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서로 덕 세우기를 힘쓰라 (롬 14:13-23)

첨부 1


서로 덕 세우기를 힘쓰라 (롬 14:13-23)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있는 롬14:1-12에서 교회가 사랑이 넘치고 평화로우며 행복한 공동체가 되기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아주 중요한 권면을 했습니다. 그 권면의 요지는 교회 안에서 서로가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남을 업신여기거나 비판하지 말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은 교회가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공동체가 되기 위한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 13절에서 사도 바울은 권면하기를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합니다.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는 것은 나의 말이나 행동이 다른 이의 생각과 충돌하여 그에게 상처를 주거나 그로 하여금 걸려 넘어지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그 구체적인 예로 다시 한 번 어떤 음식물을 먹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에 관한 문제를 거론합니다. 본문 14절을 봅니다: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사도 바울은 딤전4:3-5에서 쓰기를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마15:11, 18) 하셨습니다. 

그런데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한 말을 오해하고 일반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즉 죄를 개인의 생각과 판단에 좌우되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어떤 행위든 내가 죄라고 생각하면 죄고 내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죄가 아니라는 식으로 상대화시킬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한 말은 우리 신앙의 핵심진리에 관계된 말이 아니고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는 비본질적인 문제들에 관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음식물은 그 자체로서는 더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더럽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더러운 것이고 더럽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더럽지 않다는 말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같은 음식물이 그 음식물을 보는 사람에 따라 더러워졌다 깨끗해졌다 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 말의 진정한 뜻은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물이 더럽다고 여기는 사람은 그 믿음의 확신대로 그런 음식물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럽다고 여기면서도 먹으면 자기의 믿음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 제사에 바쳐졌던 음식물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은 그 음식물을 먹든지 먹지 않든지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물을 먹는 행위가 아무리 믿음의 확신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따른 행위였고 그래서 그 행위 자체로는 죄가 되지 않는다 해도 그 행위가 다른 이에게 미치는 영향의 관점에서 볼 때는 죄가 될 수도 있음을 사도 바울은 중요하게 여기며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물을 아무 거리낌 없이 먹는 나의 행동 때문에 그런 음식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으면서 내가 먹으니까 따라서 먹게 되는 경우입니다. 그런 경우 나의 자유는 남으로 하여금 죄 짓게 하는 것입니다. 남을 죄 짓게 했다면 그것이 나에게도 죄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물을 죄라고 여기는 사람이 내가 그 음식물을 거리낌 없이 먹는 것을 보고 마음에 나를 정죄하게 되고 나 같은 죄인과 같이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 공동체를 떠나고 싶은 시험에 빠질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문제 있어서 양심의 가책이 없고 따라서 내 자유대로 행한다.” 하며 그 음식물을 먹는다면 그것은 그 형제를 사랑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구원하시고 믿음의 공동체로 들어오게 하신 사람을 그런 음식물 먹고 안 먹고 하는 문제로 시험 들게 해서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본문 15절에서 쓴 것입니다: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여기서 “망하게 하지 말라”는 말의 뜻은 믿음의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이 나의 행동 때문에 망하게 될 것이 뻔한 데도 개의치 않고 내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은 비난 받아 마땅한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공동체 안의 형제에게 죄 지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죄짓는 일이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으로 살리신 그의 한 지체를 죽이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본문 16절에서 계속 권면하기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합니다. “너희의 선한 것”이란 말은 “여러분이 선하다고 여기는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물은 먹어도 상관없다는 생각 자체는 옳다고 할 수 있어도 그 음식물을 먹는 행동 때문에 생각이 다른 형제가 마음에 근심하며 시험에 들게 되어 오히려 비방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서 다함께 배우고 추구해야 할 보다 높은 가치가 무엇인지를 말하게 됩니다. 본문 17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며 그 삶의 거울 노릇을 해야 하는 교회공동체에 있어서 어떤 특정한 음식물을 먹어도 되느냐 먹지 말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혀 본질적인 사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보다 높은 가치를 갖는 것은 성령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의로운 삶을 살고 서로 화평하며 다 같이 기쁨을 누리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한 확신을 가지고 그런 자세로 교회생활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바르게 섬기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스도를 섬길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람들로부터도 칭찬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본문 18절입니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1-32)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말씀을 깨달아 아는 것은 우리를 자유로운 사람들로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믿음은 참으로 귀한 선물이고 자유는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는 개인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서로 화평하고 교회 전체에 덕을 세우기 위하여 각자의 자유를 스스로 유보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하며 교회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사람들로부터도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가득 찬 공동체가 되기 위하여 서로 덕 세우기를 힘쓰고 그러기 위하여 각자가 자기의 자유까지도 유보할 줄 아는 것, 이것이 아름다운 일임을 사도 바울은 본문 19-21절에서 다시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그를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게 하시면서 구원하신 사람들을 어떤 음식물을 먹어도 되느냐 먹지 말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로 시험 들게 하고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신 구원의 공동체를 그런 일로 어지럽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희생시키시면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이기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그의 몸 된 교회를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옳고 그름이 분명한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을 넘어서서 아름다움에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각자가 스스로 자기의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고 양보할 줄 아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도 먹을 수 있고 포도주도 마실 수 있지만 나의 그런 행동을 보고 마음의 혼란과 상처가 생기고 시험에 들 형제들을 배려해서 스스로 삼가는 것은 진정 칭찬받을 일이라고 사도 바울은 가르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 덕을 세우는 일의 아름다움을 말함으로써 그가 의도한 모든 생각을 다 개진한 후 다시 한 번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물을 먹는 문제에 관하여 입장을 정리합니다. 먼저 그런 음식물을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관해서 말합니다. 본문 22절입니다: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물을 먹어도 된다고 믿는 사람은 그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즉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서 간직하고 지키는 것이 좋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고 그들 앞에서 자기가 옳다 여기는 대로 행동하여 그들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 하고 실족하게 한다면 그것은 죄를 짓는 일인데 그런 죄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 복 받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어서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에 관해서 말합니다. 본문 23절입니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사람은 그 믿음대로 먹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음식물을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래서는 안 되지 않는가 의심하면서도 남들이 먹으니까 믿음의 확신에 근거하지 않고 따라 먹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믿음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죄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한 말은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행하는 모든 일은 죄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한 것은 어떤 행동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행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는 죄가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믿음의 삶에로 부르셨습니다. 믿음이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그의 인정을 받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는 확신이 없으면서 행하는 것은 죄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교회는 진리의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소한 문제, 비본질적인 문제들의 시시비비를 가리느라고 늘 다투고 서로 비판하기를 일삼는 것은 교회답지 않은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나라 백성이 할 일이 아닙니다. 서로 덕 세우기를 힘써서 교회를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가득 찬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 우리가 모두에게 주어진 도리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자유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의 진리 안에서 자유로워진 사람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유는 좋은 것이지만 남을 생각하지 않는 자유는 공동체에 해로울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남을 배려하여 나의 자유를 스스로 유보하거나 포기할 수 있는 자유까지 있을 때 그 자유는 진정한 자유이고 아름다운 것이 됩니다. 그 진정하고 아름다운 자유로 아름다운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수영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