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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히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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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히 11:21)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이며,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형 에서와 함께 태어난 쌍둥이 아우입니다(창 25:26-34). 야곱은 레아, 라헬, 빌하, 실바에게서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단, 납달리, 갓, 아셀, 요셉, 베냐민 등 12아들과 딸 디나를 낳아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자기가 맏아들로 태어나지 못하고 동생으로 나게 된 것을 늘 불만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런 야곱이 마침내 형 에서에게서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사고,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형 에서는 야곱을 미워하여 그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을 형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밧단아람으로 보냈습니다(창 27:42-45). 형을 피하여 밧단아람에서 사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던 도중에 벧엘이란 곳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고독하고 외로운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꿈에 보니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습니다. 또 보니 하나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창세기 28장 13-15절 말씀에 『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고 했습니다. 

야곱은 그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서 그가 누웠던 장소에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하였습니다(창 28:18-19). 이곳에서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하였습니다(창 28:20-22).
그 후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가축을 보살피며 라반의 딸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야곱은 20년만의 귀향길에 얍복강변에서 브니엘을 체험하게 됩니다.

야곱의 평생을 두고 브니엘 사건만큼 하나님 체험을 크게 한 경험은 없을 것입니다(창 32:24-32). 야곱은 허물과 실수가 많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애타게 소원했습니다. 슬픔과 고난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만을 간구하였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께 소원을 두고 기도하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은 노년에 이르러 아들 형제들의 질투로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었다가(창 37:32-35), 요셉의 생존소식을 듣고 가나안에 흉년이 들어 온 가족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창 46:1-34). 야곱은 애굽의 고센 땅 라암세스에서 살았습니다. 창세기 46장 28절에 『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라고 했습니다. 파란만장한 나그네 세월을 살아온 야곱은 애굽에서 죽었습니다. 야곱은 효자 요셉에 의해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습니다(창 50:13). 

Ⅰ. 야곱은 믿음으로 죽었습니다.

본문 11절 21절 말씀에 『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라고 했습니다.
『 믿음으로 』라는 말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그 약속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창 26:25). 이삭은 장차 이루어질 이 약속의 축복을 야곱에게 축복해 주었습니다(창 27:27-29). 야곱은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아들들에게 축복했습니다(창 49:1-28).

여기에 믿음으로 죽었다는 말은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믿음으로 죽습니다. 야곱이 믿음으로 살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시련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조상적부터 내려오던 영원한 언약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했습니다. 믿음이 결코 환난을 없이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 43장 2절 말씀에 『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라고 했습니다.
라반의 집에서 도망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라반의 추적이 계속되지 못했습니다.
창세기 31장 29절 말씀에 『 너를 해할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야곱의 믿음이 가장 밝게 빛날 때는 그의 생의 말년이었습니다. 야곱은 그의 아들들이 애굽으로 재차 여행을 떠날 때 베냐민과 동행할 것을 허락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창 43:14)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내리실 때와(창 17:1) 이삭이 야곱에게 복을 내릴 때와 같은 말입니다(창 28:3). 여기서 이 말씀을 사용한 것을 보면 야곱이 하나님이 약속한 언약을 얼마나 의존했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애굽에 도착하자마자 백발이 성성한 노(老)족장이 애굽의 절대 군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제국의 통치자 앞에서 위축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야곱은 바로를 축복한 것입니다(창 47:7). 이러한 야곱의 태도는 선민 족장의 권리와 의무입니다. 바로가 야곱에게 나이를 묻자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47장 9절 말씀에 『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라고 했습니다.
언제나 믿음의 조상을 높이는 족장의 태도를 봅니다. 이미 요셉의 형들은 바로에게 고센 땅을 청했습니다(창 47:4). 요셉은 바로의 명에 따라 고센 땅에 있는 좋은 땅 라암세스를 기업으로 삼게 했습니다. 먼 훗날 이곳에서 출애굽을 하게 됩니다.

Ⅱ. 야곱은 믿음으로 요셉의 각 아들을 축복 했습니다.

본문 11장 21절 말씀에 『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48장에서 계속되는 야곱의 열 두 아들에 대한 예언적 축복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야곱은 오직 요셉과 그의 두 아들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1장 17절 말씀에 『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두 몫을 받는 것은 장자의 권리입니다. 우리는 이 권리를 야곱이 요셉에게 복을 내릴 때 아주 정확하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약속한 기업에서 구별된 몫을 할당받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라헬의 장자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장자권이 요셉에게 계승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르우벤의 범죄를 허용하셨고 그것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대상 5장 1절 말씀에 『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허용적입니다. 앞서서 야곱은 『 애굽에서 네게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창 48:5) 』고 했습니다. 
요셉의 두 아들이 외국 땅에서 애굽 여인에게 태어났지만 이제 그들은 거룩한 씨의 몸이 된 것입니다. 
야곱이 그들에게 축복할 때 한 말은 중요합니다. 『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창 48:16) 』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이와 같이 축복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이 애굽과 애굽에 있는 친족에게서 멀어져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삶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요셉이 그의 두 아들을 야곱에게 데려와서 오른쪽에 장자인 므낫세를, 왼쪽에 차자인 에브라임을 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목적은 므낫세가 첫째 되고 보다 큰 몫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야곱의 믿음이 크게 시험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의 요셉은 모든 애굽의 통치자로서 권위와 권력이 바로왕 다음이었습니다. 게다가 요셉은 야곱이 총애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임종을 앞둔 야곱은 그것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창세기 48장 14절 말씀에 『 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축복을 내리는 방법을 봅니다. 또 다시 하나님이 지명하셔서 장자보다 차자가 우선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은혜를 『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마 20:15) 』고 말씀하신 대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주권 앞에 야곱은 순순히 복종하였습니다. 축복을 내릴 때 야곱의 팔이 어긋났던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창 48:14) 』는 말의 히브리어 원뜻은 "의식적으로 그의 손을 얹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통찰력입니다. 

왜냐하면 야곱의 눈이 어두워져서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참 믿음은 언제나 보는 것과는 상반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행하도록 한 자는 바로 그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창 48:15) 』이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야곱이 여호와와 그 조상들이 맺은 언약을 의지하고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것이 곧 계시의존사색입니다. 
즉 영원하신 언약을 확실히 붙들고 영원한 언약에서 힘을 공급받고 영원한 언약의 빛으로 살아가는 것이 계시의존사색의 신앙생활입니다. 왜냐하면 그 언약은 우리의 축복의 근원이고 우리의 기업의 대헌장이기 때문입니다. 그 언약을 간직한 자는 행복한 임종을 맞이할 것이요 평화스런 죽음으로 죄와 고통으로 쌓인 이 세상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48장 15-16절 말씀에 『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야곱의 손자들을 축복하는 행위에 요셉은 깜짝 놀라서 『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창 48:17-18) 』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요셉의 뜻과는 다르게 『 내 아들아 나도 안다(창 48:19) 』라고 함으로 요셉은 아버지의 뜻을 따랐습니다. 
야곱이 "나도 안다"라고 반복한 것은 야곱의 확고한 믿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아버지 이삭이 육신의 뜻에 따르지 않은 것처럼 야곱도 사람의 뜻에 좌우되지 아니했습니다. 야곱이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한 것은 믿음에 의한 것입니다.

Ⅲ. 야곱은 믿음으로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 하여 경배했습니다.

본문 11장 21절에 『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야곱이 외국인과 나그네 같이 살았다는 그의 삶을 특징짓는 상징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야곱의 경배의 내용은 야곱이 임종이 가까워 올 때 요셉을 불러서 자신을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창 47:29-30). 
야곱의 관심은 화려한 장례행렬이 아니라 그가 장사될 장소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우상천지 애굽에 장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조상들의 묘실이었습니다. 만감이 교차되는 가운데 부자간에 고요히 흐르는 죽음에 관한 대화는 사뭇 진지했을 것입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자신의 환도뼈 아래 요셉의 손을 넣도록 청한 것은 현재 우리가 손을 들어 맹세하는 약속의 서약과도 같은 것입니다(창 47:29-30). 하나님을 경배한 야곱의 태도를 성령께서 언급한 것은 그가 하나님에 대한 경건한 신뢰와 믿음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뜻이 실현될 것을 아들 요셉으로부터 확답을 받은 후에 하나님께 경배 드린 것입니다. 나그네로서의 이 세상의 삶이 미련 없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주도한 야곱의 장례식은 엄숙했습니다. 요셉이 아비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을 맞추었습니다. 요셉은 그 수종 의사에게 명하여 향 재료를 넣는데 사십일이 걸렸고 애굽 사람들은 칠십일 동안 애곡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얼마 전에 작고(作故-사망의 경칭)한 순천향대 명예교수 이윤기 씨는 자신의 호(號)를 절대군주 임금이 과인(寡人-임금이 자신을 낮추어 하는 말)이라고 한 것과는 다르게 과인(過人-지나가는 사람)이라고 지었답니다.
아시겠지만 저 또한 편재(片材-한 가지 일에만 재주가 있을 뿐임)라고 지었습니다. 목사 일 외에 다른 재주는 없다는 말입니다. 오직 목사 일 한 가지만 지혜를 구하다가 간다는 뜻입니다. 
인생은 나그네의 삶입니다. 야곱은 자기 나이를 가리켜 거침없이 『 내 나그네 길의 세월 』이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애굽의 정착지로 고센 땅을 미리 요청했습니다. 이곳은 훗날 가나안으로 돌아오기 좋은 곳이기 때문입니다(창 46:28; 47:4, 11). 그는 믿음으로 어디서든지 누구에게든지 축복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당당한 권리행사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시대와 환경과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축복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직접 말씀하신 약속입니다. 이삭의 축복의 내용은 하나님 자신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이삭에게 다시 확인시키시는 것입니다. 

야곱의 축복의 내용은 하나님 자신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야곱에게 다시 확인시키시는 것입니다. 요셉의 축복의 내용은 하나님 자신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요셉과 그 아들들에게 다시 확인시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은 바로 이 축복의 실체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자손손 대대토록 확인시키는 것이 바로 계대적인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7절에 『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에 감격하지 못하면 다른 어떤 것에도 감격할 수 없습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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