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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피할 수 없는 사명 (욘 1:17-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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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사명 (욘 1:17-2:10) 
 

1. 한 번도 설교하지 않은 요나서

요나서는 다른 선지서들에 비해 우리의 흥미를 끄는 요소들이 많은 성경입니다. 우선적인 이유는 내용이 짧고 또 재미있는 이야기 체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요나서가 다른 선지서들과는 다른 점이 많기 때문인데요. 다른 선지서들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를 지적하고, 그 죄로 인하여 나라가 멸망할 것을 예언하는 반면에, 요나서는 여로보암 2세를 통한 영토 확장을 예언했고, 자기 나라의 심판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다른 나라 즉 원수의 나라인 앗수르의 심판을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나서가 흥미를 끄는 또 다른 이유는, 다른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했고 듣는 이들에게도 순종을 요구한 반면에, 요나는 자신이 먼저 불순종했고 순종한 니느웨 사람들 때문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며 화를 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이다’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우리와 비슷하다’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이런 여러 가지 점들 때문에 요나서는 우리에게 아주 친근합니다. 

그러나 요나서가 이렇게 친근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동안 한 번도 요나서를 설교한 적이 없습니다. 신광교회에서 뿐 아니라, 담임목회를 시작한 1999년도 이후부터 한 번도요! 그 이유는 니느웨 선교에 대한 주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도망하는 요나의 모습이 어릴 적 선교사로 헌신했다가 지금 선교지에 있지 않는 저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목회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에 대한 확인은 제게 있습니다만, 그래도 제게 요나서는 편치 않습니다. 그리고 요나서를 설교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선교사님들이 선교 보고를 할 때 대부분 요나서를 본문으로 애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들에게 전해지고 가르쳐져야 합니다. 요나서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즉 요나서도 저나 여러분이 반드시 들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또 순종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죠.

2. 사명, 거부, 물고기 뱃속

1) 사명

선지자 요나가 활동한 시기는 열왕기하 14장 25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라는 말씀대로 여로보암 2세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요나는 나사렛 북쪽 약 5km 정도 떨어져 있는 가드헤벨 출신입니다. 요나는 여로보암의 父親인 요아스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내었고, 成年이 되어서는 여로보암 2세가 솔로몬의 영토를 회복한 繁榮期에 살았습니다. 즉 요나가 활동했던 시기는 솔로몬 이후 최대 번성기였다는 말이지요.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1:2).” 당시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로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성경은 니느웨 성의 크기가 ‘걸어서 삼일 길’이라고 하는데, 고고학자들은 그 둘레가 약 144km정도 되며, 가로 세로는 약 45km에 달하는 거대한 성으로서 어떤 분은 현재 서울의 크기보다 약간 작다고 하는데 정확한 것은 알 길이 없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거대한 성읍인 니느웨는 3면이 강으로 둘러싸였고, 한쪽은 산으로 되어있는 천연적인 요새였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이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니느웨 성의 멸망에 대해 외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 성의 악독이 하나님께 상달하여 심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었습니다. 종종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지 않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 거의 없는 나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계시며, 그 죄에 대해서 심판하시는 주권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만 아니라, 그 주변, 그리고 모든 민족에 대한 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비록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볼 때 원수의 나라이지만, 그 역시 또 다른 하나님의 백성인 앗수르까지 살피고 계셨고, 구원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여 그 죄악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일을 위하여 요나를 세우셨지요.

2) 거역

그러나 요나는 이 명령을 받은 후에 그것을 거역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세상의 끝’이라고 여겨졌던 스페인의 다시스로 가려고 욥바에서 배를 탔습니다(1:3). 왜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을까요? 
 요나 당시 유대인들은 대부분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선민이 아닌 이방인에게는 구원이 필요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별된 이스라엘의 先知者가 이방에 가서 이방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때였습니다. 

게다가 자기 민족에 대한 심판을 선언해도 죽이려드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일은 대단히 위험하고, 또 조롱 받아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 요나가 니느웨 성에 대한 심판을 외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또 다른 이유는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가장 괴롭히고 있던 나라였기에 멸망당해도 마땅한데 도리어 구원을 목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못마땅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당시 한참 성장 일로에 있던 자기 민족의 부흥은 계속되기를 바랐고, 그런 자기 민족을 위협하는 앗수르는 하루라도 빨리 망해 없어지기를 바랐습니다. 게다가 다른 선지자인 아모스나 호세아는 성령의 영감을 통해 ‘앗수르가 장차 이스라엘을 칠 하나님의 도구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요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니느웨로 가기를 꺼렸습니다.  

그리고 앗수르는 이웃 나라들에 대하여 잔인한 짓을 많이 했습니다. 앗수르 軍은 다른 나라를 점령한 후 군인들이나 일반인들을 산채로 그 몸에서 껍질을 벗기고, 갈비뼈를 뜯어내고, 코울타르에 끓여 죽이기도 했으며, 포로들의 해골로 피라미드를 쌓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그들의 악독이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했겠습니까?(1:2) 그래서 요나는 심판받아 마땅한 니느웨가 회개하고 용서받는 것이 싫어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입니다.

이러한 요나의 태도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고 한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거역한 요나를 그냥 두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요나가 타고 가던 배로 큰 풍랑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아마 어느 누구도 그 풍랑은 예상치 못했을 것입니다. 1장 13절에 보면 ‘사공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즉 그들은 욥바 항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에, 육지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갑작스런 폭풍을 만났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요나가 탄 배는 바람과 파도에 심하게 흔들렸고, 거의 좌초 혹은 침몰되기 일보직전에 놓였습니다. 

죽음을 실감한 선원들은 공포에 휩싸여 각자 자신들의 신의 이름을 불렀습니다(1:5). 한편으로는 배를 가볍게 하려고 貨物들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런데 船上에서 이런 난리법석이 일어나고 있을 때, 요나는 배 밑 船室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요나가 배 밑 船室에 들어가 잠든 것은 승선 직후로 보이는데요. 

그가 배를 타자마자 배 밑 선실에 들어가 잠이 든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일, 가까이도 아니고 아예 땅 끝으로 도피하는 일, 그리고 배를 타기까지의 갈등 속에서의 여행 등이 그를 심히 피곤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폭풍을 이겨내고 살아남기 위하여 아등바등하던 사람들은 승선한 사람 중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어디서나 마찬가지지만, 폭풍으로 위협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 선원들은 ‘혹시 승객 중 한 사람이 파도에 휩쓸려가지는 않았나’ 하고 걱정이 되어 그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러던 중 요나가 배 밑 선실에서 잠든 것을 발견했습니다. 

선장이 그를 찾아가 깨웠습니다. 요나에게 ‘모든 사람이 자기 신에게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중이니 당신도 당신의 신에게 기도하여 이 위기를 면해보자’고 요구했습니다. 요나도 기도하는 대열에 끼였으나, 바람과 파도는 그칠 줄을 몰랐고 점점 더 흉용해갔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사람들은 뱃사람들의 관습대로 ‘제비를 뽑아서 이 풍랑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알아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들은 제비를 뽑았으며, 그 결과 요나가 걸렸습니다. 그때서야 요나는 실토를 했습니다. 이 풍랑이 바로 자기 때문에 일어났다고요!

사람들은 요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고, 그의 직업이 무엇이며, 그가 어디에서 온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의 사람인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요나는 자신이 “히브리 사람”이며,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대답했습니다(1:9). 그리고 자신이 지금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도피하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고 책망했습니다(1:10). 그런 다음 그들은 요나에게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요나는 풍랑이 자기로 인하여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설마’ 하면서 요나를 바다에 던지지는 않고 끝까지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서 그를 구원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애를 쓰면 쓸수록 바다는 더욱 거세어졌습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요나를 바다에 던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지는 순간 바다는 거짓말처럼 즉시 잔잔해졌습니다. 이를 본 사람들은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렸습니다(1:16). 

3) 물고기 뱃속에서

인당수의 ‘심청’처럼 노한 물결을 달래기 위해 바다에 던져진 요나는 깊은 물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2장 5절, 6절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라는 말씀으로 보아 그는 지중해 바다의 밑바닥까지 내려갔고, 거기서 수초에 감겨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2장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올린 기도시인데요. 그 중 2절은 그의 기도시 전체의 내용을 요약적으로 보여줍니다.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여기서 “내가 받는 고난”은 물에 빠져 죽어가던 상태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폭풍우 치는 바다에 떨어진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거대한 산과도 같은 파도가 머리 위에서 덮쳐오면 거기에 짓눌려 물속에 잠기게 되고,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수면으로 머리를 한두 번 내밀면 다시 파도가 그를 덮칩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사람은 호흡을 못하게 되고, 의식을 잃고, 물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맙니다. 엄청난 물을 마셨고, 몸의 힘은 빠졌으며, 의식이 몽롱해지면서 물속으로 가라앉게 되지요. 그래서 5절에 보면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라고 말합니다. 죽음 일보직전에 놓였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요나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과 성전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찌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4).” 요나는 죽어가는 자신의 처지를 하나님의 목전에서 쫓겨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요나의 소망은 성전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의 순간에 요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계신 성전을 떠올렸고, 자신이 그 상황에서 피할 수 있는 곳,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깊은 물속으로 빠져들면서 죽음이 임박한 요나가 하나님을 찾자 하나님은 큰 물고기로 하여금 그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부분에 의심과 호기심을 가집니다. ‘도대체 사람을 삼키고, 사람이 뱃속에서 3일이나 생존할 수 있는 물고기는 어떤 물고기란 말인가?’ 어떤 사람은 고래일 것이라고 추정했고, 어떤 사람은 큰 상어의 일종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런 종류의 물고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나를 위하여 한시적으로 창조하신 특별한 물고기였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모든 질문은 無益한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다면 그렇게 믿어야 하지 본문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는 물고기에 대해 이렇쿵 저렇쿵 하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다의 폭풍을 마음대로 일으키거나 잠재울 수 있는 하나님이라면 사람을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동안 생존하게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요나는 빛줄기 하나 없는 암흑 같은 물고기 뱃속에서, 끈끈한 소화액과 물고기가 삼킨 각종 음식물을 뒤집어쓴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사흘을 지냈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죽음이 무엇인지를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이었습니다. 요나는 이러한 죽음의 자리에서 자신이 거역했던 여호와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8절에서 그는 우상 숭배의 죄악을 지적합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서 우상을 숭배한다는 것은 그 은혜를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런 자들의 뒤를 따르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말 속에는 자신이 하나님을 거역한 것이 우상숭배 행위와 같다는 고백이 숨어 있으며, 그것을 회개하는 것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요나는 ‘감사함으로 제사를 드리고 서원한 것을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즉 요나는 하나님이 무엇을 시키시더라도 이제는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른 것입니다. 비록 자신이 물고기 뱃속에 있다고 해도 그것은 별 문제가 아닙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이 무엇을 시키시던 순종할 준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요나를 보신 하나님은 물고기를 명하여 그를 육지에 토하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물고기 뱃속에 있던 요나를 깊이 묵상하셔야 합니다. 왜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자기 길로 간 요나가 있던 곳, 일종의 동굴과도 같은 그런 곳에 혹시 여러분도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이나 프랜시스 베이컨 등 철학자들이 “동굴의 우상(The idols of cave)”이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밀폐된 동굴 속에 갇혀서 넓은 세계를 보지 못하고 어두운 동굴 한켠에 켜둔 촛불에 비취는 것을 전부로 알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사람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편견과 망상에 사로 잡혀 잘못된 줄도 모르고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즉 현재 자신이 물고기 뱃속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자신이 바깥세상에서 밝고 환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99.9%의 사람들이 착각하는 다음의 경우를 아십니까? 남자들은 여자가 자기를 쳐다보면 자기한테 호감 있는 줄 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다’라고 착각한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남자가 자기한테 말을 걸면 관심 있는 줄 알고, 남자가 자기랑 같은 방향으로 가면 관심 있어서 따라오는 줄 알고, 어쩌다 사진 잘 나오면 자기가 이쁜줄 안다고 합니다. 초등학생들은 자기가 서울대 갈 수 있을 줄 착각하고, 못가면 연고대 정도는 가는 줄 압니다. 

중고등학생들은 앞사람 등 뒤에서 잘 때 선생님이 안보이면 선생님도 자기가 안 보이는 줄 압니다. 인문계 고등학생들은 실업계 학생들이 자기들보다 공부 못하는 줄 착각합니다. 연예인들은 자기들이 노래나 연기를 굉장히 잘하는 줄 착각하고, 나이를 속이면 사람들이 모를꺼라고 착각하고, 연예인이 무슨 벼슬인줄 착각한다고 합니다. 엄마들은 자기 아이는 착한데 친구를 잘못만나서 삐뚤어진 줄 착각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자신들은 절대로 늙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왜 이런 썰렁한 유머를 드리는지 아십니까? 성도 여러분들도 착각 속에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매 순간 느끼고 체험하지 못하면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노라 착각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뜻이 앞서면서도 말씀대로 살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자기 일과 자기 목표와 자기 야망에 충실하면서도 사명자로 살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들이 말하자면 물고기 뱃속에 갇힌 자의 삶이라는 것이죠.

지금 여러분은 어디 계십니까? 정말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정말 말씀대로 순종하고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끈적끈적하고 움직이기 불편한 물고기 뱃속이나 동굴에 있으면서 혹시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자신을 살피시기 바랍니다.

3. 使命者로, 使命地로! 

깊은 바다,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요나에게 하나님은 두 번째로 명령하셨습니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3:2).” 이것은 죽음과 지옥을 경험한 요나로서는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즉시 니느웨로 갔습니다. 니느웨는 3일을 걸어야 다 돌 수 있는 큰 성이었는데, 요나가 단 하루 니느웨 사람들에게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3:4).” 고 외쳤는데, 그 메시지가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학자들은 요나가 니느웨를 방문한 시기가 주전 760년경이라고 말합니다. 당시 앗수르는 국가적으로 매우 침체되어 있었으며, 백성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28년간 앗수르를 통치하던 뛰어난 지도자인 ‘아닷니라리 3세’가 후계자 없이 죽은 후, ‘살만에셀 4세’가 이어 받았고, 또 그 뒤를 ‘아수르단’이 이어 받았습니다만, 이 왕들은 매우 나약했고 그와 더불어 국력은 점점 쇠약해졌습니다. 거기다가 주전 765년경 그 땅에 큰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그로 인해 수많은 백성들이 죽었습니다. 

또한 주전 763년 6월 15일에는 일식으로 백성들 사이에 큰 두려움이 만연했습니다. 그 두려움의 실체는 자신들이 신의 진노 아래 놓여 심판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요나가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으며, 이를 들은 앗수르 백성들은 즉시 회개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요나의 메시지를 들은 니느웨 백성들은 금식하면서, 어른부터 아이까지 굵은 베를 입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왕도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왕은 선포했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3:7,8).” 왕은 자신들이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려던 뜻을 돌이키시고,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적중되었습니다.

4. 땅에 사는 자, 사명을 감당하는 자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주님은 모든 성도들에게 ‘땅 끝까지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주님께서 명하신 모든 명령을 가르쳐 그들로 지키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마 28:18~20). 이것은 변경되거나 취소될 수 없는 절대적인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성도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요나처럼 드러내놓고 거역하고 딴 길로 가지는 않아도 그 명령을 묵살하고 복음 전하는 일에 철저히 침묵하면서 사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냐 하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만약 우리가 계속 이 명령을 거역한다면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 개인적으로, 혹은 가정적으로, 혹은 교회적으로 풍랑일 만나게 하실 것이고, 물고기를 보내서 그 속에 있게 하실 것입니다. 심각한 문제는 물고기 뱃속에 갇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주님의 복을 누리지 못하고 사명자로 살디 못하면서도 자신의 실상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주어진 일과 자리에 최선을 다 하되, 그 모든 것이 주님을 드러내고 복음을 전하는 수단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만나는 사람마다, 가까이와 멀리로 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교회와 성도에게 부여하신 至上命令에 어떤 방법으로든지 참여하며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직접 가든지, 아니면 보내고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든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여러분을 집어삼킬 풍랑을 만날 수 있고, 빛도 공기도 없는 물고기 뱃속에서, 인생의 동굴에 갇혀 고통 가운데 살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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