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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에돔 족속 멸망의 핵심원인 (옵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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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돔 족속 멸망의 핵심원인 (옵 1:1-9) 

오바댜서는 한 장(21절)으로 끝나는 구약에서 가장 짧은 책입니다. 오바댜서의 내용은 에서의 후손인 에돔 국가가 망하는데 조금도 남지 않고 완전히 망한다는 것을 예언한 책입니다. 에돔이란 나라는 지금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느냐? 오바댜의 예언이 그대로 실현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에돔이 멸망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핵심원인은 한 가지입니다. “바위 틈에 거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중심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옵 1:3) 

인간이 망하는 것이나 슬퍼하는 것이나 고통스러워하는 것의 원인을 추적해보면 공통적으로 “중심의 교만”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저주받은 근본 원인도 중심의 교만 때문에 그렇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아진다는 사탄의 꾐에 넘어가서 아담과 하와는 인류를 원죄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 16:18)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잠 18:12) 

사람의 마음 중심에 교만이 있으면 반드시 멸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만이 어디에 거하고 있느냐? 교만이 거하는 곳은 사람의 중심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사상, 생각, 영혼, 태도, 세상과 사람을 보는 관점과 같은 내면에 교만이 서식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교만이 사람의 중심에 거하면 여러 가지 증세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이 완고해지고 불경해지며 하나님의 법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된 모든 것에 적대적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나님을 향하여 적대적이 되느냐? 그것은 그 중심에 교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에서의 삶을 보면 훌륭한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두었지만, 하나님과 부모님 말씀에 순종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에게도 이 중심의 교만이 그대로 이어진 것입니다. 백성의 마음이 교만하면 그 교만은 나라를 속입니다. 어리석으면서도 지혜로운 줄 알고 죄를 지었으면서도 의로운 줄 알고 악하면서도 선한 줄 알고 약하면서도 강한 줄 아는 것입니다. 

에돔이 하나님의 심판을 코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건드릴 나라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도록 만든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사단이 왜 사단이 되었느냐? 교만해서 된 것입니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사 14:13) 아침의 아들 계명성, 루시퍼라는 높은 천사가 이처럼 중심의 교만을 품었다가 쫓겨나서 사단이 된 것입니다. 교만하면 천사도 망하고 인간도 망하고 국가도 망합니다. 중심의 교만은 멸망의 원인인 것입니다. 오바댜 1장 1-9절은 교만이 속이는 네 가지 영역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Ⅰ. 교만은 “하나님이 주권자”라는 사실을 못 보게 한다 

성경 66권을 한마디로 줄이면 “하나님이 주권자시다.”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교만하여 자신들이 주권자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무슨 주권자입니까? 인간이 해를 만들었습니까? 달을 만들었습니까? 만든 것도 없고 만들 능력도 없는 존재가 무슨 주권자입니까? 그럼에도 중심에 교만이 있으면 인간이 주권자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에돔이라는 국가도 하나님께서 탄생시키셨습니다. 에돔의 번영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33장을 보면 야곱과 에서가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야곱이 에서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고 예물을 많이 준비합니다. 하지만 에서가 이렇게 말합니다. “에서가 가로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창 33:9) 

에돔은 왕의 대로가 지나가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통행세만 받아도 넉넉했던 것입니다. 또한 에돔의 안전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에돔은 중심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땅에 끌어 내리겠느냐고 말할 정도로 국가적인 안전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께서는 에돔을 멸망시키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바댜의 묵시라 주 여호와께서 에돔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소식을 들었나니 곧 사자가 열국 중에 보내심을 받고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날지어다 우리가 일어나서 그로 더불어 싸우자 하는 것이니라” (옵 1:1) 

여기서 사자는 동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사자가 열국을 격동시켜서 에돔과 싸우게 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에돔은 국가의 번영과 안전을 자기들의 힘으로 이루었다고 중심에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을 자기가 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심의 교만입니다.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과 번영 그리고 지금 누리고 있는 평안도 우리의 능력으로 이룬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세계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단기간 내에 번영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거부하는 것이 중심의 교만입니다. 교만하면 사람도 국가도 모두 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축복과 번영을 계속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계속 구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에 주신 최고의 선물은 바로 복음입니다. 하나님 자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고 공경하며 영광을 돌리면 우리나라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우리의 후손도 발전하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Ⅱ. 교만은 인간이 안전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못 보게 한다 

오바댜 1장 3절에 보면 에돔 족속은 바위 틈에 거하고 높은 곳에 산다고 나와 있습니다. 에돔의 수도인 세라(페트라)의 주요 도시 데만(드만)과 보스라는 모두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그리하여 에돔 사람들은 이와 같은 자연적인 조건을 자신들의 안전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교만하게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 내리겠느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4절에 대답하십니다.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옵 1:4) 
 
사람이 자연적인 요소나 세상적인 요소를 안전의 근거로 삼고 있다면 중심에 교만이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직업, 건강, 돈, 권력을 의지하고 이런 것들로 인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면 중심에 교만이 있는 것입니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146:3-5) 

하나님을 도움으로 삼고 여호와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지만 방백과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는 것은 헛되다는 것입니다.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시 20:7) 병거가 많은 것을 의지하여 안전하다고 하지만 그런 것을 의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겠다고 하니까 거짓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는 여호와의 전이 있기 때문에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렘 7:4)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서 성전이 있다는 것으로 안전의 근거로 삼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 19절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는 농사를 지어 창고에 추수한 곡식을 쌓아 두고 스스로 말합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눅 12:19)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 12:20) 

내가 너의 영혼을 오늘 찾아가면 너의 남은 재산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재물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할아버지가 재산이 약 이십오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유언을 남기시면서 공증을 안 한 것입니다. 자녀가 아들 둘, 딸 하나인데 공증을 받지 못한 유언장을 놓고서 큰아들이 자신에게 재산을 많이 주라고 했으니 유언장대로 하자고 했습니다. 그

러자 동생들이 반기를 들고 고소해서 결국 삼 분의 일씩 나눠 가지게 되었는데 형제들끼리는 원수가 되었습니다. 방백, 병거, 재물, 명예 모두 의지할 것이 못 됩니다. 우리는 오직 현세와 내세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고 지켜주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만이 영원히 안전한 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Ⅲ. 교만은 인간의 죄성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못 보게 만든다 

에돔은 이웃 나라와 군사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군사동맹을 맺은 이웃 나라들이 자기들에게 잘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에돔은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을 선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전제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한데 환경이 나빠서 악하여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경만 고쳐주면 인간은 선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 자유주의 신학의 핵심입니다. 이것은 성경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입니다. 환경이 좋아진다고 인간이 선해지면 지금 얼마나 잘 먹고 잘 삽니까? 그런데 지금 아이들이 옛날 아이들보다 착합니까? 어림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교만한 사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 인간의 본성은 악하게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을 보면 귀엽지만, 그 속에는 악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렘 17:9) 아이들을 길러도 미운 다섯 살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다섯 살만 되면 어떻게 못된 짓만 하는지 때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속에 있는 악한 본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0) 이것이 로마서의 대전제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악한 사람들만 있느냐?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성령을 주셔서 그 안에 “신의 성품”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진실로 선한 의도를 품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선한 의도만 가지고 있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신의 성품과 함께 모태로부터 받아 나온 죄성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내면에서 옛 성품과 새 성품이 싸우는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 성품을 따라 살지 말고 항상 새 성품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에돔은 이웃 나라를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에돔을 배반하고 약탈했습니다. “너와 약조한 자들이 다 너를 쫓아 변경에 이르게 하며 너와 화목하던 자들이 너를 속이고 이기며 네 식물을 먹는 자들이 네 아래 함정을 베푸니 네 마음에 지각이 없음이로다” (옵 1:7) 옛날 우리나라 도적들은 도둑질해도 최소한의 것은 남겨두고 갔습니다. 그런데 에돔을 약탈한 이웃 나라들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모두 빼앗아 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도 죄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경계해야 됩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도 죄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경계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지혜이고 겸손인 것입니다. 해방 직후에 유행했던 말을 아십니까? “소련놈에게 속지 말고 미국놈 믿지 마라 일본놈 돌아온다.” 우리 조상들이 동맹 국가를 여러 번 경험해봤지만 믿고 의지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을 깨닫고 한 말입니다. 인생을 살다가 남을 너무 믿어서 실패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성을 경계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있는 죄성도 경계하며 살아야 되겠습니다. 


Ⅳ. 교만은 참된 지혜의 근원이 무엇인지 못 보게 한다 

왜 에돔이 동맹 국가에게 침략을 당하고 배반을 당했느냐? 동맹 국가를 의존했기 때문입니다. 이 전략은 에돔의 지혜 있는 자와 에서의 산에서 지각 있는 자들이 세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들을 다 멸하셨습니다. 그들은 지혜 있고 지각이 있다고 했지만 실상 교만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지혜를 우둔하게 만드시고 그들의 지각을 무지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속에서 지혜가 나오지 않습니다.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 자기의 사상으로 삼는 것이 지혜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 1:7)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잠 2: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4)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고전 1:30)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주십니다. 장사하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야 장사가 잘되는 것입니다. 제가 하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하다 보니까 장사를 하는 곳에 가면 성공할지 아니면 망할지가 보입니다. 제가 말을 하지는 않지만 망하겠다고 생각했던 집이 잘된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조선일보를 보다 경제면에서 낯익은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침례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인데 아버지 교회에서 3년간 전도사 생활을 하다가 전셋값이 없어서 떡볶이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지금은 년 매출 1200억 원을 올리는 ‘아딸 떡볶이’의 사장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떡볶이 장사를 목회하듯이 합니다. 첫째, 자리가 좋은 곳에서 장사하라는 것입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조용기 목사님이라도 독도에 가서 목회하면 교회가 성장하겠습니까? 이 사람은 떡볶이 장사하기 좋은 곳으로 파리바게뜨 옆, 빨간불 신호가 긴 건널목을 추천했습니다. 파리바게뜨에서 빵 사러 왔다가 혹은 횡단보도 신호 기다리다가 떡볶이를 사간다는 것입니다. 둘째, 정직하고 깨끗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떡볶이를 먹지 않는지 원인을 파악해보니까 깨끗하지 않아서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장도 하얀색으로 깨끗하게 입고 포장하는 상자도 깨끗하게 만들어서 판매하니까 장사가 잘됐다는 것입니다. 셋째, 소스를 맛있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본인은 소스에다가 맛이 좋은 허브를 첨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맛과 허브 맛이 어우러져서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떡볶이 장사도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야 잘하는 것입니다. 목회도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가 있어야 잘하는 것이고 공무원도 커피장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결론 

지혜는 인간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자기 내면에서 지혜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속는 것입니다. 에돔은 그 중심에 교만이 있어서 완전히 망했습니다. 교만은 사람을 속이기도 하고 국가도 속입니다. 하나님이 주권자라는 사실도 못 보게 만들고 하나님이 안전과 선 그리고 지혜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못 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만하면 망합니다. 그러므로 중심의 교만을 빼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중심에 누구를 모셔야 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님을 모시고 우리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와서 말씀이 우리의 삶을 지배해야 됩니다. 이렇게 살아가면 우리는 현세도 행복하고 내세도 영원히 잘될 것입니다. 그리고 현세와 내세에 안전하며 두려워 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니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송사하고 누가 우리를 정죄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은 두려워하지 마시고 항상 마음에 평안과 안전을 가지고 참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모셔 하나님 말씀에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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