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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멀리 숨으시는 하나님? (시 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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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숨으시는 하나님? (시 10:1-18)  
 
 
1. 왜 악하게 사는 사람이 잘 되고, 착하게 사는 사람은 고생하는가? 

악한 사람이 착한 사람을 괴롭히고 억압하고 죽여도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시는가? 그렇다면, 왜 악한 사람들을 징벌하지 않으시는가?
이런 질문들을 한번 쯤 다 해보셨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0편은 이런 고민을 안고 기도한 내용입니다. 

지난 주간에 휴가를 보내면서, 이어령 초대문화부장관의 딸인 이민아씨가 쓴 <땅끝의 아이들>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자녀교육을 하는 부모님들이 한번쯤 읽어보면 유익합니다. 이민아씨는 소위 잘 나가는 부모의 딸로서, 부모님을 만족시키려고 자기가 하기 싫은 공부를 열심히 하였고, 그래서 미국에 이민 가서 부장검사까지 한 소위 성공한 한국교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밝고 화려한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낮이 있으면 밤도 있습니다. 그는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과 결혼하여 아들까지 낳았지만, 유학생활에 지치고 힘들어하면서 이혼을 하게 됩니다. 

홀로 아들을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고 외로워서 재혼을 하였고, 세 자녀를 낳습니다. 이렇게 힘든 삶을 살면서 그는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래도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버클리대학에 다니던 똑똑한 큰 아들이 원인도 모른채 코마상태에 빠져 19일만에 세상을 떠났고, 둘째 아들은 자폐증을 앓았고, 자신은 갑상선암에 걸려 고생하였고, 망막이 찢어져 시력을 상실하는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런 감당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어떻게 믿음으로, 기도와 말씀으로 치유받고 회복되었는지, 고난에 대한 승리의 역사가 실려 있습니다. 이민아씨는 1992년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제대로 영접한 것은 2002년이었다고 합니다. 그 때는 자폐증으로 고생하는 둘째 아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매달렸는데도 아이가 낫지 않으니까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 더 이상 기도도 할 수 없고, 하나님도 원망스럽고 굉장히 깜깜한 흑암의 시기였다고 합니다. 그 때, 주님께서 이민아씨를 만나주셨습니다. 어두움 속에 있을 때, 빛이신 주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바로 오늘 1절 말씀과 같습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아무리 기도해도 해결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 멀리 계시는가, 하나님께서 숨으셨나,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가 라는 믿음의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이민아씨는 2002년 2월22일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게 됩니다. 지난 10년간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께서 주님 되신 적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자기 인생의 주인은 여전히 자기 자신이었답니다. 이런 자신의 지난 날을 회개하고, 예수님께 자신의 인생의 전권을 이양하겠다고 기도했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너는 빛이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런데, 자신의 삶은 자폐증을 앓는 둘째 아들로 인해 여전히 어둠에 묶여 있는 삶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매달려 기도했답니다. “예수님, 제 안으로 들어오셔서 저에게도 이 흑암을 이길 수 있는 빛의 권세를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던 중, 2007년에 아들의 자폐가 완전히 사라져 건강하게 되었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멀리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숨으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와 함께 계셨습니다. 도와주셨습니다. 치료해주셨습니다. 
내가 원하는 때가 아닌,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2. 본문 2-11절을 보면, 시인을 힘들게 하는 악한 사람의 모습을 이렇게 열거하고 있습니다. 

2절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압박하오니”
3절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4절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5절 “그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그에게 미치지 못하오니”
6절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흔들리지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다.”
7절 “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며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8-11절에서는 악인은 무죄한 자를 죽이며, 가련한 자들을 포악으로 넘어뜨리고, 온갖 악한 일들을 다 하면서도, “하나님이 보지 아니하시리라” 고 말합니다. 

악한 사람은 사탄의 조종을 받기 때문에 악한 짓을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답고 건강한 삶을 깨뜨립니다. 
세상에 온갖 추악하고 냄새나는 것들, 죄악들을 뿌려놓습니다. 
이 사탄은 우리 외부에서 악인을 통하여 우리를 괴롭힙니다. 또, 우리 내부의 나 자신, 자아(ego)를 통하여 나를 넘어지게 합니다. 욕망으로 가득찬 자아, 정욕에 빠지기 쉬운 나 자신, 이기적이고 교만한 나의 자아가 나를 힘들게 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부부관계를 깨뜨려놓습니다. 가정을 파괴시킵니다. 교회안에서도 성도들 사이를 이간질시킵니다. 시기하고 질투하게 만듭니다. 직장에서도 윗사람에게는 고분고분하면서도 아랫사람에게는 거칠게 대하도록 만듭니다. 동료를 칭찬하기보다는 약점을 비방하고, 세워주기보다는 넘어뜨리려 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나오는 악한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신이 이런 악한 행동을 하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우리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힘든 환경이 우리를 거짓말쟁이로, 탐욕에 물든 사람으로, 악한 말을 퍼붓는 사람으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사랑받기를 그토록 갈망하는데, 남편에게 혹은 아내에게, 혹은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여서, 내가 사랑해야 할 그 사람을 도리어 미워하고 증오할 때도 있습니다. 

3. 이렇게 악한 사람에게, 또는 나 자신의 연약함으로 고통 당할 때, 시인은 어떻게 대처합니까? 

12절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미움이 일어날 때, 정욕에 마음을 빼앗길 때, 욕심에 이끌려 다닐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살 길이 열립니다. 미움을 이기고 사랑을 회복하는 길, 정욕을 벗어버리고 하나님만 사랑하는 길, 욕심을 내려놓고 베풀며 사는 길, 이런 회복과 변화의 길은 하나님을 만날 때 열리게 됩니다. 
갈 5:16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욕심, 정욕을 벗어나는 길은 성령을 따라 살면 됩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은 곧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말합니다. 
기도하면 성령충만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악을 이기는 길은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기도하십시오. 

4. 이제 말씀의 서두에 드렸던 질문을 다시 생각해보고 그 해답을 찾아봅시다. 

악한 사람은 잘 되는데, 착한 사람은 왜 고난이 많은가? 
하나님은 왜 악인을 징벌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시는가? 
내가 고난 당할 때, 하나님은 멀리 숨어 계셔서 보지 않으신단 말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시인은 분명히 하나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14절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악인들의 악행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더라도, 우리 힘으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밑바닥까지 내려가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승리의 길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때가 옵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나사로와 그의 여동생 마르다와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를 몹시 사랑하셨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냈습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친구가 병들었으니 고쳐주십시오.” 그러나, 예수님은 내려가시지 않으시고 나흘을 기다리셨다가 나사로가 죽은 후에 내려가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속히 응답해주시고 문제를 해결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예수님 오시기를 코가 빠지도록 기다리던 마르다와 마리아, 오빠가 죽을 때까지 오지 않으셨으니 얼마나 실망했겠습니까? ‘예수님도 너무 하시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이 빈 말이 아닌가? 다른 사람들은 길 가에서 만났더라도 즉시 고쳐주셨는데, 문둥병자도, 시각장애인도, 청각장애인도, 불쌍히 여기셔서 고쳐주셨는데....왜 우리 오빠는 고쳐주러 오지도 않으신단 말인가?’

예수님께 대한 섭섭함, 거절감의 상처, 무시당했다는 느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을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고 난후, 주위 사람들도 비아냥거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사로 가정을 사랑하지 않은 게 분명해. 예수 믿어도 별 수 없어.’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째 되는 날에 오셨습니다. 나사로의 무덤에 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유대인들의 무덤은 큰 돌로 입구를 막아놓았던 것입니다. 마르다가 대답합니다. “주님,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습니다. 송장 냄새가 납니다.” 이 말은 ‘죽었는데, 다 끝났는데,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셨습니다. 

이 말씀은 왜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멀리 계시며, 숨어 계시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하나님께서 고난의 때에 왜 침묵하시는지 알게 해줍니다. 
내 자아가 죽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만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나사로가 죽음으로 마르다와 마리아는 자신의 계획, 꿈, 자신의 방식이 죽었습니다. 
다시 말하여, 마르다와 마리아의 자아가 죽었습니다. 
‘내가 그래도 괜찮은 사람인데, 하나님을 위하여 꽤 많은 일을 했는데, 내가 사회에서 꽤 인정받는 사람인데...’ 

이런 교만과 자랑이 죽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늦게 가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속히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님만이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높여드리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정결하고 거룩한 신부로 우리를 맞이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영혼, 삶과 인격을 주님의 신부에 걸맞게 다듬어 가십니다. 여기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하나님께서 왜 빨리 도와주시지 않는가,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 계신단 말인가, 
왜 이 문제를 아직도 해결해주시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아름다운 신부로, 정결한 신부로 예쁘게 분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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