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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란 무엇인가? 1 (왕상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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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란 무엇인가? 1 (왕상 3:4-9)
 
 
❚잘 들읍시다

장신대에서 신학생들에게 ‘구약성경공부’라는 과목을 가르치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제부터 하는 성경공부는 제가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식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소그룹으로 토의하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방법으로 진행할 텐데 가장 먼저 생각해 볼 문제는, 서로 토의하고 의견을 나눌 때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답이 나왔습니다. 

그 중에 1, 2위를 차지한 답이 뭔지 아십니까? 여러분 생각부터 말해보세요. 여러 사람이 대화하고 의견을 나눌 때 무엇을 가장 조심해야 하겠습니까? 1위가 이겁니다. “나 혼자 토론을 독점하지 말자,” 즉 혼자만 떠들지 말자는 것입니다. 종종 토론을 할 때나 의견을 나눌 때 혼자만 신나게 떠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 말이 깁니다. 또 너무 말을 자주 하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다른 사람도 골고루 이야기 할 수 있게 가급적이면 내 말을 줄이고 짧게 말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2위는 이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잘 기울여야 한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말할 때도 잘 들으라는 것입니다. 주로 혼자 떠들고 내 말만 많이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남이 말할 때 잘 안 듣습니다. 왜요? 다음에 자기가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하느라 남의 말을 안 듣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토론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문제라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을 받다보니 토론을 하거나 자기 의견을 말해야 할 때 잘 못한답니다. 반대로 자기 말만 하고 남의 말을 안 듣는 나쁜 습관도 있습니다. 노래방 가 본 적 있으십니까? 우리나라처럼 노래방에 우~ 몰려가서 같이 노래하는 민족도 없다고 하네요.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여럿이 함께 가서 노래를 부를 때 내가 한 곡 뽑고는 자리에 앉아서 그 다음 사람이 노래할 때 주로 뭘 하냐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남이 노래 부를 때 듣지 않고 다음에 자기가 부를 노래를 고르느라 노래방 책을 뒤적거립니다. 남의 말도 잘 안 듣는데 노래도 잘 안 듣습니다. 무심코 하는 이런 태도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얼마나 방해하는지 아십니까?


❚듣는 기도

둘째 아이가 중학생 때 일입니다. 한창 잘 어울려 놀던 아이와 잘 안 노는 것 같아서 물었습니다. “요즘 아무개하고 잘 안 노니?” “걔하고 요즘 안 놀아요. 고집도 너무 세고요 늘 자기만 말해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자기주장만 펴는 사람, 남의 말 안 듣고 혼자 떠드는 사람은 인간관계가 어려워집니다. 잘 들어야 합니다. 잘 듣는 것이 대화의 기본이고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입니다. 상담도 잘 듣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상담을 참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런데 상담을 할 때 가장 기본이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상담을 하며 뭔가 정답을 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깨닫는 것이 상담을 해도 대부분 정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답을 주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상담은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상담을 하고 내 고민을 쏟아놓는 가운데 놀랍게도 상처가 해결되고 문제가 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진정한 상담은 내가 무슨 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하는 말을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재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재판도 결국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에 보시면 솔로몬은 하나님께 백성들을 잘 재판할 수 있도록 ‘듣는 마음’을 달라고 했습니다. 재판을 받으러 온 백성의 말을 귀담아 잘 들어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재판도 상담처럼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요즘 재판장들은 피고나 원고의 말을 잘 안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뭔가 말하려고 하면 “당신이 뭘 알아? 내가 판사인데” 하고 막습니다. 그리고 자기 말만 합니다. 재판을 빨리빨리 해치우려고 그러는지, 더 큰 이유는 재판 받는 사람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이래가지고서는 바른 재판을 할 수 없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로워서 그 사실을 잘 알았던 게지요.

이는 인간관계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독백이 아닌 대화 말입니다. 독백은 혼자 말하는 것입니다. 대화는 두 사람 이상이 서로 주고받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고 나면 반드시 상대방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대화가 아니라 독백이요 일방적인 요구인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하나님” 하고 부르고서는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고” 하며 일방적으로 내 얘기만 하고, 내 요구사항만 늘어놓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상 용무 끝입니다” 하고 마치지는 않습니까? 이것은 징정한 대화가 아닙니다. 진정한 기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먼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윗사람과 대화할 때도 순서가 있지요? 보통 윗사람이 먼저 말씀하면 내가 잘 경청하고 있다가 그 다음에 말하는 것처럼, 기도도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시게 하고 나는 잘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야 내 생각이나 원하는 것을 아뢰는 것이 맞는 순서입니다.

인도의 성자라고 불리는 테레사 수녀가 인터뷰를 했습니다. 기자가 질문합니다.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당신은 기도할 때 뭐라고 말하나요?” 테레사 수녀가 대답합니다. “그냥 듣고만 있지요.”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자기는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기자가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기도할 때 하나님은 뭐라고 하시나요?” “하나님도 들으신답니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 기도에 대한 중요한 교훈이 들어있습니다. 기도는 말하는 것이라기보다 듣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내가 잘 듣고, 내가 말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이것이 진짜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잘 듣는 것,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지혜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잘 듣는 지혜가 필요하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잘 듣는 지혜가 정말 필요합니다.

❚듣는 마음

지난 시간 성경이 말씀하는 ‘하늘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성경이 지식과 지혜를 구분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지식과 지혜가 어떻게 다른지 말씀드렸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식과 더불어 지혜를 구한 까닭이 무엇인지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부터 세 주에 걸쳐 성경이 말씀하는 지혜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첫 번째로 성경이 말씀하는 지혜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왜 그런가? 성경에 나오는 지혜의 책 잠언 9:10이 답을 가르쳐줍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그렇지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야말로 지혜의 근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냐? ‘경외한다’는 말을 그대로 풀어보면 “공경하고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공경하고 두려워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깨달았습니다. 누군가를 공경한다, 두려워한다는 말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뜻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공경하고 또 두려워한다면 당연히 그분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을 잘 듣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야말로 지혜의 근본이다.” 그렇습니다. 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순종이고, 성경이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5:22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바로 순종입니다. 그래서 그 우리에게 제사보다 제물보다 그 무엇보다 순종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을 아주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고,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커다란 복과 은총을 받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순종이라는 게 뭐겠습니까? 이 ‘순종’이라는 낱말이 히브리말로는 그냥 ‘듣는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순종은 그냥 ‘잘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잘 듣는 것 말입니다. 잘 듣는다는 말은 그냥 하나님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말에도 “엄마 말씀 잘 들어” 할 때, 귀로 말소리만 잘 들으라는 뜻이 아니지요? 말만 들으면 되겠습니까? 한쪽 귀로 듣고 얼마든지 나머지 한쪽 귀로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 목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듣는 것’ 즉 그 말대로 따르고 순종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가장 잘 공경하는 방법은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을 귀 기울여 잘 들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잘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첫 번째 방법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보세요. 그러니까 성경이 뭐라고 말씀한 것입니까? 하나님 말씀 잘 들어라! 그 말씀을 귀 기울여 잘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해라! 그러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신다! 그것이 바로 지혜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세요. 사실 지난주에 나누었던 역대하 1장에 나오는 말씀과 똑같은 본문입니다. 같은 내용이 열왕기상 3장에도 나오고 역대하 1장에도 나오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를 좀 어려운 말로 ‘병행본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를테면 똑같은 내용이 마태복음에도 나오고 마가복음에도 나옵니다. 성경에는 이런 병행본문이 많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분명히 같은 내용인데도 자세히 살펴보면 조금씩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열왕기상과 역대하도 조금 다릅니다. 한번 보십시다. 열왕기상 3:4입니다. 솔로몬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 산당에 올라갔다는 것과 거기서 일천 번제를 드렸다는 내용은 역대하와 같습니다. 또 밤중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하고 물어보시는 것도 똑같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대답이 조금 다릅니다. 9절에 보세요. 하나님이 맡기신 백성을 재판할 수 있게 이것을 달라는 것도 역대하와 같은데 정작 달라고 구한 것이 다릅니다. 뭘 구합니까? 예, ‘듣는 마음’입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9절)

역대하 1장 10절에는 뭘 달라고 구합니까? 예, ‘지혜와 지식’입니다. 다르지요? 그런데 왜 다를까요? 분명히 같은 내용을 다룬 같은 본문인데 왜 솔로몬은 역대기에서는 ‘지혜와 지식’을 달라고 하고, 열왕기에서는 ‘듣는 마음’을 달라고 한 것일까요? 비록 말은 다르지만 이 두 가지가 같기 때문입니다. 지혜란 무엇이냐? ‘듣는 마음’ ‘듣는 자세’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에 우리가 읽던 개역한글판 성경에는 열왕기상 3:9이 ‘지혜’라고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성경인 개역개정판에는 히브리말 성경을 그대로 따서 ‘듣는 마음’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잘 한 번역입니다. 왜요? 솔로몬은 그냥 ‘지혜’를 주세요 하고 구한 것이 아니라 분명 ‘듣는 마음’을 달라고 구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생각할 때 진정한 지혜는 ‘듣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구한 것입니다. 이 ‘듣는 마음’이라는 말에 아주 심오한 뜻이 들어있습니다.

❚지혜를 구하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그 무엇보다 꼭 하늘의 지혜, 하나님의 지혜를 얻기 바랍니다. 세상에 잘 난 사람 참 많습니다. 똑똑한 사람, 뛰어난 사람 얼마든지 많습니다. 간혹 자신의 두뇌를 자랑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똑똑하고 능력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도 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습니다. 우리가 똑똑해봐야 얼마나 똑똑하고 잘나봐야 얼마나 잘났겠습니까? 가끔 “우리 아이가 아이큐 130이래요” 하고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분을 봅니다. 

아이큐 130이면 가히 천재 수준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우리보다 머리 좋고 아이큐 높은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아이큐를 가진 사람은 미국 UCLA 교수인 타렌스 타오라는 사람인데 아이큐가 자그마치 230이라고 합니다. 130이 아닙니다. 230입니다. 20세에 박사학위를 받고 24세에 미국의 명문 UCLA의 최연소 교수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김웅용 씨는 아이큐 210으로 세계 3위입니다. 우리가 머리로 이들을 이기겠습니까?

세상에는 나보다 잘난 사람, 뛰어난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많습니다. 다만 그 기준은 어디까지나 ‘지식과 능력’에 국한됩니다. 지혜는 아이큐처럼 측량할 수도,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지혜는 깊고 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깊고 깊은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지혜는 정말 깊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오늘 본문 바로 뒤에 그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 이야기가 나옵니다. 교회 안 다니는 분들도 다 아는 이 유명한 이야기 때문에 명 재판을 ‘솔로몬의 재판’이라고 부르기까지 합니다. 이 재판에 대해서는 두 주 후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아주 잠시만 살펴보자면 창기 두 사람이 한 아들을 안고 왕에게 와서 서로 자기 아이라고 우기기 시작합니다. 서로 죽은 아이는 저 여자 아이고, 이 아이가 자기 아이라고 말입니다. 요즘처럼 유전자 검사를 해 볼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한 상황인데 솔로몬은 너무나 명쾌하게 해결을 합니다.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두 주 후에 살펴보도록 하고 오늘은 이 재판 후에 결론이 되는 말씀을 보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열왕기상 3:28을 봅니다.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성경은 분명히 증언합니다. 솔로몬이 이렇게 명쾌하고 분명하게 재판을 한 것은 무엇 때문이다? 솔로몬이 아이큐가 높아서도 아니고, 잘 나고 유능해서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지혜’가 솔로몬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귀담아 듣는 마음’을 구하니 하나님께서 하늘의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무엇보다 꼭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이것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얻으면 측량할 길 없이 깊고 깊은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얻으면 하나님을 참으로 기쁘시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 후 찬송가 375장을 부릅니다. “나는 갈 길 모르니 주여 인도하소서 어디 가야 좋을지 나를 인도하소서, 아무 것도 모르니 나를 가르치소서 어찌 해야 좋을지 나를 가르치소서, 아이 같이 어리니 나를 도와주소서 힘도 없고 약하니 나를 도와주소서” 이런 가사입니다. 기가 막힌 가사입니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한치 앞도 알지 못합니다. 위기가 닥쳐오고 문제가 생길 때 어찌 해야 할 바를 모르고 어린아이처럼 갈팡질팡 합니다. 

오늘 본문 7절에도 보면 솔로몬이 하나님께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합니다. 그 지혜롭고 똑똑한 솔로몬이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무리 머리가 좋은들, 아무리 똑똑하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들 무슨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도와주셔야만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다만 잘 듣고 순종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모든 지혜,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올바른 관계는 오직 솔로몬이 구한 것처럼 하나님께 잘 듣는 데서 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잘 듣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하늘의 지혜를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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