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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빈들의 기적 (요 6: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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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들의 기적 (요 6:4-13)


오늘은 광야에서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이 먹고도 12 광주리가 남은 오병이어의 기적에 관한 말씀입니다.
   
어떤 분이 목사 안수를 받고 교회에 처음으로 부임해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설교 원고를 들고 가서 열심히 설교했는데, 젊은 목사님이 긴장을 해서인지 오병이어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계속 물고기 2000마리와 보리 떡 5000개로 다섯 명 먹였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말씀한 겁니다. 

설교가 끝나고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는데 앞에 계신 성도님이 “나도 그 정도는 한다”고 그랬습니다. 이 분이 너무 무안해서 설교를 다시 하기로 작정하고 지난주보다 더 열심히 설교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신을 차리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였다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이 설교를 잘 끝내고 그냥 내려갔으면 되는데 지난주에 “나도 그 정도는 한다”고 했던 성도님에게 “성도님, 이래도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성도님이 “그럼요. 지금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당황하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성도님이 “지난 주 먹고 남은 것 주면 됩니다”라고 하더랍니다.
   
본문에 나오는 5병2어의 기적은 빈들에서 날이 저물고 사람들이 배가 고프며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기적입니다.
   
4복음서를 종합해보면 5병2어의 기적은 인적이 드문 한적한 벳새다 광야에서 저녁에 일어난 기적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들에서 날은 저물었는데 먹을 것을 구할 수 없고 수만의 사람들은 배고픈 상황입니다. 이것이 기적의 조건입니다.
   
보통 기적은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많은데 먹을 것을 기적으로 만들어 낸다면 기적의 가치가 떨어집니다. 사람은 많은데 먹을 것은 없고 또 당장에 먹을 것을 구할 수도 없는 본문과 같은 상황에서 기적이 필요한 것입니다.
   
제가 한번은 여름에 가락시장에 간 일이 있습니다. 수북이 쌓여있는 수박을 보니 수박이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수박 좀 주세요” 그랬더니 즉시 응답이 왔습니다. 너무나 신비로운 음성이었습니다. “네가 사먹어라” 그 당시 가락시장에는 수박이 많이 있었고 또 제 주머니에는 돈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기적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돈 주고 사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상황이 지금 힘들고 어렵다면 여러분은 기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지금 상황 때문에 절망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기도하십시오. 주님은 지금도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설교 제목은 ‘빈들의 기적’입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빈들에서 어떻게 기적이 일어났는지를 말해줍니다. 저는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레마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의 빈들에도 본문처럼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빈들에서 일어난 기적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1. 빈들의 기적은 믿음으로 일어납니다. 
   
주님은 무리들이 배가 고프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그들을 먹이시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먹이시기 전에 먼저 제자들의 믿음을 시험해 보셨습니다.
   
주님은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은 본래 계산이 빠른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순간적으로 사람의 숫자와 떡의 가격을 생각해서 계산을 합니다. 그리고 주님에게 “각 사람에게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합니다”
   
빌립은 믿음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계산을 하고 그 계산의 결과대로 반응한 것입니다. 빌립은 상황을 비관적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빌립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그는 환경을 보았고 주님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문제만 보았고 주님을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가진 문제입니다.
   
빌립은 이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주님, 주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주님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이곳은 빈들이고 떡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이 하시면 저들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습니다. 주님 기적을 베풀어주세요” 그렇게 기도했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빌립은 주님을 보지 않고 환경만 바라봤기 때문에 비관적으로 말했던 것입니다.
   
어느 화가가 무서운 풍랑을 만난 배 한 척을 그렸습니다. 풍랑은 금방이라도 배와 선객들을 삼킬 듯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겁에 질려서 두려워 떨기는커녕 모두 여유 있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해서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키를 잡고 항해하는 선장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빈들에 계신 여러분! 환경을 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환경 때문에 절망하지 마시고 주님 때문에 희망을 가지십시오.
   
안드레는 반신반의하는 믿음입니다. 그는 한 어린 아이의 도시락을 주님께 드립니다. 그러면서 9절에 보면 이런 말을 합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안드레는 뭔가 하기는 하는데 반신반의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볼 때는 현대 교회에는 안드레형 신자가 많은 것 같습니다. 뭔가 시도는 하지만 확신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는 기대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정말 가능할까? 아마 힘들 걸’이라는 의심이 가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불신앙으로 나가면 주님은 우리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주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갈 때만 주님이 역사해주시는 것입니다.
   
본문의 기적은 빌립이나 안드레의 믿음 때문에 만들어진 기적이 아닙니다. 주님의 믿음 때문에 만들어진 기적입니다.
   
주님은 믿음의 행동을 하셨습니다. 먼저 제자들에게 사람들을 앉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떡을 가지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다는 말은 주님은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으셨다는 말입니다.
   
빈들의 기적은 믿음으로 일어납니다. 믿음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능력과 연결시켜주는 수도관과 같습니다. 아무리 수도꼭지가 좋아도 물탱크와 연결된 수도관이 없다면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1919년 파리에서 개최된 평화회담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랍대표들과 중재 역할을 맡은 사람은 프랑스의 최고급 호텔에 방을 예약해 놓고, 아랍대표들에게 프랑스의 유명한 명소를 관광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관광했던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등의 유명한 명소보다도, 호텔의 목욕탕을 훨씬 더 인상적으로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물이 아주 귀한 사막지역에서 온 아랍 대표들에게는 조그만 꼭지만 틀면 물이 펑펑 나오는 호텔의 목욕탕이 너무도 신기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회담이 끝날 무렵, 아랍 대표들이 묵고 있던 호텔의 목욕탕을 다 뜯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담당자가 달려가서 왜 그런가를 물었습니다. 아랍대표들 대답합니다. “이것을 다 뜯어서 아라비아로 가져가려고 합니다. 물이 없는 사막에서 이 목욕탕은 정말 인기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정말 놀랄 겁니다. 사막 한가운데에 이 목욕탕을 놓고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펑펑 쏟아질 테니까요.”
   
황당한 이야기지만 사실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수도꼭지를 100개를 가지고 아라비아로 가도 그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물탱크와 연결된 수도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수도꼭지와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하나님의 능력의 펑펑 쏟아져 나와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하나님의 능력과 우리들을 연결시켜주는 믿음의 수도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빈들의 기적은 믿음으로 일어납니다. 
 

2. 빈들의 기적은 작은 것으로 일어납니다. 
   
주님은 어린 아이가 내놓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보리떡이 무엇입니까? 보리떡은 가난한 집에서 아이들에게 간식으로도 주고 나귀에게도 먹인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 보리개떡입니다.
   
‘물고기’로 번역된 ‘옵사리온’은 소금에 절인 물고기를 뜻하는 말로서 가난한 자의 주식입니다. 낚시꾼들이 낚시를 하다가 큰 고기가 잡히면 바구니에 담아 가지고 오지만 작은 고기는 다시 물속에 넣어주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도 성경법에 따라 작은 고기는 다시 물속에 넣어 살려줍니다. 그런데 가져오기는 너무 작고 그렇다고 다시 물속에 넣을 필요는 없는 어중간한 크기의 고기가 있습니다. 낚시꾼들은 이런 고기를 바닥에 던져둡니다. 그러면 고아나 과부 등 가난한 사람들은 이것들을 주워서 소금에 절여 양식으로 삼았습니다. 이 물고기는 소금에 절인 자반고등어 같은 물고기입니다.
   
지금 예수님 앞에 보리개떡 5개와 소금에 절인 물고기 2마리가 바쳐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한 끼 도시락 식사입니다. 그런데 이 보잘 것 없는 음식에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실은 5천배가 아니라 2만 배쯤은 되었을 것입니다. 남자 장정만 5천명이었으니 여자들과 아이들을 합하면 2만 명은 넉넉히 되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작은 것으로 큰 역사를 만들어낸 사건들이 많습니다. 그것을 잘 표현해준 말씀이 겨자씨에 관한 말씀일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겨자씨가 들어있는 책갈피를 하나씩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 책갈피에 보면 마 17:20 말씀이 있습니다.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여러분이 받은 겨자씨는 제가 이번에 이스라엘 선교여행을 다녀오면서 가져온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겨자씨는 작은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고, 못할 일이 없다고 하십니다. 겨자씨처럼 작은 것도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면 이 말씀을 묵상합니다. 사 60:22입니다.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하나님의 때가 되면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힘이 약해도, 우리가 가진 것이 작아도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면 강하게, 놀랍게, 크게 그리고 넘치게 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0여도 주님이 무한대이기 때문에 주님과 내가 연합하면 주님은 나를 통해서 무한대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노벨이란 사람이 쓴 ‘조금’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설탕을 조금 써도 음식의 맛을 낼 수 있습니다. 비누를 조금 써도 몸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햇볕이 조금 비춰도 새싹이 힘차게 자라날 수 있습니다. 연필이 조금 남아도 아름다운 글 한편을 쓸 수 있습니다. 양초가 조금 남아도 주위에 환한 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작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 앞에서도 실패자가 될 것이고, 세상 앞에서도 실패자가 될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이 작아도 주님을 믿고 그것을 사용하면 주님은 그 작은 것을 통해서 큰일을 하십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잘못은 자기가 가진 것이 작기 때문에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을 하고 그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화를 당한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공부를 못했어도 괜찮고, 남보다 재능이 부족해도 괜찮고, 남보다 좀 가난해도 괜찮습니다. 내가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큰일을 행하십니다.
   
저는 강윤정 권사님을 보면서 믿음의 능력을 발견합니다. 아시다시피 권사님 가정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형편이 되질 못합니다. 그런데 저를 만난 후에 계속해서 선교여행을 다녀오셨습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이스라엘 사역에 장로님과 함께 가시려고 마음먹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권사님이 형편이 안 될 때도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면 주님은 필요를 채워주셨고, 필요만 채워주신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공급해주셨습니다. 제 아내가 강권사님을 보면서 양파 같다고 표현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주시는 축복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또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전도자 무디는 별로 배운 것이 없으신 분이셔서 말과 글이 서툴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기 전도 집회를 인도할 때 그의 서투른 문법이나 철자가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어느 교회에서 집회가 끝난 후 누군가가 무디에게 “한 번의 설교에 얼마나 많은 문법적인 오류가 있는 단어들을 사용했는가”를 지적했을 때 무디는 감사를 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를 사용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신기하기만 하답니다. 그런데 궁금해서 묻습니다만, 선생님은 그 정확한 문법으로 복음 전하는 일에 얼마나 쓰임 받고 계시는지 궁금하군요?” 아무 대답이 없는 그에게 제발 그 좋으신 달란트를 주님께 드려 쓰임 받으시는 인생을 사시기를 기도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주님은 작은 것으로도 큰일을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주님은 약한 나를 통해서도 큰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는 분입니다.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고전 1:26-28 말씀을 붙드십시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빈들의 기적은 작은 것으로도 일어납니다. 
 

3. 빈들의 기적은 감사로 일어납니다. 
   
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셨다고 했는데 여기서 ‘축사’는 감사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가진 것이 5병2어에 불과했지만 그것으로 5천명이 먹고 12광주리가 남을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셨습니다. 그래서 아직 기적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감사를 선불감사라고 합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날 것으로 믿고 미리 감사하는 것이라 선불감사라고 표현합니다.
   
선불감사로 유명한 간증 세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간증입니다. 미국교회의 십일조 간증집 가운데 ‘A.A. 하아디’라고 하는 억만장자의 간증이 실려 있습니다. 그가 평탄하고 잘 먹고 잘 살 때는 감사라든가 십일조 같은 것은 아예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처절하게 실패하고 수천만 달러의 부채를 지고서 교회에 나와 울고 있을 때 목사님이 무조건 감사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참동안 감사할 조건을 생각하다가 도무지 감사할 것이 없어서 그저 감사하다고 반복적으로 기도했습니다. 바로 그때 성령의 감동으로 감사와 함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가정과 사업을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실패 중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건강이 있으니 감사합니다. 실패 중에서도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비뚤어지지 않고 있으니 감사합니다. 한 시간쯤 감사하고 일어서면서 십일조를 작정했습니다.

기업의 경영원칙을 보면 우선 부채를 갚고 나서 자선사업을 하고 십일조를 하는 것이 원칙인데 그는 빚더미 속에서 십일조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직원들이 입을 모아 “이것은 윤리적 원리에도 어긋납니다.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 부채 상환을 우선으로 해야지 십일조를 우선하는 것은 위선입니다.”하고 공격을 했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지금 윤리적 원리보다 영적 원리가 더 중요하네. 나는 부채 상환보다 도적적, 신앙적 상환이 더 급하다네.” 직원들이 놀라며 “무슨 말씀입니까. 당신이 어디서 도적질을 했습니까?” 그때 하아디는 말라기서를 펴놓고 “나는 하나님의 십일조를 훔친 도적놈이었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하아디는 입으로는 가장 많이 감사를 말하는 사람이요 손으로는 가장 많이 십일조를 드리는 미국교회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간증입니다. 호주에 가면 이영수 장로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호주에 가기를 원했지만, 호주에서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비자를 내주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그분은 날마다 호주 대사관에 가서 대사관 대문의 문고리를 잡고 기도했답니다. 3개월간 문고리를 잡고 기도하는 그분을 대사관의 보초병이 딱하게 여겨 호주 영사에게 보고를 했답니다. 영사가 그분을 만나 비자를 내주었답니다. 그분은 돈 500불과 가방 두 개를 들고 호주로 가서 “하나님, 저는 가난하게 살기 싫어요. 저를 부유하게 해 주세요. 교회도 많이 지을 테니 여기에서 십일조를 가장 많이 하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했답니다.
   
그렇게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학원을 경영하라는 아이디어를 주시더랍니다. 그래서 New College 학원을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학생이 28명밖에 오지 않았답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 100명을 보내어 주실 줄 믿습니다.” 하고 100명이 온 것만큼 십일조를 드렸답니다. 다음 달에 정말 100명이 왔더랍니다. 그래서 또 “500명을 보내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하고 또 500명이 온 것만큼 십일조를 미리 드렸더니 또 500명이 왔더랍니다.
   
그렇게 성장하여 지금은 3500명, 4000명이 모이는 학원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신비로운 은혜를 주셔서 그 학원 졸업생의 92%가 명문 대학에 들어간답니다. 그러니 서로 그 학원에 들어오려고 야단이랍니다. 학생들이 마지막 시험을 보기 전에는 학생들을 다 모아놓고 그분이 안수 기도를 해주신답니다. 지금 그분이 장로님이 되셨는데 십일조를 100만 불씩 드립니다. 학원을 경영하시면서 그렇게 많은 십일조를 드리고 교회도 많이 세우셨습니다.
   
또 하나의 간증입니다. 어느 여집사님이 선불감사라는 내용의 설교를 듣고 매일 술에 만취되어 들어온 인사불성 남편을 끌어다가 겨우 눕혀 세상 모르게 잠을 자고 있는 남편 옆에서 훌쩍 훌쩍 울면 팔자타령을 하면서 절반은 신세타령 절반은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감사기도를 하라는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감사할 일을 곰곰 생각하니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옆에서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을 생각하니 그래도 과부보다는 낫고 앞으로 언젠가는 좋은 남편이 될 가능서이 있어서 감사하고 저토록 취했어도 집을 찾아 올 수 있음에 감사하고 토요일은 더욱 술을 많이 먹어 주일날은 집을 잘 봐주어서 교회 나오는 데 불편하지 않아 감사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남편이 갈증이 나서 잠을 깨어 보니 부인이 웃으며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무엇이 그리 좋아서 웃느냐고 물었더니 당신하고 사는 것이 너무 감사해서 그렇다고 감사를 구체적으로 나열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들은 남편이 “나도 오늘부터 예수 믿어줄게” 하며 선뜻 교회에 나갔다는 것입니다. 후에 이 분이 간증하기를 “10년 동안 그렇게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던 소원이 단 한 번의 감사기도로 이루어졌다”며 감사했습니다.

   
빈들의 기적은 감사할 때 일어난 기적입니다. 
 
4. 빈들의 기적은 나눌 때 일어납니다. 
   
본문에 나오는 어린이는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도시락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 도시락을 나누게 하셨습니다. 신기하게 나누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누면 또 생기고 또 생겨서 5천명이 먹고 12광주리가 남게 되어습니다. 빈들의 기적은 나눌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눔은 헌혈과 같습니다. 헌혈을 하면 피가 모자란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롭고 깨끗한 피가 만들어져서 오히려 더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나눔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면 내 것이 없어지고 나는 궁핍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새 피가 만들어지듯이 하나님의 새롭고 풍성한 공급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 보다 더욱 풍성해집니다.
   
나눔은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심겨지면 그 밀알이 썩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서 수십 배, 수백 배의 열매가 나오는 것입니다. 나눔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눔은 씨앗을 뿌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뿌린 것보다 더욱 풍성하게 열매가 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잠 11:25을 보면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고 말씀합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사람은 있는 것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더욱 풍성해지고 더욱 윤택해지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잘 될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갈수록 풍성해질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뿌린 씨앗을 열매로 돌려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는 어려운 중에도 나누려고 애를 씁니다. 때로는 나눔만 없다면 우리가 더 풍성하게 큰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나누지만 않았다면 부족하지 않게 주의 일을 할 텐데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심고 거두는 법칙을 믿기 때문에 벅차지만 나눔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돌아보면 우리가 돈을 쓰지 않고 모았다면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내는 것을 보곤 합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빈들의 기적을 체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삼일만, 해외결연아동, 농촌교회후원, 기관선교, 선교사후원, 태국선교사훈련원, 사랑의 집짓기 등 많은 일을 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난번 필리핀에 보낸 돈으로 사랑의 집짓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집을 헐고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잘 지어지고, 안전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저는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필리핀에 지은 10채의 집이 주님께 드려진 5병2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번 맥추감사절 헌금은 다 외부로 내보낸다고 했습니다. 당장에 저희가 쓸 돈이 부족해서 일단 사용했고 어려운 분들 소식이 들려오면 도우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지난주에 어려운 분들이 있어서 일단 50만원과 20만원을 지출 했습니다. 우리에게 나눌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필리핀 리빠에 리빠비전교회 건축을 위해서 기도 중에 있습니다. 우리 중에 한 분의 헌신으로 또 새로운 나눔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김현채 목사가 9월 26일에 필리핀에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는 우리의 형제입니다. 지난 3년간 우리와 함께 주님을 섬긴 형제입니다. 우리가 박요한 선교사님과 송병국 선교사님의 사역을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듯이 김현채 목사님의 사역도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가진 비전 중에 하나는 세계선교센터입니다. 각국에서 훈련이 필요한 형제자매들을 선교센터로 불러서 그들을 영성훈련시키고, 그들이 무장된 사역자로 본국에 돌아가서 부흥을 일으키는 비전입니다. 누군가가 이 일에 씨앗을 심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빈들의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최근에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이스라엘 회복이라는 영적 선두주자로서의 비전을 주셨습니다. 이 일에는 많은 헌신이 필요합니다. 많은 나눔이 필요합니다. 레온마진이 몇 일전에 제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역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재정적 후원을 부탁했습니다. 저는 그 짐을 지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나눔의 정신을 실천한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재정적으로 풍성한 축복을 받기를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축복을 넘치게 받고 기쁨으로 헌신해야 우리가 더 많이 더 풍성하게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축복 받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담대하게 나누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이 나누는 곳에 5병2어의 기적이 일어나고, 여러분의 생활의 현장에도 5병2어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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