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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의 종류 (마 13: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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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종류 (마 13:18-23) 

 
하나님 나라의 신비는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마 13:11).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실 때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하신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마 13:34).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천국론에 대한 설교도 일곱 가지 비유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씨 뿌리는 비유’에는 네 종류의 밭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밭을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은 사람에게 있어서 인격의 중심이요, 복음의 접촉점이 됩니다. 농부가 밭에다 씨를 뿌리듯이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씨를 뿌릴 때 마음의 종류에 따라서 열매를 거두게도 되고 거두지 못하게도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씨를 받아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으며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는 밭이야말로 이상적인 마음입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소개하신 네 종류의 밭을 통하여 인간의 마음을 조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타락한 마음입니다.

성경은 범죄한 인간의 마음을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렘 17:9). 우선은 길가 밭이나 돌 밭이나 가시덩굴보다 옥토가 좋아 보이지만 자연인의 마음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1) 거부하는 마음입니다.

3-4절에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라고 해석하였습니다(19절). 범죄 타락하여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사는 사람은 버려진 마음의 소유자입니다(롬 1:28). 그것은 마귀가 지배하고 있어서 자기의 마음을 자기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에베소서 2:2에 보면 사람들의 마음을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어서 언제든지 그가 원하는 대로 끌고다닌다고 하였습니다. 마귀는 거짓과 참소와 이간질을 통하여 사람의 마음에서 복음을 거부하게 만들곤 합니다(행 13:8-11).

2) 강퍅한 마음입니다.

5절에는 “흙이 얇은 돌밭”이라고 하였습니다. 표면은 흙이지만 내면은 딱딱한 돌입니다. 사람의 얼굴을 하고도 짐승의 마음을 가진 사람(人面獸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가리켜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하였습니다(마 7:15). 애굽의 바로 왕이 강퍅한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그는 모세와 만났을 때, 처음에는 그 말을 듣는 듯하다가도 잠시 후 또 다시 강퍅한 본성으로 되돌아가곤 했습니다(출 8:28-32). 

마음 바탕이 악하거나 굳어 있는 사람은 겉으로 아무리 표정 관리를 잘하고 좋은 말을 하더라도 본성이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시편 5:9에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

3) 복잡한 마음입니다.

7절에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라고 하였습니다. 22절에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씨앗이 싹이 나더라도 무성한 가시덩굴과 엉겅퀴에 짓눌려 볕을 보지 못하면 제대로 발육하지 못하게 되고 결실을 못합니다. 

마음이 단순하지 못하면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에 시달립니다. 온갖 염려와 재물에 대한 유혹과 명예나 쾌락이나 사방으로 얽힌 인간관계나 세상적인 일들이 마음을 지배하고 있어서 순수한 복음의 도리가 자리잡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마음입니다. 마음이 혼란하거나 복잡한 사람은 진실을 거짓으로 바꾸거나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2. 회개한 마음입니다.

이는 씨가 자라고 열매 맺기 좋은 토양을 의미합니다. 23절에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돌이나 잡초를 다 추려내고 옥토를 만들 듯이 회개를 통하여 마음속에 있는 거짓과 탐심을 추방시키고 깨끗한 토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1)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중국의 사상가인 맹자(孟子)는 인간은 본바탕이 선하다고 보고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마음이 죄로 인하여 변질되었기 때문에 결코 선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3:11-12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자연 그대로 방치된 땅이라면 울창한 수풀이나 잡초로 우거져 있을 것입니다. 돌과 나무로 거친 토양이라도 이를 갈아엎고 관리하면 좋은 땅이 되는 것처럼 방치된 자연인의 마음도 교육이나 훈련을 통하여 부드럽게 다듬을 수 있습니다. 교육을 받고 교양을 쌓는 것과 함께 세상 풍파와 시련을 통해서도 마음의 토양을 다듬게 됩니다. 

2)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아무리 길가 밭이나 굳은 돌 밭이라도 다이너마이트 같은 폭약으로 폭파를 시키고 또 가시 덩굴이나 엉겅퀴라도 불을 지르고 쟁기로 갈아엎어서 토양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마귀에게 지배당하고 죄로 굳어진 마음이라도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가 임하게 되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경은 이것을 복음의 능력(δυναμι󰐠)이라고 하였습니다(롬 1:16). 오순절에 성령 받은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무리들 중에 마음이 찔려 사도들을 향하여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며 통회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행 2:37). 바울과 실라를 매로 때리고 발에 차꼬를 채우고 꼼짝 못하게 하던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성령의 역사하심에 따라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하고 바울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행 16:30). 그렇게 서슬이 시퍼렇던 사람들도 성령의 능력으로 마음이 녹아지면 회개가 일어났습니다.

3) 방심할 수 없는 마음의 상태

아무리 깨끗하게 정돈된 밭이라도 얼마동안 방치해 두면 곧바로 가시와 잡초의 밭이 되고 맙니다. 좋은 씨만 뿌린 밭에 원수가 가라지 씨를 덧뿌려 놓기도 합니다(마 13:25). 예수님의 말씀 중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가서 물 없는 곳으로 돌아다니다가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전에 나온 집 앞에서 기웃거렸더니 집은 깨끗이 청소되고 수리되었지만 주인이 없는지라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갔더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마 12:43-45). 사도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하였습니다(벧전 5:8). 성령 받은 성도가 회개를 통하여 깨끗한 마음을 가졌다고 방심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순간에 육체의 소욕에 지배당하게 됩니다(갈 5:19-21). 회개한 사람이라도 그 마음 속에는 항상 두 가지 사람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롬 7:22-23).

3.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였습니다(고후 5:17). 곧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변화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그 마음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을 의미합니다(빌 2:5).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특징이 있습니다.

1) 신앙 고백입니다. 

인간의 의지는 믿을 것이 못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중생(重生)의 체험이 있는 사람이라도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지는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자 하나 육신의 사람이 죄악의 법을 따르게 한다고 하였습니다(롬 7:23). 이처럼 자기의 연약함을 아는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강하게 의지합니다. 그것이 곧 신앙입니다(사 41:10).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다는 신앙을 고백합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를 알게 하신이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마 16:16-17). 고린도전서 12:3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 믿음의 체험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성공과 실패의 여러 가지 체험을 통해서 예수님의 마음이 뿌리내리게 됩니다. 사도 바울처럼 자기 속에 두 가지 마음이 있어서 갈등을 빚는 때가 많고 그것 때문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고 하며 탄식하기도 하였지만 결국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저를 해방시켰다고 개가를 불렀습니다(롬 7:24-8:2). 베드로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말씀도 들었고 행하시는 이적들도 보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마 14:28-29). 벳새다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보고도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떠나갔지만 그는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하고 따랐습니다.

3) 그리스도의 삶이 실천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신 사람은 그의 인생을 예수님의 삶으로 고정시킨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 5:24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가리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라고 합니다(롬 6:6). 곧 예수님과 한 몸으로 묶여진 상태에서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된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삶에 고정된 사람은 자기 몸을 자기의 의지대로 사용하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랑의 고백을 들으신 다음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하였습니다(요 21:18).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매여서 사는 삶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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