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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창 5: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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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창 5:21-24)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결혼식 주례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동행” 또는 “동반자”라는 단어입니다. 지금까지 각자의 삶을 살다가 이제 부부가 되어 함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인생의 길을 혼자가 아니라 이제 둘이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례사에 등장하는 “동행”이란 단어 속에서 우리는 “함께”라는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동행”이란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동행”이란 단어 속에서 “믿음”이란 의미도 찾을 수 있습니다. 부부가 이제 평생을 함께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부 사이에 서로에 대한 믿음(신뢰)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서로에 대한 불신이 있는 사람들은 함께 동행할 수 없습니다. 설령 목적이 같고 목표가 같아 함께 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곧 “불행한 동행”으로 끝나고 마는 것을 우리는 자주 봅니다. 

오늘 말씀에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에녹에 대하여 히브리서 11장 5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은 결국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를 옮겨 가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에녹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려고 한다면 먼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삶을 살다보면 중요한 계기 (契機, chance, opportunity )가 찾아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신앙적인 결단(본문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선택)을 내려야 합니다. 본문에서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은 후(창세기 5:22)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므두셀라”의 뜻은 “셀라의 사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셀라”는 “사람의 이름” 또는 “활”이란 뜻을 가질 수 있는 단어입니다. 만일 “셀라”가 사람의 이름이라면 에녹은 자신의 첫 아들이 “셀라” 같은 사람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셀라”는 아마도 보통 사람이 아니라 위대하고 유명한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오늘 세상의 여느 부모들과 같이 에녹도 자신의 아들이 유명하고 위대한 어떤 인물과 같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셀라”가 “활”의 뜻이라면 에녹은 자신의 아들이 “활의 사람” 활에 뛰어난 사람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즉 활에 대하여는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전문가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오늘 자신의 자식들이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가 되고 학자가 되고 유명인이 되길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에녹은 첫 아들을 낳고 아들에 대한 큰 소망과 비전을 품게 되었습니다. 첫 아들을 낳은 것이 에녹에게는 삶을 다시 생각하고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이름에 걸 맞는 성공을 거두기 위해 부모로서 최선의 역할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럴 때 에녹이 선택한 것은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여러분은 삶에서 중요한 계기가 찾아 왔을 때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십니까? 아니면 더 멀리 하십니까? 중요한 계기 즉 인생의 기회가 찾아오고 또는 여러분들이 이루고자 하는 소망과 비전들이 생겼을 때 또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셨습니까?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야말로 자신의 소망과 비전을 이루는 최선의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여러분도 믿으십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특별한 삶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에녹의 삶에 대하여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구약의 예언자나 선지자와 같이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예언자들은 아주 특별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평범한 삶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만 전적으로 붙잡혀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신약에서 세례 요한의 모습을 보시길 바랍니다. 낙타 털옷을 입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광인(狂人)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선택했을지라도 여전히 그는 자녀를 낳고 가정을 이루며 평범한 삶의 터전에서 살았습니다. 본문 창세기 5장 19절에서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녹은 “삼백 년”이란 기간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과 “자녀들을 낳음”을 함께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은 오늘 우리에게는 “신앙적인 삶” “영적인 삶” 또는 “예배, 기도, 봉사와 섬김, 교회 활동” 등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낳음”은 오늘의 우리들의 가정, 가족, 사업과 직장 등등... 세속적인 삶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에녹에게는 평범한 삶을 계속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에녹에게는 하나님과 동행이 곧 일상적인 삶이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상적인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녹에게 있어 하나님과 동행은 그의 가정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며 그의 사업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고 히브리서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5절~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에녹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특히 한국 교회의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믿음과 삶의 일치, 말씀이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삶 속에서도 적용되며 하나님이 교회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성도의 가정과 일터와 삶 속에도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에녹 같이 우리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 먼저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믿음을 가집시다. 믿음이야 말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만듭니다. 믿음이 있어야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삶의 길이 비록 좁은 길이며 가시밭길 같고 험한 길이지만 이 길이야 말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며 진리의 길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도 에녹 같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계기들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유로 삼으십시다. 어려움, 고난, 목표, 비전, 질병, 가족, 사업과 직장 등등 이 모든 문제들이 여러분이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게 합시다. 우리도 에녹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교회 안에만 가두지 말고 우리의 일상적인 삶 안으로 끌어옵시다. 하나님이 교회만 아니라 여러분의 가정과 사업과 일터와 자녀들과 모든 삶의 방면에 함께하심을 경험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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