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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겔 3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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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겔 37:1-10)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의 일기 내용입니다. “어제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지 않는 법’이라는 책을 사오셨다. 오늘 또 사오셨다”
   
여러분은 치매에 걸리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가끔 망각의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이 본문은 제가 지난 부활절에 설교 했던 본문입니다. 오늘 설교를 듣는 여러분들에게 본문이 마치 처음 보는 본문처럼 새롭게 다가오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에스겔에게 임재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에스겔을 골짜기 가운데 두셨습니다. 거기에는 뼈가 가득했는데 심히 많고 아주 말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대언하게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뼈들이 모이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기에게 대언하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서 극히 큰 군대를 이루게 됩니다.
   
저는 오늘 본문으로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겠습니다. 모두 다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고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이 하시면 우리가 완전한 절망 중에 있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에는 뼈가 심히 많고 심히 말랐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대언하니 마른 뼈들이 모이고 뼈 위에 힘줄이 생기고 가죽이 덮이고 생기가 들어가서 극히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마른 뼈가 살아나는 일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살이 썩고 뼈만 남았다면 회복이 불가능한 완전한 절망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니 살아나서 군대가 되었던 것입니다.
   
1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히 이 사건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족속들은 하나님께 범죄하여 심판을 받고 온 세상에 흩어졌는데 그들이 다시 돌아올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2절에서는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온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올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본문은 바벨론에 포로가 된 유대인들의 귀환을 예언하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말세에 온 세상에 흩어진 이스라엘 족속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와서 다시 회복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 시대에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주후 70년에 로마의 티토 장군에 의해서 멸망당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남은 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약 1900년 가까이 나라 없는 민족으로 나그네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무덤에 묻힌 시체처럼 완전한 절망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약 1900년이 지나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약 1900년 동안나라 없이 떠돌던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지난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다시 건국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약속의 땅에 유대인들이 약 700만 명 정도 돌아와서 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프로젝트입니다. 완전한 절망 중에도 하나님이 하시면 일어설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산교육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의 능력은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유대인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유대인을 회복시켜주신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본문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완전한 절망의 순간에도 하나님이 하시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완전한 절망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다”
   
요 5장에 보면 베데스다 연못의 기적이 나옵니다. 베데스다 연못에는 많은 환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환자들이 베데스다 연못에 모였던 이유는 가끔 천사가 내려와서 연못의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물이 움직일 때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렸어도 치료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명절이 되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가 베데스다 연못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주님은 연못에 모여 있는 사람들 중에 가장 절망적인 환자 한 사람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얼마나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했는지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38년 동안 병으로 고생한 사람입니다.
   
이 38년 된 병자는 완전한 절망 상태였습니다. 그가 원래 부요한 사람이었는지 가난한 사람이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부자였든지 가난뱅이였든지 그는 완전한 절망 중에 있었습니다. 그가 부자였다 하더라도 그는 이제 가난뱅이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는 아마도 좋다는 약은 다 먹어봤을 것이고, 좋다는 의사도 다 만나봤을 것입니다. 

하지만 38년 동안 아무리 좋은 의사를 만나고 아무리 좋은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는 베데스다 연못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는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움직일 때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치료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는 그 소문을 듣고 자기도 치료를 받기 위하여 베데스다에 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베데스다 연못에 와 있지만 천사가 물을 움직여도 그는 번번이 치료를 받지를 못했습니다. 물이 동할 때 치료 받는 환자는 중환자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중환자들은 몸을 쉽게 움직일 수 없어서 누군가가 물에 넣어주어야 했습니다. 누군가의 부축을 받고 물에 들어가는 환자는 민첩성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연못 주변에 있던 가벼운 환자들은 물이 동하는 것을 보면 재빨리 연못으로 뛰어 들어갔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그에게는 자기를 물이 움직일 때 그를 부축해서 연못에 집어넣어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는 치료를 받기 위하여 베데스다에 와 있지만 완전한 절망의 상황에 있는 것입니다.
   
완전한 절망 중에 있는 38년 된 환자에게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주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완전한 절망에 있던 38년 된 병자가 즉시로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활렐루야!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런 치료의 역사, 이런 회복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베데스다 연못의 38년 된 이 환자의 치료를 보면서 내가 어떤 절망 중에 있어도 주님이 하시면 절망이 희망이 된다는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완전한 절망에 빠진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온 세계 중에 우뚝 선 사람이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를 아실 것입니다. 이분은 44세의 나이에 감옥에 들어가서 27년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71세의 나이에 감옥에서 나와서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넬슨 만델라도 처음에는 감옥에서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변호사를 만날 때마다 “여기는 지옥이야! 여기는 지옥이야!”라며 발악을 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완전한 절망에 빠진 그에게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는 주님을 만난 후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그 이후 변호사가 찾아와서 “요즘 어떤가요?”라고 물으면 “여기가 천국이오. 여기가 천국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넬슨 만델라의 변화에 놀란 변호사가 “뭐가 바뀌었나요?”라고 물으니 넬슨 만델라가 대답했습니다. “아니오, 환경은 바뀐 것이 없지만 내 마음이 바뀌었소.” 그가 출옥할 때 사람들은 만델라가 아주 허약한 상태로 나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70세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아주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취재를 하러 나온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5년만 감옥살이를 해도 건강을 잃어서 나오는데 당신은 어떻게 27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서도 이렇게 건강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넬슨 만델라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감옥에서 하나님께 늘 감사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물을 마시며 감사하고, 음식을 먹으며 감사하고, 강제 노동을 할 때도 감사하고, 늘 감사했기 때문에 건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감사를 잘하는 만델라가 그 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대통령에도 당선되었습니다. 그는 완전한 절망 중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시 일어서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하시면 완전한 절망에 빠진 사람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여기에 모인 여러분! 혹시 지금 절망 중에 있습니까? 주님을 믿으십시오. 그분이 하시면 완전한 절망에 빠졌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우리가 선포할 때 역사합니다. 
   
에스겔의 말에 능력이 있지만 마른 뼈로 하나님의 군대를 만들 만한 능력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입으로 선포하니 뼈들이 모이고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이고 생기가 들어가서 살아 움직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5,6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7절에서 에스겔이 대언을 합니다. 또 9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10절에서 에스겔이 대언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에스겔의 대언, 에스겔의 선포를 통해서 그대로 되었습니다.
   
본문에 대언이라는 말이 6번이나 나옵니다. 여기서 대언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한다는 의미입니다. 원어를 보면 ‘나바’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말은 ‘예언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언의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예언이라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흔히 예언에 대해서 오해를 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에 문제가 많이 발생합니다. 예언을 장래 일을 말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점쟁이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신앙인들이 많은 것입니다.
   
예언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래 일을 말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교훈과 책망도 칭찬과 격려도 예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의 오늘 설교도 예언입니다. 왜냐하면 제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저에게 본문으로 설교하도록 강권하셨기 때문입니다. 지난 금요일 기도 중에 오늘 설교할 본문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자료를 살펴보니 이 본문으로 지난 4월 11일 부활절에 설교했었던 기록이 있었습니다. 잠시나마 저에게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다른 본문으로 설교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또 기도했는데 성령께서 계속적으로 강권하셔서 결국 이 본문으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본문의 설교는 마목사가 설교하고 싶은 본문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설교는 예언입니다. 주님을 대신해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대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과 달라서 언제나 새롭게 언제나 능력이 있습니다. 그 때는 그 때대로 은혜가 있었고 지금은 지금대로 은혜가 있습니다.
   
요 1:14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유한하여 퍼주고 퍼주면 남는 것이 없지만 주님에게는 은혜와 진리가 무한하여 퍼주고 퍼줘도 충만하십니다. 
   
5병2어의 기적을 보면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셨는데도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다 주시고 12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요 6:11에 보면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5병2어로 5천명이 넘는 무리들에게 원하는 대로 풍족하게 주신 충만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요 6:13에 보면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5병2어로 5천명을 먹이시고 12광주리가 남게 하신 충만하신 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그 약속이 우리들에게 실제가 되려면 우리의 입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입으로 선포하면 에스겔처럼 예언자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롬 10:10에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마음으로 믿은 후에 입으로 시인할 때, 선포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이기는 비결이 믿음의 고백, 선포입니다. 계 12:11입니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이 말씀에 보면 마귀를 이기는 비결 2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는 보혈의 능력이고, 둘째는 선포의 능력입니다. 여기서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선포하는 말씀을 말하는 것으로 신앙고백입니다.
   
김홍도 목사님의 설교집에 나온 내용입니다. 무당 귀신에 사로잡혔던 여자가 무당 되기 싫어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오려고 하면 귀신들이 나타나서 교회에 못 가게 가로막는 것이었습니다. 이분을 위하여 목사님과 성도들이 통성 기도해도 귀신이 안 나가고, 안수기도해도 안 나가더랍니다. 하다하다 안 되니 힘이 들어서 지혜를 얻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를 했더니 성령께서 “입으로 고백하게 만들어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자매에게 따라하게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딸이다. 나는 마귀를 이겼습니다. 예수님 피로 죄 사함 받았습니다” 자매는 입을 꼭 다물고 안 따라하고, 또 반대로 “나는 마귀의 딸이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잘 달래 가지고 따라하게 했습니다. 자매는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나는 하나님의 딸이다. 나는 마귀를 이겼습니다. 예수님 피로 죄 사함 받았습니다”라고 반복적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랬더니 조금 있다가 자매의 입으로 귀신이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에이, 나가야 되겠다. 나가야 되겠다” 그리고는 그날 밤에 귀신이 그 자매에게서 나갔다고 합니다. 믿음의 선포로 귀신을 이긴 것입니다.
   
신 30:14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말씀이 실제가 되는 것은 마음으로 믿는 것만이 아니라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입으로 시인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시인대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민 14:28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입으로 세상 말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의 생활 속에 우리의 입으로 말한 세상적인 일들이 일어나게 하시고, 우리가 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의 입으로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믿음의 말을 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의 생활에 풍성하게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병고침을 받으려면 믿음의 고백을 하십시오. 미국에 유명한 신유의 부흥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해서 집회하는 교회에 일찍 도착했더니 현관에 어떤 앉은뱅이 부인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부인, 여기 앉아서 누구를 기다리십니까?”, “저는 앉은뱅이예요. 오늘 이 교회에 신유 은사가 강한 목사님이 오신다기에 그 분을 만나러 왔습니다. 목사님이 오시면 제일 먼저 병 고침을 받으려고 이렇게 문 앞에 앉아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꼭 병 고침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주위에는 동행자도, 휠체어도 없었었습니다. 목사님은 물었습니다. “그 불편한 몸으로 어떻게 이곳까지 오셨나요?”, “차를 타고 왔지요. 그리고 제 아들이 그 차 속에 휠체어도 넣어 왔어요. 그러나 오는 도중 저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도착한 즉시 그것들을 모두 보내버렸습니다”, “아니, 왜 보내셨습니까? 가실 때 어떻게 하시려고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이제 목사님만 만나면 걸어서 혼자 집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필요합니까?” 

이 여인의 믿음의 고백을 들은 목사님은 기뻤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의 고백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반드시 역사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자매에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내가 바로 그 목사입니다. 자매님은 오늘 꼭 나을 줄 믿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손을 잡아끌며 말했습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그 즉시 그 여인이 일어나 걸어 다니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매의 선포를 들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포대로 역사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선포대로 역사하십니다. 그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런데 왜 선포하지 않습니까? 오늘부터 이렇게 선포하십시오. “나는 예수님 안에서 구원 받았다. 나는 예수님 안에서 건강하다. 나는 예수님 안에서 행복하다. 나는 예수님 안에서 의롭다. 나는 예수님 안에서 거룩하다. 나는 예수님 안에서 승리자다. 나는 예수님 안에서 풍성하다. 나는 예수님 안에서 지혜롭다. 나는 예수님 안에서 부요하다. 나는 예수님 안에서 기쁘다. 내게는 예수님 안에서 기적이 일어난다.” 날마다 믿음의 선포를 하시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선포를 들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그대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불평은 감사로 바뀔지어다. 미움은 사랑으로 바뀔지어다. 불통은 형통으로 바뀔지어다. 작은 믿음은 큰 믿음으로 바뀔지어다. 슬픔은 기쁨으로 바뀔지어다. 무능력은 능력으로 바뀔지어다. 저주는 축복으로 바뀔지어다. 가난은 부요로 바뀔지어다. 약함은 강함으로 바뀔지어다. 미련함은 지혜로 바뀔지어다. 궁핍의식은 풍요의식으로 바뀔지어다. 패배의식은 승리의식으로 바뀔지어다. 실패의식은 성공의식으로 바뀔지어다. 예수 이름으로 채무의 영은 떠나라. 예수 이름으로 가난의 저주는 떠나라. 예수 이름으로 질병은 떠나라” 


3. 모든 것이 갖추어졌어도 성령 받지 못했다면 영적 차원에서는 마른 뼈일 뿐입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대언하고 선포하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마른 뼈들이 모이고, 힘줄과 살과 가죽이 생기고 사람 모양을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아직 생기가 들어가지 않으니 시체나 다름없었습니다.
   
9,10절에 보면 에스겔이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대언합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에스겔의 대언이 있은 후에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니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14절에 보니 이 생기는 사람의 영을 말하기보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말하고 있습니다. 14절에 보니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 앞에 가치 있는 사람은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뼈들이 사람 모양을 갖추었지만 생기가 들어가기 전에는 죽은 시체나 다름없었던 것처럼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영적인 시체나 다름없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사람을 보지만 하나님은 영적인 가치관으로 사람을 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남들보다 좀 더 배우고, 좀 더 가졌고, 좀 더 높은 지위를 가졌으면 그 사람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다 똑같이 시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이제 막 죽은 시체하고 죽은 지 30년 된 뼈하고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이제 막 죽은 시체는 아직 살이 붙어있고, 살아있을 때하고 모습이 비슷하니 더 가치 있습니까? 아닙니다. 이제 막 죽은 사람이나 30년 된 뼈나 죽은 것은 똑같고 사람들에게 똑같이 무가치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보실 때 그 사람 안에 성령이 거하지 않는다면 많이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많이 가진 사람이나 못 가진 사람이나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성령을 받으시고 충만해지기를 바랍니다.
   
좀 다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엘머 게이츠 박사가 흥미 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숨을 받아서 급속 냉각 시켜 보았더니 그 사람의 감정 상태에 따라 각각 다른 색깔의 냉각물이 나왔습니다.
   
분노의 감정을 품고 있는 사람의 입에서는 밤색 냉각물이 나왔습니다. 슬픔이나 고통의 감정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서는 회색의 냉각물이 나왔고, 기쁨의 감정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는 청색의 냉각물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분노의 감정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서 만들어진 밤색 냉각물을 녹여서 쥐에 투입시켰더니, 그 쥐가 몇 분이 못 가서 죽었다고 합니다.
   
식물도 사람의 감정에 반응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나무의 떨림을 감지하는 기계를 달고 나무를 쓰다듬으며 평안을 빌었더니 안정된 그래프를 그렸습니다. 나무에게도 “사랑한다. 축복한다. 고맙다”라고 말해주면 나무가 싱싱하게 더 잘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한 저주를 한 후에는 굉장히 불안정한 그래프를 그렸다고 합니다. 또 방금 짐승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사람이 그 나무 앞에 서니 역시 굉장히 불안정한 그래프를 그렸다고 합니다.
   
사람은 마음의 상태가 중요한 것입니다. 분노, 근심, 슬픔 등이 가득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에게 독이 든 주사를 놓는 것과 같고 타인에게도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 잠 4:23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물이 댐을 넘어서게 되면 댐 아래 마을은 물난리가 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하지 못하고 그 부정적인 감정이 댐을 넘듯이 우리의 마음의 용량을 초과하게 되면 자신과 타인에게 상당한 부정적인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지키기 위한 방법 중에 하나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롬 14:17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의와 평강과 희락이 가득하게 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우리의 마음에서 부정적인 감정은 안개가 사라지듯이 사라지고 긍정적인 감정들이 차고 넘치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언제나 성령으로 충만하여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갈 5:22에 보면 성령으로 충만하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 등의 긍정적인 열매가 넘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하면 인생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말씀 정리합시다.
   
하나님이 하시면 우리가 완전한 절망 중에 있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간구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선포할 때 역사합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서 누려야 할 모든 것을 입으로 시인하시고 담대하게 선포하십시오.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모든 것이 갖추어졌어도 성령 받지 못했다면 영적 차원에서는 마른 뼈일 뿐입니다. 성령 안에서 인생이 가치가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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