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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족하기 (빌 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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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하기 (빌 4:10-13)

어떤 농가 마당에 닭이 모이를 줍고, 개는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돼지는 마당에서 노는 닭과 낮잠을 자고있는 개를 바라보며 참 부러웠습니다. 그들이 누리는 자유와 자기 신세가 달랐습니다. 
  
“나는 뭐야! 밖에 한번 못나가고...” 저것들은 왜 주인이 좋아할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닭이 새벽에 소리 지르고 개는 가끔씩 짖어대는 것이 공통점이었습니다. 돼지는 내가 주인의 사랑을 받으려면 소리를 질러야 되겠구나! 하고 밤낮 없이 꽥꽥 소리를 질렀습니다. 
  
인은 돼지 소리가 듣기 싫어 잡아먹기로 했습니다. 다리를 묶고 소리 지르는 입도 묶었습니다. 돼지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자신의 현재를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돼지 꼴 납니다. 작은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큰 것에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 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12절) 
  
사람 몸의 체온은 추우나 더우나 오르내리지 않습니다. 36도를 항상 유지합니다. 요즘 농업발전으로 전천후 농사가 가능합니다. 가뭄이 와도 홍수가 나도 관계없이 농사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습니다. 자족하는 마음은 전천후 인생의 저수지입니다. 

󰊱 감옥에서도 기뻐하다.

바울은 자족하는 사람입니다. 자족하는 사람은 어디서나 어떠한 형편에서나 자족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혜입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주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10절) 
  
그는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뻐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감금되어 있는 감방의 벽을 바라보면 숨이 막히고 분노가 끓어오릅니다. 하지만 그는 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봅니다. 감옥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있습니다. 
  
빌립보서는 옥중 서신입니다. 옥중에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한다. 간구할 때마다 기쁨으로 간구 한다(빌1:3-4). 감옥이 아니라 내 몸을 제물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한다. 이와같이 너희도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합니다(빌2:17-18). 
  
빌립보서는 기쁨의 책입니다. 기쁨은 인생의 요소입니다. 가장 훌륭한 사람은 괴로움을 극복하고 기쁨을 획득합니다. 
  
감옥과 지옥의 차이는 불평하느냐 감사하느냐에 달렸습니다. 궁궐에서도 불평하면 지옥입니다. 오두막에서도 감사하면 천국입니다. 
  
사도는 자기만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당부합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4-6)  
  
빌립보 성도들은 하나님의 종에 대한 헌신이 남달랐습니다. 자주 장사 루디아는 바울을 처음 만났을 때,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지내라고 강권했었습니다. 교회는 사도의 사역을 돕기 위해 헌금을 보내 주었습니다. 에바브로 디도를 보내 옥바라지를 하게 했습니다(엡2:25). 어떻게든지 바울을 도와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자기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하여 준 복음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 은혜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목회자의 기쁨은 존경입니다. 존경받고 있다고 느낄 때 보람을 느낍니다. 존경이란 그가 행한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그의 신앙과 헌신을 보고 존경합니다 바울은 존경받을 일을 했으니 존경과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의 기쁨이었습니다. 

  
󰊲 궁핍에서도 자족하다.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11절)
  
자족은 궁전이 아니라 오막살이에 자리를 잡습니다. 자족하는 사람은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부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문제없습니다. 플라톤은 우리의 영혼이 욕심에 물들어 있는 한 결코 만족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행복이란 스스로 만족하는 자의 것입니다. 남보다 나은 것으로 행복하려 하면 영원히 행복할 수 없습니다.  
  
자족하기를 배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7-8) 
  
자족 content이란 스스로 넉넉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풍부하지 않으나 넉넉하게 느낍니다. 일종의 부요의식입니다. 배고픈 것을 느끼지 않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빈곤한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빈곤감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자기 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면서 빈곤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탐욕과 허영을 버리지 않으면 자족할 수 없습니다. 
  
부모 유산을 가지고 형제가 싸우다가 동생이 예수님에게 찾아와 혼자 독차지하려는 형에게 말해 재산을 나누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나는 재산을 나누는 재판관이 아니라면서 “모든 탐심을 물리 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눅12:15).  
  
세상의 보화보다 더 큰 보화가 자족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보화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거꾸러트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후4:7-10)고 말합니다. 
  
족함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해도 가난하고 족함을 아는 사람은 가난하더라도 부유합니다. 신앙생활은 마음에 뿌듯하도록 꽉 차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가난해도 부요의식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땐 나는 만족하였네/ 저기 빛나는 태양을 보라 저기 서있는 산을 보아라/ 천지 지으신 우리 여호와 나를 사랑하시니/ 나의 하나님 한 분만으로 나는 만족하겠네/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의 백합화 예수향기 날리니 할렐루야 아멘/ 가시밭의 백합화 예수향기 날리니 할렐루야 아멘”
  
가난해서 못사는 사람이 있고 부유해서 못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래도 살고 저래도 사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동남풍이 불든 서북풍이 불든 상관없는 자족감이 있기 바랍니다.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기 바랍니다. 

  
󰊳 약해도 할 일 다 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13절) 
  
사도 바울은 몸도 마음도 약했습니다. 그의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의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의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임무를 주신 그가 능력도 주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 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1:12) 
  
그리스도인은 모든 시련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도는 옥에 갇혔다고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빌1:12)   
  
바울은 건강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몸은 병을 짊어지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육체의 가시를 물러가게 해달라고 세 번 간구한 결과를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9)
  
하나님의 능력이 머무는 곳은 강한 손이 아니라 약한 손입니다. 높은 자리가 아니라 겸손한 마음입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하나님의 은혜는 약한 자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와를 주셨습니다. 아담은 아름다운 아내를 보고 너무 기뻐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제 아내를 어쩌면 저렇게 아름답게 지으셨나요?” “아름다워야 사랑할게 아니냐?” “그런데 하나님! 살아 보니까 재는 좀 맹한데가 있는데 왜 그렇게 지으셨나요?” “그래야 재가 너하고 살지 않겠니? 재가 너무 똑똑하면 너 같은거 하고 살겠냐? 그래도 걔가 훨씬 똑똑하다!” 
  
하나님은 남자를 조금 부족하게 지으신 것 갔습니다. 남자 양반들 그것을 인정하세요. 하나님은 남자의 부족함을 여자에게 채우게 하셨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이 말은 내가 스스로 종이 될 수도 있고, 양보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천한 일도 할 수 있고, 손해보는 일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기 분수를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합니다. 부족한 것을 알아야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윗자리에 앉아 있다고 아랫자리에 있는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은 자기 분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배운 사람은 분수 없는 사람일 수 없습니다. 그는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님은 무능함을 인정하는 사람에게 능력을 더하십니다. 

누가 부유한 자입니까? 많이 가진 자가 아닙니다. 자족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질그릇에 불과합니다. 비천한 내가 보배이신 예수를 모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우리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안에 머물고 있어 능한 자가 됩니다. 
  
바울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합니다. 배우니까 알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능력입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지혜는 자족입니다. 이 시대의 능력은 자족하는 능력입니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기뻐했습니다. 풍족하든 궁핍하든 상관없이 자족했습니다. 그는 약한 자였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배움으로 강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바울 신앙을 나의 신앙으로 삼고 자족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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