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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해방시키시는 하나님 (신 6: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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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시키시는 하나님 (신 6:20-25) 

(신 6:20)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증거와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냐 하거든
(신 6:21) 너는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니
(신 6:22) 곧 여호와께서 우리의 목전에서 크고 두려운 이적과 기사를 애굽과 바로와 그의 온 집에 베푸시고
(신 6:23)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을 우리에게 주어 들어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시고
(신 6:24)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
(신 6:25) 우리가 그 명령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

어느 날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솔길을 돌아 막 동네 어귀에 이르렀을 때 미켈란젤로는 못생긴 대리석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돌은 어느 저택이 정원 한 모퉁이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초인종을 누르고 잠시 후 나온 저택의 주인에게 정원 모퉁이의 대리석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저 돌을 나에게 줄 수 없습니까?" 주인이 의아한 듯 물었습니다. "그 흠집 많은 돌을 가져 가셔서 무얼 하시렵니까?""저 안에는 천사가 갇혀 있군요. 제가 그 천사를 자유롭게 해드리고 싶어서 그럽니다."  갇혀 있는 것은 해방 되어야 합니다. 

모든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시지만 특별히 해방은 하나님의 역사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방의 의미를 바로만 파악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품으신 뜻이 무엇이며,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출애급의 역사에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직접 이룩하신 역사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독립 운동을 통하여 얻은 해방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바로의 세력을 꺾으시고 그 백성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나가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에 가로 막혀 궁지에 몰렸을 때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14)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은 구약 성경 여러 곳에서 반복되어 나옵니다. 이것은 출애급 역사만이 아니라 모든 역사는 우연이나 숙명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이룩해 가신다는 이스라엘 역사가들의 신앙고백입니다.
  
8·15 해방도 이런 점에서 출애급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친히 이룩하신 역사라는 말입니다. 8·15 해방의 역사적 중요성은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해방 후 우리의 역사적 현실이 어떻게 진행되었느냐와 상관없이 해방은 우리에게 중요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중요한 역사의 과제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일제의 35년간의 억압과 거기서 해방된 경험을 갖게 하심으로 모든 억압이 불의라는 것과 자유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8·15 해방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이 해방은 단순하게 정치적 해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8·15 해방은 정치적 해방이었지만, 거기에는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해방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함축되어 있음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로마서에 기록된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권능의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죄악에서 구원해 내사 해방 시키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구원해 해방 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일제시대 때, 황해도 안악시장에는 '안악골 호랑이'라고 불리우던 불한당 김익두 때문에 사람들이 장에 가기를 꺼려하였다 합니다. 이유 없이 시비를 걸어 사람을 치고 팔려고 쌓아놓은 물건들을 때려 부수는 바람에 그가 나타나면 시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곤 하였다 합니다. 그래서 안악골 호랑이는 실제 호랑이 못지않게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합니다. 시장에는 점차 사람이 줄고해서 부득불 장을 보러 가는 사람들은 먼저 성황당에 들러 빌기까지 하였다 합니다. 그가 술집에 나타나면 술집 주인은 자기 마음대로 공짜 술을 실컷 마셔도 아무 말 없이 나가 주는 것만을 다행으로 여겼고 싸전 주인이며 나무를 팔러나온 나무꾼들도 두 눈 뻔히 뜨고 강탈을 당하기 일쑤였다 합니다. 

김익두 때문에 마음 놓고 살수 없다는 주민들의 원성을 귀가 따갑게 들어온 경찰은 길목에 숨어 있다가 격투 끝에 그를  붙잡아 유치장에 가두었다 반년 만에 풀려 나온 그의 행패는 여전하였다합니다. 그도 그런  생활이 괴롭고 우울하여 남모르는 회한과 수치스러움으로 통곡하였다합니다. '어째서 나의 삶은 이다지도 엉망진창이란 말인가.' '나라는 인간은 도대체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정녕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 ' 

이런 고뇌가 젊은 그를 괴롭혔지만 어디에서도 시원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합니다, 부잣집 외아들로 태어난 그의 어린 시절은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였다합니다. 응석받이로 자란 그가 버릇이 나빠지자 아버지는 사람답게 키우려고 열 살 때부터 과거 공부를 시켰다합니다. 열여섯 살에 과거시험을 보았는데 낙방하고 말았다합니다. 그 일로 실망한 아버지는 화병이 나 그만 세상을 떠났고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집을 떠나 절로 들어갔다 합니다. 깨달음을 얻어 마음의 평안을 찾고자 하였으나 고뇌는 더욱 늘어갈 뿐이었다 합니다. 하산하여 빈둥거리고 있던 그에게 어머니는 장사를 권하였다합니다. 

장사에 취미를 붙여 마음을 잡아가던 어느 날, 친구에게 속아 보증을 서준 것이 잘못되어 아버지가 남겨준 재산을 다 뺏기고 남의 집 헛간으로 쫓겨났다합니다. 이때부터 그는 폐인이 되어갔다합니다. 가족도 돌보지 아니하고 세상을 원망하며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그가 시장에서 서양 선교사가 전해준 전도지를 받아 교회에 나가더니 예수님을 영접하고 전혀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벌을 받아 돌아 버렸다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만난 뒤 그토록 그를 난폭하게 만들던 지난날들로부터 마침내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불한당이던 모습은 다 사라지고, 전에 그가 괴롭혔던 사람들이 복수를 해와도 묵묵히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 공산군에게 순교를 당하던 76세까지 50년 동안 그는 '한국의 무디'로 불릴 만큼 훌륭한 전도자가 되어 그가 부흥집회를 가는 곳마다 병 고치는 기적이 수도 없이 일어났고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죽을 지경에 이를 만큼 지독한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몸으로 실천하며 살다 간  참 목자였습니다. 죄악을 일삼던 그를  변화시켜 우리나라 교회사에 길이 남을 큰 목사로 만드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문 밖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떤 죄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라도 마음 문을 열고 그분을 모셔 들이기만 하면 죄에서 해방시켜 변화된 새 삶을 선물로 주십니다.

문명의 죄악에서부터의 구원하여 해방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노아의 홍수 심판 이후에 새롭게 형성된 고대 인류 문명, 즉 학문과 예술, 그리고 기술의 발생지요 중심지는 애굽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이 애굽은 과거 시날 평원에서 바벨탑을 쌓던 무리들(창 11장)이 있던 곳과 같이 죄악의 장소요 죄악의 집단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인위적 능력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와 장소 가운데서 우리로 하나님을 알게 하시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이 쓴 「상처입은 치유자」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합니다. 어느 나라에 왕자 네 명이 있었습니다. 네 명의 왕자가 모여 이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리 형제가 전 세계에 흩어져서 최첨단 과학 기술을 배워오자."오랜 세월이 흘러 네 명의 왕자가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첫째 왕자가 말했습니다. "나는 한 조각의 생물의 뼈만 있으면 근육을 붙이는 기술이 있다." 
둘째 왕자도 말했습니다. "나는 뼈와 근육만 있으면 피부와 털을 돋아나게 하는 기술을 배워왔다." 
셋째 왕자는 "나는 뼈와 근육 그리고 털이 있으면 사자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다" 라고 했습니다. 
막내 왕자도 질세라 말했습니다."나는 사자가 있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기술을 배워왔다." 

네 왕자는 숲 속에 들어가 뼈를 하나 주웠는데, 그것은 사자의 뼈였습니다. 네 명의 왕자는 그 뼈에 근육을 붙이고, 피부와 털을 돋아나게 하고, 사자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러자 사나운 사자가 일어나 그 네 명의 왕자를 물어뜯어 죽였다합니다.
   
남미 베네수엘라의 조지 메이슨씨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점원들에게 보수도 적게 주고 휴가도 적게 주었습니다. 그의 가게에는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큰 금고가 있었는데 이 사람의 취미는 저녁마다 금고에 들어가 돈을 세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해 성탄절 대목에 큰 돈을 벌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금고에 들어가서 성탄 대목에 들어온 돈을 바라보며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나가려고 하니 문이 잠겨버렸습니다. 점원들이 이미 퇴근한 후라서 열어 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비상 구멍이 열려 있어서 질식하지는 않았습니다. 이튿날은 성탄 휴일이므로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를 찾아올 부인도, 자식도 없었습니다. 26일 아침 직원이 출근해서 금고에 열쇠가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주인을 구출해 주었습니다. 그는 금고에 갇혀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며 깨달았습니다. 돈이 전부가 아니며, 돈에 포로된 곳이 지옥임을 깨닫고 새 생활을 시작했다합니다.

우상의 죄악에서의 구원하여 해방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애굽은 문명과 함께 다신 종교의 발생지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이들은 일월성신뿐만 아니라 각종 짐승과 날짐승, 그리고 하다못해 곤충과 파충류까지도 그들의 신으로 만들어 섬기는 참 빛(요 1장)이 없는 암흑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참 빛을 비추시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이요, 복의 조상인 아브라함에 대한 기사 중에 성경에 기록되지 아니한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합니다. 

원래 아브라함이 살던 곳은 말둑이라고 하는 태양신을 섬기는 지역이었고, 그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섬기기 전에는 먼저 태양신을 섬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산에 해가 지는 것을 보면서 아브라함은 '내가 섬겨야 할 신은 저렇게 변하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해와 달처럼 변하는 존재가 아닌 하나님을 찾아서 경배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아버지 데라가 상점에 우상을 잔뜩 진열해 놓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상점을 지키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우상을 사려고 들어왔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아주머니께 나이가 어떻게 되시냐고 묻고는 이어서 "연세가 그 정도 드신 분이 하루 아침에 깎아 만든 우상에게 절을 하고 복을 달라고 하기 위해 이 우상을 사십니까?  아예 그런 어리석은 짓일랑 하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상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사러 오는 사람을 다 돌려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한 부인이 고기 접시를 가지고 상점에 와서는 우상에게 바치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그 고기 접시를 받아 제일 큰 우상에게 안겨 주고는 다른 작은 우상들은 모두 부숴 버렸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아버지 데라는 상점이 온통 수라장이 된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우상들이 목이 부러지고 수라장이 되었느냐?"  "어느 아주머니가 우상에게 제물을 드리기 위해 고기를 한 접시 가져왔는데, 그것을 본 제일 큰 우상이 벌떡 일어 나 그 고기 접시를 차지하고는 작은 우상들을 모조리 깨 부 숴 버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데라는 화가 나서 아브라함을 꾸짖었습니다. "이 녀석아, 우상이 무슨 생명이 있다고 그렇게 하겠느냐?" " 아버지, 우리가 생명도 없는 이 우상을 왜 섬겨야 합니까?" 아브라함은 그 사건 이후 가나안 땅으로 갔다고 전해집니다. 거기서부터 아브라함은 진실한 창조자 하나님과 새로운 삶의 출발을 하였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별하심으로써의 구원하여 해방 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야고보는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약 4:4)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애굽은 이미 앞서 말한 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회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사람들은 이러한 세상에서 바른 신앙으로 성별된 생활을 하도록 해방시키십니다. 

헛셀 포오드목사의 글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한 청년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어느날 이 청년이 포오드목사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요. 그러면 제가 사업을 잘해서 주님위해 큰 일을 하겠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를 위해 계속 기도했고, 그 청년의 사업도 놀라울만치 번창했습니다. 사업이 커지자 청년은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약속했던 주님을 위한 큰 사업은 커녕 십일조도, 교회 출석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포오드 목사는 청년의 사업장을 찾아가서 "왜 십일조를 안하십니까?"라고 묻자 목사의 질문에 청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거야 액면이 커지니까 경영상 그 액면의 십분의 일 떼어내기가 힘이 드는군요." "그럼 교회에 왜 출석하지 않는 거지요.?" "사업이 여간 바쁘지가 않아서지요. 여러군데 사업장을 벌이다 보니까 교회에 가고 싶어도 시간이 나야지요." 헛셀. 포오드 목사는 그 청년 실업가의 손을 붙잡고 "우리 한번 기도합시다"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형제의 수입이 너무 커서 십일조 헌금하기가 어렵답니다. 수입의 규모를 훨씬 줄여 주셔서 십일조 떼기에 용이하도록 해 주시옵소서! 또한 교회에 출석하고 싶어도 너무 바빠서 못 나온답니다. 사업장도 적게 줄여주셔서 교회에 잘 출석할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그러자 그는 크게 회개를 했고, 교회에 출석도 잘하고 십일조도 잘 내더라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에 부르스라고 하는 애국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스코틀랜드를 위해서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에 그만 에드워드 황제의 군대에 의해서 포위를 당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의 고향 뒷산에서 당한 일이었습니다. 죽을둥살둥 혈혈단신으로 도망을 했지만 점점 포위망은 좁혀져 왔습니다. 기진맥진하여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멀지 않은 곳에서 귀에 익은 개 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황제의 군대가 부르스의 애견을 풀어 주인의 냄새를 맡게 하고 부르스를 찾아내도록 꾸민 것입니다. 그는 절망 했지만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온 몸이 상처 투성이가 되도록 기고 기어서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이제 그는 한 걸음도 꼼짝할 수 없을 만큼 지쳤습니다. 

그런데 말예요. 꼭대기에서 그 너머 골짜기를 내려다 보니 시냇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부르스는 너무나 반가워 뒹굴다시피 내려가 시냇물에 몸을 숨겼습니다. 곧 개들이 뒤따라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시냇가에 도달해서는 주인의 냄새가 없어져 버렸으므로 허공을 향해 맥없이 짖어댈 뿐이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마귀는 부르스의 애견을 앞세운 황제의 군대처럼 우리의 죄를 끈질기에 물고 늘어집니다. "너는 죄인이야, 너는 절대 살지 못해. 아무리 교회 다녀도 너는 소용이 없어. 너 과거에 지은 죄를 한번 생각해 봐. 너 같은 죄인이 어떻게 의인이 된다는 말이냐?" 그러나 마귀의 그 고소는 사실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예수보혈의 강물에 몸을 던져 잠그기만 하면 아무리 흉악하고 부끄러운 죄라 할지라도 용서를 받게 되기 때문에 따라오던 마귀가 더 이상 추적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해방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급에서 해방 시킨 목적이 그 백성을 자기 백성으로 삼아 사명을 주시고자 함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백성을 시내산으로 이끌어내어 그들과 계약을 맺으시고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의 백성으로 만드신 이유는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선교적 사명이란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을 애급의 노예 생활에서 자유케 하신 하나님을 만민에게 선포하는 일이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선포하는 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원하시는 정의와 평등, 사랑과 자유를 그들이 실현하면서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을 만민에게 선포할 책임을 맡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방을 주신 것도 반드시 뜻이 있아는 사실입니다. 이 해방에는 우리를 그의 백성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있다는 신앙을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바로 이스라엘이 감당했던 놀라운 사명들을 우리에게 위탁하시고 기대하고 계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 이것이 해방의 중요한 의미라는 사실입니다.

출애급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그 백성으로 삼으신 것처럼, 하나님은 8·15 해방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시고 선교적 사명을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땅에서 자유를 실현시키며, 정의를 이룩하고, 사랑과 신뢰의 사회를 이룩해 가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결국 이와 같은 모든 일을 감당해야 할 주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가 바로 이와 같은 선교적인 사명을 자각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곳에 바로 해방을 뜻 있게 맞이하는 길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급을 항상 기억하고 기념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듯이, 우리 민족도 이 해방절을 항상 기억하고 그 뜻을 새기면서 해방과 자유의 역사, 사랑과 구원의 역사를 이루며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며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사명 감당 하는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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