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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우리의 소원은 통일 (사 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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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은 통일 (사 7:1-14)


I. 아! 해방

2011년 8월 14일 오늘은 해방 66주년을 맞는 조국 광복 감사주일입니다.
이 아침 광복의 감사를 뛰어넘어 통일을 소원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나는 완전히 정신분열증에 걸린 것 같다. 두 손이 떨려 조선독립만세를 부를 수도 없었다. 사랑에서 안방으로, 안방에서 사랑으로 의미없이 들락날락하며 혼자속으로 중얼거리는 것이다. 기쁜 날이 왔다. 기쁜 날이. 

너도 나도 다 같이 기뻐해야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악수하자. 

나는 히죽이죽 웃었고 만나는 사람마다 끌어안다시피 악수했다. 평양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만세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점점 도시로 파급되어 왔다. 온 도시가 만세소리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날 밤이 지난 새벽에 평양신사가 불에 탔다.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고, 한국교회를 박해하던 상징인 평양신사가 불에 탔다. 길거리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저마다 만세소리를 외쳤다. 어떤 중년남자는 생각없이 일본 전투모를 쓰고 나왔다가 사람들에게 봉변을 당했다. 생각없는 어떤 여성은 일본 몸빼 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다가 핀잔을 받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얼싸안고, 만나는 사람마다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다. 이따금 장정을 실은 트럭이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평양거리를 질주했고 그 소리를 듣는 사람마다 이에 화답을 하여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태극기가 온 도시 안에 만발하게 되었다. 

이는 조만식 선생의 친구요 민족지도자였던 오윤선 장로의 아들 작가 오영진 씨의 글 중에 나오는 글입니다. 

1945년 8월 15일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같은 기적을 보여주신 축복의 날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었던 해방이었기에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총이었습니다. 

1910년 8.23 우리나라가 일본의 강압에 의해서 한일합방에 조인함으로 그때부터 나라잃은 백성이 되고 해방되기까지 36년간 슬픈 역사의 주권없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땀 흘려 농사지은 것 공출로 착취당하고 아버지는 보국대, 형님은 징용으로 전쟁터에 총받이로 누님은 정신대로 끌려가서 위안부가 되고 이름도 성도 빼앗기고 창씨 개명을 하였으며 나중에는 말도, 글도 빼앗기고 민족혼이 말살당할뻔 했습니다. 애국자는 감옥으로, 지식인들은 조국을 등지고 망명하고 남은 백성은 생존의 권리마저 잃고 박해, 빈곤, 설움에 죽지 못해 살았습니다. 교회당에는 일본 귀신 들여놓고 절하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비참한 상황속에서 해방이 되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일본은 8월 17일에 민족과 교회의 지도자들 무수히 죽일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나 8월 15일 해방되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배후에서 역사를 운전하고 계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해방은 하나님의 큰 역사로 얻은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광복되자마자 분단이 되었습니다. 남쪽에는 미군이 지배하고 북쪽은 소련군이 지배했습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자가 갈등을 하고 서로 싸웠습니다. 그 결과 6.25전쟁이 일어났고 6.25전쟁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파괴되고 모든 것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황폐화되었습니다. 건물들만 파괴되고 황폐된 것이 아니라 정신과 감정도 황폐되었습니다. 국토뿐만 아니라 정신도 폐허가 되고 황폐화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고통과 눈물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 경제위기가 국방력의 악화를 가져올 것이요 그것이 한반도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 한반도 주변 정세는 극한의 갈등과 긴장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언제 이 땅에 엄청난 재난이 닥칠지 모르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북핵 문제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대가를 지불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는 방향으로 통일의 문이 열릴지 예측이 어렵습니다. 

이런 때에 국민된 도리로서 아니 이 땅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기도해야 한단 말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II. 아! 통일

♪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겨레 살리는 통일     이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이 노래는 안병원 선생의 곡입니다.
안병현 선생은 죽기전에 통일이 되면 남과 북의 어린이들을 모아 판문점에서 직접 지휘하며 목메이게 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늘 말씀해 왔습니다. 
우리가 어릴때 그토록 즐겨 부르던 이 노래가 요즘은 뜸해지고 희미해 졌습니다. 

통일! 그것은 누가 뭐래도 우리 민족의 소원이요 한국 땅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숙제입니다. 그것은 북진통일이나 적화통일이 아닙니다. 오직 복음으로 미움을 없애고 무신론을 무너뜨리고 물질주의의 허상을 깨는 것입니다. 

한반도에 통일은 단순히 분단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통일을 꿈꾸어 봅니다. 통일 한국은 복음화된 사회,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지배하는 이땅의 하나님 나라를 꿈꾸어 봅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지상명령 앞에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울부짖는 우리의 소원입니다. 

1945년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며 우리는 해방이 되는 줄 알고 마냥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곧 바로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두 동강이 났습니다. 국토가 갈라지고 민족이 엉뚱한 이념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침략국가였던 독일이 제2차 대전이후 책임국가로서 분단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침략국가인 일본이 분단된 것이 아니라 식민주의와 전쟁의 희생자인 한반도가 왜 분단이 되어야 했는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지는 일입니다. 우리 민족이 언제 분단을 원했습니까? 그 분단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참여하고 동의한 적이라도 있었더란 말입니까?

분단이후 침략 전쟁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 북한군이 쳐 들어온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동안에 유럽전지역에 투하된 폭탄보다 더 많은 양의 폭탄이 투하되어 삼천리 금수강산은 하루아침에 초토화되고 말았습니다. 이 전쟁에서 250만의 군인과 600만의 민간인이 희생되었고 300만의 피난민과 1,000만명의 이산가족을 낳았습니다. 이 전쟁으로 얻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뀌어 진 것 말고는. 이때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 노래는 노래가 아니라 피맺힌 절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오랜세월 통일의 날을 기다리며 통일을 소원해 왔습니까? 
이 소원은 어느 개인의 소원이거나 어느 정당, 어느 계층, 어느 종교의 소원이 아닙니다. 전 민족의 소원입니다.

신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조국이 있습니다. 저는 6.25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지 저는 민족과 통일에 대한 남다른 열망과 기도가 많은 사람입니다. 우리교회는 이곳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북녘에 있는 동포들에게까지 전 한민족 앞에 예수그리스도의 소망을 선포하고자 한소망교회라 이름했습니다. 우리교회는 한민족 앞에 소망을 선포합니다. 
통일한국, 복음한국은 세계 앞에 당당한 소망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한소망교회입니다.

우리교회가 한강너머 북한 땅이 보이는 이곳 일산에 자리 잡은 것도 이곳이 통일도시가 되리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내 아버지가 이곳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피를 흘렸다면, 나는 예수복음으로 이 민족을 구하기 위해 피를 흘리렵니다. 내 아버지가 나라를 위해 죽었다면 나는 예수복음으로 이 민족을 살리기 위해 죽으렵니다.”

III. 임마누엘 대한 민국

오늘 본문에 분단의 한 역사가 나옵니다. 때는 예수님이 나시기 약 800년전 일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왕조가 깨지고 남과 북으로 나뉘어지고 말았습니다. 남쪽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중심으로 유다 나라를 건설했고 북쪽엔 10지파가 모여 이스라엘을 세웠습니다. 나뉘어진 남북왕조는 걸핏하면 싸움을 했고 때로 외국의 힘을 빌어서까지 상대를 치곤 했습니다.

본문 이사야 7장에서 북쪽 이스라엘 왕이 아람 나라를 등에 엎고 남쪽 유다를 침공해 왔습니다. 유다로서는 전혀 예측도 준비도 못한 일이라 아하스 임금과 온백성은 두려워 떨 수 밖에요.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 유다를 위로하고 오히려 큰 꿈을 꾸게하는 일련의 내용이 오늘 본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낙심하지 말아라. 지금 너희 나라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다. 저들은 부지깽이처럼 꺾여지게 될 것이다.” 

그 결론이 본문 마지막 14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앞에서 조국의 장래가 어찌 될 것인가 염려하는 백성들에게 “처녀가 아이를 낳을 것이다” 이 말씀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적들은 지금 개미떼처럼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막을 힘도 능력도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응답을 주신다면 강한 무기를 공급해 주마. 

아니면 넉넉한 지원군을 보내 주마. 이래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너는 반드시 이긴다. 약속의 징표를 보이리라. 처녀가 아이를 낳게 될 것이다. 바로 여기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열세한 군대와 조악한 무기로 강한 적군을 이기는 일이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아니면 처녀가 아기 낳는 일이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본문이 말하는 메시지는 처녀가 얘기 낳는 엄청난 일을 통해 전인류를 구원할 내가, 나는 천지우주만물을 창조한 창조자이며 전능자임이니라. 불리한 전쟁을 역전시켜 너를 구원하는 일이 뭐가 그리 어렵겠느냐? 이 말입니다.

한국교회는 참으로 오랜 시간동안 중국과 러시아에 복음의 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기도하면서도 우리는 그것이 너무나 엄청난 일이라 믿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루 아침에 선교의 문이 열려졌습니다.

통일도 북한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한국교회는 신뢰해야 합니다. 포기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처녀 몸에서 구세주가 나게 하신 그 하나님을 믿고 포기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북한땅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북한선교에 가장 큰 걸림돌은 북한에 대한 지나친 부정적인 시각입니다. 그렇다고 지나친 낙관론도 금물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이 엄청난 기적으로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 휴전선을 녹이지 못하겠습니까? 철의장막 북한땅의 문을 열지 못하겠습니까? 칼과 총을 녹여 괭이를 만들고 보습을 만들지 못하시겠습니까? 비료를 싣고 쌀을 싣고 들어가던 그 차에 선교사와 평신도 선교사들이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들고 들어가는 날이 반드시 우리 앞에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민족을 떠나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겨레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고난과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주님은 역사의 구경꾼이 아닙니다. 그 고난의 현장에 함께 하셨습니다.

그분은 분명 나와 함께 하셨고 여러분과 함께 하셨습니다. 

분명 성경은 임마누엘 - 우리와 함께 한다고 말합니다. 한국교회와 함께 하셨던 주님, 북녘 동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나를 구원하신 우리주님, 북한 형제자매들 구원하시길 원하십니다. 여기에 우리의 기도가 있고 비전이 있고 사명이 있습니다. 

사실 통일에 비는 비용은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든 경제적인 것이든 만만한 것은 아닙니다. 쉽게 생각하면 통일하지 말고 우리끼리 사는 것이 훨씬 편하고 잘 살 수도 있습니다. 기득권 층에 계신 분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 댓가가 어떤 것이든 그것은 마땅히 우리가 지불해야 될 것들입니다. 그런점에서 오늘 진정 울어야 할 사람들은 북한 주민들이 아니라 저들을 구원해야 할 이땅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멸망이 다가온 민족의 비운과 거기서 함께 타락해 가는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시며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 하였다”고 한탄하셨습니다. 예수님 오늘 우리 가운데 찾아오신다고 하면 한국교회도 북한 선교에 대한 비젼을 평화에 복음을 좀더 깊이 있게 알았더라면 좋을 뻔 하였더라고 한탄하시지 아니하시겠습니까?

해방후 66년! 남과 북이 나누어진 후 지금 북한은 세계 최빈국가가 되었습니다. 국제 인권감시단체인 프리덤 하우스의 보고에 의하면 북한은 지난 40년간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자유가 억압당하는 최악의 국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양식도 예수도 복음도 없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어떤 정권이든 하나님을 버리면 그 정권이 버림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나라는 복을 받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저기 북한 동포를 구원해야 합니다. 
통일 한국이 세계 열방에 복음을 전하고 섬기는 그 날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통일을 원하는 주변 국가는 없습니다. 미국, 일본, 중국, 소련도 원치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이 부강한 국가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다께무라 겐히찌라는 평론가가 있습니다. 
그는 일본의 국제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통일이 되면 일본에게 많은 손해가 난다. 그래서 일본의 국가적 이익으로 봐서는 남북통일이 안되게 지연시켜야 한다. 그 이유는 만일 남북통일이 되면 엄청난 군대를 가지게 되는데 북한의 120만, 남한의 50만 합하면 170만 군대가 한반도에 있게 된다. 그런데 일본의 군대는 자위대 18만이라 170만대 18만이면 이건 게임이 안된다. 한국이 지난간 과거에 일본에게 그렇게 설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통일국가를 이루면 그 군대로 일본을 침략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까 한국이 통일이 안되도록 외교적인 노력을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냉엄한 국제적 시각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희망이 있습니다. 
한국 민족 평화통일을 가장 원하시는 분은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계획과 뜻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한국의 통일을 열망하며 이 나라를 위하여 중보기도하시다가 돌아가신 
고 대천덕 신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한국의 통일을 위해 하나님이 행동하실 기도의 잔이 다 차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잔이 다 채워지기까지 기도할 중보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그 누구보다도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중보의 용사들의 중보의 잔이 다 차면, 그리고 마침내 때가 이르면 주께서 일어나실 것입니다. 해방이 선물로 주어졌듯이 통일 또한 하나님의 선물로 문득 찾아 올 것입니다. 

북녘땅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해야 할 때입니다.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부르짖던 모르드개와 에스더처럼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기도만이 이 민족을 구원하고 기도만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기도하는 민족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통일의 환상을 가진 민족을 하나님께서 버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복음화의 비젼을 가진 교회를 하나님께서 크게 쓰실 것입니다.

IV. 통일을 주소서

다시 말씀드립니다. 기독교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는 조국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역사 한가운데서 한국민족이 함께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일찍이 사도 바울은 자기 동족을 구원하기 위해 애끓는 고백을 한적이 있습니다.“내가 그리스도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

처녀 몸에서 잉태되시고 임마누엘로 우리 가운데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 이름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그분은 이땅의 정치 지도자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빵을 나눠주는 경제 지도자로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바로 죄악으로부터 이 백성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우리민족의 문제는 바로 죄의 문제입니다. 달러가 말라서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심이 메마르고 진리가 말라서 망하는 것입니다. 휴전선 철조망 세워 나라를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도덕을 세우고 정의를 세워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이제 이민족의 죄를 우리가 함께 가슴에 끌어안고 회개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허물과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전쟁을 일으켰던 북한 동포의 모든 허물도 우리가 가슴에 끌어안고 회개해야 합니다.

어떻게 통일을 이룰 수 있으며 북녘땅에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저들에게 자유를 나눠주며 해방을 선포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미국이 잘 포장하여 가져다 주는 선물이 아닙니다. 
우연한 기회에 굴러 들어오는 요술 호박이 아닙니다. 
시간만 가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기계장치도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하늘보좌에서 내려와 고난의 현장에 함께 하신 예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살고 민족이 삽니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야 통일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데 기도하는 사람이 없어 나라가 망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못하고 내 일만 하고 편안히 누워 있는 것만을 즐겼더라면 우리는 분명 이렇게 생각하시면 틀림이 없습니다. 
“아, 내가 나라를 망치고 있구나!” 
대통령이 정치를 잘못해서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가 조금 어렵다고 민족이 망하지는 않습니다. 
사업이 조금 안된다고 굶어 죽지 않습니다. 
문제는 나라를 위해,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하늘 문, 역사의 문을 닫으십니다. 
그 날이 바로 이 민족이 망하는 날입니다. 

일찍이 나라사랑에 생애를 바쳤던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일본이 아니요 이완용도 아니요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요. 내가 왜 일본으로 하여금 내 조국 안방을 차지하게 하였으며, 이완용으로 하여금 조국을 팔도록 내버려 두었소? 그러므로 망국의 책임자는 곧 나 자신이요. 자손은 조상을 원망하고, 후진은 선배를 원망하고 민족 불행의 책임을 자기 이외로 돌리려 하니, 왜 남만 책망하시오? 우리나라가 독립이 못되는 것이 ‘아! 다 나 때문이로구나!’하고 가슴 두드리며 뉘우칠 생각은 왜 못하고, 어찌하여 그 놈이 죽일 놈이요, 저 놈이 죽일 놈이라고만 하시오? 진정 내가 죽일 놈이라고 왜들 깨닫지 못하시오?”

그렇습니다. 바로 나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새로워지면 나라가 새로워집니다.

V. 참된 해방의 그날을!

그렇습니다.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 아픔을 가슴에 끌어안고 우는 것입니다. 함께 우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 백성에게 영광을 달라고 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오, 하나님

• 조그마한 내 나라를 이토록 키워 주신 당신의 뜻이 무엇입니까?
• 가난하기만 했던 이 나라를 이토록 부하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 짓눌리고 억압받던 내 조국을 이토록 자유케 하신 하나님의 경륜이 무엇입니까?

- 나를 자유케 하시고 이 나라에 해방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 믿음에 부유케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하고 열방에 주의 이름을 높이리이다.
- 주께서 자유케하신 이 땅에 다시 억압과 전쟁의 상처가 있지 않게 하소서.
- 속히 통일의 그날, 모두를 용서하고 모두가 기쁜 진정한 해방과 자유의 날을 주소서. 

주여!

• 한국교회의 약함과 허물을 용서하소서.
• 한국교회 일으켜 우리민족 잘 섬기게 하소서.
•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 이 백성 살려 주소서. 
• 우리의 소원은 통일 - 통일을 주소서!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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