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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삽겹줄로 부르신 하나님 (전 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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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겹줄로 부르신 하나님 (전 4:9-12)

여러분, 자전거 바퀴가 왜 두개인지 아십니까? 뭐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면 쉽게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 
물론 서커스 같은데서 공연하기 위해 일부러 외발 자전거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특이하게 보이기 위한 그야말로 서커스를 위한 자전거이고 정상적인 자전거는 두개의 바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바퀴가 한 개일때보다 두 개일때가 훨씬 안정감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자전거보다 더 안정감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동차이죠... 
바퀴 4개 달린 자동차는 2개 달린 자전거나 오토바이보다 훨씬 안정감이 있죠.. 자전거는 넘어지기도 하지만 자동차가 넘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경우니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하나님은 분명 우리를 각각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이라는 것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며 예배를 드려도 그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은 각각 혼자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각자의 관계는 일대일의 관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각각 부르셨지만 결코 혼자 부르시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혼자서 하나님을 섬기며 우리의 인생을 살게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보다 우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얼마나 잘 아실까요? 우리가 몸에 지니고 있는 머리카락이 몇 개인지 우리는 모르지만 우리 주님은 아십니다. 마10:30 말씀을 찾아봅시다. 여러분 중에 우리의 머리카락이 몇 개인지 아시는 분이 계십니까? 어떤 궁금증 많은 분이 저와 같이 비교적 머리카락 세기 쉬운 사람을 눕혀놓고 다 달려들어 머리카락을 세었다고 칩시다. 이만3천 육백이십구개 그런데 중요한 건 몇 시간이 지나면 그 머리카락 수가 또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실만큼 우리를 잘 알고 계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토록 세밀하고 정확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사랑하고 인도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믿고 섬기는 우리 하나님아버지인줄로 믿습니다.  

그 하나님이 보셨을 때 태초에 아담 혼자 지내는 것이 좋지 못하게 느껴져 돕는 배필로 하와를 지어주셨습니다. 혼자가 아닌 우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가정의 시작이요, 교회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워주신 가정도 교회도 결국은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혼자서는 안 되는 줄 알기에 우리에게 가정을 세워주셨고 교회를 세워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가정이나 교회에서는 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 에베소서에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전12장에서도 역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하며 우리를 그 몸을 이루는 지체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전12:12부터 27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몸에 갖가지 지체들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갖가지 다른 지체가 서로의 역할을 감당함으로 한 몸을 온전히 이루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귀가 코에게 너는 듣지도 못해? 바보 너 같은게 왜 필요해? 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1절 말씀처럼 눈이 손더러 쓸데없다하거나 머리가 발더러 쓸데 없다 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머리가 생각할 때 발은 나와 다르기 때문에 별 필요 없을 것인 것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한 몸의 의미에서 생각하면 다 의미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필요 없는 지체는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 모두가 바로 모두 소중한 지체들이라는 것입니다. 
언뜻 보기에 저런 사람이 우리교회에 무슨 필요가 있을까 라고 생각되는 그 사람도 하나님이 필요해서 불러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단코 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목공소에 목공소 연장들의 회의가 시작되었다. 누군가 '망치야, 너는 소리를 크게 내기 때문에 없어져야 한다'고 했다. 망치는 '내가 떠나면 톱도 떠나야 한다. 이것저것 무엇이든지 사정없이 잘라내니 말이다.'라고 대꾸했다. 톱은 '내가 떠나면 대패도 떠나야 한다. 대패는 항상 남의 깊은 속은 모르고 겉만 보고 깍아 내니 떠나야 한다.' 그러자 대패도 한 마디했다. '내가 꼭 떠나야 한다면 자(尺)도 떠나야 한다. 자는 항상 자기 것만 옳다고 하며 모든 기준을 자기중심으로 해서 크고 작다고 평하기 때문이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렇게 목공소 연장들의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중에 나사렛 목수가 들어와서 작업복을 갈아입으시더니 강대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사렛 목수는 강대상을 만들 때에 대패, 망치, 톱, 자 등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아니하고 모두 사용하셨습니다. 나사렛 목수는 어느것 하나도 쓸모없다고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도구들을 사용하여 훌륭한 강대상을 만드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서로 다른 은사와 직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와 같지 않기 때문에 필요 없다고 생각지 말고 나와 같지 않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주님의 마음이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편이 더 좋았을 것이라던 가룟 유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부활과 승천하시는 구속사를 성취시키는 데 한 도구의 인간으로 쓰인 것입니다. 가룟 유다같은 사람도 필요가 있어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고 사용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 중 어느 누구도 필요 없다고 말하지 말고 소중하다고 말하길 바랍니다. 내 기준에서 필요 없는 그 사람이 주님편에서는 소중한 사람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옆 사람과 인사해봅시다. 당신은 우리교회에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중에 행여 별로 소중해보이지 않게 여겨지는 분이 계시더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아니 자신을 생각할 때 우리교회에 별 필요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분이 계시더라도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필요해서 여러분 모두를 불러주신 것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은 다 우리 교회를 위해 필요한 매우 소중한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개를 가로져으며 쉽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을 줄로 압니다. 물론 이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소중하게 생각되지 않는 사람을 소중하다고 말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자주 말씀드리는 것처럼 하나님은 입술의 권세를 주셔서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도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일이 넘치게 하시고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불평할 일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서로를 대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다 완벽하고 서로의 모습속에서 좋은 점만을 보기 때문에 서로를 소중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은 불완전한 모습들을 보이고 연약한 허물들이 보여도 믿음으로 소중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요? 그렇게 서로를 소중하다고 말하고 세워주는 가운데서 분명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소중한 사람들로 만들어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로를 소중하다고 말하면 할수록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서로가 소중한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왜 그래? 이 사람은 왜 그래? 하면서 서로를 비난하면 할수록 비난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저 사람은 소중한 사람이야.. 그래도 이 사람은 소중한 사람이야 하면서 서로를 소중히 여길 때 진정으로 소중한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우리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왜 우리 안디옥 교회는 소중한 교회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안디옥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된 것이 우연히 된 것입니까? 어쩌다가 흘러 흘러 이 곳에서 신앙생활 하고 있는 것입니까? 

결단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참새 한 마리가 팔리고 사는 그 하챦은 일까지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결단코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라고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제가 이렇게 안디옥 교회에 와서 사역하게 된 것이 우연히 된 일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 교회를 섬기게 된 것이 결코 우연히 된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언제부터, 어떻게 이 교회를 섬기게 되었는지 몰라도 거기에는 분명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지 않았다면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셨기에 우리는 지금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힘들고 어려웠어도 지금까지 이 교회를 붙들어왔고 지켜왔습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이며 주님이 불러주신 교회이기에 말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어쩌면 지금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더 굳세게 이 교회를 붙들고 지켜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요? 이 교회는 내 교회가 아니고 주님이 세우신 교회이며 주님은 부족한 나도 할 일이 있어서 이 교회를 위해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운 순간마다 우리가 늘 잊지 않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황이 힘들고 어렵게 여겨질때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뜻을 따라 쉽게 결정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이셨던 예수님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마26:38절을 보겠습니다.
예수님도 고민하셨는데 죽을만큼 고민하시고 계십니다. 무엇을 고민하셨습니까? 십자가를 지기 싫어 고민하고 계셨습니다. 감당할 수 없어 고민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그 잔을 피하였으면 좋겠다고 기도하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도를 하면 할수록 예수님은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결국 46절에 일어나라 함께 가자 이제 아버지의 뜻을 이루러 가자고 말씀하실 용기와 힘을 얻고 계십니다. 오늘 마태복음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다른 성경에 보면 그야말로 예수님은 이 밤에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고 계십니다.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게 해달라고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지는 것이 쉽습니까? 예수님에게도 어려웠던 그 일이 우리에게는 쉽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기 때문에 고민이 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고민이 되는 그 순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고민하다가 못하겠다고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고민이 되기에 기도함으로 감당해야 할 힘을 얻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민되는 그 순간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기도함으로 다시 감당할 힘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원하고 계십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그 일을 위하여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음을 기억하며 힘을 내고 용기를 내어 몸 된 교회를 잘 섬겨나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몸 된 교회가 왜 중요합니까? 몸에서 떨어진 지체는 아무리 가치가 있어도 사실상 가치가 없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박지성 선수같은 수 백만불짜리 발을 가진 선수도 그 발이 아무리 황금발이라도 하여도 그 발만 따로 떼어놓는다면 얼마나 흉측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최고의 투수 정민태의 황금팔이라 할지라도 그 팔만 따로 떼어 놓는다면 얼마나 흉측하겠습니까? 황금발도 황금팔도 그 몸에 붙어 있을 때 그 가치가 있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혼자 따로 떨어져 나와 있을 때가 아니라 우리가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를 믿는 한 믿음의 고백안에서 한 교회공동체안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를 불러주신 그 은혜를 생각하며 안디옥 교회에 붙어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가치 있는 존재들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오늘 말씀을 보시면 계속해서 한 사람으로는 안 되지만 두 사람으로는 할 수 있다는 말씀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두에 말씀 드린대로 교회 공동체는 한 사람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두 사람 이상의 우리라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를 우리라는 공동체로 불러주신 이유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9절을 보니까 더 좋은 상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못하는 것을 두 사람이 하면 할 수 있고 두 사람이 못하는 것을 세 사람이 모이면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각의 은사를 따로 하여 우리가 모이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쪽 방면에 더 많은 은사를 가진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이쪽에 더 많은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함께 노력함으로 좋은 상을 얻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혼자가 아닌 우리로 불러주셨다는 것입니다. 

축구에서 골 넣는 사람이 영광을 다 받는 것 같지만 그 사람이 축구를 제일 잘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축구에 대해서 좀 아는 사람은 공격수 뿐만 아니라 수비수 미드필더, 심지어 골키퍼까지 완벽한 팀웍이 이루어지는 팀이 이기는 것을 잘 압니다. 축구에서 11명 각자의 역할은 다르지만 그러나 한 목표를 향해서 좋은 상을 얻기 위해서 함께 노력해 가는 것처럼 우리는 안디옥 교회라는 한 공동체 안에서 한 목표를 향해 좋은 상을 얻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각자의 은사와 다양성을 인정해주고 받아주어야 합니다. 이해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축구에서 골 녛는 공격수 뿐 아니라 11명 모든 선수가 중요한 것처럼 우리 각자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사람이요,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vip인 것입니다. 

여러분, vip가 무엇인지 아시죠.. very important person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중요한 사람들이며 소중한 사람들이기에 서로를 그렇게 귀하고 소중하게 대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옆 사람의 얼굴을 보십시오.. 빛이 납니까? 옆에 있는 각자가 바로 하나님 앞에서 또 서로에게 보석과 같은 사람임을 잊지 마십시오.. 옆 사람을 축복해봅시다. 
당신이 우리교회에 vip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은 넘어졌을때 서로를 일으켜주라고 교회 공동체로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사람은 넘어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아니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어떤 때는 이 사람이 넘어지고 또 어떤 때는 저 사람이 넘어집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잘 아는 대로 사람인 자는 사람이 서로 기대고 서 있는 모습에 착안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서로 기대지 않으면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 서로 붙잡아 일으키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20세기의 사도바울이라고 불리 우는 인도의 성자 썬다싱을 아십니까? 
복음의 불모지인 인도 땅에서 수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 하나님의 귀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이 썬다싱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눈 덮인 히말라야를 넘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추운 날씨 속에서 몸을 움츠리며 걷고 있었는데 저 멀리 사람같은 물체가 넘어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기진맥진 지쳐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그 순간 뒤에서 인기척 소리가 났습니다. 선다싱은 잘되었다 싶어서 같이 이 사람을 데리고 가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이 추운 겨울에 이 사람을 데리고 가다간 얼어 죽기 쉽상이요.. 나는 싫소하고 종종 걸음으로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선다싱은 할 수 없이 그 사람을 들쳐없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한 몇 시간쯤 걸었을까 이번에도 또 다른 사람이 길에 엎드러져 있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사람은 몇 시간전에 얼어죽지 않겠다고 먼저 황급히 걸어갔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썬다싱은 아까 그 넘어진 사람은 업고 가느라고 온 몸에 땀이 나고 그 사람을 업고 감으로 체온이 유지될 수 있었지만 그 사람은 혼자만 살겠다고 그냥 가다가 그만 얼어 죽고 만 것이었습니다. 

넘어진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것 이것은 참된 크리스천의 모습이 아닙니다. 
형제가 넘어 졌을 때 돌아보고 일으켜 세워 함께 주의 길을 가는 것이 바로 교회의 바른 모습입니다. 아니 하나님은 이것 때문에 우리를 교회라는 공동체로 불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넘어지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교회 공동체가 우리에게 필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넘어질 수 있는 사람들이고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기에 우리에게는 서로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를 너무 잘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모아주신 것입니다. 
넘어져 있는 형제가 있다면 힘들어하고 있는 지체들이 있다면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나도 어느 순간엔가 그렇게 지쳐 넘어질 때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그 때 누군가가 나에게 던지는 힘내라는 말과 함께 어깨를 두드려주는 그 작은 행동이 그 누군가에는 큰 힘과 용기가 될 수 있습니다. 
넘어져 있는 사람, 연약해 보이는 사람, 지쳐 보이는 사람에게 작은 사랑의 문자 한 줄, 전화 한 통, 따뜻한 밥 한끼 사주는 것 이것은 어려운 일일수도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못할 만큼 어려운 일도 아닌 것입니다. 

제가 사역을 처음 시작했던 중등부 지체가운데 어떤 여학생 하나가 매우 힘들어했었습니다. 가정형편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매우 불안하고 힘겨운 모습으로 생활하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눈물로 기도하며 사랑으로 다가갔습니다. 처음에는 거부반응도 일으키고 반항도 하던 그 아이가 점점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믿음으로 견고히 서서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게 되었습니다.
10년 가까이 시간이 지나 하루는 식사를 하자고 해서 갔더니 그때까지 먹어보지도 못했던 황제정식이라는 것을 사주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놀랐던 것은 그 비싼 음식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음식을 먹기 전 그 친구는 충격적 고백을 했습니다. 만약 그때 목사님이 아니었다면 전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은 꼭 목사님이 주례해주셔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황제정식을 먹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 친구도 울고 나도 울고 그토록 반항하고 힘들게 하던 그 아이가 변하여 어엿한 사회인으로 하나님의 딸로 자란 모습을 생각해보니 얼마나 대견하고 감사한지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을 일으켜주는 건 분명히 희생이 필요한 일입니다. 시간이 필요하고 물질이 필요하고 헌신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그만큼 의미있고 값진일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할 때 나에게도 그렇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안디옥 교회 성도 여러분은 늘 서로를 붙들어 일으켜 세워줄 수 있는 귀한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교회 공동체는 서로에게 따뜻함을 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면 추울 수 있지만 둘이면 따뜻할 수 있습니다. 마음도 영혼도 몸도 따뜻할 수 있습니다. 

말 한 마디라도 따뜻하게 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는 왜 그래? 라고 말하면서 서로를 차갑게 대한다면 우리 교회는 시베리아 북풍처럼 차가운 교회가 될 지 모릅니다. 말 한마디를 해도 머리를 자른게 좀 그저 그래도 예쁘다고 격려하고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시도했을때 잘했다고 격려해주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주면서 문자 한 줄이라도 전화 한통이라도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다가갈 때 봄햇살처럼 따뜻한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교회에 불러주신 이유는 이 교회는 정이 없어, 이 교회는 사랑이 없어라고 판단하라고 불러주신 것이 아닙니다. 정이 없는 이 교회, 사랑이 없는 이 교회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 따뜻한 행동 하나를 기대하고 우리를 불러주신 것입니다. 

없어 없어 하면 늘 없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없기 때문에 내가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내가 시작하면 옆사람도 시작하고 옆사람이 시작하면 교회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없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면 내가 먼저 시작하십시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타인에게는 따뜻한 봄바람처럼 자신에게는 겨울 칼바람같이 대하라고 말입니다.
남에게는 정말 늘 따뜻하지만 자신에게는 겨울 칼바람같이 예리하고 차갑게 자신을 가꾸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2절에 보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삽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백짓장도 맛들면 낫다는 말 아시죠? 하챦은 백짓장도 그럴진대 인생이라는 치열한 전장터에서 누군가와 함께 싸울 수 있다면 생명을 나눌 전우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의미 있고 힘이 되는 말입니까?
전우가 모든 친구보다 더 각별하고 애착이 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전쟁터라는 급박한 상황과 생명을 걸고 서로를 돌아보는 서로에 대한 강렬한 애정과 우정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요, 악한 영을 향한 영적 싸움이며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생명을 걸고 함께 싸울 영적전쟁의 전우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함께 기도하고 함께 나아가고 함께 맞서 싸울 그런 전우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솝우화에 보면 얼룩 소, 검은 소, 붉은 소 세 마리는 언제나 함께 다녔습니다. 사자는 그 소들을 잡아먹고 싶어서 매일같이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 마리의 소는 언제나 같이 다니면서 사자가 덤벼들면 셋이 한꺼번에 대항하였기 때문에 잡아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때는 서로 떨어져서 풀을 뜯고 있어서 한 마리에게 달려들면 다른 두 마리의 소가 달려와서 제 동무 소를 위해 덤비기 때문에, 사자는 싸우다가 지쳐서 돌아가곤 하였습니다. 하루는 풀밭에 얼룩소가 따로 떨어져 있으므로 사자는 가까이 다가가서 은근한 목소리로 "세 마리의 소 중에서 가장 힘센 것은 자기라고 붉은 소가 뽐내더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얼룩소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여태까지 셋이 똑같이 힘을 합해 적과 대항해 싸워왔고 무슨 일이든지 함께 도와 왔는데 붉은 소가 모두 제 힘으로 그렇게 된 것처럼 말을 했다하니 건방진 소리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사자는 얼룩소에게 거짓말을 해 놓고는 붉은 소와 검은 소 있는 데로 가서는 또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세 마리 가운데서 얼룩소가 제일 기운이 세고 다른 짐승에게 지지 않는 것도 얼룩소 때문이라고 하니 그게 참말이냐?"고 두 마리 소에게 물었습니다. 두 마리의 소는 얼룩소의 말이 건방진 소리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붉은 소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얼룩소에게 덤벼들었습니다. 얼룩소도 붉은 소가 자기가 제일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던 터이라 있는 힘을 다해 덤볐습니다. 검은 소가 말렸지만 두 마리의 소는 뿔이 빠지도록 싸웠습니다. 그러나 두 마리 중 어느 편이 정말 센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 날부터 세 마리의 소는 같이 놀지를 않았습니다. 사자는 좋아라 하며 소들을 차례로 잡아먹었습니다

오늘날 악한 마귀가 우리 교회 공동체를 향해서 이런식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함께 협력하여 하나가 된다면 결단코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세워주지 못하고 각각 뿔뿔이 너는 너 나는 나 하고 흩어지기 시작하면 모두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말하면서 하나가 되기를 말합니다. 하물며 그리스도를 머리로 섬기는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우리 교회 공동체가 흩어지게 된다면 그것은 팔이 떨어져 나가고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사실을 너무 잘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토록 하나가 될 것을 서로 돌아볼 것을 강조하여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삽겹줄을 강조하여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십시오.삼겹살이 아니라 삽겹줄입니다. 삼겹살은 쉽게 먹을 수 있는 고기입니다. 그러나 삽겹줄은 쉽게 끊어지지않는 강력한 승리의 줄입니다.  
오늘 말씀의 삽겹줄은 3줄이기 때문에 삽겹줄이 아닙니다. 삽겹이라는 말에는 완전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와 너가 모여 우리가 되고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될 때 놀라운 하나님의 승리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다는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삽겹줄이 되어야 승리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나와 너가 하나가 되어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되어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면 놀라운 승리의 역사가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몸 된 우리가 하나가 될 때 삼겹줄을 이루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동차를 만드는데에는 2만여개의 부품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름도 모르는 그 작은 너트, 볼트 하나 하나가 함께 하고 있을땐 든든한 자동차를 이루지만 하나 하나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엔가 고장 난 자동차가 되고 만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든든히 세워나가기 위해 우리 각자를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필요한 사역과 직임을 맡겨주셨습니다. 그 일을 감당하면서 때로는 힘겨움이 있고 버거움이 있을지라도 그 일을 맡겨주신 분이 어떤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며 더욱 힘써 최선으로 그 사역을 감당해주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때로 여러 가지 모습속에서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들이 보이더라도 부족하다고 연약하다고 말하기보다 그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을 채우기 위해 더 힘써 조이고 하나가 되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이해하고 받아주고 소중히여겨줄 수 있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삼겹줄로 불러주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함께 몸 된 교회를 세워나간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각자를 통해 우리 교회를 통해 당신의 놀라운 계획을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되는 일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열심 가운데 우리 교회를 위한 놀라운 역사를 펼쳐나가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과 함께 이 놀라운 역사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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