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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곤경에 빠졌을 때 기억할 것 (삼상 19: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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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경에 빠졌을 때 기억할 것 (삼상 19:8-24)   

오늘 말씀은 성도가 살면서 곤경에 빠졌을 때 어찌할 것인가 하는 것을 다룹니다. 본문말씀에 보면 다윗에게 무서운 곤경의 상황이 시작됩니다. 죽을 고비가 찾아옵니다. 다윗은 아주 젊은 나이에 죽을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와서 머리에 기름부은 그날 이후부터입니다. 

다윗은 정말 극심한 고생을 시작합니다. 우리 표현으로 산전수전을 다 겪어요. 하나님이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으셨다, 너를 지명하여 부르셨다, 이런 약속을 받았는데, 그러면 좀 좋은 일들이 일어나면 좋은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어요. 우리도 인생을 살다보면 곤경이 찾아옵니다. 이대로 가면 딱 죽을 것 같다 싶은 고비가 와요. 아 이건 너무 견디기 힘들다, 일이 도대체 왜 이렇게 되는 거지? 이런 시간들이 꼭 있습니다. 삶이 그냥 완전히 몰리는 거지요. 

곤경은 크게 나눠서 세가지로 옵니다. 몸이 너무 아파서 질병으로 시달리는 곤경, 어떨 땐 돈이 너무 궁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곤경이 있습니다. 집 가구에 빨간 딱지가 덕지덕지 붙는 일도 있죠. 또 하나의 곤경은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곤경입니다. 누가 나를 너무 미워하는 거예요. 나쁜 사람으로 몰리는 거예요. 내가 다 뒤집어쓰는 억울한 시간입니다. 

가장 견딜 수 없이 죽을 고비는 뭘까요? 이 세가지가 한꺼번에 패키지로 찾아오는 거예요. 돈도 쌀도 떨어졌는데 그때 마침 몸이 아파요, 꼼짝을 못하겠는데 그때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것입니다. 그때 딱 죽고싶은 것이죠. 대부분 이 정도로 심하게 죽을 고비는 결혼한 다음에 시작됩니다.

오늘 다윗은 곤경에 빠집니다. 무슨 곤경입니까? 사울이 다윗을 죽이자는 마음을 굳힌 거예요. 사람이 곤경에 빠질 때 꼭 내가 잘못한 경우에만 그렇게 되는 건 아닙니다. 가만히 보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열등감이나 콤플렉스가 많으면 그 사람 옆에 있기 때문에 곤경에 처하는 수도 있어요. 

결혼할 때 배우자가 무슨 콤플렉스가 있는지 무슨 열등감이 박혔는지 다 알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결혼하고 살다보면 그게 삐져나옵니다. 그러면 헤어질 수도 없고, 잡아먹을 수도 없고 결혼생활은 곤경에 빠집니다. 다윗의 죄는 골리앗을 쓰러뜨림으로써 사울의 열등감을 건드린 것입니다. 사울의 열등감 때문에 다윗은 죽음의 곤경이 찾아오게 됩니다. 사울은 절대 권력자의 위치예요. 최고권력자에게 미움을 받는 사람은 그 고비를 간단히 피하는 방법이 없습니다. 

직장에서 사장님이 결사적으로 나를 미워하면 사표 외에 다른 방법이 없어요. 며느리가 됐는데 시댁 어른이 사사건건 무시하고 미워하면 방법이 없어요. 그런데 오늘 말씀을 잘 읽어보면 다윗이 그 곤경에 파묻히지 않습니다. 죽을 고비를 빠져나옵니다. 이 말씀으로 오늘 우리가 담대함과 지혜를 얻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곤경에 빠졌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하지 말 것인가! 죽음의 고비에 떨어졌을 때에, 아니면 마음이 낭떠러지에 툭 떨어졌을 때에 믿음의 사람들이 할 일은 무엇일까요? 이렇게 하면 그 고비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첫째, 곤경에 빠졌을 때는, 결사적으로 밑을 내려다 보지 않고 하늘을 올려봅니다.

제가 19장을 꼼꼼히 읽어보니까 다윗은 그때 죽음 문턱에 있습니다. 다윗이 죽는다, 다윗을 죽인다, 이 죽음이라는 말이 총 여덟 번 등장합니다. 모든 주제가 다윗의 죽음이예요. 그런데 19장 이후가 되면 그 죽을 고비가 없어지는가? 아닙니다. 19장부터 31장까지, 삼상은 31장이 끝입니다. 거기까지 쭉 읽어보면 다윗의 곤경이 계속됩니다. 사울이 죽기 전까지 다윗은 생명의 위협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놀라운 것을 하나 발견합니다. 다윗이 자기 상황을 내려다 본 흔적이 없어요. 죽음의 고비들이 파도처럼 몰려옵니다. 1절을 봅니다. 사울 왕이 본격적으로 다윗을 잡아 죽이라고 명을 내립니다. 아들 요나단에게 말하고 신하들에게도 공포를 합니다. 다윗을 체포하라! 다윗이 온 나라에 ?기는 현상수배범이 됩니다. 사실 왕이 죽이려고 군사를 풀면 도망갈 데가 사방 천지에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때마다 밑을 내려다보지 않아요. 무슨 말입니까? 

내 현재 모습을 묵상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고 있는거야? 곤경에 빠지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밑을 내려다봅니다. 자기 꼴을 봅니다. 도망다니는 사람의 꼴이 어떨까요? 형편이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면 밀물같이 쑥 들어오는 것이 뭐냐? 자기연민입니다. 에이 정말 되는 게 없네! 난 왜 뭘 해도 이리 안될까? 재수가 없어! 이게 밑을 내려다 보는 것이예요. 돈 없고 몸 아프고 사람에게 시달려보세요. 자기 얼굴보기도 싫어요. 곤경에 빠지면 그래서 대인기피현상이 자연히 생깁니다. 사람 만나기가 싫어요. 

제가 다윗의 곤경을 말하는 이유는, 꼭 정리하십시오. 믿음으로 열심히 살아도 위급한 곤경, 죽음의 고비가 온다! 꼭 내가 잘못하고 죄 지어서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왜 이 곤경이 찾아왔는가 그 이유를 헤집어보려고 사람들 안만나고 혼자 해결하려고 애쓰면 그때 찾아오는 놈이 마귀예요.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은 다 이 단계를 거칩니다. 너 약 먹어라, 수면제 있지? 그거 먹어! 최진실 알지? 박용하 알지? 그렇게 해! 마귀는 우리가 곤경에 빠질 때 자기 모습 비참한 것을 묵상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다윗의 모습을 잘 보십시오. 요나단이 다윗을 찾아옵니다. 다윗! 우리 아버지가 자네를 죽이려고 하시네, 자네 몸을 피하지 않으면 자네 죽어! 그런데 다윗이 그 말을 듣고나서 자기 문제에 깊이 빠지지 않아요. 밑을 내려다보지 않았단 말입니다. 왜 사울왕이 나를 죽이려할까? 이 생각으로 이불 뒤집어쓰고 우울해있지않아요. 

여러분 자기 성찰 하는 것과 자기 문제 집착하는 것을 혼동하지 마십시오. 자기 성찰은 자기 내면을 말씀으로 살피는 것입니다. 자기안에 성령님을 거르스는 것이 뭔지 찾아보는 거예요. 자기 안에 살고있는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건강한 성숙을 가져옵니다. 자기 문제에 집착하는 것은 자기 내면이 아니라 자기 현재 상황을 봅니다. 안좋은 쪽만 봅니다. 이것은 마귀가 곤경에빠진 사람을 끌고 가는 것입니다. 자기 삶을 부정적 관점에서 묵상하게 만듭니다. 

왜 저 사람은 나를 이렇게 차갑게만 다룰까? 도대체 나는 무슨 죄가 이리 많아서 이 고생을 하고살까? 혹시 전생에 지은 죄가 있을까? 부부가 싸우고 나면 억울하고 분하고 슬프고 울분이 나고, 앞으로도 이렇게만 살것 같고, 그러면 갑자기 살기 싫어지고, 가정교회 사명이니 VIP 전도니 이런 것들이 아무 소용없고, 일하기도 싫고 남자들은 나는 돈 벌어다주는 기곈가? 싶고, 여자들은 난 그저 부엌때기 파출부인가 싶어요. 

이게 곤경에 빠질 때 자기 밑을 내려다보는 것입니다. 익숙하십니까? 이 말씀 들으면서 나는 어떠한 곤경에 빠져보았는가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내가 곤경에 빠졌을 때 나는 늘 어떻게 했는가? 내게 익숙한 증상은 무엇인가? 그것이 다윗이 가진 모습과 비슷한가 아니면 정 반대의 모습인가?

8절 봅시다. 다윗은 어때요? 전쟁이 났는데 평소와 다름없이 전쟁에 출전합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블레셋과 싸웁니다. 크게 물리쳐 전공을 또 세웁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의 앞에 감히 도전을 못하고 도망갑니다. 열심히 할 일을 다합니다. 이 말은 다윗이 사울이 죽이려고 하니까, 내가 이 싸움 열심히 해서 사울 좋으라고 하냐? 이 태도가 전혀 없단 얘기예요. 아무리 곤경에 빠져도 내가 할 것 한다 이말입니다. 

9절, 다윗이 사울 앞에서 또 수금을 연주하고 있는데 사울이 다윗을 가만히 보고있다가 갖고있던 창을 확 던집니다. 다윗은 도망쳐서 겨우 목숨을 건집니다. ‘난 지금 죽을 고비에 빠졌어, 난 이제 어떡하면 좋은가? 모든 게 끝났어, 이젠 끝장이야, 이 절망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요. 왜 그런가?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가 내 인생 종착역이 아니예요. 뭐예요? 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이 나를 기름부으셨고 나를 쓰시겠다고 하셨다! 이 믿음이 다윗에게 있어요. 내 인생 사울이 아무리 죽이려고 해도 안 죽지 않아! 내 인생은 하나님 손에 달려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나를 기름부으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시니 나를 이 죽음의 고비에서 건져주실 것이다! 

내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다, 그리고 내 가까이 계신다, 그래서 찬송을 잊지 않아요. 사자의 발톱, 곰의 발톱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골리앗의 손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울의 손에서도 나를 건져주실 것이다. 지금은 곤경이 맞다, 그러나 내 팔자 타령하지 않는다, 징크스 그런 거 없다, 하늘을 바라보자 이것입니다. 

여러분 자전거 처음 배울 때 어떻게 하면 넘어지는지 아시죠? 처음에 자전거 배우면 누가 뒤에서 잡아줍니다. 그러다가 바퀴가 굴러가면 뒤에서 손을 놔요. 안그러면 못배워요. 그런데 가다보면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요. 그때 꼭 넘어집니다. 왜 그래요? 밑을 내려다 봐서 그래요. 그러면 무릎 깨집니다.내 상황이 완전히 몰리네, 어 왜 이러지? 내가 어찌할 방법이 없잖아? 그러면 눈이 아래로 내려가요. 그때 다윗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눈을 들어 하늘을 봅니다. 곤경에는 빠져있지만 자기연민속으로 빠져들어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늘을 보는 훈련, 하나님을 향하여 찬송하는 연습을 하는 사람은 그 곤경이 바로 용광로가 되어 순금으로 제련될 것입니다.

둘째, 곤경에 빠졌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피할 길이 꼭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피할 길이란 뭔가? 그것은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입니다. 본문을 잘 보세요. 다윗이 분명 죽을 고비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그 고비마다 하나님께서 절대 가만 계시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이 피할 길 얘기가 나옵니다.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피할 길이 뭐예요?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기름부으시고나서, 사울 손에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뭔가 조치를 하신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말씀 묵상하면서 다윗에게 피할 길이 뭔가 봤더니, 그것도 사람들이예요. 사람들에게 시달려 곤경에 빠졌을 때 하나님이 마련하시는 피할 길은 지지해주는 사람들이었어요. 목숨이 위태로운 화급한 시간, 사방이 막혀 사울의 창이 파고 들어오는 시간에 다윗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게 하십니다. 그것도 사울의 아들 딸입니다. 요나단, 미갈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아무리 삶이 빡빡하고 아무리 죽을 고비속에 있어도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 한 두명만 있으면 빠져나올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나를 알아주고 나를 믿어주고 나를 지지해주는 소수의 사람들, 하나님이 우리를 곤경의 수렁에서 끄집어내시려고 작정하셨다면, 꼭 이런 지지자들을 보내주십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최고의 지지자입니다. 자기 목숨 아끼듯이 다윗을 아꼈다 그랬습니다. 자기가 입었던 왕자의 옷을 그냥 벗어주고, 칼과 활과 혁대까지 다 줍니다. 

오늘 4절부터 보면 요나단이 뭘 합니까? 아버지가 다윗을 반역음모죄를 뒤집어씌워 죽이겠다고 서슬이 퍼런 상황에서 다윗을 온 몸으로 변호합니다. 아버지, 다윗은 나쁜사람이 아닙니다. 다윗이 죽을 죄를 지은 게 뭐가 있습니까? 그러면서 다윗이 공을 세운 것을 증거를 대면서 변호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마음을 돌이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또 갑니다. 7절, 다윗, 이제는 괜찮을거야! 다윗을 격려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피할 길입니다. 

제가 보니까 우리가 곤경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피할 길이라는 것이 대부분, 나를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몇몇 사람들, 지지자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11절부터 보면 부인 미갈이 다윗의 목숨을 건집니다. 사울이 다윗의 집을 포위하여 체포하라 명을 내렸어요. 아주 상황이 급박한데 부인 미갈이 다윗에게 말합니다. 당신 오늘 밤에 몸을 피해야 해요! 그리고 12절 창문 밖으로 다윗을 내려보냅니다. 여러분 미갈이 사울의 딸입니다. 아이러니컬하죠. 사울은 죽이려고 하고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딸 미갈은 살리려고 하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곤경에 빠진 다윗에게 두 사람의 강력한 지지자를 주셨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것이 매우 소중한 피할 길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영국에서 부교역자 생활 하다가 교회에서 ?겨난 적이 있어요. 담임목사님이 저를 장로님과 자기 사이를 안좋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오해한 것입니다. 얼마나 억울했는지 며칠간 몸살로 열이 펄펄 나고 끙끙 앓았습니다. 그래서 4년 일하던 교회에서 사표를 냈습니다. 제가 그 교회에서 60세 이상 소망회 어르신들을 섬기고 있었는데 들려오는 얘기가 배목사가 나쁜 사람이었다고 그래요. 아무튼 영국 물가도 비싼 곳에서 유학생신분인데, 교회에서 ?겨나고, 돈도 없고 오해도 받고 갈 교회도 없고 참 곤경에 빠졌죠. 

그런데 런던한인교회 김북경목사님께서 저를 좋게 보셨어요. 부활절 수양회 찬양인도자로 오라고, 그래서 그 교회 전교인 수양회 찬양인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중고등부 사역자로 초빙을 해주셨습니다. 갈데도 없는 사람을 불러서 인정을 해주시니까 저쪽 담임목사님께 받았던 상처가 이 김북경목사님의 사랑과 지지로 싹 풀리는 거예요. 그분은 저의 최고의 지지자였어요. 제가 한국에 올 때까지 목사님이 한달에 2백파운드씩 가난한 유학생 집세를 대주셨어요. 물질적으로, 정서적으로 김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제게 피난처로 주신 분이었습니다. 

지금 나를 진심으로 지지해주는 사람은 누군가? 나를 인정해주는 영적 동반자가 있는가? 한 두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은 이미 내 곤경에 피할 길을 마련해주신 것입니다. 직장이나 사업을 하면 곤경에 빠질 때가 꼭 있습니다. 내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위에서 인정해주지 않는 수가 많습니다. 이때 견디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 나를 알아주지 않느냐? 주변을 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요? 효과가 없어요. 오해 받을 때 이사람 저 사람 만나 하소연하지 마세요. 일이 더 커집니다. 그런데 잠잠히 견디면 나를 지지하여 천거해주는 사람이 생깁니다. 그게 피할 길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입니다. 

다윗에게는 요나단과 미갈, 그리 많지도 않았어요. 그래도 동지 한 사람, 아내 한 사람 이렇게 지지자가 되어주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시는 피할 길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많지 않아도 괜찮아요. 친구 요나단과 부인 미갈입니다. 내가 무엇을 결정할 때 아내가 지지하면 그건 90% 성공입니다. 믿습니까? 아내의 지지를 받아내지 못하고서 어떤 일을 추진하는 건 지혜롭지 못합니다. 

다윗이 가장 큰 곤경에서 빠져나올 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다윗이 큰 곤경에 빠졌다, 그러나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더욱 굳게 의지하였다!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의 고비를 만났을 때 죽을 힘을 다해 하늘을 보아야 합니다. 마귀는 지금 내 상황만 내려다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자기연민의 수렁에 빠집니다. 

환경적으로 곤경에 빠져도 그 마음의 수렁에 빠지지만 않으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피할 길이 있습니다. 아무리 위태로운 시간에도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에게 요나단이 있었고 부인 미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다윗에게는 더 많은 지지자가 생깁니다. 아둘람 굴에 피신하고 있을 때 다윗을 따라온 많은 사람들 4백명이 그의 지지자가 됩니다. 나중에는 열두지파 모두가 다윗을 왕으로 따르고 지지합니다. 

다음 한주간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을 찾아봅시다. 새벽이나 저녁이나 힘에 지나도록 하나님앞에 나와 하늘을 보는 훈련을 합시다. 그러면 곤경에서 나오는 길을 우리 하나님이 열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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