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참 제자의 길 (막 8:34-35)

첨부 1


참 제자의 길 (막 8:34-35)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마가복음 8장 34∼35절

‘제자’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은 자, 훈련 받는 자, 스승을 따르는 자”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신자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는 훈련을 받아야만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신자는 많으나 제자가 적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많아도 예수님의 제자 곧 예수님을 닮은 사람은 적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제자의 길은 때론 고난이 따르고 희생이 따르는 길이지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요, 영광의 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신자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돼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제자의 길이란 무엇일까요?

1. 예수님을 따르는 삶

세상 사람들은 모두 무엇인가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부귀, 영화, 명예 그리고 자신이 이루고 싶은 그 무엇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얼마나 값비싼 은혜라는 사실을 잊은 채, 세상 사람들이 좇는 것을 좇으며 그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본회퍼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똑같이 명예나 권력, 물질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죽은 교회, 죽은 그리스도인이나 다름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와 이웃의 고난에 동참하는 값비싼 은혜를 누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하나님께서 아들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신 결과로 주신 헤아릴 수 없이 큰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값비싼 은혜를 잊어버리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희생과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리며 오직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스승되신 예수님을 닮아가고 그 가르침을 지켜 행하며 주님 가신 길을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제자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내 이웃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겸손하셨던 것처럼 겸손해야 하며, 예수님께서 온유하셨던 것처럼 온유해야 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섬기신 예수님처럼 마음을 다해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따라가는 참 제자 되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성공과 형통이 있고 참된 평안과 안식이 있습니다. 그 길 끝에 영원한 천국과 상급, 그리고 주님의 칭찬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2. 자기를 부인하는 삶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비우며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일부가 아닌 나의 전체를 포기해야 합니다.  
종종 주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나 자신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데 내 주장이 불거져 나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하는데 내 명예를 드높이고 싶은 생각이 앞섭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뜻과 영광이 온전히 이루어지고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뜻과 영광을 포기하지 않고도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 되십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 부인입니다. 자기 부인은 자존심, 이기적인 욕심, 자기 자랑, 미움, 섭섭한 마음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이며, 모든 결정권과 소유권이 주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매 순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했습니다(갈 2:20).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조차도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철저히 자신의 뜻을 부인하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빌 2:6∼8).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기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있습니까? 지금 내게 주어진 생명, 명예, 재물, 재능, 학식, 건강, 자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우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기 부인은 내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게 될 때 성령께서 공급하시는 능력을 따라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성령님을 의지해 살면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성공해도 교만하지 않습니다. 온갖 탐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겠다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사랑과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성령의 열매로 가득 찬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나타내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3.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

‘자기 십자가’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내가 감내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다보면 제자이기에 당하는 핍박과 순교, 억울하게 당하는 고통과 슬픔 등이 있습니다. 때로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희생하고 손해를 봐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각자가 감당해야 할 사명의 십자가입니다(막 10:29∼30). 

8월 2일 소천하신 하용조 목사님께서는 7번이나 암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천국가시기 전까지 매주 세 차례 이상 혈액 투석을 하셔야 했습니다. 삶 자체가 십자가였습니다. 그러나 한평생을 묵묵히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시고, 온누리교회를 9개 성전, 4개 기도처, 25개 비전교회, 총 7만 5000여 명의 교인이 출석하는 교회로 부흥시키셨습니다. 하 목사님께서는 뇌출혈로 쓰러지시기 전까지도 힘을 다해 주일 예배 설교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런 목사님을 온누리교회 성도들은 “온화하지만 열정적이고, 사랑과 긍휼이 많았던 하용조 목사님,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다가 주님 품으로 돌아가신 목사님을 사랑합니다. 그 삶을 닮아 살기를 원합니다. 목사님이 계셔서 참으로 행복했습니다”라고 추억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내게 지워진 십자가를 지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혹여 고생스럽다며 자신의 십자가를 피하여 달아나거나 다른 사람에게 슬그머니 떠넘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로지 편안한 삶만 추구하며 도망 다니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사명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잊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명을 잃어버린 인생은 불행합니다. 그러나 사명이 있는 인생은 고난을 당해도 행복합니다. 무슨 일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기쁘게 십자가를 지고 가면 주님 앞에 서는 날,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을 받으며 약속된 천국의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4.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생명까지도 내어놓는 삶

본문에서 ‘목숨을 잃는다’는 표현은 생명을 다해 헌신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고자 십자가의 길을 버리면 결국 영원한 생명마저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자기애(自己愛)와 세상 욕심을 부인하면,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되고 영원한 생명도 얻게 됩니다. 

마가복음이 기록될 당시,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기 위해 가족이나 직업을 포기하고 심지어 생명까지도 포기해야 할 위협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재판관들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황제 만세’를 외치면 살려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단 한 마디 말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고, 말 한 마디로 삶의 질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당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반면 수많은 성도들이 십자가를 지고 처형당할 각오를 하고 예수님의 뒤를 끝까지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과 희생을 영생으로 갚아주셨습니다. 그들이 흘린 순교의 피는 헛되지 않아 결국 로마는 313년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에는 ‘광야박물관’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박물관은 18세기 프랑스에서 있었던 개신교 박해를 피해, 성도들이 들판이나 산지에 비밀리에 모여 예배드리면서 생겨난 역사 현장과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만든 박물관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믿다가 붙잡힌 성도들은 온갖 고난을 겪으며 추위와 굶주림 속에 죽어야 했습니다. 남성들은 노예선으로 끌려가 죽을 때까지 손목과 발목에 쇠고랑을 찬 채 노를 저어야 했습니다. 이 박물관에는 파선된 노예선에서 나온 것으로 여겨지는 조그만 나무판이 전시돼 있는데, 거기에는 이와 같은 글이 적혀 있습니다. “주님, 저로 하여금 제 손목의 쇠고랑을 당신과의 혼인 반지로 삼게 하시고 제 발목의 쇠고랑을 당신의 사랑의 사슬로 여기게 하소서”
 
믿음의 선인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까지도 기꺼이 감당했습니다. 이 시대는 우리에게 순교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로서, 순교자적 정신을 가지고 제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제자의 삶은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넘어 생명까지도 내어놓을 수 있는 결단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결단으로 참 제자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며 목숨 바쳐 주의 일에 헌신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독생 성자 예수님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값비싼 은혜를 받았으니 주님께 헌신하고 순종하며 사명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영훈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