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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석] 부탁한다 (요 19: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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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한다 (요 19:25-27)
   
오늘 예배를 마치고 많은 분들이 추석 명절을 쇠기 위해 고향으로 떠나시리라 생각됩니다. 비가 많이 오는데 안전운행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사랑스런 가족들을 만날 때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어려운 부탁을 해 본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군가로부터 어려운 부탁을 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 부탁을 하는 것도, 부탁을 받는 것도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부탁을 받았을 때 부담이 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분이 좋은 부탁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집가는 딸을 사위에게 넘겨주며 아버지가 사위를 향해 ‘내 딸, 잘 부탁하네!’ 라고 합니다. 이 말에서 아버지가 딸에게 가지고 있는 사랑이 느껴지고, 장인이 사위에 대해 거는 기대와 신뢰가 느껴집니다. 이런 부탁은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에게 힘이 되고 신뢰가 되는 부탁입니다. 

‘부탁하다’라는 말에는 부탁하는 사람이 느끼는 한계성이 담겨 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성을 기꺼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겸허한 마음이 ‘부탁하다’라는 말에 담겨 있습니다. 시집가는 딸을 사위에게 맡기며 ‘잘 부탁하네!’라고 말할 때 그 딸의 아버지는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딸을 언제까지고 데리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한계, 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아프지만 떼어 보내야 한다는 한계, 그리고 결혼한 딸의 삶을 아비인 자신이 간섭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한계, 그러나 그 모든 한계를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일 때에만 ‘내 딸을 부탁하네!’라는 말이 나옵니다. ‘내 딸을 부탁하네!’라는 말에는 아버지의 힘과 권위가 없습니다. 한계에 대한 겸허함만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부탁’이라는 말은 참 정겨운 말입니다. 누군가를 누구에게 부탁할 수 있는 사람, 누군가로부터 부탁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사람다움’이 있는 사람이며 행복한 사람입니다. 무엇을 혹은 누구를 믿고 맡기고 부탁할 대상이 아무도 없다면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무엇을 혹은 누구를 부탁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그 사람은 인간미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고 불쌍한 사람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신세도 지지 않겠고 다른 사람 일에 관여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깔끔해 보이고 능력 있게 들리지만 그것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불행한 선택일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서로 의지하고 맡기고 돌보며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의미로 가정은 하나님께서 서로의 허물과 아픔을 품으면서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부탁하고, 부탁받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가족 모두가 다 자신의 앞을 챙기는 데에만 급급해 한다면 가정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의 가정의 붕괴의 원인이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인 가족 관계가 형성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한가위 명절을 앞두고 ‘가족’과 ‘부탁한다’ 는 주제를 중심으로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오늘 본문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십자가 아래에서 슬피 울고 있는 어머니 마리아를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절망감에 쌓여 통곡을 하고 있는 어머니 마리아를 바라보고 또한 그 옆에 있는 제자 요한을 바라봅니다. 예수님은 힘겹게 입을 열어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향해 ‘요한아, 보아라 네 어머니이시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달리 말하면 ‘요한아, 내 어머니를 부탁한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동생들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기둥처럼 쓰임을 받고 성경의 야고보서를 기록한 야고보도 예수님의 동생입니다. 성경의 유다서를 쓴 유다도 예수님의 동생입니다. 예수님에게는 누이동생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인 요한에게 부탁한 것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를 못했습니다. 형인 예수가 하는 일이 못마땅했습니다. 온 가족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변화된 것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보고 난 이후입니다.  

예수님의 동생들이 어머니 마리아를 혈육의 관계에서 돌볼 수는 있겠지만 어머니 마리아를 영적인 측면에서 돌보며 위로해 줄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알고 있기에 당신의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했습니다. 

오늘 본문 27절에 보면 요한은 예수님의 부탁을 듣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자신의 집으로 모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자신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했을 때 그 어머니를 자신의 집으로 모시고 돌아가실 때까지 정성껏 모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또 다른 가족이며 가정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하나님 안에서 맺어진 영적인 형제, 자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계실 때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집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이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누가 내 형제, 내 부모이더냐 바로 너희가 내 형제이고 부모가 아니더냐’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한 영원한 가족, 가정의 개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새롭게 창조하신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한 분의 아버지로 모시는 가족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가정을 만드셨듯이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새로운 구원의 세계를 만드시면서 요한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하시는 모습을 통해 새로운 가정을 창조하셨습니다. 교회는 새로운 ‘돌봄’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연합하여 서로를 돌보고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은 교회이고, 교회는 가정입니다. 그러기에 가정과 교회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 것처럼 어리석은 질문은 없습니다. 

저는 본문을 묵상하면서 예수님께서 제자 요한을 향해 ‘요한아, 내 어머니를 부탁한다’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나에게 무엇을 부탁하실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니, 예수님께서 나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서 당신이 하고 싶으신 일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을 하실 때 사람을 통해서 하십니다. 누구 하나를 돕고, 무너진 한 부분을 세워도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무엇보다도 기하십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을 읽어보면 바울서신이든지, 야고보서든지, 베드로서든지 빠지지 않고 나오는 내용이 있습니다. 가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살라는 말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말씀 안에서 양육하고 자녀는 부모의 가르침에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에베소서 5,6장입니다.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하기를 주님께 순종하듯 하라’고 말씀합니다. 남편에게는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주심 같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자녀들에게는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모에게는 ‘자녀들을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부탁한다’는 주제를 가지고 살펴보면 가족 구성원은 모두가 가족 서로의 필요를 위해 자신을 내어 줄 마음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가족들은 서로에게 부탁을 하고, 부탁을 기꺼이 받아 해결해 주는 관계가 될 때 그것이 진정한 가정의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평안한 가정을 보면 가족 간에 부탁을 할 때도 서로의 형편을 고려하며 부탁합니다.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상황과 형편을 생각하며 부탁합니다. 상대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부탁은 이기적인 욕심입니다. 부탁을 받은 가족은 그것이 한편으로는 힘에 부치는 일이기도 하지만 기꺼이 그것을 감당해 줄 때 그곳에서 가족의 진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그런 관계 속에서 가정의 행복이 만들어집니다. 

이번 명절에 가족들을 만나다 보면 가족들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주의 이름으로 위로하고 품는 가운데 그들이 새 힘과 용기를 얻어 웃음과 희망을 되찾는 시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족 간에 서로의 형편을 살피면서 서로를 위하는 가운데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향해 한 가지 더 ‘부탁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너의 가족과 교회를 돌볼 뿐 만 아니라 너의 가정과 교회 밖에 있는 어려운 이웃들을 너희들에게 ‘부탁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명절을 보내면서 우리 이웃 가운데 외롭게 사는 사람이 누가 있는지, 힘겨운 삶의 자리에 놓인 사람이 누가 있는지를 돌아보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작은 사랑이라도 함께 나누는 명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명절을 맞으면 더 외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을 만날 수 없는 실향민들도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 결혼 이주민들도 있습니다.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들도 있습니다. 기근으로 굶어 죽어가는 수많은 어린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는 몇 개월 안에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70만 명의 아이들이 굶어 죽게 된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하나님은 명절을 맞이하여 고향을 찾는 우리들에게 굶주림 가운데에 있는 그 아이들도 ‘부탁한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 안에서 가족들과 함께 즐겁고 풍요로운 명절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한가위 명절을 보내기 위해 준비하는 우리들을 향해 ‘부탁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듣고 주의 사랑으로 약한 가족들을 더 굳건하게 세우는 가운데 더 끈끈한 사랑의 관계들이 맺어지기 바랍니다. 가족들이 함께 명절을 보내면서 우리 이웃들 가운데 외롭고, 힘들어 하는 이들을 향해서도 사랑의 마음을 조금이라고 함께 나누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한가위 명절을 예수님의 마음을 중심으로 가족과 이웃들 속에서 행복을 만들어 가기 원하는 성도 여러분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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