모든 것이 “실존했던 삶(life)”이고 “사실(Facts)”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그것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가 힘듭니다. 세대가 서로 다르면 그들은 서로 어울릴 기회도 많지 않고 또 어울리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흔히 우스갯소리로 요즘은 쌍둥이도 세대차를 느낀다고 하는데, 아마 이러한 속도감이 반영된 탓입니다. 달리 말하면 과거의 10년 차이보다 요즘의 1년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진다는 의미입니다. 

오늘의 새로운 세대들은 철저한 상품의 논리와 자유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인스턴트식품에 길들여져 있고, 집단보다는 자유로움을 갈망하며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표현하는데 능숙합니다. 

흔히 사용하는 N세대란 말은 “Network를 자기 감각 운동 기관으로써 쓸 줄 아는 세대”를 의미합니다. N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문자매체(서류, 책)보다는 컴퓨터나 영상매체에 더 익숙하며, 인기스타를 모방하고 갈망합니다. 휴대폰이나 인터넷 등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가상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집단들입니다. 

현 세상은 한 시대에 비동시적인 세대들의 공존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대 간 차이는 점차 커져가고 있습니다. 19세기의 사고방식을 가진 교사들이, 20세기의 교실에서, 21세기의 사고방식을 가진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과 같은 어색함이 발견되곤 합니다.

세대 차이는 디지털격차와 인터넷 이용률 측면에서 나타나는 연령대별, 지역별, 성별 차이는 뚜렷합니다. 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정보센터가 실시한 “정보화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와 50대 이상의 이용률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이는 나이에 따라 인터넷을 배우는 능력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근한 예로써 부고를 전에는 일일이 전화를 했지만 지금은 인터넷 스마트 핸드폰 메시지로 보냅니다. 인터넷 메시지를 보내고 나면 가끔 소동이 벌어지곤 합니다. 메시지를 소화하는 집단과 소화하지 못하는 집단이 서로 충돌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그러한 소동을 비 정보(비 아티)세대와 정보세대(아티세대)간의 충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세대는 세대 간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오히려 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 집안에서 시어머니세대와 며느리세대들이 충돌하여 시어머니 세대들이 집안에서 노인정으로, 복지관으로, 공원으로, 지하실 단칸방으로 ,복지시설로 내몰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 결과 일반 가정에서는 극심한 충돌이 많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유일하게 다세대들이 공존하고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지하철입니다. 지하철에는 ➀일제 강점기(1910.8.29-1945.8.15)세대, ➁6.25세대, ➂386세대, ➃N세대, ➄X세대, ➅Y세대(2000년대 탄생), ➆Z세대(젖먹이세대)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지하철이란 공간에서 세대들의 온갖 충돌들이 일어나 “막말남, 패륜녀, 패트병녀”가 탄생되기도 합니다. 

젊은 대학생들은 이른바 “지하철 세대 충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대학생 26명을 무작위로 골라 조사한 결과 ➀절반에 가까운 12명(46%)은 “젊은이들의 잘못된 의식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➁8명(31%)은 “젊은 세대의 잘못도 크지만 노인들도 문제”라고 했습니다. ➂3명은 “살기 힘들어 분노하게 만드는 사회적 책임”을, ➃2명은 “패륜 행위를 확대재생산하는 언론이 문제”라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패륜적인 젊은이들이 각성해야 하는 동시에 몰지각한 늙은이들도 자성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어떤 세대와건 충돌을 피하고 양보하는 자세를 지향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노인세대와 젊은 세대들이 절대로 충돌해서는 안 됩니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잘 모시고 받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계명과 말씀의 원리입니다. 노인들은 젊은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을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극히 작고, 불실한 정성이나, 선물이라도 고맙게 생각하고, 오래오래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계속 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절대 충돌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은 각 시대마다 각기 특징이 다른 세대들이 나타나서 충돌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➀아담의 시대에는 불신세대 가인과 믿음세대 아벨이 충돌했습니다. ➁노아시대에는 잔악한 내피림과 거인들 그리고 유명한 자들의 악한 세대와 노아의 가족들을 중심한 의로운 세대가 충돌했습니다. ➂아브라함 시대에는 우상숭배 세대들과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세대들이 충돌했습니다. ➃모세시대에는 세상의 법을 주장하는 세대들과 하나님의 율법을 주장하는 세대들이 충돌했습니다. ➄여호수아 시대에는 우상 숭배하는 이방인 세대들과 하나님을 섬기는 선민들의 세대가 충돌했습니다. ➅예수 그리스도 시대에는 율법의 세대들과 복음의 세대들이 충돌했습니다. 골고다 언덕(갈보리)에서는 사탄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충돌했습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은 세대 간의 충돌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대 간의 충돌이 아무리 극심하다해도 “➀아담처럼 하나님께로 나가야 한다. ➁노아처럼 의롭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 ➂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➃모세처럼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야 한다. ➄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➅다윗처럼 항상 기도하며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 ➆세례요한처럼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 ➇예수님처럼 희생하며 십자가를 져야 한다. ➈제자들처럼 종말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➉산앙의 선배들처럼 환난과 핍박을 r가오해야 한다.”는 삶의 원리를 터득하고 깨달으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끝맺는 말

우리 주님은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당시의 세대를 ➀악하고 음란한 세대(마12:39) ➁이 악한 세대(마12:45) ➂죄 많은 세대(막8:38) ➃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마17:17)라고 규정지어 말씀하셨습니다. 

장터에서 아이들이 동무를 불러놓고 ➀잔칫놀이를 하면서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고 ➁장례식 놀이를 하면서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는 아이들처럼 당시의 세대를 무감각한 세대로 비유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이 와서 광야에서 회개를 외칠 때에 그 당시의 세대들은 회개는 고사하고 세례요한이 귀신 들렸다고 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회개를 외치시매 세리와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신다고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몰아세웠습니다. 

주님이 피리를 부시면 우리는 춤을 추어야 합니다. 주님이 슬피 우시면 우리는 가슴을 치고 회개하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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