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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실하게 살라 (연약한 믿음의 결과) (창 2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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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하게 살라 (연약한 믿음의 결과) (창 26:1-11)

영국의 수상 처칠이 하루는 급한 용무가 생겨 기사에게 전속력으로 차를 몰게 했습니다. 어느 사거리에서 신호등이 바뀌는 바람에 기사는 일단 차를 멈추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급한 처칠은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다행히 차도 보행자도 전혀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사에게 그냥 가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차가 어느 정도 앞으로 나갔을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교통순경이 그의 차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처칠은 할 수 없이 자신의 신분을 밝혔습니다. “여보게 나는 수상 처칠이라네. 내가 바쁜 일이 있어서 신호를 지키지 못했는데 좀 봐줄 수 없겠는가?” 그러자 교통순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가짜요! 영국의 수상은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을 리가 없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처칠은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잘못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나라의 수상이지만 수상답지 못하게 교통질서를 어겼으니 그처럼 교통순경에게 창피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신분에 걸맞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큰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어느 해, 이삭이 사는 그곳 팔레스타인 땅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살던 브엘라해로이에서 조금 떨어진 그랄이라는 지방으로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또 다른 큰 걱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아내 리브가가 너무 예뻐서 다른 사람이 자기 아내를 빼앗아 가려고 자기를 죽이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정말 예뻐서 그랬는지 아니면 혼자 착각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좀 별난 사람인 것만은 틀림없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는 그 일을 걱정하다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그것은, 자기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는 누이동생이라고 속이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리브가를 빼앗기 위해 자기를 죽이려는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곳 사람들은 정말 리브가를 이삭의 동생으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 안가서 탄로가 남으로써 이삭은 큰 창피를 당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먼저, 우리 인간은 누구나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삭이 누구입니까? 그는 하나님이 직접 부르셔서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던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가장 믿음이 좋은 부모 밑에서 자라난 사람입니다. 그뿐입니까? 그는 아예 태어나기도 전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미 정해졌던 사람입니다. 더욱이 그는 어린 시절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한 아버지 아브라함의 뜻을 따라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기까지 한 사람입니다. 신앙으로 따지자면 최고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아무리 그랄 사람들이 흉악하여 자기 목숨이 위태롭게 느껴진다 할지라도 아내를 동생이라고 속이는 일을 하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대체 그가 가지고 있던 지금까지의 그 믿음은 어디로 가버리고 그렇게 한 것일까요?

더욱이 이삭이 그처럼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을 해내고, 그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한 적이 언제입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반드시 복을 주시겠다고 다시금 약속하신 얼마 후의 일입니다. 오늘 본문 2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은, 흉년이 들어 애굽으로 내려갈까 어떻게 할까 하고 망설이는 이삭에게 하나님이 오셔서, 영혼과 육신에 큰 복을 내려줄테니 애굽에 가지 말고 안심하고 그곳에 있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그렇다면 비록 객지에서 어렵고 힘든 일이 있다할지라도 지금쯤 믿음이 충만하고 기쁨이 넘쳐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막상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니까 두려움에 떨면서 하나님의 그 축복에 대한 믿음은 다 사라지고 자신의 인간적인 수단만 떠올랐던 것입니다. 얼마나 실망스러운 모습입니까? 이삭이 이렇게 할 줄이야 정말 몰랐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잘못을 합리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용납하며, 또한 더욱 하나님의 은혜만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어떤 신분을 가진 사람이 무슨 실수를 하거나 어떤 잘못을 하면 크게 비난하거나 실망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됩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고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그도 한 연약한 인간이기에 얼마든지 그런 실수를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것을 기억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주님의 마음처럼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고 용납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 중에 ‘나는 절대로 넘어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장담하실 분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내 힘으로는 어느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항상 기억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하나님 보시기에 다소 부족한 것 같고, 또 받은 사명도 좀 더 충실하게 감당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 다 제가 못나서 그렇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교회에 큰 은혜를 내려 주십시오.”하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는 중에 이렇게 깨달아집니다. ‘네가 못난 사람인줄 이제 알았느냐? 그런데 만약 네 말대로, 네가 잘못해서 무엇이 잘 안되고 있다면, 반대로 무엇이 잘 되면 네가 잘해서 그렇게 된다는 의미가 되지 않느냐? 그렇다면 그것은 모두 네 힘으로 한다는 의미가 아니냐?’ 하는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아, 이것은 나의 교만한 생각이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그래서 다시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제가 얼마나 부족하고 못난 사람인 것을 처음부터 다 아시면서도 세워주시고, 지금까지 은혜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오니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라고요. 

신학대전을 저술한 옛날 그 유명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오셔서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저는 다만 하나님만을 원합니다.” 라고 기도한 것처럼, 저는 정말 저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인 것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지금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게 느껴지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어느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더욱 간절히 사모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삭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치사스러운 일을 할 수 있었느냐고 생각하기 이전에, 그처럼 훌륭한 사람도 역시 우리와 같은 한 연약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먼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우리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용납할 줄 알며, 또 그럴수록 하나님의 은혜만을 더욱 사모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성도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아가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이삭은 자기 아내 리브가를 그랄 사람들에게 동생이라고 속이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가지 않아 밝혀지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왜냐하면 이삭이 아내를 동생이라고 속인 것은 당시 그곳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그도 그들을 따라서 그런 방법을 사용해 보았는데, 이삭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아가기에 이삭도 세상 사람들을 따라서 그렇게 살아본 것인데 자신은 되지 않으니 얼마나 힘이 빠졌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아가도 잘만 살아가는데 자기는 왜 안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 되게 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삭은 세상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시키시는 방법대로 살아가면 큰 손해를 볼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장차 큰 은혜를 내려 주신다고 하셨지만, 그러나 그 말씀은 생각나지도 않고 당장 현실 앞에서 생각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과 똑같은 수단과 방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가기보다는, 나의 방법으로 살아가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맙니다. 분명히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도 잘 살아가기 때문에 그렇게 따라서 한 것인데, 우리는 하니까 실패하는 겁니다. 잘 안 됩니다. 못삽니다. 왜 그럴까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방법이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을 절대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놓아두고 세상 사람들이 하는 방법을 사용하니까 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우리가 왜 이처럼 연약해 질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은 인간의 환경이 어떻게 변한다 할지라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삭이 아무리 이방 그랄 지역에 거한다 할지라도, 또한 그곳 사람들이 아무리 무서운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이삭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잊고서 자신의 생각대로 한 결과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어느 강사가 갑자기 호주머니에서 백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꺼내어 높이 들고 갖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외쳤습니다. 모든 참석자가 들었습니다. 그러자 강사는 수표를 마구 구긴 뒤 똑같이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라면서도 모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는 다시 수표를 구둣발로 짓밟은 다음 또 물었습니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강사는 힘찬 어조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가 아무리 백만 원짜리 수표를 마구 구기고 더럽혀도 그 가치는 전혀 줄어들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여러 번 바닥에 떨어지고 밟히며 더러워져도 우리의 가치는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환경에 처해진다 할지라도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겨지고 짓밟혀도 여전히 자신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이 수표처럼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환경이 어떻게 변한다 할지라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굳게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어디를 가고,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믿음으로 살아갈 수가 있고, 또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연약하여 하나님을 의뢰하지 못하고 사람의 방법대로 하면 실패하고 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신 것을 믿고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방식으로 살아간다 할지다도 성도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미리 약속하신 겁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시어서 반드시 축복의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셋째, 성도가 불신의 행동을 하면 불신자에게 수치를 당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삭은 자기 아내 리브가를 누이동생이라고 했지만 얼마 안가서 탄로가 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곳 그랄 왕인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다가 크게 책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삭 한 사람이 잘못하니까 하나님까지 욕을 들어야 하고,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싸잡아 욕을 들어야 했습니다. 얼마나 큰 망신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 없는 행동을 하게 되면 불신자들로부터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도가 세상 사람들에게서 수치를 당하면 그것이 개인의 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로 인하여 전 교회가 수치를 당하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름까지도 손상을 받게 됩니다. 마치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가 부끄러움을 당하듯이, 성도가 불신앙적인 행동을 하면 하나님의 영광까지 가리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녀가 잘하면 부모가 기뻐하시듯이,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으면 우리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사업가인 재미동포 성도 한 사람이 북한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을 가서 난처한 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첫 번째는 죽은 김일성 묘지를 참배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고급 관리가 술을 따라주며 건배하자는 요구였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는 이 모두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는 시선이 따가웠지만 모두를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김일성에 대한 참배는 북한 당국이 비중을 두는 일입니다. 그래도 그것은 견딜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관리의 건배 요구는 특별히 위압적인 것이어서 주위 사람들도 모두 긴장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관리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내래 선생 맘에 드오. 믿으려면 그렇게 믿어야 디요.” 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 힘든 상황에서도 성도답게 오직 믿음으로 나아갔더니 어려움이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않게 오히려 성도로 인정받고 칭찬까지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세상은 우리가 제대로 믿음을 지키기가 너무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도 신앙의 지조를 지킨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성도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무리 어려운 현실일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믿고 끝가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과의 근본적인 차이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금 당장의 현실만을 생각하고 여러 가지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자신들의 목표를 이루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장래에 이루어주실 축복을 믿고, 오늘의 나의 삶을 하나님이 제시해주신 방법대로 살아갑니다. 비록 현실이 어렵고, 그렇게 하니 일이 잘 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또한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이것을 우리에게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끝까지 그 언약이 이루어질 날을 기다리며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현실이 비록 어렵고 힘들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가시어서 반드시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칭찬과 상급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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