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기도의 3단계 (마 7:7-12)

첨부 1


기도의 3단계 (마 7:7-12)

어느 사우나탕 탈의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탈의실에서 다들 옷 갈아입느라 정신이 없는데 어디선가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한 참 만에 어떤 아저씨가 자연스럽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핸드폰에서 나오는 소리가 워낙 커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통화 내용을 다 듣게 되었습니다. 

“아빠, 나 mp3 사도 돼?” 
“어, 그래~” 
“아빠, 나~ 새로 나온 휴대전화 사도 돼?” 
“그럼~” 
“아빠, 아빠, 그럼 나 TV 사도 돼?” 

옆에서 듣는 사람들이 그 아저씨를 쳐다보았습니다. 아무래도 TV까지는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저씨는 말합니다. 

“응, 너 사고 싶은 거 다 사” 

다들 놀라서 그 아저씨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전화를 끊은 아저씨.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 핸드폰 주인 누구세요?” 

ㅎㅎㅎㅎㅎ 다들 기절초풍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아직 뭔소리인지 이해가 안되는 분들이 계신가요?  

그분은 그 아이 아빠가 아닌 것입니다. 전혀 모르는 아저씨였습니다. 그러니 다 사라고 한 것입니다. 돈은 누가 내나요? 아빠가 내지요. 그 아이는 자기 아버지가 허락했다고 난리 났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에게 기도하시고 계십니까? 
하나님 아버지입니까? 아무 상관없는 아저씨입니까? 어떤 분이신가요?  

여러분이 믿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분이신가요?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와 대화하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늘 동행하며 교제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수없이 많은 곳에서 기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기도하면 들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모든 신앙의 위인들은 모두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기도하는 족장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의 지도자 모세, 불의 사자 엘리야, 눈물의 선지 예레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민족을 위해 에스겔은 기도했으며, 조국을 향해 하루 세 번씩 기도한 사람이 다니엘입니다. 다윗과 솔로몬도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도 성령을 체험하고 기도로 무장한 제자였습니다. 사도바울도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그의 권면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그 기도를 부담스러워하거나 어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구하기만 하면 들어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도 그 약속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다./ 
/기도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기도에 3단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7~8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자세히 보세요. 우리에게 기도하라 하시는데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명령입니다. 권면이 아닙니다.  

영어성경을 보세요. 
Ask, and you will receive./ Seek, and you will find. /Knock, and the door will be opened for you. 

우리가 기도하는 형태는 3단계입니다. Ask, Seek, Knock,

1) 구하는 기도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이 단계는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보며 구하는 단계의 기도입니다. 입술로 구하는 것입니다. 먼저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해야 할지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며 구하라는 것입니다. 구하면 받을 것이라 하십니다. 

그러기에 무턱대고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시기를 원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주의 뜻을 먼저 분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물어보며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때 꼭 필요한 것은 ‘간절한 요청’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구한다는 것은 받기를 간절히 원함이 있어야 합니다. 간절함이 있어야만 기도가 응답되는 것입니다. “주시면 좋고 안주셔도 좋습니다.” 이런 마음이라면 응답이 없습니다. 

설사 응답하신다 해도 별로 고마워하거나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기도하기 전에 ‘기도를 디자인하라’고 합니다. 

내가 무엇을 구할 것인지 ‘기도 설계’부터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인지를 먼저 살펴보고 그리고 무엇을 구할 것인지를 조목조목 준비해 놓고 그 다음에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을 살피지 않고 내 욕심대로 아무리 열심히 구해도 그 기도는 응답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요구가 정말 필요한 것인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라 믿으면 힘써 기도하셔야 합니다. 작정기도도 하고 서원기도도 하고 금식기도를 해도 좋습니다. 

정말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습니까?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면 간절한 마음으로 먼저 구해야합니다. 세상으로 달려가지 전에 먼저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먼저 세상으로 달려가려 합니다. 자식이 병들면 기도부터 하는 것이 아니고 병원부터 달려갑니다. 그러니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도 그것을 아십니다. 그러면서도 구하라 하십니다. 그러기에 믿고 구하세요. 그러면 약속대로 주실 것입니다. 


2) 찾는 기도입니다.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이 단계는 이미 하나님의 응답과 허락이 있음을 믿고 응답을 찾는 기도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입으로의 기도만을 기도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믿고 구한 것은 받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했다면 하나님이 응답하셨음을 믿고 그 응답을 찾아야 합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응답에 대한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 확신 속에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신 말씀을 붙잡고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찾는 것”도 기도라는 사실을 알고 열심을 가지고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처녀 총각들! 잘 들으세요. 

“결혼 배필을 주시옵소서!” 기도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구하고 난 다음,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눈으로 열심히 하나님의 응답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배필이 어디 있는가? 적극적으로 찾으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찾지 않으면 하나님이 배필을 옆에 가져다 줘도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 삶 주변에서도 찾고, 직장에서도 찾고, 목사님에게도 부탁하여 찾아야 합니다. 
그저 기도만 하고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이 ‘여기 있다’ 하고 내 눈앞에 가져다 놓기를 바라십니까? 그러면 응답이 안 됩니다. 

대부분의 노처녀 노총각들의 문제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저 구하기만(Ask) 합니다. 찾아야(Seek) 하는데 찾지를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 응답 받기를 원합니까?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오래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고 깊이 기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미 응답하신 것을 찾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하나님이 이미 응답한 것을 찾지를 않습니다. 그래놓고 응답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3) 문을 두드리는 기도입니다.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기도를 구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응답하셨음을 믿고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찾았으면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들어가야 하는 문이 닫혔을 때 문들 두드려야 열립니다. 두드리되 문이 열릴 때까지 두드려야 합니다.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시, 처녀 총각들에게 말합니다. 기도하세요. 그리고 찾으세요. 그리고 이 사람이다 싶으면 다가올 때를 기다리지 말고 찾아가 두드리세요. 

담대하게 말하세요. 그래야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데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세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두드려야 합니다. 용감한 자가 복을 누립니다. 체면 자존심 내어 놓고 말하셔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건축할 때 이렇게 했습니다. 

개척교회시절 80편 상가건물 3층에서 20평을 얻어 개척을 했습니다. 5~6년 했는데 이 지역에 아파트가 건축되어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인이 204동으로 이사를 왔기에 심방을 왔다가 지금 교회 땅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것이다 싶었습니다. 

땅 살 돈도 없으면서 이 땅 번지수를 복덕방에서 알았습니다. 그리고 구청에서 토지대장을 떼었습니다. 거기에 나온 소유주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초면인 땅주인에게 땅을 팔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하나님의 은혜로 샀습니다.  

땅을 사놓고 건축을 해야 하는데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잘 알지 못하는 건축업자를 후배 목사의 소개를 알았습니다. 안수집사인데 군산에 사시는 분입니다. 돈이 없으니 엄두가 안 났는데 기도하다가 만나보지도 못한 그 분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자초지종을 자세히 밝혀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어느 주일에 우리 교회를 찾아와 예배를 드리고 만났습니다. 돈은 없지만 건축하자 했습니다. 두 번을 왔다 가시더니 건축하겠다 하십니다. 결국, 계약금 천만원주고 중도금 천만 원 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잔금은 건축 후 4년에 걸쳐 나누어 갚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분이 서울에 자기 집을 팔아 교회를 지었고 나중에 푼돈으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해결 됩니다. 

이 3단계 기도는 모든 일에 적용됩니다. 

돈을 잃어버렸나요? 먼저 기도하세요. 그리고 찾으세요. 
직장을 찾습니까? 먼저 기도하세요. 그리고 찾으세요. 그리고 문을 두드리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놀라운 응답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2. 우리 아버지는 항상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가 좋은 것은 응답이 약속된 도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의 상대가 우리 아버지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도는 축복의 도구입니다. 또한 기도는 영계와 현실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리나 우리는 육신으로 현실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이 영적 세계와 현실세계를 연결하고 소통할 수 있는 통로입니다.  

오늘의 시대를 SNS시대라 합니다. SNS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를 뜻하는 것입니다. “사회 연결망 서비스” 라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에는 다방에서 만나고 얼굴과 얼굴을 대면해야 인관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카페’나 ‘싸이월드’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이제 한 단계 더 발전하여 나온것이 Facebook 과 Twitter입니다. 제 나이보다 아래인데 페이스북을 안하거나 트위터를 못 하시는 분은 심각한 분들입니다. 

서로 소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열망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네트워크입니다. 그래서 온 세상이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사람은 사람과는 서로 소통하고 소식을 주고받고 싶어하면서 하나님과는 소통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줄 압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network은 어떠신가요? 
이 연결망이 튼튼하고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사람은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인도의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라고 불리는 윌리암 캐리 선교사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원래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하나님께서 인도 선교사의 꿈을 주셨습니다. 그 꿈을 품고 인도에서 선교하다가 결국 그 땅에 묻히게 됩니다. 

그 ‘윌리암 캐리’ 선교사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 뜻은 기도하는 백성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위대한 일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9절 이하 말씀을 보세요.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여기 “좋은 것”은 뭘까요? 
여기서 좋은 것은 우리 기대보다 더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입니다. 우리 눈에 좋은 것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입니다. 

누가복음11장 13절에서는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가장 좋은 것은 성령입니다. 그러나 이 성령은 이미 우리 속에 내주하셔서 계십니다. 그러기에 단순히 성령을 의미하지 않고 그 성령이 주시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속에 임재하게 되면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성령으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권능으로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고난도 주님을 위한 것이라면 좋은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순교도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라면 좋은 것으로 여기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기에 우리에게 해로운 것, 우리에게 유익이 없는 것은 아무리 떼를 쓰고 금식을 해도 안주십니다. 안 주시는 그것이 응답입니다. 


3.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기도를 가르치다가 갑자기 기도와 상관없는 말씀이 끼어 있습니다. 

12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흔히들 이 말씀을 황금률(The Golden Rule)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시민이 된 백성들에게 주신 행동규범입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것은 역지사지(易地思之) 하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상대를 대접하면 그 상대도 나를 그렇게 대접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말을 여기에 넣어 놓으신 것일까요? 어찌 보면 앞뒤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말씀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여기에 끼여 있습니다. 

왜일까요? 첫머리에 ‘그러므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그러기에 앞 문장과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응답을 받으려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여기 “남에게”의 ‘남’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네가 하나님에게 기도응답의 복을 받고자 하느냐? 그러면 너희가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대우하라는 말은 하나님이 전능자이신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내가 기도한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는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분임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 대우하지 않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람 수준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기도를 안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 봐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못하시는 것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의 문제를 여러분 보다 더 잘 아시고 계시는 분임을 믿습니까? 여러분의 기도를 온전히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임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왜 걱정하시고 염려하십니까?  

어느 교회 목사님이 장로님과 함께 병원심방을 갔답니다. 상태가 안 좋지만 예배를 드리면서 장로님께 대표기도를 하라 했답니다. 장로님이 “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건강케 해주실 줄 믿습니다.” 하며 간곡히 기도하셨습니다. 목사님이 설교한 후 그 병실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이 목사님 옆에 오시더니 “목사님 아무래도 준비해야겠지요?” 하더랍니다. 기도는 했는데 믿지를 못한 것입니다. 

성경은 뭐라 하십니까? 빌4:6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했습니다. 

걱정거리 있습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도하시고 감사로 아뢰시기를 축원합니다.  

또 마태6:25~26절도 보세요.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걱정하느냐는 것입니다.  

이어서 마태 6:31~32절도 보세요.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예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 걱정 염려라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기도하세요. 그리고 염려하지 마세요. 염려와 걱정은 하나님을 하나님대접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시대입니다. 
그러다보니 영적인 시간을 갖는 시간들이 줄어듭니다. 

주일 예배 한번 드리는 것도 어려워지고 조용히 하나님과 일대일로 독대하는 시간이 어려워집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예배와 기도가 삶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도생활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영적 깊이가 있는 기도도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와 깊은 교제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자주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골방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영적 소통은 건강합니까? 

기도가 원만히 이루어지면 영적 건강이 보장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기도가 막히면 모든 문제가 막히게 됩니다. 많은 아픔과 고통의 원인은 기도가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골방을 만드셔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여러분의 시간을 투자하셔야 합니다. “너무 바빠서 기도 못합니다”가 아니라 “너무 바쁘기에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복의 통로이며. 영적세계와 현실세계를 연결하는 생명줄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