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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 본 만큼, 훈련받은 만큼 (신 3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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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본만큼, 훈련받은 만큼 (신 34:1-12)

여러분은 여행을 해보셨나요? 모든 여행은 목적지가 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흥분되고 기쁨니다. 

모세도 드디어 광야여행 40년을 마치고 목적지인 느보산에 올랐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던 약속의 땅,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땅을 바라보았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모세의 두 눈에는 눈물과 감동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느보산은 지중해 해수면으로부터 792m입니다. 사해 해면으로부터 1180m나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래서 날씨가 좋은 날에는 멀리 예루살렘과 베들레헴까지 보이는 산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거기까지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거기서 하늘나라로 데려가십니다. 그토록 들어가고 싶었던 그 땅을 눈앞에 두고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십니다. 

그가 병들었나요? 아닙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참으로 매정하게도 모세의 인생을 거기서 마감시키고 하늘나라로 데려갑니다. 눈이 흐리지 않았습니다. 기력도 세하지 않았던 모세였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를 요단강 건너기 전에 느보산에서 데려가셨을까요? 

참으로 아쉽고 궁금합니다. 내가 모세였다면 하나님께 한번 호소를 해 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한발만 들어가 보고 가게해 주세요.” “여기까지 왔는데 저 땅을 한번 밟아보지 못하고 그냥 가기는 좀 아쉽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렇게 호소를 하지도 않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왜 건너가게 안하시고 데려가시나요?
 

1. 하나님은 사명을 마치면 데려가시는 분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실 때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사명을 받고 태어납니다. 그 사명이 사람마다 다 다르고 시한이 다 다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명이 끝나면 하나님은 미련 없이 데려가신다는 것입니다. 

4절~6절을 보세요. 

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모세인생 여기까지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까지 살 것인가요? 우리도 거기까지입니다. 사명이 끝나는 거기까지입니다. 

모세의 사명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약속의 땅까지 인도하는 것이 사명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일을 감당하도록 정치적인 능력을 갖추도록 자라게 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바로 왕의 명령으로 이스라엘에 태어나는 모든 남자는 하수가에 버려 죽여야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모세 어머니가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어 버려지게 됩니다. 그런데 우연처럼 가장된 섭리를 통해 애굽 공주의 아들로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때 그장소에 공부가 목욕하러 나왔다가 그 갈대상자를 본 것입니다. 그래서 왕궁에서 40년간 자라며 배우며 지도자 수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우연처럼 보이는 살인사건을 통해 광야로 쫓겨 가 40년간 양치기를 하면서 미디안 광야 생활에 훈련을 받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왔을 때 그 지역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갖고 있기에 백성들을 잘 통솔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란 말입니다. 모세에게 주어진 사명은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러기에 그 사명이 완수되자 하나님은 그를 데려가십니다.  

하나님은 무턱대고 데려가신 것이 아닙니다. 9절을 보세요. 

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모세는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워 백성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휘권을 넘겨주고 떠났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보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위임식을 하고 안수를 하여 세워줍니다. 그 때 하나님이 주신 지혜의 신이 충만하게 여호수아에게 임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는 모세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떠났습니다. 모압땅 어느 골짜기에 장사되었습니다. 6절을 보세요. 6 벳브올 맞은편 모압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이 말은 깨끗이 떠났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하나님이 그의 시신을 치웠을 것이라 봅니다. 그가 어느 무덤 속에 묻혔다면 사람들은 그 무덤에 가서 절하고 난리 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라집니다. 깨끗이 사라집니다. 왜일까요? 그게 하나님을 위한 길이고 여호수아를 위한 길입니다. 

그러기에 후계자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온 백성이 하나 되어 요단강을 건넜고 가나안 땅을 정복한 것입니다. 모세는 가나안 정복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도록 준비시켜 놓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세상 떠날 때 준비해 놓고 떠나시길 축원합니다. 

자식들도 구원시켜 놓고 전도의 열매도 맺어 놓고 완벽하게 준비되어야 합니다. 주변에 보면 갑자기 아무런 준비 없이 떠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식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니 장례절차도 갈등을 가져옵니다. 

성도 여러분! 
모세를 보세요. 모세는 어느 날 갑자기 당하는 죽음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 사명이 어디까지인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그 죽음을 잘 준비하고 있다가 주님이 가자하시니 멋지게 떠났던 사람입니다. 

어떤 분은 모세의 가나안 땅을 건너지 못하고 죽은 것은 옛날 반석위에서 물을 낼 때 여러 번 반석을 쳐서 하나님의 진노를 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모세가 백성들의 원망불평에 크게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시킨 대로 반석 앞에 백성들을 불러 모아놓고 큰소리를 칩니다. 그때 그가 큰 실수를 합니다. 민20:10절 중간이하를 보세요.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했습니다. 

이 사건도 모세가 요단강 못 건너간 이유 중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모세의 사명이 거기까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반석사건 때문에 죽이신 것은 아닙니다. 못 들어간 이유는 되어도 죽이실 이유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화를 내며 소리치는 실수 한 번 했다고 그렇게 죽으시는 분은 아닙니다. 모세를 그 느보산에서 데려가신 더 큰 이유는 사명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사명을 깨달으면 사람의 삶이 달라집니다. 예배가 사명인 사람은 몸이 아파도 예배를 드립니다. 

목사는 주일날 교회를 갈까 말까 고민하지 않습니다. 왜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자기 사명인줄 아는 사람에게는 어떤 것도 장애물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배가 사명이 아닌 사람은 비가 오면 갈까말까 고민합니다. 기도가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기도합니다. 환경을 핑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사명이 완수되는 그날, 그 역할이 끝나는 그날 여러분은 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기에 그날을 준비하시고 사시길 축원합니다. 언제 부르시든 상관없이, 미련 없이 가실 수 있도록 사명에 최선을 다하며 사시길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은 우리가 가본만큼, 훈련받은 만큼 쓰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여행을 자주 다니시나요? 어디를 가보셨나요? 왜 여행을 떠나고 왜 넓은 세상을 가보아야 하나요? 

여행의 최고 장점은 세상을 보는 분이 달라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제가 교단 총회 선교회에서 선교사로 나가시는 분들을 심사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선교사 후보생들은 선교지를 정하여 심사를 받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왜 그 나라에 가게 되었냐?” 물어봅니다. 놀라운 것은 많은 분들이 “예수 믿고 처음 해외여행을 간 나라가 그 나라”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루마니아에서 사역하시는 박창수 선교사님도 그렇습니다. 그분이 안식년으로 들어왔을 때 제가 그분을 데리고 필리핀에 선교집회를 인도하러 간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선교사님이 말하기를 “내가 해외여행을 필리핀을 먼저 왔더라면 아마도 필리핀 선교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해외여행을 처음한 곳이 동유럽이었답니다. 그래서 지금 루마니아에서 20년째 선교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들어 쓰시기 위해 그를 미디안광야에 내몰아 내셨습니다. 가고 싶어서 간곳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피신한 곳입니다. 

그것에서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를 만났고 그곳에서 결혼을 했고 자식을 낳았습니다.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이고 섭리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들어 쓰시기 위해 그곳으로 보낸 것이고 하나님의 계획가 섭리였습니다. 

장차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해내어 그 땅을 거쳐 가야 하겠기에 미리 그 지역의 지리를 공부시킨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모세를 그 땅에 미리 가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요단강 건너 편 가나안땅은 안 가보았습니다. 그러기에 거기서 스톱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다릅니다. 
여호수아는 옛날 12명의 정탐꾼과 함께 갔다 왔습니다. 40일을 돌아다녀보고 왔습니다. 그래서 그 땅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에게 통치권을 넘겨주고 그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게 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오묘하지 않습니까? 가본만큼 쓰시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성경에서 많은 경우에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사도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쓰셨을까요? 그는 이스라엘 땅이 아닌 길리기아 지방 다소 출신입니다. 그래서 헬라말도 유창하고 더욱이 태어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사용하시면서 온 아시아와 유럽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자로 쓰신 것입니다. 가본만큼 쓰신 것입니다. 훈련 받은 만큼 쓰십니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을 사람들이 많이 욕합니다. 

그런데 그는 정치하기 이전에 사업가였습니다. 현대 그룹에 사장으로 중동지방을 돌아다녔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개발하고 무역하는 일은 아주 잘합니다. 청계천도 그가 밀어붙여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4대강도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해외 사업은 잘나가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UAE원전수주사업,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등 비즈니스 적인 사업추진력은 아주 대단합니다. 

그러나 정치 세계 경력은 약합니다. 두 번 국회의원을 했고 서울시장을 역임했습니다. 그러니 정치인들을 다루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도 그분이 대통령이 된 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니 임기를 잘 채우고 내려오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내년 초에 중고등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비전 트립을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아이들의 시야를 세계로 돌리고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보려 합니다. 세상이 넓고 할 일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하려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 맡기실 때 먼저 마음을 주시고 그리고 경험을 해보도록 하십니다. 

제 막내 동생 목사가 숭실대학교 2학년 때, 어떤 선교단체에서 세계 각국 젊은이들에게 선교훈련을 겸한 여행을 홍콩과 필리핀에서 한다는 사실을 제가 알았습니다. 그래서 동생에게 가려느냐 물었지요. 머뭇거리는 것을 제가 돈을 대서 보내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선교에 눈이 뜨였습니다. 

결국 지금 목사가 되어 홍콩 옆 심천에서 선교에 목숨을 거는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우연(偶然)이 없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이 하나님의 훈련일 수 있고 하나님의 사역 준비일 수 있습니다. 

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출애굽 할 때부터 모세에게 붙여주셨습니다. 그래서 40년 동안 모세 옆에서 비서겸 참모 역할을 하면서 보고 배우게 했습니다. 출애굽기와 신명기 여호수아서를 보면 여호수아라는 사람은 몇 가지로 완벽히 준비된 사람입니다. 

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1)순종의 사람입니다. 40년간 모세의 시종으로 섬겼습니다. 

2)지혜의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세요. 하나님이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3)인간관계에 승리자였습니다. 그는 동역자를 잘 세우는 사람입니다. 함께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유다지파 갈렙은 여호수아와 동역자입니다. 


이런 모습을 다 모세로부터 배웠던 것들입니다. 그러니 결론은 하나님은 우리를 쓰실 때 훈련받은 만큼 쓰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군인이 입대하여 처음 하는 것은 기초 군사훈련입니다. 훈련을 안 받으면 쓰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직급에 합당한 훈련을 합니다. 사병이면 사병에 합당한 훈련을 하고 하시관이면 하사관 훈련을 하고 장교면 장교 훈련을 합니다. 

이른바 맞춤형 훈련을 하신단 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훈련을 받고 계시나요? 여러분이 훈련받고 있는 그 과정은 나중에 그대로 쓰임을 받는 부분입니다. 나와 상관없는 훈련은 없습니다. 


3. 나도 훈련 중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여호수아만 사용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도 쓰시는 분입니다. 문제는 우리도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왜 나를 세상에 보내셨는지를 모른다면 그는 헛된 일에 매여 시간과 정력을 허비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셨고 지금도 내 속에 성령으로 함께 거하시면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내가 힘들고 어려운 광야에 있거든 그것이 나를 훈련시키는 과정임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유 없이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이유 없이 핍박을 당하고 있습니까? 겉으로 보면 이유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는 과정이고 훈련입니다. 

원치 않는 장소에 가야 합니까? 그것도 하나님의 파송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도 나중에 그런 분야에 필요해서 보내신 훈련일 수 있습니다. 

제가 어려서 소아마비를 겪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장애를 갖고 자랐습니다. 제가 원한 고난이 아닙니다. 제가 선택한 것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나는 그 원인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 이런 모습 그대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건강한자들을 부끄럽게 하고 계십니다. 오히려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 하신 것 같이 저를 쓰고 계십니다. 

저는 어려서 하도 많은 어려움을 겪어서 이젠 어지간한 소리는 개의치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뭐든지 결정하고 나가도록 어머님이 길러주셔서 제 혼자 스스로 결정하고 겁 없이 밀고 나갑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어떤 고통이 있습니까? 어떤 아픔을 겪고 있습니까? 
둘 중에 하나일 것이 확실합니다. 

하나는 내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해 엉뚱한 길로 가니 요나처럼 깨닫게 하기위해 물고기 뱃속에 계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우리는 지금 순종을 배우고 있고 훈련을 받고 있는 과정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훈련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보다 성숙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변화시키길 소원하고 계십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어느 병원 재활 센터에 있는 이런 기도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큰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주십사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건강을 구했는데 보다 가치 있는 일들을 하라고 병을 주셨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부유함을 구했더니 지혜로워지라고 가난함을 주셨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다. 
삶을 누릴 수 있게 모든 걸 갖게 해 달라고 기도했더니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주셨다. 
구한 것 하나도 들어주시지 않았지만 내 소원 모두 들어 주셨다. 
뜻을 따르지 못하는 삶이 이었지만 내 맘속에 진작 표현 못한 기도는 모두 들어 주셨다. 
나는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생각과 다르게 일하실 수도 있습니다. 

욥을 보세요. 그는 엄청난 고통을 겪었습니다. 전 재산을 졸지에 잃었습니다. 자녀들을 한꺼번에 잃었습니다. 그리고 거기다 건강을 잃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욥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23:10절에“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할렐루야! 

하나님은 애매한 고난을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성장시키고 성숙시키길 원하셔서 훈련하고 연단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크게 쓰길 원하십니다. 가본만큼 쓰시고 훈련 받은 만큼 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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