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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가 천국을 맛보며 사는가? (막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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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천국을 맛보며 사는가? (막 1:15)

스티븐 거레이 박사는 창의적인 연구로 의학계에 큰 업적을 남긴 위대한 의학자입니다. 그에게 한 기자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디에서 그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어 이런 업적을 남길 수 있었습니까?” 박사가 대답햇습니다. “내 어머니 때문입니다.”
   
그가 코흘리개 때, 우유를 마시려고 냉장고에서 우유 통을 꺼내어 열다가 우유를 다 엎질러 부엌이 우유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나와서 보고 “와! 우유를 바닥을 흘렸구나. 세상에! 이렇게 큰 우유 웅덩이는 처음 봤다. 어차피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 우유 웅덩이에 들어가서 놀아 봐라.”라고 했습니다.
   
그가 그 웅덩이에서 한참 놀고 난 다음에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은 결국 정리하고 청소해야 된단다. 너 스펀지로 닦을래? 타월로 닦을래? 걸레로 닦을래?” 그것이 일생 그의 기억에 남는 일이 되었답니다. ‘내가 우유를 엎질러도 혼내지 않고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며 격려해 주는 어머니’ 그래서 그가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 일이 잘못되어도, 연구가 잘못되어도 그때 일을 생각하며 언제나 힘을 얻어 그런 큰 업적을 남겼다고 합니다.
   
영재 초등학교의 타오싱즈 교장선생님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이 왕요라는 아이가 흙덩어리로 자기 반 아이를 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 왜 그러니? 그것은 잘못이야. 몇 시 까지 교장실로 오너라.”
   
아이가 교장선생님에게 꾸중들을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교장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교장선생님이 인자하고 친절한 얼굴로 왕요를 맞이하더니 큰 사탕 하나를 주면서 “왕요야, 이건 상이다. 네가 이렇게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서 주는 상이다.”라고 했습니다. 왕요는 어리둥절하며 사탕을 받아들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또 다시 사탕 하나를 주며 “이것도 상이다. 내가 꾸중할 때 네가 친구를 때리지 않은 것은 교장선생님을 존중히 여긴 것 아니니? 그것이 고마워 이 사탕을 상으로 주는 거란다.”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 교장선생님은 세 번째 사탕을 주며 말했습니다. “이것도 상이다. 네가 진흙으로 그 친구를 때린 것은 그 친구가 게임의 규칙을 어기고 여학생들을 괴롭히며 나쁜 짓을 많이 해서라는 것을 내가 알았단다. 네가 의롭고 정의로운 마음으로 그 친구를 때렸으니 이 상을 주는 것이다.”
   
그러자 왕요가 눈물을 흘리며 “교장선생님, 아니에요. 저를 두 대나 때려 주세요. 그 친구는 착한 친구에요. 내가 나쁜 아이에요.”라고 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사탕 하나를 더 주면서 “이건 네 번째 상이다. 네가 바로 깨닫고 잘못을 반성해서 주는 상이란다”라고 했습니다. 그때 왕요가 큰 힘을 얻었답니다.
   
타오싱스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힘을 주는 선생님,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는 선생님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다고 하나님께서 몽둥이로 마구 두들겨 패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이해해 주시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다른 신자가 너무나 잘 못된 길로 가는 것을 보면서 때로는 ‘하나님께서 뭐하시나 저런 사람은 다리몽댕이를 부지러서라도 깨닫게 해주셔야 하는데..’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를 사랑하시고 그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런 성품을 깨닫게 되면 신앙생활이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이 행복해지는 이런 것을 현세천국을 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죽어서 가게 될 천국에 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죽어서 가게 될 천국을 내세천국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현세천국에 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현세천국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이 이 땅에서 누려야 할 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천국을 누리는 것을 심령천국이라고 합니다. 가정에서 천국을 누리며 사는 것을 가정천국이라고 합니다. 교회에서 천국을 누리는 것을 교회천국이라고 합니다. 어디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천국을 누리면 직장천국, 학교에서 천국을 누리면 학교천국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천국의 맛을 보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심령천국, 가정천국, 관계천국, 교회천국, 직장천국, 학교천국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히 6:5에 보면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믿는 우리가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죽어서 천국에 가기 전에 이 세상에서 먼저 천국을 맛보며 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것을 현세천국을 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현세천국을 누리며 살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크게 두 가지를 다룹니다. 첫째는 현세천국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어떤 사람이 현세천국을 누릴 수 있는가 입니다. 
 

1. 현세천국의 특징 
   
1) 하나님의 다스림이다. 
   
영원천국을 제외한 이 세상은 크게 셋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세계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그 피조세계 안에 마귀가 임금으로 다스리는 마귀의 나라가 있습니다. 요 16:11에 보니 마귀를 ‘이 세상 임금’ 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세계를 마귀가 다스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세상을 위임 받은 인간이 죄를 범하여 마귀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세계 안에서 마귀가 다스리는 곳은 마귀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은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누가 다스리느냐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물론 넓게 보면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스리시지만 성경은 세상을 피조세계와 마귀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로 구분해서 보고 있습니다.
   
같은 한반도에 있지만 휴전선 이북지역은 김정일이 통치하는 북한이고, 휴전선 이남지역은 이명박 대통령이 통치하는 대한민국인 것처럼 피조세계 안에 있지만 마귀가 다스리면 마귀의 나라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면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마귀의 통치를 받고 살아간다면 그는 마귀의 나라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산다면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던 사람이 타락해서 하나님을 떠나서 마귀의 통치를 받으며 산다면 그는 마귀의 나라에서 사는 것입니다.
   
현세천국의 첫 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입니다. 
 

2) 내면적인 것이다. 
   
현세천국은 개인의 내면의 상태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내면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눅 17:20, 21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현세천국을 말합니다. 현세천국은 보이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임하는 것입니다. 내면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내면의 상태에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느냐 못 누리느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마음에 걱정과 근심이 가득하다면 그 사람은 현세천국 밖에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미움과 시기, 질투와 분노가 가득하고 악한 생각이 가득하다면 그 사람은 현세천국 밖에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환경적으로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은데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충만하고, 감사가 넘치고, 기쁨이 있고,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람은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나라 안에, 현세천국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면적입니다. 
 
   
3) 개인적인 것이다. 
   
천국 가는 것이 개인의 신앙에 의해서 결정 되듯이 현세천국을 누리는 것도 개인적인 것입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예배를 드려도 그 사람의 심령상태에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 즉 현세천국 안에 있느냐가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넬슨 만델라는 44세에 감옥에 들어가 71세가 되도록 27년간 감옥에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가 자기를 찾아오는 변호사를 볼 때마다 “여기는 지옥이야! 여기는 지옥이야!”라며 발악을 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감옥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는 비록 감옥에 있어도 건강하니 감사하고, 보잘 것 없는 빵이지만 매끼마다 먹을 수 있으니 감사하고, 캄캄한 감옥에 있지만 작은 창으로 하늘을 볼 수 있으니 감사하고, 강제 노동 현장에 가서 푸른 농작물을 볼 수 있으니 감사했습니다. 또 아침저녁으로 운동할 수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그 후 그를 찾아온 변호사는 그의 얼굴이 달라진 것을 보고 물었습니다. “요즘 어떤가요?” “천국이오.” “뭐가 바뀌었나요?” “아니오, 환경은 바뀐 것이 없지만 내 마음이 바뀌었소.” 내 마음을 좋은 쪽으로 바꾸면 세상도 다 좋은 것입니다. 넬슨 만델라 자신이 바뀌니 지옥과 같던 감옥생활이 천국생활이 된 것입니다. 현세천국은 개인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4) 확장성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은 작게 시작했으나 크게 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전파 사역이 온 유대로 사마리아로 그리고 열방으로 확장되었듯이 현세천국은 내 안에서 작게 시작되지만 점차 확장되면서 내 인생 전체를 바꿔놓고 가족과 가정까지 그리고 민족과 열방까지 바꿔놓는 확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막 4:30-32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겨자씨 한 알처럼 작게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겨자씨가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고 또 큰 가지를 내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눅 13:20,21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어릴 때는 빵을 사서 먹는 일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집에서 만들어 먹었습니다. 어머니가 밀가루 반죽을 하시면서 아주 소량의 이스트를 넣습니다. 그리고는 양철통에 반죽을 넣고 아랫목 이불 밑에 둡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면 반죽이 부풀어서 양철통의 뚜껑을 밀어내고 밖으로 나옵니다. 저는 그 반죽을 손가락으로 떼어서 먹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그 부풀어 오른 반족을 가지고 빵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얼마나 고소하고 맛이 좋았던지 그 때 생각이 납니다.
   
아주 적은 양의 이스트를 반죽에 넣었는데 밀가루 전체가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성이 있는 것입니다. 
 

2. 어떤 사람이 현세천국을 누릴 수 있는가? 
   
어차피 살아가는 세상에서 기왕이면 현세천국을 누리며 살기를 바랍니다. 
 
1) 거듭난 사람이 누린다. 
   
요 3:3에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는 내세천국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세천국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미국에 가려면 3개월은 무비자로 다녀올 수 있지만 전에는 미국에 가려면 미국비자가 필요했습니다. 저도 미국에 갈 때 미국대사관에 가서 인터뷰를 하고 10년 비자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 비자를 받았기 때문에 미국에 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미국비자를 받을 당시에는 미국비자 받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어느 정도 재산이 있다는 증명이 되어야 했습니다. 

여행사 직원은 제게 통장 하나 준비해 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통장에 돈을 넣어둘 능력도 없었고, 어디서 빌릴 형편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집에 있는 아무 통장이나 하나 들고 갔는데 영사가 통장도 보지 않고 10년 비자를 주었습니다. 인터뷰 후에 제가 가지고 간 통장을 열어봤더니 잔액이 18,000원 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미국비자를 받았던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고 믿습니다.
   
거듭났다는 말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천국 비자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내세천국에 갈 자격이 주어지고 또 현세천국을 누릴 자격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세천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듭나야 하는 것처럼 현세천국을 누리려면 반드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엄마 뱃속에서 나와야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처럼 거듭나야만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현세천국은 거듭난 사람이 누립니다. 
 
   
2) 성령으로 사는 사람이 누린다. 
   
마 12:28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롬 14:17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현세천국은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물질이 많고 육신이 편하다고 천국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여름에 제 아내가 무더위에 중에 에어컨이 시원하게 틀어진 자동차에 타면서 몇 번이나 “자동차가 천국이다”라고 하길래 제가 지적했습니다. “천국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은데요”
   
제 아내는 자동차가 진짜 천국처럼 좋다고 한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천국을 과소평가하는 말을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현세천국을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성하고 육체적으로 편안하면 현세천국을 누리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현세천국은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것이 아닙니다.
   
현세천국은 성령 안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의에 들어가고, 성령 안에서 평강을 누리고, 성령 안에서 희락을 누리는 것이 현세천국입니다. 물질과 상관없이 성령의 감동 속에서 의와 희락과 평강을 누리는 사람이 현세천국을 누리를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지 않으면 그 사람은 현세천국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의 이끄심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현세천국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3) 우선순위가 하나님께 있는 사람이 누린다. 
   
눅 18:24,25에 보면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오해의 소지가 많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사실 불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하시면 가능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부자가 천국가기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니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부자는 악하고 부자는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보다 돈이 소중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측정해 볼 수 있는 것이 온전한 십일조입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한 부자 관원이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영생에 대한 대화를 나눕니다. 주님께서 계명을 지키라고 하니 자기는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말합니다. 그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진리를 몰랐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의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의 의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그의 문제를 지적해 주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에게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부자 관원은 근심하면서 주님을 떠나갔습니다.
   
그 부자는 주님보다 물질에 우선순위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주님은 그의 우선순위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시므로 그가 자기의 의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눅 9:60에 보면 주님이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도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죽은 자를 장사하지 말라고 하셨던 말씀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주님에게 두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은 들은 사람이 주님에게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너의 우선순위는 하나님의 나라이다”라고 가르쳐주셨던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4) 청결한 사람이 누린다. 
   
영원천국에 못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죄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영원천국은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죄를 해결하지 못하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첫 번째 설교를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막 9:47에서는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셨고 , 고전 6:9에서 사도 바울은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반문했습니다.
   
영원천국에 죄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처럼 현세천국도 죄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영원천국에 들어가고 또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현세천국을 누리는 것입니다.
   
세인트루이스의 한 감리교회 목사님께서 어느 가정에 심방을 가셨습니다. 남편은 학교 교사로 백인이고 부인은 한국인인 가정입니다. 그 남편이 목사님을 보자마자 “오, 개새끼, 어서 오세요.”라고 하더랍니다. 목사님께서 얼마나 황당하셨겠습니까? ‘아니, 내가 개짓을 했나?’ 예배를 드리고 그 집에서 나오는데, 마음이 참 무거웠답니다. 목사님께서 집으로 돌아오셨을 때 그 부인에게서 전화가 왔답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오늘 놀라셨지요?”, “아니, 집사님의 남편이 저보고 왜 개새끼라고 하셨습니까?”, “목사님, 사연이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 제가 남편과 싸웠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제 영어가 짧지 않습니까? 남편은 도로로로로로록 말을 하는데, 저는 말이 잘 안 나오니 더더더 더더더 해야 되지 않습니까?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서 제가 그만 ‘야, 개새끼야!’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개새끼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에게 부르는 한국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만일 그 부인이 남편에게 개새끼의 뜻을 바로 가르쳐 주었다면 큰 일 났을 것입니다.
   
그 목사님께서는 본의 아니게 개새끼라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남편이 모르고 한 말이니 그런 소리는 들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활이 개처럼 정말 더러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중국여행중에 가이드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재미있으라고 한 말 같습니다. 중국에는 56개의 민족이 산다고 합니다. 그 중에 장족이라는 소수민족이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소수민족이지만 인구는 약 2천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 장족의 특징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거의 씻지 않는답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장족은 평생 3번 씻는다고 합니다. 한 번은 태어나서 씻고, 또 한 번은 결혼할 때, 또 한 번은 죽은 후에 씻는다고 합니다.
   
만약에 지금 이 예배당에 평생 3번 씻는 사람이 앉아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 때문에 예배를 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머리가 아프고 구역질이 나서 함께 앉아서 예배드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가서 예배를 드리든지 아니면 우리가 나가서 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아니지만 육신을 가진 우리들은 견디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죄를 지었지만 목욕하듯이 깨끗이 씻김을 받은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현세천국을 누리는 사람도 죄를 지었으나 예수님의 보혈로 사함 받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5)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이 누린다. 
   
광야 통과라는 대가를 지불한 사람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처럼 현세천국을 누리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원천국은 예수님의 공로만으로 들어가지만 현세천국은 대가를 지불한 사람만이 누리는 것입니다.
   
눅 9:62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손에 쟁기를 잡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것은 하나님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것에 시선이 빼앗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내세천국에도 합당하지 않고 현세천국에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대가를 지불하라고 말하지만 요즘 성도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는 것은 원하지만 대가지불은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살후 1:5에 보면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고 말씀했고, 행 14:22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의 제물로 드리는 대가도 지불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배와 그물을 버리는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의 부귀와 명에를 버리는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우리도 현세천국을 누리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자 집사님이 어느 날 가정을 비관하고 자살하려고 하였습니다. 남편도, 시어머니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집은 좋지 않은 집이라 지저분하였습니다. 자살하자니 구원받지 못 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죽고 싶습니다. 그러나 자살할 수 없습니다. 나를 빨리 천국으로 데려가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네가 너무나 고통을 당하고 있구나. 네 기도를 응답하겠다. 너를 천국으로 데리고 오겠다. 그러나 몇 가지만 순종할 수 있느냐?”, “네. 몇 가지 죽기 전에 순종하겠습니다. 제 기도만 응답하여 주옵소서”, “그러면 네 장례를 치루어야 하니 네 집이 지저분하지 않게 청소를 깨끗이 하거라. 많은 사람이 와서 보아도 정말 깨끗하다는 평을 받도록 청소하거라” 

여 집사는 집안을 안팎으로 청소하였습니다. 며칠 동안 최선을 다 하였습니다. 집이 몰라보게 좋아졌습니다. 다른 집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또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다음으로 할 일이 있다. 네 자녀들이 좋은 엄마가 천국 갔다고 슬피 울 것이다. 며칠 안 남았으니 원 없이 흠뻑 사랑하여 주거라” 여 집사는 흠뻑 사랑하여 주었습니다. 자녀들이 최고 만족을 느끼도록 하여 주었습니다. 안 가던 곳을 데리고 가서 구경도 시켜주고 요리도 만들어 주고 일류 식당도 데리고 가서 맛있게 먹여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자 하나님께서 또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다음으로 할 일이 있다. 남편이 너를 아쉽게 느끼며 좋은 아내였는데 죽었다고 천추의 한으로 남을 정도로 3일만 사랑하여 주거라” 집사님은 또 그렇게 하였습니다. 남편을 최상으로 사랑하여 주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부탁이다. 네가 죽으면 시어머니가 슬피 울도록 시어머니도 사랑하여 주거라” 집사님은 또 그렇게 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며칠 후 주님이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이제 천국으로 가자” 여집사는 마지막으로 집을 돌아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집이었습니다. 자식들을 보았습니다. 행복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남편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사랑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어머니를 보았습니다. 너무나 귀중한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주님! 조금 더 있다 가겠습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 한 일이지만 그 사이에 가정이 천국이 된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현세천국을 만들기 위한 대가를 지불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죽어서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시고 살아서는 이 땅에서 현세천국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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