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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삶으로 드리는 예배 (히 1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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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 드리는 예배 (히 13:1-16)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삶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13장은 그 삶의 특징을 언급하는 것으로 그 내용은 이러하다.

① 사랑하라. (히13:1~2) - 형제들에게

② 긍휼의 마음을 베풀라. (히13:3) - 소외된 이웃들에게

③ 성결하라. (히13:4) - 결혼과 가정에 대해

④ 자족하라. (히13:5~6) - 돈에 대해

⑤ 섬겨라. (히13:7) - 주의 말씀 사역자에 대해

⑥ 담대하라. (히13:13) - 고난 앞에서

이런 내용들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고 무시되거나 외면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런 삶이 곧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사가 폐하여진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제사 대신 구원을 받은 크리스챤은 예배를 드린다.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시는데 올바른 예배란 무엇인가? 그것은 삶에서 드리는 예배인 것이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란 무엇인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 의전을 따라서 예배를 드린다. 개회와 함께 묵도, 송영, 교독, 신앙고백으로 이루어진 이 예배는 공식적인 예배의 틀이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예배를 통해 나의 심정을 드린다. 그리고 그 예배는 축도로 끝을 맺는다. 그러면 예배가 끝나는 것인가? 아니다. 교회 안에서 가운을 입고 드린 거룩한 예배가 예배당 문을 나가는 순간 새로운 예배가 시작되어야 한다. 즉, 삶으로 드리는 예배다.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릴 때만 경건하고 예배를 드릴 때만 거룩하고 예배당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공적 예배에서 얻은 영성과 성령의 감동을 가지고 예배자로 나서야 한다. 가정으로 나아가든지 식당으로 나아가든지 친구와의 만남의 장소로 나아가든지 삶의 예배는 시작되는 것이다. 명절이라고 크리스챤들이 명절에 취하여 아무렇게나 행동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다. 

오늘 히13:1~13까지의 도덕적 권면 사항들은 삶을 예배로 드리는 사항들의 지침인 것이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보자. 

히13: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여기서 찾을 수 있는 삶의 예배는 1. 찬송의 제사다.

히13:1~12에 기록된 도덕적 권면 등을 묵상해 보면 충분히 찬송하고 싶은 것들이다. 내가 사랑을 받았다. 외로울 때, 갇혀 있을 때, 학대받을 때 긍휼하심을 받았다. 가정이 거룩하게 지켜진 것, 결혼을 귀히 여긴 것은 부모와 형제들이 보여준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돈에 대해서 노예가 되지 않고 물질적으로 족하게 하신 것,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말씀 인도자를 붙여주셔서 믿음을 본받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돌봄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교회학교 교사를, 어른들에게는 속장님들을, 공적 예배 시에는 목사님을 세우셔서 인도를 받게 하시니, 생각해 보라. 생각하면 감사하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노래가 나온다. 감사가 가득 담긴 즐거움의 노래가 절로 나온다. 그러므로 순간마다, 사건마다 스치고 지나가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인해 찬양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태양 앞에 그림자가 생겨지듯 히13:1~12의 권면은 떠올리기만 해도 저절로 마음 속에서 찬송의 제사가 올려지는 것이다. 예수님! 그 예수로 말미암아 찬송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삶의 예배다. 힘들어도, 괴로워도 항상 하나님께 찬송을 드려야 한다.
  

2. 증언하는 제사를 드리자.

히13:15下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라고 하였다.

위의 구절은 찬송의 제사를 다른 말로 표현한 뜻이지만 입술로 제사를 드린다면 그것은 공적인 것이다. 입술이란 이 말은 문자적으로 ‘고백한다’는 뜻이다. 즉 입술의 고백은 예수의 이름을 증언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가 주일에 공식적으로 주일 예배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것은 증거의 기회가 된다. 공적 예배가 돌아왔을 때 예배에 출석하지 않고 다방에, 호텔에, 테니스장에, 레저 시설에 가 있다면 예수 이름을 증언하는 증거의 기회가 되지 못한다. 

우리는 공적 예배에 성실하게 참여하므로 예수님을 증언하고 신앙 고백을 나타내는 제사를 드리자. 불신자들도 내가 교회 집사, 장로면 11시에 자기들의 모임에 올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기에 공적 예배에 나아가 입술의 열매로 드리면 동창들과 불신자 친구들이 모임에 안오고 술자리에 안온다고 떠들면서도 나를 진짜 신자로 본다. 나를 인정한다. 감동받는다. 우리는 어디서든지 예수 이름을 증언하는 제사를 드리자. 잘 섞여 지내되 증거의 제사를 올려야 한다.

  
3. 선한 일을 행하는 제사다. (히13:16)

하나님이 기뻐하는 제사가 있다. 그것은 히13:16에 기록되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착한 일을 행하는 것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주님의 사역이다. 행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이렇듯 선한 일은 주님을 닮는 행함이다.

대개 사람들은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종교개혁적 전통 때문에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을 강조하지 못했다. 그래서 말만 무성하고 열매없는 약골 크리스챤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분명코 선한 행위로는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을 받은 사람은 구원의 열매로 마땅히 선한 행위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 친절하고 배려하고 섬겨주고 공급하고 돌보고 나누어주는 일은 예수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이다. 

엡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예수 안에서 새 사람으로 만들어진 이유는 선한 일을 하기 위함이다. 구원을 받은 존재가 된 이유는 선한 일을 위해서다.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선한 일을 해야 아버지가 영광을 받는다. 

갈6: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아이스크림을 사 먹어도 믿음의 식구에게, 그 다음으로 이웃들에게 그 다음으로 모르는 이에게 하라. 모두에게 착한 일을 하되 믿음의 가정을 중요시 하라. 이런 선한 일을 행하는 제사, 이것이 삶에서 드려져야 할 예배다. 윌리암 템플은 “예배란 하나님의 목적에 우리 뜻을 헌신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목적은 선한 일을 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찾아 본 세 가지 삶의 제사, 이것이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다.

롬12: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믿음으로 드리는 제사, 그것이 삶으로 드리는 예배다. 

이제 교회 밖에서 세상의 삶의 한복판에서 몸을 드리자. 죄를 이기고 유혹을 물리치고 의의 병기로 드려지는 삶의 예배가 드려져야 한다. 그러므로 속회는 영적 예배의 거점이요, 영적 전쟁의 진지인 것이다. 속회에서 삶을 나누고 삶을 배우며 그리스도인들의 제사가 점검이 된다. 삶을 예배로 생각할 때 가정에서 모이는 속회는 축제의 모임이요, 승리의 모임이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강한 영향력의 사람, 세상 속에 나실인으로 서게 되는 것이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서게 되는 것이고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이로 서게 되는 것이다. 찬송의 제사, 증거의 제사, 선을 행하는 제사를 통해 그리스도인으로 드러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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