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오른쪽 지체에 피를 바르는 의미 Putting the Blood on the Right Pa..

첨부 1


“또 다른 숫양 곧 위임식의 숫양을 드릴새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숫양의 머리에 안수하매 모세가 잡고 그 피를 가져다가 아론의 오른쪽 귓부리와 그의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그의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바르고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모세가 그 오른쪽 귓부리와 그들의 손의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그들의 발의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그 피를 바르고 또 모세가 그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구원자로 세우시고,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수치를 당하게 하셨고, 그를 부활시키심으로 성경의 모든 약속의 말씀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해석의 확실하고도 분명한 목표는 철저하고 온전하게 예수님을 바라보고 이를 확고하게 선포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하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많은 강단의 메시지들이 ‘외도’ 를 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성도들로 하여금 성경에서 신랑 예수님을 만나게 하지 않고 다른 것들을 만나게 합니다. 성장을 강조하고, 도덕과 윤리를 우위에 두기도 하며, 처세술에 가까운 세상 지혜를 가르칩니다. 이래서야 어떻게 성도들이 천국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고후 3:14-16=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예수님으로 수건을 벗기지 않으면 유대인처럼 완고한 자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예수님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고, 지금까지 구원을 발로 차버리고 헛된 꿈을 꾸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성도 여러분에게 수건을 벗는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 레위기의 수건을 벗기면 거기 신약성경 전체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레 1~9장은 5대 제사가 4번 반복되고 있는데, 이는 예수님의 일생을 4번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는 사복음서를 가리킵니다. 

 

10~24장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의 성결한 삶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성도와 교회의 삶을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유다서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25~27장은 안식과 상벌에 대한 규례를 말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님의 재림과 천국을 보여주는 계시록과 일맥상통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이 나오는 레위기 8장은 제사장을 위한 화제(火祭)의 내용입니다. 여기 제사장은 1차적으로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내며 2차적으로는 오늘 교회 안에 세워진 직분자들을 의미합니다. 즉 교회 안에서 직분을 받은 자들이 어떻게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십니다.

 


본문에는 제사장의 위임식 때 오른쪽 귓부리, 오른쪽 엄지 손가락,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피를 바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세 가지 피를 바르는 행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주석들은 이를 성별(聖別), 구별의 의미로 해석합니다. 이제 이 피바름을 통하여 제사장들은 성별된 자로 온전히 백성들을 위해 봉사해야 할 임무가 주어졌고, 피를 흘리듯 헌신적으로 일해야 한다고 해석합니다. 

 

물론 틀린 해석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직 수건을 완전히 벗기지 못한 해석입니다. 이 말씀을 해석함에 있어 최우선적으로 강조되어야 하는 바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으로 해석되어야 본문이 지시하는 바가 분명해집니다. 

 


예수님으로 보게 되면 구약의 수건은 철저히 벗겨집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수건을 벗고나면 진리를 온전히 깨달음으로 ‘주의 형상’ 으로 변화되며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예수님으로 보며 그 영광스런 비밀을 살피고 확인해 봅시다. 

 


1. 오른쪽 귓부리에 피를 바르는 의미

 

23절= “그 피를 가져다가 아론의 오른쪽 귓부리와···바르고”

 


먼저 ‘피를 가져다가 아론과 그 아들들의 오른쪽 귓부리에 바르라’ 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아론의 아들들도 직분자들임을 밝혔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직분자들의 귀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발라야만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말씀 순종은 교회 일꾼 된 자의 최우선의 자질인데, 이는 십자가 피의 권세와 능력을 받아야 될 것을 뜻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바르기 전의 저와 여러분은 영적 귀가 막힌 옛사람이었습니다.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어도 들을 수도 없었고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보혈을 바른 후의 우리는 영적 귀가 열려 복음의 말씀을 깨닫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오른쪽 귓부리에 피를 확실히 발라야 합니다.

 


성경에는 ‘귀’ 와 관련된 표현이 다양하게 소개됩니다. 귀는 청각 기관으로도 사용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상징적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성경은 ‘보는 것’ 보다 ‘듣는 것’ 을 더 중요하게 다룹니다. 신앙의 근본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며 들은 말씀에 순종하는 데서 비롯됩니다(신 6:4, 삼상 3:9,10, 롬 10:14,18).

 

 

말씀을 듣는 것을 이처럼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독교 신앙이 계시(啓示), 즉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혈육을 가진 인간이 볼 수 없는 영적 존재이십니다. 그러므로 ‘본다’ 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유보됩니다(고전 13:2, 요일 3:2). 

그리고 상대적으로 ‘듣는 것’ 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은 ‘듣는’ 데서 비롯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귓부리에 피를 발라야 합니다. 십자가의 보혈을 적용하여 영적 복음을 듣게 하는 귀를 만들어야 합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송곳으로 귀에 구멍을 내도록 하는 규례를 주셨는데, 이것은 오늘 말씀의 주제와 잘 연결됩니다.

 

신 15:16-17= “종이 만일 너와 네 집을 사랑하므로 너와 동거하기를 좋게 여겨 네게 향하여 내가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겠노라 하거든 송곳을 가져다가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으라 그리하면 그가 영구히 네 종이 되리라 네 여종에게도 그같이 할지니라” 

 

 

당시 다른 나라들의 경우 종이 자기 집에 속하였음을 나타내고자 이마나 어깨에 화인(火印)을 새기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귀를 뚫었습니다. 

 

본절에서 종은 죄의 종된 우리들입니다. 송곳으로 귀를 뚫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말씀을 깨닫게 된 것을 의미하며, 영구히 종이 된다는 것은 참된 일꾼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귀를 문에 대고 송곳으로 뚫게 하신 것은 말씀을 들을 귀를 갖는 것이 하나님 집의 봉사자의 최우선적인 자질임을 매우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예배시에 설교 말씀을 들을 귀가 있어야 예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성도 여러분! 영구히 하나님의 집에서 섬기게 될 제사장이 임직식 때 귀에 피를 바르는 것이나 주인을 기뻐하는 종의 귀를 뚫고 영원히 그 집에 속하게 하는 것은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그 귀가 열리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마음이 열려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일꾼들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피의 송곳으로 귀를 뚫고 영원히 예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2. 오른쪽 엄지 손가락에 피를 바르는 의미

 

23절= “그 피를 가져다가···그의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바르고” 

  

  

두 번째로, ‘그 피를 가져다가 오른쪽 엄지 손가락 에 바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오른 쪽’ 이 지닌 의미를 살펴봅시다. 성경에서 ‘오른 쪽’ 은 능력을 의미하고(욥 40:14, 시 16:8, 마 24:33), 축복을 뜻하며(창 48:14, 마 25:33), 위엄과 영광의 자리(시 45:9)를 가리킵니다

 

또한 엄지 손가락은 오른 손에서도 가장 중요한 손가락으로서 능력의 중심으로 해석됩니다. 

  

  

그러므로 직분자들이 능력의 상징인 오른 손 엄지에 피를 바르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거룩한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거룩한 능력을 받게 된다는 의미가 됩니다. 보혈의 능력! 교회 일꾼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필수 자원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과거에 십자가 피를 바르기 전의 우리의 손은 죄를 짓는 손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손을 들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후 그들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아담과 똑같은 손을 갖고 있습니다. 불순종의 손, 죄악의 손을 가지고 끊임없이 죄악을 저지릅니다. 

  

  

이러한 타락의 모습은 심지어 거룩한 주님의 교회의 교인들 뿐 아니라 중책을 맡은 직분자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 고백하면서도 손으로 짓는 죄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고와 헌신의 도구가 되어야 할 손이 세상 죄악의 도구와 탐욕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교회 안에서 거룩한 직임을 감당하고 있는 것 때문에 오늘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더러운 손을 씻고 순종의 도구로 사용하려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그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바로 오늘 본문에 선포된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죄로 물든 손에 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원죄 뿐 아니라 자범죄까지도 모두 깨끗하게 씻어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악된 손에 예수님의 보혈을 바르고 거룩한 능력으로 맡은 직분을 거룩하게 감당하십시오.

  

  

십자가 피를 받지 못하고 죄의 능력에 사로잡힌 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가룟유다의 손일 것입니다. 유다는 무리들을 이끌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을 손을 대어 잡았습니다. 그는 스승이며 구주이신 분을 살인자와 강도처럼 매도하고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넘겼습니다. 그밤에 그의 손은 그들로부터 은화 30을 받아서 은밀히 그것을 세고 있었을 것입니다. 가룟유다는 사람이 어디까지 탐욕스럽고 추할 수 있을까 그 극치를 보여줍니다.

  

  

유다가 이렇게 행한 것은 그가 예수님을 따라다니기는 했지만 자신의 손에 예수님의 피를 바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극악무도한 죄를 짓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를 그 손에 바른 자들에게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사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본절에서 ‘굳세게 하리라’, ‘도와 주리라’, ‘붙들리라’ 로 번역된 원문 표현은 모두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미래에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미 그렇게 하셨다는 것으로 확실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이를 감안하여 본문 하반절을 다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너를 굳세게 하였다. 참으로 너를 도와 주었다.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거룩한 예수님의 피로 그 손을 깨끗하게 한 자들을 오른 손으로 확고하게 붙드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손에 바르면 그분의 의로우심을 힘입어 의로운 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른 손의 능력을 힘입어 능하게 일하게 됩니다.

  

  

보십시오. 십자가의 피를 가지신 예수님의 능력의 손은 그 손이 닿는 곳마다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마 8:2-3=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나병환자는 죄와 저주의 상징입니다. 그는 부정한 자로서 스스로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진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홀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를 손을 대어 만지셨고,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졌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서 예수님의 피의 능력을 의지한 베드로 사도의 손을 보십시오.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하체 장애인을 향해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손은 과거에는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떨어뜨린 폭력의 손이요 혈기로 가득찬 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십자가 보혈을 바른 손, 성령님의 능력에 붙들린 손이 되었습니다. 

 


행 3:6-8=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사도 베드로가 잡은 손은 오른 손이었습니다. 오른 손끼리 악수하듯 사도도 그렇게 오른 손으로 이 사람을 붙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이 사람은 발과 발목이 힘을 얻었고, 뛰어 서서 걸으며 성전으로 들어가며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손에는 예수님의 피가 성령님에 의해 발려졌고, 그 피의 능력이 장애인에게 즉시 나타났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엄지 손가락은 피 발린 손가락입니까? 여러분의 사역에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3.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피를 바르는 의미 (= )

 

23절= “그 피를 가져다가···그의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바르고”

 

본문은 세 번째로, 피를 가져다가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바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발은 행함과 관련됩니다. 발은 성경에서 관용적으로 행함의 의미를 지닙니다. 욥기의 표현을 보십시오. “만일 내가 허위와 함께 동행하고 내 발이 속임수에 빨랐다면”(욥 31:5).

  

  

엄지 발가락도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엄지 발가락에 피를 바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바를 때 맡은 직분을 바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십자가 피를 받기 전에 옛사람이었을 때 우리의 발은 죄의 발이었고 악한 발이었습니다. 죄의 발은 끊임없이 악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래서 성경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잠 4:27) 고 하십니다.

 


발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결정됩니다. 여러분의 발이 죄악의 자리로 행하면 여러분의 삶은 죄악의 삶이 되고 의의 자리로 향하면 의의 삶이 됩니다. 주님의 일꾼들은 마땅히 악을 떠나 선과 의를 향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늘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정도를 걷는 발, 가차없이 죄와 단절하는 발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직 예수님의 피 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발에 바르는 길 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십자가 피를 바르기 전 우리의 발은 죄를 저지르는 더러운 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심으로 죄악을 씻는 법을 알게 하셨습니다. 

 

매일 발을 씻어야 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행실도 늘 쉽사리 더렵혀지므로 매일 이를 씻어내야 합니다. 무엇으로 발의 죄악을 정결케 씻을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입니다. 발에 피를 발라야만 온전한 능력을 받게 되고 그 능력으로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려 하시자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발에 피를 바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와 내가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셨고, 후일 베드로는 그 의미를 깨닫고 그 발로 가는 곳마다 예수님의 피의 능력을 드러냈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달려 순교의 제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십자가 피를 바르면 전도하는 능력의 발이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발은 복음에 뿌려진 예수님의 피를 받아야 가능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만이 우리에게 복음 전할 능력을 줍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피의 능력을 받은 사도 바울은 온 땅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과 화목되게 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통하여 온 유럽에 십자가의 도를 전했습니다. 육체의 가시에 시달리는 몸으로 그가 어떻게 그처럼 먼 곳을 다니며 전도자의 삶을 살 수 있었겠습니까? 오직 십자가 복음, 예수님의 피바름의 능력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손과 발에 피를 발라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의 능력으로 사역하는 충성된 종이 될 수 있습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영광은 장차 우리가 누릴 영광을 예표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은 ‘빛난 주석’ 과 같은 발입니다(계 2:18).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발에 예수님의 피를 바르면 보잘 것 없고 추한 우리의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이 변합니다. 또 연약했던 우리의 발이 그 피로 인해 능력의 발로 변화됩니다. 즉 우리의 삶이 능력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같은 원리에서 예수님의 피의 능력을 힘입어야만 우리에게 맡겨진 직분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선택받은 직분자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능력을 붙드십시오. 그 피를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손 엄지, 오른 발 엄지에 바르십시오. 

  

  

이를 위해 우리는 예수님과 더불어 십자가에 자기를 못박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러분의 귀와 손과 발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바름으로 거룩한 삶, 정결한 삶을 살며 바울처럼 위대한 주님의 사역자로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