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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어나 벧엘로 가라 (창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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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벧엘로 가라 (창 35:1)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4년 12월, 연합군이 독일군을 공격하기 위해 작전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전이 독일군의 엉뚱한 책략에 의해 한동안 지연되는 혼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심한 폭풍우가 내리는 밤에 미군 복장을 한 독일군이 미군 지프 몇 대에 나누어 타고 연합군 지역에 침투해 들어 왔습니다. 그들은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연합군이 세워 놓은 방향표시판들을 아무렇게나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방법은 악한 마귀가 즐겨 쓰는 전략입니다. 마귀는 종종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삶의 길에 방향표지판을 바꿔놓습니다. 그래서 혼란을 빚고 큰 곤경과 불행의 늪에 빠지도록 합니다. 본문에 나타나 있는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보여주신 삶의 방향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택한 방향은 벧엘이 아닌 세겜이었습니다. 세겜으로 향하면 모든 것이 편리하고 행복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기대한 행복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말씀이 본문입니다.“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창세기 35:1)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인 야곱은 형 에서로부터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간교하게 빼앗은 과거가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원한을 품고 있는 형을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고향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갈 때, 날이 저물어 돌을 베개하고 벌판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날 밤 꿈속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세기 28:13~15)하셨습니다. 눈을 떠보니 꿈이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감격하여 베개를 삼았던 돌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했습니다. 벧엘이란“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굳게 맹세하기를“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세기 28:20~22) 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맹세한 내용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나를 지키셔서 승리하게 하시면 이곳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겠다는 것과, 둘째는, 십일조를 반듯이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객지에서 20년간 머슴살이를 하면서 많은 고생을 했지만,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축복하시므로 마침내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다시 야곱에게 말씀하시기를“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창세기 31:13) 하셨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20년 전 벧엘 들판에서 하나님께 맹세한 것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금의환향하여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복된 생애를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금의환향의 부푼 꿈을 안고 모든 가족과 가축을 이끌고 벧엘을 향했습니다. 

벧엘을 향해 나아가던 야곱은 도중에 그만 목적지를 변경하여 하나님의 집 벧엘이 아닌 세겜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세겜에는 물이 넉넉하고 초지가 좋아 목축하며 살기에 적당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맹세한 벧엘이 아닌 세겜에 머물렀습니다. 목적지가 바뀌었습니다. 목표가 빗나갔습니다. 

차선을 벗어난 자동차나, 항로를 이탈한 선박과 비행기처럼 삶의 목표가 빗나간 야곱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외동딸 디나가 세겜 성에 친구를 찾아 나갔다가 추장의 아들 세겜에게 겁탈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격분한 야곱의 아들들은 그 지역 사람들을 무참히 죽였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금지옥엽(金枝玉葉)같은 딸은 몸을 더럽히게 되었고, 아들들은 손에 피를 묻힌 살인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야곱이 세겜에 머물며 얻은 결과였습니다. 야곱은 참담한 실패를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말씀하시기를“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창세기 35:1)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매우 귀한 삶의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一. 받은 축복을 누리는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시원한 물가에 앉아 물고기를 낚는 낚시꾼을 한번 연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오랜 시간을 물가에 앉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물고기가 낚시 바늘을 물었습니다. 낚싯대로 전해지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기대에 찬 마음으로 조심조심 끌어 올리는데 큰 물고기가 펄떡거리고 있었습니다. 손에 잡힐 듯 했는데 끝마무리 잘못으로 그만 놓쳐 버렸습니다.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낚시꾼들의 눈에는 놓친 물고기는 항상 크게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낚시꾼들이 잘 쓰는 거짓말이“오늘 내가 월척을 놓쳤다.”고 한답니다. 이 말은 안타까움의 표현일 것입니다.

기도하고 땀 흘려 노력한 결과 원하던 것을 이루었습니다.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런데 그만 관리 소홀로 인해 얼마 가지 않아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깝고 속이 상하겠습니까? 그 사람이 본문의 야곱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말씀하시기를“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창세기 31:13) 하셨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20년 전 벧엘 들판에서 하나님께 맹세한 것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꿈을 이룬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복된 생애를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이러한 꿈을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모든 가족과 가축을 이끌고 벧엘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벧엘이란“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며, 세겜이란“일부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벧엘까지 가지 아니하고 세겜 즉 일부분의 순종에 머물며 행복을 꿈꾸었습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지난날에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매사에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던 야곱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큰 복을 받은 야곱의 믿음은 변했습니다. 이제는 내 생각이 중심이며 양들을 잘 키워 양떼를 늘리는 것이 삶의 우선이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야곱은 참담한 실패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렇다하여 야곱이 하나님을 아주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세겜에서도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창세기 33장 18절~20절에 기록하기를“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에 이르러 성앞에 그 장막을 치고 그 장막 친 밭을 세겜의 아비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은 일백개로 사고 거기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거기서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세겜의 뜻이“일부분”일부분이란 것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은 일부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분적인 순종, 절반의 순종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야곱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하나님은 삶의 일부분으로 밀려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야곱은 행복을 꿈꾸었습니다. 이것은 야곱의 크나큰 착각이었습니다. 마치 레일을 벗어난 열차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어리석음과 같습니다. 행복이 어디에 있을까요? 행복은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아갈 때입니다. 하나님은 행복의 근원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행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옆으로 제쳐놓고 행복의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을 지키시며 축복하신 하나님 이외에 다른 방면에서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어리석음이었습니다. 

야곱은 지난날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여 이길 정도의 열심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제 그 믿음은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신 자기의 생각이 우선했고, 양떼에 대한 집착이 전부였습니다. 창세기 34장은 야곱이 세겜에 머물러 살았던 내용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34장에 하나님이란 용어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딸이 이방인에게 욕을 당하고 아들들이 복수의 칼을 들고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는데도 야곱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성도여러분! 축복은 받기도 어렵지만 받은 복을 관리하며 지키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닙니다. 성공을 거두기도 어렵지만 이룬 성공 지키는 것도 그 못지 않게 어렵습니다. 야곱은 어려운 날에는 하나님을 잘 섬겨 큰 복을 받았으나 복을 받은 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참담한 실패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어느 장로님, 권사님 부부의 아들인 의사가 병원단합대회를 하는 장소인 어느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그만 유혹에 빠졌습니다. 예쁜 술집 아가씨의 유혹에 빠져 그 색시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두 아들을 데리고 사는, 결혼에 실패한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이 기가 막혀 야단을 칩니다.“야, 이놈아. 술집 색시에게 장가가라고 그렇게 고생하며 공부시킨 줄 알았느냐? 야, 이 못된 놈아!”“부모님 그러나 저는 결혼합니다.”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무리 말려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이 아들의 마음을 좀 바꾸어 보려고 목사님을 모셔왔습니다.“목사님, 이 답답한 놈을 좀 보십시오. 글쎄, 술집 색시에게 장가를 간답니다. 그것도 아들이 둘이나 있는 여자한테”그 말을 들은 아들이 말했습니다.“목사님, 어떻게 장로님, 권사님이 되어서 저런 말씀을 하십니까? 장로님이고 권사님이면 불쌍한 사람을 안타깝게 여겨야지, 술집 색시라고 사람을 천대하면 되겠습니까? 다 같은 사람인데 저렇게 차별을 하면 되겠습니까?” 목사님이 그 말을 들어보니 그럴 듯 했습니다. 결국 이 의사 아들은 아이가 둘 있는 술집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행복했겠습니까? 불행했겠습니까? 여러 남자를 사귄 여자라 한 남편으로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 의사가 얼마나 비통하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떠난 삶은 언제나 성공 같으나 실패로 끝이 납니다. 반면 하나님을 굳게 붙잡는 삶은 실패 같으나 성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머물 곳은 벧엘입니다. 즉 하나님의 집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고, 받은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二.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배신한 사람이 망했을 때 배신당한 사람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통쾌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출애굽기 23장 4절~5절에 말씀하시기를“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 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두지 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리울지니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대명사가 사랑입니다.“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한일서 4:16)하셨습니다. 

이 사랑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 고집대로 세겜에 살다가 낭패를 당한 야곱을 다시 찾아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괘씸한 야곱에게 오셔서 하신 말씀이 본문입니다.“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창세기 35:1)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한 야곱, 어려울 땐 하나님을 찾고 좋은 날엔 하나님을 멀리한 기회주의자 야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야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찾아오셔서 야곱을 부르시며 벧엘로 올라가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사야 49장 15절~16절에 말씀하시기를“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노라)고...”하셨습니다. 이처럼 야곱을 잊지 않으신 하나님은 야곱에게“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창세기 35:1)하셨습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엉뚱한 곳에서 방황하지 말고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세겜은 유혹의 땅이었습니다. 양을 치며 살아가기에는 좋은 곳이었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야곱과 그의 가족들의 신앙을 병들게 한 곳이었습니다. 자식들을 죄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실패의 늪에 처한 야곱을 다시 찾아 권면하시기를“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하셨습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세겜은 일어나 떠나야할 자리였습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에게는 혹 떠나야할 자리가 없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계속 머물러있는 자리는 혹 있지 않습니까? 혹 양심에 가책을 받으면서 계속 머물러있는 자리는 없습니까? 복된 신앙생활이란 떠나야할 자리를 과감하게 박차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복된 신앙생활이란 버려야할 것을 단호하게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시편 1편 1절~3절에 말씀하시기를“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하셨습니다. 죄악의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끊을 것은 끊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신약성경 에베소서 4장 22절~24절에 권면하시기를“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하셨습니다. 결단하여 일어서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초대 선교사인 마포삼열 목사는 밤만 되면 불량배들과 유생들의 돌 세례로 곤혹을 치르곤 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평양 깡패로 알려진 이기풍이라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잔칫집마다 찾아다니며 술과 떡을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던 깡패였는데, 마포삼열 목사의 집에도 끈질기게 찾아와 돌을 던지고 불을 지르는 등, 그의 행패는 말로 할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어느 때는 그가 던진 돌에 맞아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선교사의 집에 불을 지르고 도망치던 이기풍이가 다치게 되었는데 선교사가 찾아가서 치료를 해 주고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이에 감동한 이기풍 청년은 회개하고 예수를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훗날 그는 평양신학교를 나와 초대 목사가 되었고, 초대 제주도 선교사를 파송을 받았습니다. 그는 일생 호남지방에서 목회를 했는데, 여수 돌산 앞 우학교회에서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순교했습니다.

실패한 야곱을 찾아 부르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죄악의 자리 세겜, 불신앙의 지리 세겜, 불순종의 지리 세겜에서 일어나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집 벧엘로 오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오면 진정한 쉼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부르고 계십니다.
실패했다하여 낙심하여 한숨만 쉬지 말고 벧엘로 오라! 
내가 너를 다시 일으켜 주리라. 

험한 세파에 시달려 지친자여! 다 내게로 오라. 
내가 새 힘을 주리라.

병든 자여!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강건케 하리라.

가난한 자여!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부요케 하리라.
외로운 자여!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의 벗이 되리라.

반면 하나님은 이렇게도 말씀하십니다. 
성공한 자여! 그 성공 오래토록 지키기 위해 내게로 와서 내게 배우라.
행복한 자여! 그 행복 오래토록 누리기 위해 내게로 와서 내게 배우라.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이 임재 해 계시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교회는 내 영혼이 하나님을 만나는 면회소입니다. 
교회는 내 영혼의 안식처입니다. 

교회를 중심하여 살아가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교회를 중심하여 살아가면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교회를 중심하여 살아가면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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