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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약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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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가리라! (약 1:9-12)
  

‘인생은 희비쌍곡선(喜悲雙曲線)’이란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무슨 뜻인지 잘 아실 겁니다. 인생을 사노라면 기쁜 일도 있지만, 동시에 슬픈 일도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인생에 항상 기쁘고 좋은 일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기쁜 일이 있다 보면 또 슬픈 일이 있고, 슬픈 일이 있다 보면 또 기쁜 일이 있습니다. 마치 괘종시계의 시계추가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인생을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잘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기쁨과 슬픔 가운데 중심을 잘 잡아야 합니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면 인생이 휘청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은 가정집에서 괘종시계를 잘 사용하지 않지만 저희 어렸을 적에는 집집마다 거의 괘종시계가 있었습니다. 시계가 가다 서면 부모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 시계 밥 줘라!” 시계태엽을 감아주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 요즘 시계는 건전지로 시계바늘이 움직이지만 괘종시계는 태엽을 감아서 그것이 풀리는 힘으로 움직입니다. 태엽을 감아주고 시계추를 좌우로 움직이게 해 주면 계속 진동하면서 시계바늘이 움직입니다. 그런데 태엽을 잔뜩 감았어도 중심을 잡아서 시계추를 움직여주지 못하면 덜렁거리다 멈춰버립니다. 바늘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계추의 중심을 잡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이 기쁨과 슬픔으로 왔다 갔다 하는데, 그 중심을 잡아주지 못하면 앞으로 전진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중심을 잡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중심을 잡으면 됩니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감정을 조절하고 인생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합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이 오늘 본문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해서 기쁜 일과 슬픈 일이 반복되는 인생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단 한번뿐인 인생을 가장 복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형통의 때 : 겸손하라 

먼저 기쁠 때 즉 형통의 때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흔히 기쁜 일이 생기고 잘 나가면 교만해지기 쉬운데 그럴수록 하나님 앞에 낮아지고 겸손해야 합니다. 본문 10절~11절을 보시죠. “10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take pride in his low position)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부한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돈이 많은 부자뿐만 아니라, 기쁜 일이 많이 생기는 형통한 것을 가리킵니다. 그럴 때는 낮아짐을 자랑하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인간 본연의 모습을 기억하고 잊지 말라는 겁니다. 간단히 말하면 주제파악을 하라는 말입니다. 그게 뭔가요? 풀의 꽃과 같은 모습입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도 풀의 꽃은 무상하죠. 특히 성경의 배경이 되는 사막 지역에서는 해가 돋기만 해도 열풍이 조금 불기만 해도 꽃이 쉬이 떨어지고 시들어버립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이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말이 있잖아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사람들이 인생에서 누리는 부귀영화와 권세가 얼마 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최근 한 월간지(월간 조선)에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에피소드가 소개되었습니다. 12.12와 5.18 사건으로 같은 법정에 출석한 일이 있었죠. 서로 다른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법정에서 만난 두 사람이 처음으로 나누 대화 내용입니다. “자네 구치소에서는 계란 후라이 주나? (전두환 전 대통령)” “안 줘. (노태우 전 대통령)” “우리도 안 주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 그 기사를 보면서 쓴 웃음이 나왔습니다. 어찌 됐든 일국의 대통령들이었던 분들인데 수감 생활을 하다 보니까 계란 후라이 정도가 대화 소재가 됐다니 정말 씁쓸합니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은행장을 지낸 분인데 퇴직 후 엘리베이터를 탔답니다. 그런데 한참 있어도 움직이질 않아서 “왜 이러지? 고장이 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정신이 들더랍니다. “아차, 나 퇴직했지.” 재직 시에는 부하 직원이 항상 옆에 붙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줬는데 이제는 그럴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괜히 자신이 초라하게 여겨졌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려도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늙고 병들고 결국은 죽습니다. 순식간입니다. 약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안개가 얼마나 쉬이 사라집니까? 있는가 싶었는데 해가 뜨면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우리 인생의 부귀영화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형통할 때나 잘 나갈 때도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잊지 말고 겸손하라는 말씀입니다. 전12:1,7 “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 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가는 인생,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받아야 하는 인생임을 기억하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라는 겁니다. 잘 아시는 대로 솔로몬은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던 왕 중의 왕 아닙니까? 그가 얼마나 뼈저리게 인생무상을 느꼈으면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누리는 부귀영화 때문에, 당장 형통한 것 때문에 교만해진 나머지 하나님도 인정하지 않고 자행자지하며 살아갑니다. 인생이 항상 그럴 줄 착각하는 겁니다. 그렇게 엄벙덤벙 살다가 부귀영화가 사라지고, 젊음이 사라지고, 건강이 사라지고, 마침내 죽음이 닥쳐오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여러분, 무엇이 진짜 축복입니까? 부귀영화입니까? 권세입니까? 형통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 때문에 인생의 실상을 모르고 살다가 멸망하는 사람은 오히려 불행한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부해질수록 높아질수록 우리 자신의 본래 모습이 흙이요, 피조물인 것과 죄인인 것을 기억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납작 엎으려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처럼(마16:26) 온 천하를 얻고도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대통령이면 뭣 하고, 재벌이면 뭣 하는 겁니까? 

이런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 바울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빌3:8~9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 ” ‘모든 것’은 바울이 예전에 누렸던 세상의 좋은 조건들입니다. 학벌(가말리엘 문하생), 가문(이스라엘의 귀족), 권세(로마시민권자) 등을 가리킵니다. 이런 것들은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는 겁니까? 속되게 말하면, 환장하는 겁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모든 것을 가리켜 뭐라고 말합니까? 배설물! 그 자체가 무가치하다는 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영생과 비교해 볼 때 그 정도로 하잘 것 없다는 뜻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세상에서 형통하고 기쁜 일이 넘쳐나고 많은 소유를 갖게 될 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갑니까? 혹시 희희낙락하고 오만방자한 가운데 주제 파악을 못하고 세속에 파묻혀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만의 하나라도 그렇다면, 그 모든 형통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그러므로 잘 나갈수록 형통할수록 겸손히 감사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서 감사하며 기뻐하는 게 진짜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2] 시련의 때 : 인내하라 

슬플 때 즉 시련의 때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흔히 시련과 고난이 닥치면 풀이 죽고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건 정말 실패하는 겁니다. 그럴 때일수록 하나님을 의지하며 인내해야 합니다. 9절.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take pride in his high position)” 낮은 형제는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 낮고 천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런 사람이라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고 말합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자신이 높은 지위(high position)에 있음을 알고 프라이드를 가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게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비록 육신적으로 낮고 천하고 고난과 시련 가운데 괴로움을 당한다 하더라도 영적으로 보면 엄연히 하나님의 자녀이며 천국 백성임을 기억하고 절대 기죽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시련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시련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천국으로 인도하시고 영생과 더불어 하늘의 상을 주십니다. 본문 12절 보시죠.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시험에 올 때, 즉 슬픈 일이 밀어닥치는 시련의 때에 낙심하지 말고 참고 인내하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참다’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휘포메노’(uJpomevnw)인데, ‘휘포’(uJpo)와 ‘메노’(mevnw) 두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본래 ‘휘포’는 아래(under), ‘메노’는 머물다(remain)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인내란 시련의 상황 아래 불평하지 않고 잠잠히 견디고 있는 것입니다. 

한자로 참을 ‘인’(忍) 자 써 보십시오. 글자가 어떻게 생겼나요? 칼날 ‘인’(刃) 아래 마음(심장) ‘심’(心)입니다. 칼날이 심장을 겨누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잠잠히 있어야 합니다. 이게 인내입니다. 힘들고 괴롭지만, 아프고 슬프지만, 잠잠히 견디고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됩니다. 

시126:5~6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농부가 눈물로 씨를 뿌리지만 결국은 기쁨으로 단을 거둡니다. 눈물로 참고 기도하면 마침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법입니다.

고통 가운데 있던 예레미야 선지자도 이런 원리를 깨닫고 노래합니다. 애가는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이 비취는 것처럼 슬픔의 노래인 동시에 소망의 노래입니다. 애3:19~23 “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도 소망이 있다는 겁니다. 왜 그런가요?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아침마다 태양에 떠오르듯이 신실하신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도와주실 겁니다. 때가 되면 시련도 슬픔도 이기게 해 주실 겁니다. 그리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오묘합니다. 우리가 슬픈 일을 당하는 것 같은데, 그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역전의 은총입니다. 베토벤은 포르티시모조차 들을 수 없을 정도로 귀가 멀었을 때 최고의 오라토리오를 작곡했습니다. 존 밀턴도 완전히 실명되어 앞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불후의 명작 「실락원」을 쓸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역설입니다. 

지지난 주 인도단기선교 갔다가 놀라운 간증을 들었습니다. 로수길, 변상이 선교사님은 25년 전 인도에 가서 신학교 세워 사역자들을 양성하고 전도해서 지금까지 120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 중에 본인이 직접 시무하는 교회가 캘커타사랑장로교회인데, 수년 전에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당시 캘커타가 위치한 웨스트 뱅갈 주는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었습니다. 개발의 미명 아래 사유 재산을 침해하는 사례가 많이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 날 불도저 몇 대가 들이닥쳐 교회당을 밀어버렸습니다.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난 겁니다. 교회 땅 한가운데로 도로를 낸다고 마구잡이로 밀어버린 겁니다. 로수길 선교사가 불도저를 가로막고 땅바닥에 드러누웠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십자가 후에는 부활이니라!” 그 말씀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한편 연락을 받은 방송 기자들이 급히 와서 현장을 찍어 갔습니다. 인터뷰도 했습니다. 그러나 증오 대신에 용서의 메시지를 전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길거리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러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요청합니다. 여론이 조성되기 시작하자 고위 관리가 조용히 부릅니다. “목사님! 다른 데 땅을 드릴 테니까 제발 방송에 나가지 마세요!” 무너진 교회당의 잔해들을 잘 정리해서 임시 교회당도 건축했습니다. 느헤미야서를 읽으며 건축을 했는데 신기하게도 52일 만에(느6:15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마친 일수) 오나성되었고, 그날이 마침 부활절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분명한 사인이었습니다. 결국 교회당은 임시지만 그대로 남게 됐고, 땅이 좁아지긴 했지만 한 가운데 도로가 생겨서 땅값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다른 데 얻은 땅에 5층짜리 선교센터를 건축하게 됐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까 시내의 요지이고 인구 밀집 지역입니다. 

물론 지금은 재정의 부족으로 골조만 올라가 있지만 앞으로 기대가 됩니다. 그 현장에 우리 팀이 가서 로수길 선교사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선교센터가 완공되면 그곳에 예배당과 여자 신학교, 작은 방송국, 탁아소, 상담소 등이 들어선다고 합니다. 앞으로 그곳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일을 이루실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찹니다. 여러분, 얼마나 통쾌합니까! 극한 시련 가운데 십자가를 바라보며 인내하고 기도하고 기다렸더니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 후에 부활! 이게 바로 하나님의 법칙이요 역전의 은총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서 이런 경구(警句)가 문득 생각났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 본래 이 경구는 유대인의 구약성경 주석서인『미드라쉬(Midrash)』에 수록된 ‘다윗왕의 반지’라는 이야기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다윗 왕이 어느 날 궁중의 세공인을 불렀습니다. “자네, 나를 위해 반지 하나 만들어 주게. 그런데 그 반지에 좋은 글귀 하나 새겨 주시오. 내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기뻐할 때 교만하지 않고, 내가 큰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글귀를 말이오.” 세공인은 아름다운 반지를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글귀입니다. 어떤 글귀를 넣어야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그는 고민 끝에 지혜자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갑니다. 그때 솔로몬이 일러준 글귀가 바로 이 경구라고 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무슨 뜻인가요? 기쁜 일도 지나가고, 슬픈 일도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일희일비하지 말고 마음의 중심을 지키라는 말입니다. 기쁘다고 교만하다 하나님을 멀리 하고 망하지 말고, 슬프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낙심하다 주저앉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도 다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기쁨과 슬픔은 항상 교차적으로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겸손히 감사하며, 인내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현재 어떤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형통의 때입니까? 겸손히 하나님 앞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시련의 때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인내하고 기도하십시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경구를 꼭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희비쌍곡선 인생 가운데 중심을 잡고 늘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 이 또한 지나가리라 >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영원한 건 오직 주님뿐 
찬란한 저 태양도 막막한 이 어둠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짙은 어둠 속에서 사랑을 잃고 절망에 빠져들 때 
나를 감싸주는 부드러운 한마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영원한 건 오직 주님뿐 
찬란한 저 태양도 막막한 이 어둠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내 힘으로 이뤄낸 행복이라고 교만에 빠져들 때 
나를 깨워주는 날카로운 한마디 
이 또한 지나가리라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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